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낭만일기

헤픈우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_첫눈에 반한 사랑

by 낭만민네이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첫눈에 반한 사랑>

갑자스러운 열정이 둘을 맺어주었다고
두 남녀는 확신한다.
그런 확신은 분명 아름답지만,
불신은 더욱더 아름다운 법이다.

예전에 서로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전에 스쳐 지날 수도 있었던
그때 그 거리나 계단, 복도는 어쩌란 말인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나지 않으냐고-
언젠가 회전문에서
마주쳤던 순간을?
인파 속에서 주고받던 "죄송합니다"란 인사를?

수화기 속에서 들려오던 "잘못 거셨어요"란 목소리를?
-그러나 난 이미 그들의 대답을 알고 있다.
아니오, 기억나지 않아요.

이미 오래전부터
'우연'이 그들과 유희를 벌렸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은 분명 깜짝 놀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운명이 될 만큼
완벽하게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운명은 다가왔다가 멀어지곤 했다.
길에서 예고 없이 맞닥뜨리기도 하면서,
낄낄거리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누르며,
옆으로 슬며시 그들을 비껴갔다.



신호도 있었고, 표지판도 있었지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제대로 읽지 못해음에야.
어쩌면 삼 년 전,
아니면 지난 화요일,
누군가의 어깨에서 다른 누군가의 어꺠로
나뭇잎 하나가 펄럭이며 날아와 앉았다.
누군가의 잃어버린 것을 다른 누군가가 주웠다.
어린 시절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바로 그 공인지 누가 알겠는가.

누군가가 손대기 전에
이미 누군가가 만졌던
문고리와 손잡이가 있었다.
수화물 보관소엔 여행 가방들이 서로 나란히 놓여 있다.
어느 날 밤, 깨자마자 희미해져버리는
똑같은 꿈을 꾸다가 눈을 뜬 적도 있었다.

말하자면 모든 시작은
단지 '계속'의 연장일뿐,
사건에 기록된 책은
언제나 중간부터 펼쳐져 있다.



https://youtu.be/AJPLgrfBiBo

헤픈우연에 호퍼의 그림들이 오마주된다

처음이라기엔 너무
길을 이미 다 아는 듯이
우연히라기엔 모두
다 정해진 듯이

우연히 눈을 떠 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었고
하필 네가 있는 곳이었다
서서히 몸에 배어버린
사소한 습관들이
네게로 가는 길을 내게 알려줘



처음이라기엔 너무
길을 이미 다 아는 듯이
우연히라기엔 모두
다 정해진 듯이

고통의 사랑도
보통의 이별도
You can make it happen
You can make it heaven
우연히라기엔 모두
다 정해진 듯이



만약 내가 그때 그곳을
헤매지 않았더라면
그날 네가 마음 아픈 이별을 안 했었더라면
네 뒤를 따라 걷던 곳
네가 떨어트렸던 꽃
위태롭던 시간 속
서로를 기다려왔어

운명이라고 하기엔
이를 수 있다 생각해
우연히라고 하기엔
설명이 필요한 것 같아
어쩌면 또 스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그 때로

처음이라기엔 너무
길을 이미 다 아는 듯이
우연히라기엔 모두
다 정해진 듯이

고통의 사랑도
보통의 이별도
You can make it happen
You can make it heaven
우연히라기엔 모두
다 정해진 듯이

어쩌면 기억을 지운 채로
하나였던 우린 둘이 되고
운명이란 작은 점 안에서
서로를 찾으며 살았는지도

고통의 사랑도 보통의 이별도
You can make it happen
You can make it heaven
우연히라기엔 모두
다 정해진 듯이

우연히 서서히
점점 더 멀어져가
우연히 천천히
처음 그곳으로 가



지금도 우리는 스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우연이 쌓여서 필연이 될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