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파베르의 미래
기술철학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때 당시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산업혁명의 가장 큰 발명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사람들은 두서 없이 바퀴라는 둥, 증기관이라는 둥 혹은 계몽주의라는 둥 다양한 이야기를 했지만 정답은 '시계'였다. 이전에 주관적인 시간을 어림잡아 자연에 빗대어서 살던 사람들에게 계몽주의를 심어준 것도, 제조업이라는 2차 산업이 가능해지는 것도, 도시생활의 반복적인 일상에서 서로 문제가 없어진 것도 모두 '시계'의 힘이라는 것이다. 객관적인 시간의 발명은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시계로 부터 시작된 합리성과 타당성이 기계 안에, 기술 안에 담기면서 주관성을 쫓아낸 인간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들이 생겨났다.
과연 핵폭탄은 인류에게 이로운가?
기술철학은 기술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두어야 하는가? 기술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기술에 따른 존재론은 쉽게 이야기하면 AI를 주체로 보아야할까 아니면 도구로 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부터 시작한다.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은 '과연 핵폭탄은 인류에게 이로운가?'라는 핵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고민일 것이다. 과학철학이 과학의 합리성과 타당성, 논리성과 적합성을 고민하는 철학이라면 기술철학은 기술이 과연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기술철학은 기술사회학으로 발전하게 되고,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현상을 기술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또 그것을 통제하거나 확대해야하는지의 논의가 한창인 것이다. 환경과 관련된 기후변화에 관련된 기술들도 사실 기술철학의 범주라고 보면 된다.
기술에 대한 철학적 물음
과학철학과 비교해서 기술철학은 신생분과이다. 과학철학이 과학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기 때문에 '과학은 무엇을 대상으로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과학철학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라는 대상을 나누고 자연과학은 물리, 생명공학, 화학 등의 관점에서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윤리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게 과학철학이다. 기술철학은 과학철학과 마찬가지로 '기술의 대상은 누구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분야다. 기술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 그리고 기술은 어떻게 존재해야하는가? 이런 고민들 말이다. 다시 말하면 기술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다.
기술철학이 던지는 질문들
- 존재론 : 기술의 요소는 무엇인가? 기술이라고 부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
- 인식론 : 기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술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부정적인가? 긍정적인가?
- 윤리론 : 기술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 기술을 사용할 때 제한되는 부분이야 제약사항이 있는가?
- 행태론 : 기술이 사용되는 과정에서 기술은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있는가? 기술은 실제 어떻게 사용되는가?
- 개체론 : 개별적인 기술들은 어떤 특징이 있으며, 각 기술들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기술철학에서 유명한 학자들이 있다. 최근에 본 도서들에서는 기술철학의 시작을 칼 미첨Carl Mitcham으로 보고 기술철학의 물음을 제시한 철학자로 하이데거를 거론하고 있다. 특히 제 2세대로 '경험으로의 전환'이라는 부분에서는 랭던 위너가 등장한다. 1994년 칼 미첨은 그의 책에서 '현재 연구되고 있는 기술철학은 제대로 정의된 탐구영역이 아니며 기술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정반대의 목적이나 방법론을 취하는 경우가 많고 전통적인 부분에서도 멀리 벗어나고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만큼 기술철학에 대한 정의와 방법론, 윤리론과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학자들이 주장하는 기술철학
에른스트 카프 Ernst Kapp : 인간은 도구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생산하며 기술은 인간이 자신의 생체기관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화한 결과이다.
피터 엥겔마이어 Peter Engelmeier : 공학자들이 사회의 각 분야로 진출하면서 그 지위가 높이지는 것을 당연한 일이며,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공학자들이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잘 파악해야 한다.
칼 미첨 : 기술철학이 다루어야 할 주제들은 '기술의 개념, 현대기술의 원리, 생물학적 현사으로서의 기술, 인류학적 현상으로서의 기술, 문화의 역사에서 기술이 수행하는 역할, 기술과 경제, 기술과 예술, 기술과 윤리 및 다른 사회적 요소들'을 정의하는 것이다.
