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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an 01. 2022

진실해지는 시간,
영혼이 자리잡는 시간

새해를 시작하기 전에

글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한 글자를 쓰려면 수십번은 생각해야 한다. 진실해지는 시간을 가지려고 몇번이나 이 장소에 왔지만 쓰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이제서야 이렇게 글로 옮겨 본다. 지식을 가졌다고 하는 것도, 무엇인가를 안다고 하는 것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나는 왜 공부를 그리도 열심히 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게 열심히 하는 건가? 나는 아직 만족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누군가를 제대로 도운 적도 없고, 내가 공부한 것이 사람들을 마~악 이롭게 한것도 아니다. 대안이라고 말했던 것들도 현실에서 잘 돌아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진실해지는 시간, 나에 대해서 허풍떨지 않고 진솔하게 써보고 고민하는 시간. 영혼이 자리잡는 시간.



어떤 상처가 생긴다. 마음에 스쳐가는 경험이 조그마한 상처를 남긴다. 헤어진 연인, 어머니의 실망하는 소리, 인정받지 못함에서 오는 서운함, 누군가의 칭찬이 내게 아니었을 때 허탈감. 상처들이 하나둘씩 쌓여서 감정의 집을 만들고 어떤 일들이 생기면 그 감정의 집들 안에 자신들의 방안으로 들어가서 숨어 버린다. 그러다가 모두가 잠든 사이에 슬그머니 방에서 나와서 내 마음을 온통 흐트러놓고는 낄낄거리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한다. 아무도 모르는 언어들을 가지고 찾아오는 상처들의 발목을 잡고, 부둥켜 놓지 않는다. 진실해지는 시간에 나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상처들과 마주 앉아서 하나하나 대화를 한다. 들뜬 영혼이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네 탓이 아니야!

아니 오히려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내 탓이만 어때. 가만히 앉아서 먼저 인정한다. 그 상처들의 시작은 결국 나였고, 그래서 내가 책임지기로 한다고. 책임은 하나하나 응답하는 것이고, 그것을 그대로 내 버려 두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상처들과 마주앉아서 하나하나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내 인생에서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아간다. 내가 책임을 회피하거나 전가하는 순간마다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내 것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그 시간을 다시 마주해도 여전히 우회로가 생기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그 사람 탓, 그 상황이 그래서라고 말해 버린다. 그리곤 다시 감정의 집에 사는 친구들은 문을 꽁꽁 싸매고서는 절대로 나오지도 않는다. '내 탓이다' 인정하자. 그 만큼 나는 내가 책임을 지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으니 이제 하나하나 복기해보자. 정말 그게 그렇게 잘못되었고, 그렇게 힘들었어야 했을까? 



타인보다 민감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다만, 타인보다 민감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을 뿐.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렇게 민감해지는 않는다. 그러니 나는 그 민감함을 그냥 인정하고, 그게 나라고 받아들인다. 그 다음부터 민감함을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 민감함이 총출동하는 시간에는 그 민감함에 집중한다. 그리고 오히려 그 감정을, 그 살깣의 언어에 귀를 기울인다. 사람들의 마음이 반쯤 열렸다 닫히는 소리, 서운함에 뒤 돌아 서면서 흘리는 인생의 의미들이 붙여진 발자국, 생각하다가 말아버린 계획들의 끄트머리에 있는 가능성일 실마리, 고백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의 한편의 두려움, 돈이 없어서 사고 싶은 것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사면서 합리화하는 마음의 몇 가지의 얼룩들. 다 보인다. 다 느껴진다.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는 그 얼룩들이 하나하나 집에 와서 생각해보면 때론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때론 애매한 감정을 만든다. 


23그램


영혼의 무게는 육체의 무게를 뺀 나머지 일까? 아니면 육체의 무게 앞자리에 보이지 않는 무게일까? 육체가 보이기에 보이는 숫자가 나왔다면 보이지 않는 영혼의 숫자도 역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매일 저녁 정해진 길을 하염없이 달리면서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 영혼이 가슴 속에 앉아서 말을 건넨다. 씩씩거리는 마음에게 영혼이 이야기를 한다. 그래 그럴수 있지. 그런데 이건 너도 잘못한거 맞잖아. 특히 영혼을 거스르면서 내 뱉은 말들, 누군가를 의식하면서 내꺼 아닌 행동들이 기억 속에서 소환되어서 영혼과 마주 한다. 모든 것은 '자기다움'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다. 그 자기다움에서 우리의 영혼은 얼마나 많은 무게를 차지하고 있는지. 영혼과 대화할 수록 더 육체의 무게는 가벼워지는 것 같고, 영혼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지는 것 같다. 언제가 인생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을 때 가치 있는 발자국은 영혼의 무게가 깊게 패인 발자국이겠지. 23그램 앞자리에 얼만큼의 숫자가 더 붙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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