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엠마누엘 칸트는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해서 '숭고'하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 가장 처음 과정은 '크기'라고 말한다. 크고 웅장한 것들에 대해서 인간은 숭고하다는 인식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고 숭배의 감정까지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인간은 예로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험난한 산을 숭고한 대상으로 두었고, 그곳에는 숭고의 핵심이 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올림푸스의 신들은 그래서 인간이 볼 수 없는 시야의 가장 꼭대기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혹은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서 숭고의 대상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17세기가 지나서는 그 숭고함을 만드는 인간이 숭고의 대상이 되면서 독재도 탄생하고 제국주의도 탄생하고 히틀러까지 등장하지만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곳, 자신과 비교해 보았을 때 초월적이라고 생각하면 '숭고'의 대상으로 여기곤 한다.
사실 칸트의 관점은 이제 막 유럽이 계몽주의에 눈을 뜨면서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던 시기의 것이지만, 인간의 두뇌는 자연적으로 성숙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칸트 이후로도 인간은 크기로 숭고함을 표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양자역학을 외치며 가장 작은 세계에 모든 것이 더 세부적으로 존재함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크기로 압도되는 것들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한국교회에는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본 받지 말라'라는 예수님의 말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크기로 승부보기'를 실현중이다. 여전히 교회의 숭고함의 의미를 크기에서 찾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신전과 같은 교회들.
신전을 연상케 하는 교회 중의 교회에서 사람들은 숭고의 대상을 찾을까? 아니면 교회 건물 자체를 숭고의 대상으로 여길까?
이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벌써 20년도 지난 이야기이지만 50억 정도의 빚을 지고 교회를 재건축했었다. 그로 인해서 교회는 재정적자에 시달렸고, 점심식사의 단골메뉴는 항상 시금치와 된장국 그리고 김치였고 부흥사들이 많이 등장해서 건축헌금을 요구했다. 성스러운 목회자의 설교 강단에 양말신고 들어간다고 해도 고개를 읍조려야 했고, 새로운 교회 건물은 지나치기엔 모자르지만 교육관을 짓고 많은 공간이 생겼다. 그리고 어느순간 건축을 맡은 장로님과 기존 장로님들의 불화가 이어지고. 여느교회나 이런 이야기가 있고 곧 그 교회의 숭고함이라는 크기는 세상에 조롱을 받으면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몇억에서 몇백억까지 교회는 사고파는 신세로 전락한다. 무엇인가 핵심을 잊어 버린 느낌이었다.
한동안 교회를 찾아 다니느라 분주했다.
한동안 교회를 찾아 다니느라 분주했다. 다니던 교회에서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의 불화로 교회가 반으로 쪼개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팔을 걷어 부치고 어느쪽에든 서고 싶었지만 이미 이상한 말을 많이하는 오래된 청년으로서(삼위일체는 과연 합리적인가? 정의로운 전쟁이 존재할 수 있는가? 비폭력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통일을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 성경이 참이라면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무엇인가? 한국교회의 성장주의는 과연 옳은가? 장로가 되기 위해서 3,000만원 헌금을 낸다는 것은 누가 만들었는가? 십일조는 정말 필요한가?) 이런 고민들을 스스럼 없이 청년들과 고등부 학생들과 하고 다녔으니 눈엣가시였겠지. 그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이단이라는 말도 숱하게 들어왔던 내가 아닌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대형교회는 별로 없다. 다만 소수의 교회들이 정의로운 전쟁을 반대한다.
