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꽁무니 따라가는 수 밖에
요한복음 13장_메시지 성경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이해하겠느냐?"
너희는 나를 '선생'이라 부르고
'주'라고 부르는데, 맞는 말이다
내가 정말로 그러하다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이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모범을 보였으니
너희도 내가 한 그대로 하여라
나는 분명한 것을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고
사원이 사장에게 명령하지 못한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거든
너희도 그대로 행하여라
요한복음 13장_메시지 성경
기준점 편향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생각의 방법 중 하나인데
처음에 어떤 개념이나 사건을 인식하면
그 것을 기준으로 해서 다른 것들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준을 높게 잡으면 그즈음의 수준에서
계속해서 머무르려고 하고
기준을 낮게 잡으면 낮은 상태로 회귀하려한다
보통 하향평준, 상향평준 하는 것도
기준을 어디에 잡고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 결과를 말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기준점을 만들고
누군가는 누군가가 만든 기준점을 따른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기준점이 있는데
직접경험이 아니라 간접경험이나 말로도
기준점을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기준점을 잡던거, 재물에 대한 기준점을 잡던가
결혼에 대한 기준점이나, 성적에 대한 기준점이나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기준점은
우리를 매번 다른 사람들의 기준점에
맞추어서 살아가야만 하는 양 부축인다
기존의 바리새인들이 만든 기준점은
외모, 실크옷, 예식, 혈통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카르텔로 무너지지 않는
왕국을 만들었고 심지어 하나님도
그들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기준점을 넘어야 했다
애초에 아담과 하와는 벌거숭이였다고 보면
바리새인의 기준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걸까?
예수님은 땅에 쓰신 글씨로
그 기준점을 지우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지도자들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며
우리가 서로의 발을 씻겨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장소에 이상한 점이 찍혔다
그리고 친히 그것을 사건으로 만드시고
성경에 기록하여 '너희도 이렇게 해~!'라고 하신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제시하신
삶의 기준점을 무시하고 지나쳤고
예수님의 기준점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수풀에 가려져서 오솔길 곳곳에 숨겨져 버렸다
드문드문, 가끔가다가
찾아와서 살펴보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기준점을 그렇게 잡지는 않았다
'성지순례'정도였을 뿐이다
나의 기준점은 어디에 있을까?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일까? 아니면 다른 길일까?
말씀을 만나면 항상 빠르게 흘러가는 현실에
갑짜기 비상버튼이 눌린 것처럼
달리던 자리에 멈춰서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기준점으로 잡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막무가내였던 베드로가 베드로 전후서에서
보여준 탁월한 영성이나
야고보서에 나오는 낙타무릎 야고보선생님의
빛나는 지혜나
마지막 요한계시록을 작성하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본 것처럼 말하는 사도 요한이나.
마치 사도행전 28장이 끝났고
이제 29장이 시작된 것처럼
나의 삶에도 새로운 삶의 기준이 제시되고
어디에 방점을 찍으면서 걸을 것인지
구름과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 예수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삼고
오늘도 다른 사람을 섬겨야지~
하는 순간 내 마음 속에서
'다시는 만나지 않을꺼야'라고 했던 이들의
이름을 마음 한켠으로 가지고 와서
어떻게 함께 살까?라는 궁리를 하기 시작한다
누가 보면 미련해보이고 바보같은
뒷모습이겠지만 나의 기준점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닦고 계신
그 뒷모습이기에,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계속 꽁무니 따라가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