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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l 01. 2021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0. 들어가기


사람들과 함께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그림자라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버린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언제라도 팔아 버릴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서 샤미소는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다양한 고민들이 오고갔다. 그리고 연극도 많이 시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양한 의견들을 들어 보았다. 


시차로 보자. 그림자를 모두 팔아넘기고 있는 시점에서는 그림자보다는 '돈'이 가치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인간의 시차가 점점 좁혀져 가는 시기에 인간은 자신이 과거에 했던 일들을 '뼈아픈 후회'로 돌이켜보는 시간이 도래한다. 보편성은 원래부터 있었던게 아니라 '특수성' 속에서 보편성이 등장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가치들이 보여서 보편성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연결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인간을 넘어서는 것들이 남아 있다. 한나아렌트는 행위, 노동, 작업을 중요시한다. 작업은 인공물이고 영구성을 바탕으로 한다. 우는 '돈'이라는 물질을 통해서 자신의 몸과 같은 똑같은 물질을 사고 팔 수 있기는 하다_민네이션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1.작가 소개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는 프랑스 태생이지만, 독일로 망명하여 독일어와 프랑스어 모두 능통하다. 자신을 독일인이라고 지칭한적이 있을 정도로 독일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경계인의 삶,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이는 카프카와 유사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베를린대학원 식물원장을 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작가의 배경은 그대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 속 슐레밀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후기 낭만주의 작가로, 그의 작품은 환상적 성격과 동환적 색채를 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푸케와 물건을 잃어버린 일화를 편지로 주고받다가, 그림자를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상상에서 <그림자를 판 사나이>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2. 줄거리


도움을 얻으러 부호 욘씨에게 찾아간 슐레밀은 그곳에서 회색 옷을 입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주머니에서 온갖 진기하고 신기한 물건들을 꺼내는 광경을 보게 된 슐레밀은 남자가 거래를 제안해오자 이를 받아들인다. 그 거래는 자신의 그림자와 남자의 재화가 무한대로 쏟아져나오는 주머니를 바꾸는 것이었다. 슐레밀의 예상과 다르게 그림자가 없는 자신을 사람들은 무시하고, 조롱하기 시작하고 슐레밀은 사회에 소속되지 못하고 크나큰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는 우연히 한 걸음에 어마어마한 거리를 뛰어넘는 장화를 얻게 되고, 이를 이용하여 자연과학연구에 몰두하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3. 생각해볼 거리


 1) 그림자의 의미


 그림자의 상실은 두 가지 상반된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림자의 상실을 물질에 의한 사회적이고 보편적인 것에 대한 상실로 보는 것으로서, 그림자 매매를 도덕적 인본 규범에 대한 위반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발달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 간의 유대성과 연대성이 사라지는 사회현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그림자의 상실을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와 관련지어 보는 것이다. 보편성과 동일성에서 벗어나 있는, 성적 소수자, 장애인, 사회적 약자, 유색 인종에 대하여 사회가 해왔던 억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질문1. 소설 속 그림자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성적 소수자를 비성작적인 자로 낙인찍은 사회적 기호, 시민적 연대성의 상실, 잃어버린 고향, 매체 사회로의 전환,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는 이방인의 삶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어왔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림자 상실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질문2. 그림자와 그림자의 상실은 사회적 인간vs특수한 개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림자의 의미를 강조해야 할까, 그림자의 상실을 강조해야할까? 혹은 당신이 살아가는 데 있어 더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3. 그림자와 같은 동일성 논리에 의하여 배제되거나 차별된 경험이 있다면? 


질문4. 슐레밀의 경우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불투명하게 존재한다.  소설 속 그림자처럼 평소에는 무관심하고 의식하지 못하지만 사회  우리 사회에서 <인간한적 지표>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또한 그런 지표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일일까? 



2) 인간학적 가치와 경제학적 가치의 거래가 교환되는 사회현상


자본주의의 발달과 신자유주의의 출현등으로 인하여 인간학적 가치와 덕목은 쉽게 경제학적 가치로 환산되기도 한다. 


질문1. 슐레밀이 자신의 그림자와 악마의 주머니를 교환했던 것처럼, 현대사회에서 인간학적 가치와 경제학적 가치가 거래되는 순간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질문2. 슐레밀은 자신의 그림자는 팔았어도 영혼은 팔지 않았다. 이 때의 영혼은 그림자와 비교해서 무엇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적인 가치는 교환될 수 없다. 교환되는 것은 인간적인 가치가 아닌 것이다. 보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통화주의자가 나오는 시기까지 우리는 돈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가 생각난다. 욕망은 '욕구-요구'라고 한다. '요구'는 사회적인 자기이다. 요구가 높아지면 욕망은 커진다. 그림자를 파는 순간은 언제인가? 결국 구조의 문제가 아닐까? 문제는 이동할 수 있다면, 그림자는 언제든지 다시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동할 수 없게 되면 그림자는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3)가상과 현실의 해체 


샤미소는 그림자 상실과 관련하여 반플라톤주의의 모습을 내보인다. 플라톤에 의하면 그림자 상실은 부재해있는 것의 부재 상태이지만,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그림자는 실재보다 더욱 근원적인 것으로 나오며 플라톤의 사유 체계를 전복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속에서 그림자(가상)은 본질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는 현대 매체의 현상처럼 가상이 현실을 앞지르는 현상과 유사하며, 영화 ‘매트릭스’와 시뮬라크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질문1. 현실 속에서 그림자(가상)가 실존(현실)을 앞지르는 현상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질문2. 소설 속 악마는 막대한 물질을 대가로 그림자와 영혼을 얻으려 한다. 그는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에 나오는 그림자에만 관심이 있을 뿐 돈으로는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유창하게 떠드는 악마의 말은 일종의 형이상학적 철학과 예술에 가까운데, 슐레밀은 예술체계가 지닌 가상의 공허함을 아쉽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형이상학적 철학과 예술은 하나의 가상에 불과할까 진리를 드러내는 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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