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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y 12. 2022

한나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1

한나 아렌트_인간의 조건

매주 진행되는 사회적제자도 모임에서 한나아렌트 인간의 조건을 읽고 있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그 자체로 악의 기원이 될 수 있다. 생각하고 생각하자. 오늘부타 다시 복집힌 생각을 해보자.


0. 들어가기


아렌트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여기저기서 아렌트를 외치고 있다. 유태인이면서도 하이데거와의 연인이었고 또한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편집장을 했던 아렌트에게 정치적인 개념으로서 ‘행위’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행위’가 나오기 위한 노동과 작업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살펴보면 아렌트가 이야기하는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부터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는다. 처음부터 한장한장 강독하면서 읽게 된다. 아렌트가 생각하는 세계와 시간, 지구의 삶과 활동적인 삶, 근본악과 전체주의의 기원 등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조부모들이 여전히 유태인 상인의 배경을 갖고 있다면, 아렌트의 부모들은 시민 중산층으로 상승함으로써 주로 의사, 변호사, 교육자, 음악가들과 교류하였다. 아렌트의 어머니 세대는 라헬 바른하겐 이래 처음으로 상당한 수의 여류 문학자, 예술가, 음악가들을 배출한 첫번째 시대였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딸들도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는 깨어 있는 생각을 가졌으며, 실제로 딸의 성장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의 유년기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인해 그늘져 있었다.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인형보다는 책과 이야기에 훨씬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아렌트의 어린시절의 철학적인 사색과 인간의 생존 조건에 관한 고민은 추후 히틀러와 유태인학살 그리고 아이히만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인 지성대결을 펼치는 밑거름이 되었다.



아렌트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문학과 철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 덕택에 학우들의 우상이 되었다. 이미 16살에 이미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그리고 야스퍼스의 ‘세계관의 심리학’을 읽었다. 1924년 가을부터 마르부르크에서 철학공부를 시작했다. 거기에서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을 강의하고 있었고 마르부르크에 있는 동안 그와 관계를 맺었다.


사람들이 경험하였던 것은 순수활동으로서의 사유가 지식욕과 인식욕에 의해 몰리지 않고서 하나의 열정이 될 수 있으며, 또 이 열정은 다른 모든 능력과 재능을 지배하기보다는 질서지운다는 사실이었다


아렌트는 1928년 하이델베르크에서 ‘아우구스투스에서 나타난 사랑의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여기서 아렌트는 누구됨’과 무엇됨을 구분하면서 ‘사랑’이라는 개념이 중세시대에 신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후 1941년 뉴욕으로 넘어왔고 1960년 루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사고력의 결여’라는 근본악의 출처를 찾아낸다. 이후 1975년 12월 4일 친구들과 대화하는 도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1. 활동적 삶과 인간의 조건


활동적 삶이라는 용어로 인간의 세가지 근본활동이 구분된다. 노동, 작업, 행위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인간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데 주어진 기본조건들에 상응하기 때문에 인간의 근본활동이다. Vita Activa라고하는 이 책의 제목은 이러한 조건에서 ‘활동적인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노동은 인간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활동이다. 신체의 자연발생적 성장, 신진대사와 부패는 노동에 의해 생산되어 삶의 과정에 투입되는 생명 필수재에 구속되어 있다. 노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근본조건은 삶 자체이다.

작업은 인간 실존의 비자연적인 것에 상응하는 활동이다. 이 활동은 인간종의 되플이되는 생활주기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사멸성도이런 생활주기에 의해 보상되지 않는다. 작업은 자연적 환경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인공적’ 세계의 사물들을 제공해준다. 모든 개별적 삶은 인공적 세계의 경계 내에 있다. 그러나 이 세계 자체는 개별적 삶 모두보다 오래 지속하고 초월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작업의 인간조건은 세속성, 다시 말해 대상성과 객관성에 대한 인간실존의 의존성이다.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인간 사이에 직접적으로 수행되는 유일한 활동이다. 행위의 근본조건은 다원성으로서 인간조건, 즉 보편적 인간이 아닌 복수의 인간들이 지구상에 살며 세계에 거주한다는 사실에 상응한다. 인간 조건의 모든 측면들이 다소 정치에 관련되어 있지만 특별히 다원성을 모든 정치적 삶의 필요조건일 뿐만 아니라 가능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절대적 조건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기에 가장 정치적인 로마인의 언어에는 ‘살다’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또는 ‘죽다’와 ‘더이상 사람ㄷ르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동의어가 된다.


2. 활동적인 삶의 개념


활동적인 삶은 전통이라는 짐을 지고 있는데, 그것도 과다하게 지고 있다. 이 용어는 정치사상의 전통만큼이나 더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오래된 것이다. 이 정치사상의 전통은 서양의 모든 정치적 경험을 파악하고 개념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특정한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성장하였다.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재판, 즉 철학자와 ‘폴리스’간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이 전통은 과거 초창기의 많은 경험들을 배제하였는데, 그것은 이 경험들이 정치적 목적과는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이 전통의 끝인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매우 선택적인 방식으로 이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활동적인 삶은 중세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삶bios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사용하는 용어 vita negotiosa또는 actuosa는 여전히 공적-정치적 문제에 종사하는 삶이라는 본래의 으미를 반영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삶의 방식을 구별하였다. 그것은 삶의 필연성과 이로부터 비롯되는 관계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었다. 이 선택의 필수적 전제조건인 자유는 자신의 생계에 기여하는 모든 생활방식을 배제한다. 여기에는 생존의 필연성과 주인의 지배라는 두 가지 강제에 예속된 노예적 삶의 방식인 노동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장인의 작업하는 삶과 상인의 탐욕적인 삶 모두가 배제된다. 간단히 말해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평생동안이든 일시적이든 간에 자유롭게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는 느력을 상실한 모든 사람은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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