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트르에게서 존쟈의 3가지 영역을 발견한다
그것은 나와 타자 그리고 사물이다
스스로 생각할수 있는 존재는 대자존재이고
스스로 생각할수 없으면 즉자존재이다
스스로 생각할수 있는데 내가 아니면
대타존재라고 부른다
여기서 나누어 진다
타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
타자는 내의식을 빼앗아 가는가? 아니면
나와 함께 이 시간을 향유하는가?
그에 따라서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로 가는가
아니면 레비나스의 타자론으로 가는가가 결정된다
신이 없다는 점에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본질은 미리 정해진 존재의 근원이다
신이 있다고 믿으면 다시 실존이 본질에 앞서면
키에르케고르의 유신론적 실존주의가 되고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고 하면
중세시대의 유명론이 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기본적으로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배경이되고 때때로 제도나 시스템은 유명론을 차용한다
비동시성의 동시성
그 안에서 기본적인 존재방식은 유목민인 노마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