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지적인 고민에서 시작했던 생각들이 시간이 갈수록 감정속에 깊숙히 박힌 것들을 찾아낸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이런 생각들로 하염없이 써 내려가는 중이다.
#1
어느정도 생각이 자라나면서 나는 헤르만헤세의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만 이렇게 생각이 많은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데미안을 보면서 암흑과 어두움이 공존한다는 생각에 공감하게 되었고, 누군가의 삶은 어디론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그의 작품 중에서 '싯타르타'를 즐겁게 읽었다. '옴'이라고 말하는 언어와 생각을 뛰어넘는 외침은 나의 모든 생각을 한 순간에 정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외부의 자극이 많으면 그 자극을 해석하느라 사람은 잠을 못잔다. 나는 그랬다. 감각으로 오는 자극 뿐 아니라 내가 하지 못했던 만들이 나의 영혼에 가득 쌓여서 항상 어딘가를 보고 있지만 삼라만상이 춤을 추고 있었더랬다. 그래서인지 나는 인상파들의 작품이 좋았다. 미묘하고 오묘한 사람들의 내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꺼내서 확대해 놓고 마음 껏 즐기고 있는 그들을 나의 마음 속의 살롱에 초대해 놓고 여러 작품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래서 혼자서 미술작품전시회를 가면 귀에 평안안 음악을 들려주면서 마음 속에서 작가들이 뛰어 놀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고 나서 키보드에 손을 올리는 순간 이것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쓰는 것이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가들이 대부분 이렇게 캐릭터의 인격을 부여하고 나면 그 인격끼리 이야기와 대화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은 그 대화를 엿듣는 방식에 따라서 전지적 작가시점이 되거나 관찰자 시점이 되거나 주인공시점이 된다고 한다. 나도 그럴 날이 있을까? 암튼 나는 싯다르타를 시작으로 해서 제임스조이스와 잭런던과 같은 작품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2
철학이 어느순간 쉬워지는 때가 있었다. 그 이유는 '아~ 이사람들도 다 생각하는 구나!'라고 느꼈을 때이다.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인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필립네모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철학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로 부터 자신의 내면이 침범 당했을 때'라고 했다. 어떤 자신이 알 수 없는 자극이 너무 심하게 마음 속에 남았을 때 철학이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어릴적에 힘들게 살았던 탓에 철학자들은 철학자가 되고 싶어서 철학을 한게 아니라 그것들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철학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철학자이다. 내게 들어오는 이 수 만개의 자극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나를 피해가던 것이 있었을까? 몸이 아프면 사람은 왜 아파야만 하는가?에서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면 저 사람의 내면에서는 누가 뛰어 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기고, 국가의 어떤 모습을 보면 '국가는 무엇이길래 사람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는가?'라는 질문이 끝도 없이 피어 올랐다. 철학이 좋은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각이 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철학책을 취미로 읽고 있다. 모두가 그런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철학의 시작은 힘듦, 부조리, 문제 때문에 시작된다. 그런데 '철학'이 해결에 있어서 무엇을 위한 철학이 되어 버리면 심리학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심리를 읽어서 돈을 벌고, 정신분석학이 정치로 넘어가면 정치인들의 마음을 분석하거나 시민들의 정신을 분석해서 자신이 원하는대로 조종하거나 통제하려고 하게 된다. 앞으로 나의 싸움은 이런 사람들과의 치열한 전투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수단'이 되지 않도록, 시민이, 아이들이, 노동자들이 소모품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말이다.
#3
진부한 삶이 싫다. 어느순간부터 고개를 들고 '왜 이렇게 똑같이 살아야지 하지?'라고 질문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겠다. 생각의 범주를 넓혀보니 결국은 내가 가진 구조와 조건은 변하지 않도록 계속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고 어느순간에는 희망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된다. 물어보면 누가 이것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순응하고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4
비가 온다. 흐르는 눈물처럼 빗물이 유리창에 흘러 내린다. 어릴적에는 자연에도 영혼이 있어서, 슬픈일이 있으면 울고 싶어서 비가온다고 생각했다. 너무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면 지금 화가 났나보다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크고 보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결국 어릴적 기억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칸트는 이것을 우리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인식작용으로만 보았고 이에 대한 물지 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손에 잡히는 것들도 머리속의 작용이라고 한다. 그럼 당연하게 드는 질문은 실체란 있는것인가? 이런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5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은 항상 밤에 잘때 까칠거린다. 누군가 칭찬을 하면 나는 괜시리 불편하다. 처음에는 그게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어찌되었든 남에게 평가받는게 싫었던 것 같다. 이런 밤에는 남들이 나를 평가했던 시간들보다, 하루 살면서 내가 평가해 놓고 결정해 놓아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이렇게 놓아두면 나는 계속 다음날부타 고정된 그들을 비껴서 가야하고, 말도 건넬수 없다. 내가 결정해 놓으니 그 사람들도 나를 피해간다. 결국은 서로 피해다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