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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Dec 08. 2021

정치적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정치적 올바름과 우파 포퓰리즘

0. 들어가기


쉽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말을 한다. 말은 무엇인가 대상이 있고 그 대상에 대한 표현이 있다. 그 표현이 무엇인가를 하게 만들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인간은 항상 무엇인가를 분류하기 시작한다. 무엇에 비해서 무엇이 좋거나 나쁘다는 평가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말하는 것에 편견과 배제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것이기도 하지만 욕심과 편견, 이상과 고집이 이렇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은 정치적 올바름이란 이름 안에서 우리에게 배어 있는 차별과 배제를 구별해보고 올바른 개념을 가져보자.


폴리티컬 코렉트니스(Political Correctness: PC), 번역해서 정치적 올바름이란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말자는 신념, 또는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회적 운동이다. 그 시작은 다민족 국가인 미국으로, 1980년대 다른 인권 운동과 함께 강하게 대두되었다. 정치적 올바름은 출신, 인종, ,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장애, 종교, 직업, 나이 등을 기반으로 한 언어적・비언어적 모욕차별을 지양하는 사회 정의를 추구한다_나무위키


질문

-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미움 받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 만약 미움 받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그리고 그 이유에 일리가 있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1. 정치적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정치적 올바름이란 사회운동의 하나로써 소수자들을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언어를 사용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지양하자는 운동이다. 흔히 정치적 Polictical Correctness라고 파악한다. 예전에는 불구자라고 사용하던 단어를 장애인이라고 쓰거나 에스키모라고 폄하했던 사람들을 이누피아크라고 부르는 것들이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정치적 올바름은 사회속에서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했다. 사회 안에서 균등한 역할분배와 취업과 승진에서 소수자 우대정책이 실현되고 있다. 정체성과 연결된 기본적인 표현과 권리에서 배제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2. 정치적 올바름의 태동


그럼 어떻게 정치적 올바름이 시작되었을까? 우리는 이것을 알기 위해서 프랑스 68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68혁명은 '금지된 것을 금지하라'라는 기치 아래서 소수자와 차별받는 이들에게 가혹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운동이 연계되었다. 68혁명은 권위적인 사회를 민주적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1980년대부터는 다양성, 다문화주의의 개념과 연결되면서 '사회정의'적인 측면이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진보주의자들에 대해서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적 올바름과 사회적 정의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치하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대치점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


3. 스피치코드와 정치적 올바름


사회적으로 확장된 정치적 올바름은 진보와 보수의 싸움에서만 아니라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이슈와 연결되었다. 특히 1980년대 미국 대학에서는 스피치코드를 도입하려고 했고 대다수의 대학들이 이것을 도입했다. 스피치코드는 인종이나 종교, 성차와 성적 지향의 차이에 따라서 학생들을 낙인찍고 희생하게 하는 발언이나 행윌르 처벌하는 언어표현 수칙이었다. 오늘날로 하면 혐오표현 금지라고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가 매우 민감한 문제였던 미국사회에서 스피치코드는 처음에는 진보주의자들이 이기는 듯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공적인 부분에서 공적인 표현의 발언까지도 막는 것이 아닌가?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물론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주의가 문제가 되지만 이것을 표현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것 역시 하나의 폭력적인 정책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도덕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될지는 몰라도 법적인 처벌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4. 소수자 우대정책과 정치적 올바름


학교에서는 스피치코드가 정치적 올바름과 연결된다면 공적인 부분에서 사회적으로 1961년에 케네디 대통령이 추진한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화두가 되었다. 1964년 완전히 범제화된 소수자 우대정책은 아프리카계 유색인종의 차별금지가 핵심이었지만 점차 유색인종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여성할당제나 장애인 의무고용제까지 확대되었다.


