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의 기원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리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직관과 추론을 사용한다.
보이는 그대로의 인지과정과 직관적 사고 : 보이는 그래로의 인지과저은 특정종류의 패턴이 입력되에 그에 따른느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는데 이런 식의 인지는 별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인지과정이다.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 과정의 수고로움_추론 :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과정은 우리가 어떤 사고과정을 거쳐서 특정 판단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할 때 사용한다. 문제는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과정은 자동적이지 않고 의식적이고 수고롭게 과정을 거쳐야만 알 수 있는 인지과정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추론보다는 직관적으로 사고하려고 한다. 무엇이 옳은지를 숙고하고 추론하는 것보다는 일단 직감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합리화시킨다. 추후에 정당화시킨다는 것이다.
문제는 선입견으로 직관을 추후에 해석해서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냥 놓아두기 때문에 편견으로 바뀌게 된다.
사회는 삶의 패턴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사실 직관적으로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을 기본으로 삶과 사회, 종교와 학교를 바라보게 된다. 사람들은 이유를 따지기 보다는 패턴의 의해서 빠르게 사고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패턴을 가지고 철학을 만들어낸 공리주의는 '행복의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라'라고 하는 매우 직관적이고 단순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조너던 하이트는 공리주의를 비판하면서 감정도 인지로 가득차 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감정이 아무런 출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1980년대가 지나가면서 연구에 의해서 감정을 만들어내는 수 많은 인지자료들을 밝혀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감정이 인지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데이비드 흄은 정에 호소하지 않는, 다시 말하면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논리들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은 어떻게 감성과 직관에 가득차 있는가? 우리의 고민은 바로 이것이다.
<감정노동>으로 잘 알려진 앨리 러셀 혹실드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사회학과 명예 교수로서 플랫폼 노동자나 소외된 사람들을 주제로 사회적인 글들을 쓰고 있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파란 미국’ 버클리에서 주민 절반이 티파티를 지지하는 초보수주의의 숙주인 ‘빨간 미국’ 루이지애나를 오가며 쓴 공감과 이해의 여행기가 바로 이책 '자기땅의 이방인들'이다.
미국 양쪽 연안 도시 지역 진보주의자들이 자기들에게 보내는 경멸에 맞선 분노, ‘우리들’만 뼈저리게 느끼는 연방 정부의 배신을 향한 혐오라는 강한 구심력을 지닌 감정들에 대한 자세하게 써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혹실드는 미국의 대부분의 인구가 트럼프에게 반응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아낸다. 도데체 어떤 부분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었을까? 혹실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국은 불공정한 무역협정 때문에 다른 국가들에게 당하고 미국의 정체성이 훼손되었다. 정경유착이 심해져서 일반시민들의 삶은 피폐해졌지만 정치인과 기업인들만 부자가 되었다.
열심히 일해도 국민들의 삶은 나아질 수가 없다.
지난 15년동안 무려 7만개의 공장이 문을 닫았지만 이유는 경제가 문제가 아니라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해외로 간 것이다.
테러리스트나 강간범죄자들은 멕시코 이민자들과 시리아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있고 이것은 국민의 혈세로 그렇게 된 것이다.
이에 찬성하지 않으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차별주의자도 차별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엘리트들이 던진 의제 때문에 미국 사회는 더 나빠지고 있고 소수 집단들이 독점한 아젠다 때문에 미국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
제일먼저 망가진 미국을 고치기 위해서 해야할 일은 '무역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국익을 보호하고 공고한 국경과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권 엘리트들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트럼프가 필요하다.
결국 이러한 트럼프의 연설은 수백 만의 지지자를 만들어냈는데 백인서민층에 절대적인 공감을 끌어냈다.
구식사고 혹은 차별주의자 혹은 소외당하지만 구차하고 배제되어 살아온 미국 백인 서민들에게 자긍심을 끌어 올렸다.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는 《고국에서 이방인으로 살기(Strangers in Their Own Land)》
‘트럼프는 감성 후보다. 수십 년 동안 나왔던 모든 대선 후보들과 비교하면 트럼프는 정책 공약에 주력하기보다는 지지자들의 감성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부추기는 데 어느 누구보다 심혈을 기울인 후보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의 화법이 자신들과 같아서 좋아함.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멸시, 독설적인 표현 모두가 지지자들에게 어필.