19세기를 넘어서면서 기술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진다. '프랑켄슈타인'의 비유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기술은 이전에 가지고 있던 관념과 다르게 많은 이들을 죽일 수도 있고, 또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으며, 자연보다 더 위대한 일들을 해내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전은 곧 도시의 발전이었으며, 인류 문명의 발전이기도 했다. 현대기술이 이전의 기술과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킨다는 것에 반응하여 기술철학은 발전하기 시작했다. 결국 기술에 대한 물음은 인간에 대한 물은으로 이어졌다.
기술을 도구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인간 몸의 연장으로 볼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존재가 자신을 드려내는 현상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 기술철학은 달라졌다.
기술철학의 짧은 역사 속에서도 2가지의 흐름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공학적 기술철학engineering philosophy of technology와 인문학적 기술철학humanistic philosophy of technology이다. 공학적 기술철학은 말 그대로 공학의 관점에서 기술철학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과 철학 중에서 굳이 따지자면 기술에 더 집중해서 기술이 발달할 수록 어떤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분석하고 예측한다. 따라서 공학적 기술철학은 기술에 대해서 긍정적이면서도 분석적이고 미래적이다. 반면에 인문학적 기술철학은 기술을 철학적으로 바라보면서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비판적이고 해석적으로 바라본다.
기술철학이 등장하는 초기에는 공학적 기술철학이 발전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기술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와 더욱 큰 발전을 위한 연구주제를 제시하는 정도였다. 공학적으로 더 세분화해서 발전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키고 연결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과학철학과도 겹치는 주제이기도 하면서 일정한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따라서 오히려 인문학적 기술철학이 더 큰 영향력으로 다가온다. 기술철학의 흐름에서 볼 때 고전적인 기술철학에서 경험으로의 전환, 가치로의 전환까지 갈려면 당연히 인간사회에서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살펴볼 수 밖에 없고 이것은 자연적으로 인문학적 기술철학의 입장이 된다.
특이점sigularity에 대한 이론이나 양자얽힘 같은 주제들은 공학적 기술철학의 관점이기도 하지만 이것 자체로는 그렇게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물론 공학자들에게는 매우 큰 주제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것이 주는 중요도와 복잡성을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학적인 기술철학은 꾸준히 공학적 발전을 위해서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논의는 앞에서 살펴볼 칼 미첨이 지속적으로 공학자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이중나선을 쓴 제임스 왓슨의 경우 개발할 때에는 사실 공학적 기술철학에 가까웠지만, 게놈연구가 끝나갈 때쯤에는 인문학적 기술철학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인다. 발견하고 그것이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술철학이 가지고 있는 현장성과 지향성의 개념을 살펴보자. 일단은 기술철학이 던지는 질문들로 다시 돌아가보자. 존재론이 1번이라면 인식론은 2번, 윤리론은 3번, 행태론은 4번으로 각각 번호를 매겨보자. 그러면 기술철학에 있어서 현장성은 몇 번일까? 당연히 4번 행태론이다.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술철학은 '경험으로의 전환'을 할 수 밖에 없다. 무조건 기술의 발달이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해 부정적으로 비판했던 1세대 기술철학자들의 시대가 지나가고 2세대의 기술철학자들이 등장한다. 랭던위너와 같은 철학자들은 기술은 경험해보고 체험해본 후에 그것의 사용과 방법론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깐 인간이 현장에서 바꿀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성을 무시한 결과가 1세대 철학자들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현장성은 현상학이고 지향성은 해석학을 통한 방향제시다
현장성은 지금, 여기,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술에 대해서 내가 경험한 것들을 가지고 나에게 주는 효용을 생각하는 것이다. 기술철학의 현장성은 사실 매번 우리가 '사유하기'를 멈추고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돼지의 두뇌에 4000개의 칩을 심어서 '뉴럴링크'를 만들려고 했던 일론머스크의 기술을 통해서 IOT와 연결된 송수신장치가 몸을 움직이기 힘든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해도 문이 열리고,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기술철학의 지향성보다는 현장에서의 경험이 중요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기술철학의 현장성은 현상학을 기반으로 하고, 기술철학의 지향성은 해석학을 기반으로 한다.
