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Apr 14. 2021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

요한복음 14장_메시지 성경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말대로 행하여

너희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라


내가 아버지께 말씀드려 너희에게

또 다른 친구이신 성령을 보내시게 하겠다


그 분은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다

친구이신 그 분은 진리의 성령이시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

내가 다시 오겠다


그 때가 되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잇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4장_메시지 성경





이게 병인지 아니면 특이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릴적부터 나는 진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거기에 내 모든 걸 걸어도 좋지 않을까?


마치 혼란스러운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서의

바램이 평온한 저녁식탁을 맞이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게 하는 어린시절의 삶은

무엇인가 변하지 않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


한개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었다

시간이 지나서는 이런 고민을 했다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내 안에 있을까?

아니면 그것은 밖에 있는 것일까?


처음부터 인간에게 있었을까?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없었을까?


이런 고민을 가지고 12살이 될 때까지

주변의 그 어느누구도 대댑해 주시 못했다


그렇게 해서 진리의 여정은 멈칫하다가

12살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던 시절


나는 성경책을 만났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

그 어린 나이에 하루 1시간씩 성경을 읽었다


아무런 주석도 필요 없었고

그 유명한 설교도 필요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리를 찾아나서는

대모험에서는 혼자서 떠나는 순례자의 길이었던 것 같다


베르나르베르나르가 그토록 찾아 헤매였던 것들은 결국 어디서왔고 왜 살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존재물음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나도 모르게 방언?이라는 것을 받고

즐겁기보다는 불안했다


왜냐하면 그 방언이라는 것이 언어로 이해되는게 아니라서

진리가 이런 식으로 전달된다면


이건 필시 특권을 누리는 누군가에게만 국한된

진리의 모양이라서 그 자체로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하고 어디서나 찾을 수 있어야 하는게

진리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래서 신기한 일, 초자연적인 현상

내면과 초월이 만나는 일이 많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단으로 분류된 교회에 가서 예배를 잠시 드릴 때도


누군가 다가와서 안산홍의 증인이라며

자신들의 은신처로 데리고 갈때도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한마디를 외쳤다

이곳에서도 성령님이 활동하시나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는데

성령의 음성을 듣게된 일이다


어릴적 먼나라이웃나라에서 크림반도의

나이팅게일이 들었던 그 장면처럼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셨고

성령님은 살아서 내 마음을 뜨겁게 움직이고 계셨으며


내가 그토록 찾아 다녔던 진리가

바로 내 안에서 살아 숨쉬는 것을 깨달았다


초자연적인 현상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가슴 속에 일렁이던 파도가 잠잠해지고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심연의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믿음이 생겼다


그 전까지 외로웠던 소외된 경험은

이로써 완전히 해결이 되었다


처음부터 나는 누구와 함께 있었고

그것이 어렴풋이 들릴 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이제는 확실히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다시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분과 성경을 읽고

함께 춤을 추고 같이 노래를 부르며


때론 집나간 탕자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멀리하다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나님 앞에 앉아서 다시 성경을 폈다


예수전도단이라고 하는 단체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음성듣기보다

훨씬 이전에 성령님을 통해서 들렸던 음성은


진리 그 자체였지만 언제나 성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성경을 가까이두고 진리를 추구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수만번 던져보았지만

그것은 결국 누구와 함께 '있음'에서 말견되는 것이었다


그 자체가 바로 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이제는 고아와 같이 홀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이럴 때 기도가 있지 않은가? 하나님과 내밀한 대화 속에서

말씀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린다




30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비로소.

진리는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며


진리는 배타적이지만

사실은 포용적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진리는 증언이 되며

사실은 설명이 된다는 것을.


오늘 내가 존재하는 사실이

내가 살아온 모든 인생이 그 자체로 중요한


배타성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누구와 계속 걸어왔다는 증거이다


(오늘은 묵상이 다소 간증과 깨달음 중심이다)



고갱의 작품, 어디서 왔고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이 지날수록 의도하지 않아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