1987의 민주화항생을 기리는 교회에서부터 여전히 크기로 숭고함을 재현하는 교회들까지, 소위 설교잘한다는 목사님들이 회사 사장님처럼 칭송받는 교회에서부터 교회가 없지만 청년들이 많이 모인다는 교회까지. 그 때 당시에는 진심이었고, 나의 종교심은 신앙심으로 치환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심청이 만큼은 했던 것 같다. 어느 시점이 지났을까?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교자를 집중하지 말자는 둥, 교회의 본질은 공동체라는 둥, 교회는 가까운 곳이 제맛이라는 둥 별의 별 소리가 다 들렸지만 역시나 나에게는 그 핵심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종교성과 신앙심 사이에서 처음에 신앙을 가질 때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면 안전하고, 그 소속감을 채워주는 이들이 선하고 가치있고 혹은 좋은 스펙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소속감을 중요하게 여기겠지? 그래서 공동체라고 할 때 비교가 가능해지고 그 공동체에 의사, 변호사, 판사나 국회의원이 있고 혹은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어떤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그 울타리가 좋다고 여기겠지? 그럼 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평생 그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겠지? 이런 고민들이 줄지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신앙이 그렇게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하나님은 오히려 울타리를 넘어서 내게 오셨고, 예수님은 울타리 넘어 광야에서 나를 만나주셨다. 어쩌면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이 울타리 안에서 가지런히 모여있던 사람들이었다기 보다는 문둥병자와 귀머거리 그리고 거지와 노숙자였지 않나? 나는 오히려 나의 정체성이 거기에 있는지라 그 울타리를 넘어서 오시는 하나님이 더욱 친근하고 반갑다. 사실 이것이 나에게는 복음이다. 여전히 울타리 바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여전히 울타리 바깥에 살고 있고 말이다. 그래서 사실 어른이 되기까지 수 많은 비교를 당했던 것 같다. 울타리에 있는 이들에게서. 그 울타리의 관점에서 보니까 나는 기도의 대상이었고, 감싸주고 아껴줘야 하는 상대였고 때론 냄새나고 때로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예수님은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을 주인으로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인지부조화로 몇년을 고생했다.
복음이 진리라는 핑계로 예수님을 강요하거나 하나님을 강제하면 그 자체로 복음은 생명력을 잃는다. 왜냐하면 말이 곧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순간 하나님의 인격과 이야기가 그 강제하는 말과 배치된다. 그것을 듣는 인간은 바로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차라리 그럴바에야 하나님을 모르는게 낫지라고 말이다. 울타리 넘어 오시는 하나님을 만난 이들마다 울타리를 갈망하지 않게 되었다. 또 다른 울타리를 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 매여 있는 이들에게 자유를 호소할 뿐이다.
교회이름도 함께 걷는 교회다. 누구라고 물어보지 않고, 과거가 어땠냐고 따지지도 않는다. 다만 함께 걷는다. 그러다가 또 많은 이들이 다른길로 간다. 그러나 괜찮다. 우리는 어디서든 이 인생이라는 험난한 바다를 걷고 있을테니깐 말이다. 때론 다투고 때론 감정이 상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걸어간다. 함께. 함께 걷는 교회에서는 매주 사물의 소멸을 시간 속에 묶어 두기 위해서 '리추얼'이 진행된다. 빵과 포도주를 나누고 서로를 위한 안부를 묻고 평화의 인사를 한다. 아주 작은 글씨로 읖조리듯이 기도하지만 그 안에서 무엇인가 크기가 줄 수 없은 손톱만한 아름다움이 있다. 교회건물도 없어서 영등포의 한 카페를 빌려서 예배를 진행하고, 그도 그 카페에서 상황을 바주면 깎아주는 곳. 나는 그런 교회를 다닌다.
울타리를 넘어 춤추시는 하나님을 본다
미니멀리즘의 핵심 상징의 제거이다. 기존의 상징이 가지고 있던 자리를 비움으로써 새로운 상징이 등장할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숭고함이라는 의미로 가득 차 있던 장식들을 몰아내고, 대형이라는 의미의 딱지도 떼고 나면 결국 우리를 '거룩하고 성스럽게 만드는 숭고한 상징'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게 된다. 그것은 단지 교회 건물의 크기나 예배에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나 그 사람들의 직업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진실된 마음과 울타리를 넘어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하는 진정성 아닐까? 그럴 때 '의식'ritual이라는 것은 작은 리듬을 더해주는 요소일 것이다. 문득, 춤추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울타리를 넘어서 춤추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그것이 어쩌면 예배의 본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