지향성은 물론 헤겔의 주관적인 인식에서 나오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칸트에게서도 드러난 '실천이성'과도 연결된다. 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하고, 인간은 어떻게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의 문제는 당연히 지향성이다.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지향성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1세대 철학자들처럼 무조건적인 비판보다는 3세대 철학자들이 말하는 '가치로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기술과 만났을 때 기술은 어떤 가치를 지니며,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가? 여기서 인간은 어떤 가치를 느끼는 존재인가?를 물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어디에 서 있는지에 따라서 지향성이 달라진다면, 다시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서 지향성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물론 현장성과 지향성은 반대되는 것 같으면서도 순서대로 고민해볼 수도 있다.
기술철학이 '기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과학철학은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기술철학이 기술이 인간사회에 영향을 주는 부분을 고민하면서 '기술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과학철학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기반으로 과학적인 방법과 아닌 것을 구분한다. 특히 인간과 다르게 자연은 일정한 패턴이 이 있고 원리가 있어서 '과학적 방법론'을 도출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철학은 실용적인 과학적 방법론을 도출하는데 있어서 '가설-실험-검증'이라는 패턴으로 진리를 찾아낸다는 과학적 방법론을 고민한다. 이러한 방법론이 쓰일 수 있는 영역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일정한 과학철학의 구획이 나누어지는데, 이것을 칼포퍼는 반증가능성falsifiable이라고 불렀다.
구획의 문제는 demarcation problem이라고 부른다. 과학철학과 기술철학의 차이점은 이러한 구획의 문제가 적용되는 분야인가 아닌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과학철학은 가설을 통해서 검증된 것만이 진리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하면서 잠정적인 결론을 내고 이것을 논리적으로 실증적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존재와 인식의 방법, 윤리의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기술철학은 가설과 검증이라기 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기술이 사회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또한 기술이 도구로 인식되는가? 아니면 그 자체로 존재하는가?등등의 철학에 가까운 기술의 존재론으로부터 시작해서 기술의 개체론으로 나아간다. 그러니깐 과학철학은 방법론적 회의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철학이라면 기술은 그 자체의 존재론과 파급력에 대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과학철학과 기술철학은 변곡점 혹은 특이점을 경험하기는 한다. 과학철학의 경우 기존의 논리실증주의하에서 가설과 실험을 통한 검증이라는 방법론이 토마스쿤 이후에는 '역사로의 전환'을 한다. 토마스쿤은 과학은 정상과학이라고 하는 표준적으로 인정되는 범주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이가 생기면 그것을 인정하는 패러다임을 공유하면서 표준이 되어 간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과학은 자체로 발전하고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서' 진보하거나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과학적인 발견이나 발명이 사람들 사이에 인정되어 패러다임으로 인정받기까지는 구체적인 부분에서 경험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었다.
