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누가복음 12장_메시지 성경
거울 앞에 설친다고 해서 키가 1센티미터라도
커진 사람이 있더냐?
그래봐야 소용없는 일인데,
왜 야단법석을 떠느냐?
들판에 나가 들꽃을 보아라
들꽃은 외모 때문에 안달복달하는 법이 없지만
너희는 여태 그런 색깔이나
디자인을 본 적이 있느냐?
이 나라의 남녀 베스트드레서 열명이라도
그 꽃 옆에 서면 초라해 보인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들꽃에도
그토록 정성을 들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너희를 돌보시고
자랑스러워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시지 않겠느냐?
나는 지금 너희로 여유를 갖게 하려는 것이며,
손에 넣는 데 온통 정신을 빼앗기지 않게 해서
베푸시는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 분의 하시는 방식을 모르는 사람은
그런 일로 안달하지만
너희는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의 일하시는 방식도 안다
너희는 하나님이 실체가 되시고
하나님이 주도하시며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삶에 흠뻑 젖어 살아라
너희 매일의 삶에 흠뻑 젖어 살아라
누가복음 12장_메시지 성경
Repect라는 단어는 17세기 이전까지만해도
자연경관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놀아움과 경이로움을 대변하는 동사였다
그런데 17세기가 지나면서 이 단어는
자연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쓰이게 되었다
17세기 이후에는 사람이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한 일들을 해냈기 때문이다
날아다니거나, 바다 깊숙이 들어가거나
치타보다 빨리 달리거나 산맥만큼
거대해졌기 때문이다
Worship이란 단어는 자신을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에게 자신의 가치를 보낸다라는
신에 대한 예배와 경외가 담겨 있었지만
인간이 다른 사람을 신의 자리에 놓거나
자신의 소유물과 구조물들을 신의 자리에 놓으면서
사람을 예배하고, 재물을 예배하고
아주 자주 흔하게 건출물이나 동상을
숭배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도 범주가 달라졌다
인간불평등의 기원을 쓴 루소는
인간들이 서로 모여 살면서 비교하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보다 외모가 뛰어나거나
덩치가 크거나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옆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허영이 부풀어 나고 곧바로 우월감이나 열등감으로
달려가면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걸 인정하면 불평등은 구조화되고
같은 사람인데도 누군가는 존귀해지고
누군가는 하찮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즈음 되면 막가자는 이야기죠?'
처럼 이제 모든 것을 비교하고 서열을 매긴다
하나의 흐름이 정해지면 익숙해져서
같은 경로를 계속 밟아가려고 한다
역사에 깔려진 레일을 따라서 사람들은
계속 걸어간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옷을 사고
실크 드레스에 명품백과 스카프를 걸친다
누군가보다는 뛰어나게, 일반인보다는 특별하게
평범해지는 자신이 비참해 보이지 않게.
나이가 들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보게 된다
누군가 그러더라
에베레스트 정상에 간면 하나님을 믿을 수 밖에 없다고
이것은 도저히 신이 만들었을 수 밖에 없다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존재는 인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은 속에서 선한것을 낼 수도 있고
악한 것을 낼 수도 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의 만드신 디자인에 의해서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자유는 자신의 자리를 찾고
우리가 예배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으며
매번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이등변 삼각형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Worship하면
밑변이 없어져서 자아가 사라지고
서로를 등지고 다른 것을 찾아가면
밑변이 너무 넓어져 결국에는 또한 사라진다
유일한 하나의 점,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예배와 사랑과 헌신이
우리의 희망의 근거가 되고
넌덜머리나는 비교의식과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당연한 길이 된다
당연한 길이 되기에 당연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단어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어야 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매번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