소수자 우대정책은 미국이라는 맥락에서 정치적 올바름과 연결될 수 밖에 없었고 정치적 올바름 정책의 성과이기도 했지만 반대세력의 '역차별 논란'으로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왔다. 1978년에는 '위헌소송'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은 한 여성 백인학생이 백인이라는 것 때문에 소득수준이나 어떤 개성에 상관없이 역차별 당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위헌소송은 실패했다. 대법원은 합헌으로 인정했고 2003년까지 미국 대법원은 유사사건에 대해서 계속 합헌판결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역차별 반론에 대해서 정치적 올바름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러나 2013년 대입 역차별 문제를 제기했던 에비게일 피셔 소송 사건부터 유보적인 판단이 내려시기 시작했고 2016년에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이후 법무부가 내부적으로 역차별 사례를 조사하고 집단소송을 조직하게 되었다. 이것은 정부 차원에서 소수자 우대정책을 폐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5. 이준석 현상과 우파포퓰리즘


이준석이 36세에 국민의 힘의 당대표가 되었다. 당선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공격과 반페미니즘 공격이었다. 이러한 이준석의 행위는 정치적 올바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파포퓰리즘에서도 고민해봐야 하는 이준석현상을 면밀히 살펴보는 가운데 미국사회처럼 공론화되고 사회적인 문제를 만드는 정치적 올바름을 더 잘 고민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준석 현상에서 다음과 같은 4가지의 요소를 고민해야 한다.

1. 우파 포퓰리즘
2.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
3. 반페미니즘 담론
4. 능력주의 담론


https://www.youtube.com/watch?v=SsGbYUVN0TE



포퓰리즘 레토릭

포퓰리즘은 그 자체로는 레토릭에 있어서 상당한 패턴이 있다. 첫번째는 평범한 인문이 공동체의 기초라고 말한다. 두번째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 권력의 지위를 강탈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셋째로 인민이 자신의 지위를 되찾아 사회를 소생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포퓰리즘은 프레임상 '최고권력의 인민 vs. 사악한 소수엘리트'를 사용한다. 선한 다수의 사람들이 배제되었다는 레토릭과 함께 민주주의를 실현산다는 외형을 가지고 있다.

보통 정치적인 차원에서 포퓰리즘은 배제된 사람들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빼앗긴 자의 박탈감이란느 감정을 동원해서 아웃사이더들을 대표하고 그것을 표출하는 정치적 권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준석 현상은 포퓰리즘이다?

이준석의 포퓰리즘은 형식상으로 민주주의를 수용하고 이어가고 있다.

제도권 정치에 입성하지 못한 이준석은 '아웃사이더 리더'로서 배제된 사람들을 대표한다.

2030이 주도권을 빼앗긴 사회에서 자신들의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열방이 담겨있다.

기성 제도권에 질려 있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열망까지 끌어낸다.

이런 부분을 고려해보면 이준석 현상은 포퓰리즘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좌파포퓰리즘

좌파포퓰리즘과 우파포퓰리즘은 다르다.

21세기엔느 소수 엘리트들이 인민의 평범한 권력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그 권력을 다시 찾자는 운동이다.

좌파 포퓰리즘의 초점은 지구화과 만들어 놓은 세계적인 경제 불평등을 소수의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에게 책임을 돌리고 이것을 다시 찾기 위한 기치를 내건다.

따라서 좌파포퓰리즘은 배제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연대가 가능하다.

미국의 버니샌더스나 영국의 제레미 코빈, 스페인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가 이끈 포데모스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파포퓰리즘

우파 포퓰리즘은 기본적으 엘리트를 소수자로 구분하고 자신들의 경제적인 피해를 받게 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말한다.

우파포퓰리즘은 이민자,외국인, 노동자, 난민, 여성, 성소수자, 유색인종을 외집단으로 설정하고 제 3집단인 외집단들이 우리가 누려야 하는 권리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한다.

외집단은 일반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더 배제된 집단을 자신이 동원하고자 하는 배제된 집단과 대립시켜서 사람들을 움직인다.

대립된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피해를 실제적으로 받게 된다는 우파적 레토릭을 사용하며, 좌파들이 이방인들에게 더 큰 배려를 함으로써 피해가 더 커진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감정적인 부분까지 포함되면서 정치적인 권리가 문화적 문제로 격상하게 된다. 결국 정체성의 문제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배려받지 못하는 계층으로 전락한 '자존감' 잃은 시민들이 분노를 일으켜서 새로운변화를 만들려고 한다.

특히 기존의 자신이 경험한 역차별과 사회적 배제현상이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정치적 올바름을 반대하게 된다.

