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식의 인과관계는 없다
요한복음 9장_메시지 성경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물었다
"랍비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너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부모 때문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탓할 사람을 찾으려고 하니
너의희 질문이 잘못되었다.
이런 일에 그런 식의
인과관계는 없다
차리라 너희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주목 해 보아라."
요한복음 9장_메시지 성경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관계로 인류는 항상 줄다리기를 했다
주술적인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우세했고
계몽주의의 세계에서는 보이는 세계가 우세했다
두 가지 중에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인류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느라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들로 세상을 질서지웠다
마찬가지로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람들도 이 두가지 세계를 왔다 갔다 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그 어느쪽에
앉히고 싶어서 난리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모든 것들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면
그래서 항상 좋은 일들만 있어야 한다면.
이 세상은 이렇게 구성되지 않았을까?
오히려 누군가의 행복이 남에게는 불행인
경쟁의 사회에서는 우연과 필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애매해진다
이미 주어진 조건들로 만족과 행복을
정의하는 사람들의 문화에서는
우연적인 것들이 모여서 필연이 되고
그 필연을 구조화시켜서 매번 향유하기 위한
법과 질서, 기업과 시장의 지배질서
삶과 문화의 테두리가 만들어진다
이해하지 않고 다시 생각하지 않아도
언제나 좋은 디지니랜드가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다
구조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가
다시 구조를 만들어지는 곳에서
문둥병자, 눈먼사람, 사고로 팔을 잃은 사람
정신지체, 정서장애를 겪는 이들이
설 곳은 없다
디즈니랜드 바깥으로 쫓겨나는 수 밖에.
그것에 대한 책임전가를 하려고
하나님을 끌여 들였다
하나님이 죄를 해결하거나 판단하는 분이시니
이들의 죄를 그들의 몸을 심판하신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질병이나 사고, 천재지변이 심판이 된다
그런 세상에서는 하나님은 무섭고 두렵고
아직 세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심판하시는
실현된 종말을 이끌어가시는
주술종교의 신과 같이 된다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움직이고
누구라도 공포에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넷플릭스의 드라마 '지옥'은 바로 이러한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가난이나 질병, 정신적인 문제를 앓는 이들에게
지옥이 도래했다고 믿어 버리고
다시는 생각하지 않고 돌만 던져도 되는 세상.
그런 인과관계는 없다
그런 세상은 없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오히려
탓할 사람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책임질 사람들을 부르신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의 범주 안에서
그리고 우주만물의 합리성과 인과율 안에서
서로가 연결되고 어울리는 세상에서
그런 인과관계는 없다
우리가 인과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씨를 뿌리면 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맺힌다
그럼 여기서 인과관계는 '씨'를 뿌리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인과관계를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눈이 안보이는 사람에게
뇌과학을 공부해서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기술은 인과관계이다
빈곤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구조와 방법을 바꾸어서 새로운 꿈을
품을 수 있도록 함께 걸어가는 길은
인과관계가 농후하다
삶을 포기하려는 이에게 손을 건네어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고 말을 거는 것은 인과적이다
자유의 개념이 from이나 to가 아니라
'친구들 곁에 있다면'으로 정의된다면
친구가 아파서 누워있는데
그게 그 친구의 죄라서 그런다?라고 할껀가?
어떻게 해서든 그 병이 나을 수있도록
해법을 찾아다니지 않을까?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그리스도의 뒷모습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