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뒷모습에서
당신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데칼코마니_신철규
네 감은 눈 위에 꽃잎이 내려앉으면
네 눈 속에 꽃이 피어난다.
네 감은 눈 위에 햇살이 내리면
네 눈 속에 단풍나무 푸른 잎사귀들이 살랑거린다.
네 감은 눈 위에 나비가 앉으면
네 눈동자는 꽃술이 되어 환하게 빛나고 있을까.
먼 항해에서 돌아온 배의 노처럼
네 긴 속눈썹은 가지런히 쉬고 있다.
가끔씩 배가 출렁이는지
넌 가끔 두 주먹을 꼭 쥐기도 한다.
네 감은 눈 속에 눈이 내리면
나는 새하얀 자작나무 숲을 한없이 헤매고 있을 거야.
지친 발걸음이 네 눈동자 위에 찍힌다.
네가 눈을 뜨면 내 눈은 까맣게 감기고 말 거야.
나는 너를 채우고 너는 내게서 빠져나간다.
우리는 번지면서 점점 뚜렷해진다.
계간 『시향』
눈이 내리는 마을에서 들어서면
하늘의 눈이 다 떨어지면 하늘은 까맣게 되지 않을까 했다
어느날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날이면
다음날 다 쏟아져 내리는 맑은 하늘이 빈 공간 같았다
온 천지가 안개로 뒤덮힌 날에는
땅과 하늘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아서
내내 허무하고 무엇인가
허전한 듯한 느낌 때문에 불안했다
그러나 당신을 만나고서 나는 알았다
하나가 생겨나면 다른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가 생겨나면 다른 하나가
또 생겨날 수 있음을.
다시 하늘을 보고 땅을 돌아보니
당신의 이야기가 맞았다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면 땅에는
하얀 눈으로 가득 쌓이고
텅비었다고 생각했던 하늘에는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으로 가득찼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나서 다음날이 되기도 전에
사람들 마음 속에 우울함이 벌써 수증기가 되어
우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하나가 없어지고 다른 것이 생기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이 오면 더 새로운 것이
똑같이 반대편에도 생겨나는 것이었다
안개가 낀 날은 땅과 하늘이
서로가 만나는 날이 아니라
땅과 하늘이 거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맑은 눈동자로 텅빈하늘을 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있었고
하염없이 당신이 울고 있던 날에는
우주로 날아가는 수증기가 당신의 눈에 눈물로 맺히었다
안개가 낀 날에 당신은
한없이 안개속으로 들어가면서
여기서 우리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당신을 따라가면서
당신의 뒷모습에서
당신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있던 것은 없는 것의 탄생이고
사라진 것은 생겨나는 것의 시작이었음을
당신과 한참을 걸어보고서야
조금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마음 속에 당신이 피어올라서 이렇게 시를 써보고 읽어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