그의 발언에 대해서 주요 언론매체들이 거세게 비판하고, 공화당 지도부에서 그의 행동을 질책할 때마다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갔음.
엘리트들은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트럼프처럼 말하고 트럼프처럼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음.
인종, 성별, 타자성(otherness)의 문제는 미국인의 의식 속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
그렇다고 일반 미국인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은 아닌데, 이들은 단지 문화적 가치가 다르고 소수의 집단을 의식하는 정치인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느끼는 것이 옳다고 훈시하는 것이 싫은 것
전문 엘리트들이 거주하는 대도시나 동·서부 해안 지역 국민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세계관이 매우 낯설다. 그들은 트럼프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위대하기 때문에 다시 위대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글로벌화는 전 세계인에게 혜택을 가져다주었고, 미국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인종적·성적·이념적 차별이 없다. 트럼프가 만들고자 하는 미국은 결코 위대하지 않다. 오히려 반동적(reactionary)이고 위험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노동자층이 당면한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함.
미국 중부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래의 경제 상황에 대해 비관적인데, 아직도 2008년 금융 위기에서 회복하지 못한 마을이 많고,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절망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
밀레니엄 세대는 특히 불만이 많은데, 이들은 채무 부담 때문에 부모 집에서 더 오래 얹혀살고, 결혼은 더 늦게 하고, 부모들에 비해 소득과 소비도 더 적음.
중년 및 노년층에게 이제 미국은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낯선 곳이 되어 버렸음.
전통적으로 기독교였던 미국 사회에 세속주의와 좌파 이념이 깊숙이 스며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국에서 이방인’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음.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수십 년간 가졌던 일자리를 잃었으며, 일을 하고 싶어도 그들에게는 첨단산업이 요구하는 기술이 없음.
트럼프는 바로 이런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과거 미국의 영화롭던 시대를 상기시키며 ‘미국을 우선시하고(America First),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이들의 향수를 자극
지도층과 전문가들은 일반 국민들과 단절되었지만 트럼프의 메시지는 지지자들을 열광시키며 희망을 주었음.
혹실드는 “트럼프가 계속 ‘운동’이라고 부르던 그의 선거 캠페인은 미국인들에게 강력한 항우울제로 작용했다.”고 진단
두 개의 미국이 존재한다.
하나는 엘리트와 전문가들이 사는 나라로서 글로벌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더 큰 상호연결성을 지향하는 미국.
그리고 또 하나 다른 미국(the Other America)이 있는데, 이 나라에 사는 국민들은 정체성을 상실했다. 외국인들 때문에, 첨단기술과 대기업들 때문에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고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느끼고 있다.
이런 대변혁의 시대에 불편한 진실은 사람들이 뒤로 처지고 남겨진다는 점.
글로벌화한 된 체제에서 미국의 노동자층을 비롯한 패자들은 그들이 죽은 후에나 실현될, 어쩌면 그들은 원치도 않은 이상과 목표를 위해 희생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음
마이클왈쩌는 금년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의 결의와 열정적인 활동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자신을 예외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정말이지 활동가들이 남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면 효과적으로 활동하기는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운동을 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운동의 대의보다 더 절박하고 더 즉각적인 관심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중산층이 가진 최악의 편견은 다른 모든 사람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여유로운 생활, 사심 없는 마음, 이상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거나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목표가 중복되거나 유사한 집단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전략에 대한 의견도 다르고, 공략하는 지지층도 다르며 (그러나 실제로는 같은 운동 공간에 있는 핵심 활동가들을 영입하기 위해 경쟁하며), 서로에 대해 멍청이, 골칫거리, 심지어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하며 비난한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연대와 연합은 가능하고 필요하다.”
“‘낯선 이들과의 동침’도 필요하다는 격언은 사실상 준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같으면 말도 섞고 싶지 않을 사람들과 ‘동침’하는 것이야말로 정치활동, 즉 일상적으로 행하는 주장과 책략을 통해 이뤄 내야 할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