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생가에서, 시인을 맞이하며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당신은 나의 그리움
솔밭 사이 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곁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화로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떼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지는 입새 쌓이거든_김남주
시인의 고향에 오면,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심상을 꾸렸을지를 상상해 본다. 김남주 시인이 겪어야 했던 시대적 우울과 반대로 해남땅에 김남주 시인의 집은 능선 위에 나즈막한 초가집이었다. 불빛도 많지 않던 시절, 호롱불이며 반딧불이며 혹은 달빛에 책을 읽고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해남고구마나 해남배추가 유명하지만 시인이 살았던 시대는 모두가 다 무엇이든지 생산하지 않으면 안되는 발전의 시대였다. 그 사이에 마치 원시림처럼 간직하고 있는 땅끝마을의 낭만과 추억은 시인으로 하여금 치열한 민주화투쟁의 한 복판 속에서도 우리가 그려야할 미래에 '여유'를 그리게 했을 것이다.
해마다 태양이 낱알을 영글게 하고, 하늘이 땅과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낼 때 쯤이면 남도, 땅끝마을을 찾는다. 노쇠하신 할머니의 손자를 바라보는 미소도, 내 키 만큼 자란 깻잎들도, 개울가로 넘실대는 대흥사자락의 그림자도 모두 나를 반기는 것 같다. 유홍준 선생님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시작을 남도로 한 것은 아마도 비슷한 콧노래를 불렀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 해남에는 땅끝마을이라는 명칭도 유명하지만 고정희 시인이나 김남주 시인 그리고 고산 윤선도의 생가가 있다. 어떤 사람이 이야기한 것처럼 '유배'로 인해서 '문화'가 전파되다보니 남도에도 산과 바다 그리고 시와 글이 적절히 어울러지는 종합문학이 탄생했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래서 해남 사람들은 생활속에 매몰되지도 않으면서 자연과 땅을 벗삼아서 미래를 그리기도 하는 대화를 스스럼 없이 한다. 유치하거나 초월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흘러나온다. 나는 여기서 태어났으니 어쩌면 남도의 아들이다. 마치 그리스나 로마시대의 아테네의 소크라테스처럼, 남도 땅끝마을의 아들인 것 같다. 한계가 없는 너른 들판에서 부풀어 오르는 구름들 사이로 해가 뜨고 해가지는 광견을 항상 보고 자라면 어떻게 될까? 자연스럽게 심상이 떠오르고 굳이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까지 들어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상상계는 매번 변화하고 새롭게 옷입는 이미지들로 풍성하게 차있지 않을까?
인간은 언제나 절망 속에서도 내일을 희망할 수 있는 존재이다
시인이 말하는 당신은 바로 이런 자연인 것 같다. 사랑하는 연인과 같이 마음 속에 항상 그리워하고 다시 맞이하고 싶은 그 자연, 해남의 그 능선 위의 집에서 바라본 풍성한 자연 말이다. 독재가 모든 도시를 불태우고 살마들의 마음도 까맣게 소멸시킬 때에도, 시인의 마음 속에서는 그 옛날 자신에게 매일매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들어온 그 자연 말이다. 계절에 변화에도 자연은 항상 미래를 준비하고 보이지 않은 잠재성으로 사람들을 품어주고 새살을 돋게 하지 않았던가? 새순이 오랜 장마가 지나간 언제그랬냐는 듯이 얼굴을 내밀듯이 내일을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언제나 절망 속에서도 내일을 희망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자연이 그랬으니깐, 인간은 더더욱 그럴 수 있다.
https://brunch.co.kr/@minnation/2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