이렇게 감정적인 상황으로 치달은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소위 잘나가는 좌파 엘리트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무기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더욱 설자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들을 대표할 우파 포퓰리즘의 리더들을 찾아 다니는데 그것이 한국에서는 바로 이준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차별을 실제로 받고 있는 백인남성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은 '백래시'현상으로서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사회운동을 펼치게 된다.


6. 이준석 현상과 정치적 올바름


이준석은 정치적 올바름을 주도한 8퍼센트 정도의 백인엘리트들이 만들어 놓았던 미국의 정치적 올바름의 운동이 미국 사회를 역차별의 사회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소수의 견해를 지나치게 반영하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타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스스로 대중들의 의견을, 청년들의 고민을 대변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전혁적인 우파포퓰리즘의 레토릭이다. 2030을 대표해서 엘리트들에게 피해자고, 기존 정부의 피해자로 자신을 극화시키면서 자신을 지지하는 것이 사회문화적으로 자신들의 우울함과 외로움을 표출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나는 정치적 올바름이 포용하지 못하는
다수 대중의 편이다_이준석


프레임으로는 이기적엘리트들과 보통의 선량한 사람이다. 이러한 선략한 보통사람이 2030이라면, 이준석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이용해서 정치를 한다. 그 정치적 결과는 2030의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것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권력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외로움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보고서에서는 2030에서 가장 큰외로움을 느끼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인 관심이라고 말한다.



https://hrcopinion.co.kr/archives/11770




이준석과 반패미니즘


2030 중에서 이준석이 타깃으로 잡은 사람들은 남성들이었다. 2030세대 남성 전반이 아니라 2030 중에서 배제된 남성들이었다. 이준석은 여기서 경제적 불평등을 시달려온 이유는 세대문제가 아니라 젠더문제라고 말한다. 젠더문제로 인해서 자신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톨르 빼앗겼다고 말한다. 젠더문제의 시발은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정치적 올바름에 편승해서 다소 전체주의적이며 기회주의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여성들은 기술적 발전으로 가사와 육아가 해방되었다. 런 상황에서 남녀차이를 제도적으로 보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시대적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차별의 원인이 된다. 정치적 올바름에 편승해서 기회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인데 그것이 바로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이준석과 능력주의


이준석은 이러한 부당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능력주의를 말한다. 불편부당하게 사회적으로 이익을 차지한 사람들, 특히 페미니스트들, 2030 여성들 중에서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반대로 구조의 이익에 편승한 기회주의자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에서는 2030중에서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은 옳게 여기게 되고, 2030중에서 여성들은 모순된 구조 때문에 능력주의가 아니라 편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성들이 가진 능력주의를 지키면서, 여성들이 가진 능력주의는 불공평을 대변한다는 논리와 프레임을 만든 것이다.



7. 이준석과 우파포퓰리즘의 득세


결국은 이준석은 우파포퓰리즘을 완성했다.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능력주의가 문제이기 때문에 조건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거부하면서 조건이 아니라 기회주의자가 문제라는 것을 혐오와 연결시켰다. 2030남성에게 기회주의자는 진보 민주당과 성공한 여성들이며 자신들은 2중 피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파 포퓰리즘이 원하는대로 경제제도가 착취적이라는 것은 '공정함'으로 피해가면서 그러한 공정함을 피해가는 기회주의자인 여성들을 혐오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파 포퓰리즘은 앞으로도 득세할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과 페미니즘을 공격하면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이 세계의 경쟁과 능력주의 사회를 교묘하게 가리면서 말이다.



0. 나오기


앞으로 고민이 많다. 다음주까지 듣게 되는 2강에서 첫번째 강의를 마쳤다. 포퓰리즘에서부터 시작해서 정치적 올바름까지 생각해야할 것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언제나 피해를 입는 사람은 이 판을 짠 사람이 아다. 이 사회에서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이 결국은 이 판을 짜 나갈 것이다. 정치친들이 피해를 보는 것 보았나? 이것을 우파포퓰리즘은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피해보는 것 봤나?'라고 바꾸어 버린다. 정치적 올바름의 단점이나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포퓰리즘은 극복하는 방법까지 알아보아야 한다. 할 일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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