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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y 31. 2021

바다를 보며 생각하기

오랜만에 이른 여름휴가 중에서

#1


나의 영혼 어디서 쉴까? 1초에 몇십개의 생각이 날아다는 머릿속에 온통 잡초들이 자라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거꾸로 올라간다는 것, 온갖 교환수단으로 변해가는 이상한나라의 엘리스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꼭 붙잡고 사는 것, 큰 대로가 열린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길을 굳이 놓아 두고 수풀이 우거진 좁은길로 걸어가는 것. 그 어느것 하나 영혼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삶은 매번 무겁고 둔탁한 마찰음을 내면서 움직이는 태엽시계같다. 어느순간 멈춰버릴 것 같은. 그럼에도 불구 하고 잡초가 무성한 머리속에 푸른 잔디를 깔아주시며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시는 분이 있다.


#2


여러가지 공부를 조금씩 해보았다. 과학도 철학도 심리학도 경영학도 정치학도 사회학도. 그런데 이러한 공부들의 가장 기본으로 들어가면 동일한 질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세상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어디서 왔고,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 있다. 그리고 그것을 굳이 답하려고 하면 멈춰야 하고, 가속화된 세상의 흐름에서 뒤쳐진 것처럼 보인다. 뒤처진 사람들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그렇다고 이렇게 뒤쳐진, 주저앉은 혹은 쉬고 있는 사람들을 모은다고 해서 가속화된 사회를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다른 생각들을 해야 한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의 질문의 질문의 근본의 근본의 근본을. 네덜란드의 수상이었던 아브라함 카이퍼의 제자 도예베르트는 이런 질문 앞에서 비로소 이야기를 한다. 세상을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는 것 이전에, 다시 말하면 세계관이라는 잣대를 대기 이전에 인간은 신의 존재에 태어날 때부터 눈뜨고 기원의 기원을 생각한다고. 막스베버는 덧붙여서 종교사회학 선집에서 '신을 향한 가치가 모든 가치의 첫번째'라고 했다. 사실 나는 20대에는 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3


'거대한 전환'으로 유명한 칼폴라니는 말한다. 서구사회가 발견한 3가지의 주제는 이전까지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었다고. 첫번째는 '죽음'에 대한 발견으로 인해서 죽기 전에 해야할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제한된 시간에서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을 최대화시킬려면 바로  '자유'가 필요하며 그 자유는 언제나 개인에게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와 한쌍을 이루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사회'이다. 실재로 존재하는 사회는 자유를 가진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는 한정적인 시간 안에서 버티면서 서로와 맺는 관계의 실재이다. 그런데 이 관계는 미움, 폭력, 살인, 다툼이 될 수도 있고 사랑, 평화, 존중, 배려가 될 수도 있다. 폴라니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이 세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등한시 하거나 경우의 수에 넣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이 시대는 붕괴할 것이다'라고. 붕괴된 현실은 독재로 나타기도 하고 공산주의로 나타기도 하고 학살과 내전으로 나타기도 한다. 사회 안에서 자유를 증진시키며 죽음을 인정하고 제한된 시간안에서 가장 경이로운 가치를 발현시키는 사회. 우리는 다시 거대한 전환 앞에 서 있다.


#4


조용히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고 삶을 생각하고, 바다를 건너본다. 삶을 고민하기도 어언 30여년이 지났다. 매번 자연은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의미의 바다가 부딪히는 자아의 경계선은 항상 확장하고 변화하고 있어서 다른 효과를 만들어낸다. 글로 남기고 사진으로 남기도 다양한 삶의 궤적 가운데 하나의 흐름이 보이는 것 그것은 얼굴에 나타기도 하고 생각에 나타나기도 하고, 발걸음에 나타나기도 한다.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지는 것을 넘어서 누군가의 인생에도 기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때에는 자아의 경계선이 매우 흐려지고 오히려 다른 바다와 만나는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5


나는 누군가가 서로 싸우면 불안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고 싶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싸움은 결국 서로 다른 가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 안에 묶여 있는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사람도 만나고 누군가의 가치를 자신의 가치처럼 사는 사람도 만난다. 누군가는 다양한 가치를 시장에 내다 파는 것처럼 자신의 것도, 누구의 것도 아닌데 장난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산다. 그 가치 중에서 자신이 어떤 가치를 가장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속력을 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서성인다. 빨리 달려간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가치가 가장 근본적인 가치였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행복'이라던지 '자유'라던지. 그런데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효율'이라던지 '효용'이라던지 '교환'이라는 가치가 매복하고 있어서 쉽게 다가갈 수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행복'이나 '자유'는 출발하기 전부터 우리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나중에 깨달은 사람은 인생은 빙글빙글 돌다가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윤회'라고 하겠지만, 아예 처음부터 깨달은 사람들은 달리기를 시작도 안한다. 나는 누군가가 싸울 때 말리는 것보다는 더 큰 가치로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고 싶다.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미 행복과 자유는 우리 안에 있음을. 그러니 그 어떤 것보다 빠르게 얻을 수 있음을 말이다.


#6


제주도에서 이른 휴가를 맞이하고 있다. 한라산도 등반도 생애 처음으로 해보고, 넘실대는 바다를 몃시간째 보기도 한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런 고민들이 대부분은 사라진듯 하다. 청년때는 아직은 새벽이라서 동이 터오르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해가 중천에 떠 있으니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정오에 떠오르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열심히 일구고 땀흘려야 한다. 어른이라는 것은 이런 것일까를 생각해본다. '나의 아저씨'를 다시 정주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시간이 많이 흘러구나 한다. 그냥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끄적여 보았다. 다음 휴가 때에는 또 어디까지 자아의 경계선이 넓어졌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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