과학철학은 역사로의 전환, 기술철학은 가치로의 전환
마찬가지로 기술철학은 1세대에는 고전적 기술철학이 비판적으로 기술을 고찰했다면, 2세대의 기술철학은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직접 기술을 경험하면서 고찰해야 한다는 '경험으로의 전환'을 이룬다. 그 이후 경험한 것들이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 실현해야했고, 실현해야하는지를 고민하는 '가치로의 전환'으로 한번더 방향을 확장한다. 여기까지 가면 이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반적인 기술들이 가지는 가치를 판단하기 이전에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기술이 개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거슬로 올라가게 된다. 마치 시대적으로 '타자의 철학'이라는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윤리가 먼저다'라는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이렇듯 과학철학가 기술철학은 서로 비슷한것 같으면서도 그 범위와 방법론에 있어서는 매우 다르다
과학기술학은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해외에서는 Science & Technology Studies로 매우 중요한 학문 분과이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과 기술이 인간과 사회,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인간과 사회가 과학과 기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과하기술학의 연구들은 그러나 과학사회학과는 다르게 사회학과 역사학의 방법론을 사용해서 엄밀한 검증과 함께 개별 과학기술의 특정이슈를 바탕으로 분석을 하고 적용을 한다. 나누기술이나, 양자컴퓨터, AI의 GAN과 같은 기술이 사회에 어떤 파급력을 주는지를 미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서 과학사회학은 조금 더 거시적이고 철학적이다. 특히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집중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해석을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확장시킨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의 파급력과 영향력, 문제점을 사회학, 정치학과 같은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 따져보고 큰 흐름을 읽는 것이 주요한 방향이다. 과학철학과 기술철학, 과학기술학과 과학사회학의 구분을 통해서 기술철학의 영역을 설정하고 기술의 파급력과 사회의 변화를 더욱 뾰족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과학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위에서 나온 다양한 개념들과 사례들을 연구할 예정이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다가올 문제들을 미리 예측하고 방지하고 더 나아가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날카로워져야 하고 또한 더욱 넓어져야 하는 것을 느낀다. 올해 목표는 '자기혁신'이다.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것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까지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러기 위해서 겸손하게 백투더베이직'으로! 기술의 발달은 이미 예정되어 있고, 우리가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프랑켄슈타인'이 되어서 책임지지도 못할 일들이 무한대로 생겨날 것은 확실하다. 오펜하이머의 실수를 밟지 않고, 오히려 기회가 되게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 더 부지런히 나아가야겠다.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78
앞으로 공부할 곳은 고려대 과학기술학협동과정의 과학사회학 전공이다. 아직 입학하지는 않았지만 미리미리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https://sts.korea.ac.kr/sts/about/major.do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과정에서는 “과학사 없는 과학철학은 공허하고 과학철학 없는 과학사는 맹목적”이라는 불가분적 관계에 대한 인식에 근거해 두 분야를 융합시켜 과학기술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고 그 해답을 탐구해내는 학문적 역량을 배양한다.
과학사의 경우 그동안 우리는 과학을 딱딱한 수식과 전문용어로 접근하였을 뿐, ‘역사적 산물’로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과학을 한 시대의 사상& 제도& 문화의 일부로서 과학자와 대중에 의해 산출된 지식으로 폭넓게 정의하고 그 역사적 맥락을 연구한다. 예컨대, 과학은 특정한 시기의 사회적 요구가 있었고 어떤 과학자집단의 문제의식과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으며 대학이나 학회, 연구소 등의 제도적 뒷받침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 그리고 대중의 지속적 관심 하에서 새로운 이론을 내놓고 발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학이 생성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사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학-사회-문화간의 상호관계를 유기적으로 통시함으로써 미래에 우리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한편 과학철학을 통해서는 과학적 지식과 정보가 팽창하고 급속히 소통되는 현실 속에서, 과학기술을 원론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종합하는 철학적 비판능력을 고양시키고자 한다.
최근 과학기술의 본성에 대한 이해는 모든 분야의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필수적 교양으로 자리잡아가는 추세에 있다.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과정은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동승해, 좁게는 한국사회, 넓게는 인류공동체가 과연 어떻게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발전시키고 활용해야 하는가라는 원천적 응답을 추구해 나아가고자 한다.
과학사회학의 학술적 기원은 과학의 제도적 측면을 강조했던 머튼의 제도주의 과학사회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과학지식도 지식사회학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주창한 과학지식사회학(SSK)의 등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시에 1960년대 이래 환경문제, 기술위험문제, 전쟁무기 등에서 빚어지는 과학의 이중성이 본격화되면서 과학이 펼쳐 보일 장밋빛 미래에 대한 환상이 사그라지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성찰과 실천의 필요성이 더불어 증가했는데, 과학기술사회학의 형성과 성장은 이런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양면성은 더욱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사회의 관계에 대한 총체적 이해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바, 이는 전통적인 과학/사회의 이분법에 기초한 ‘테크노필리아’(기술애호)나 ‘테크노포비아’(기술공포)적 접근의 한계를 시사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의 사례로 ‘공진화’와 ‘공동생산’이라는 개념을 예거할 수 있다. 이 개념은 과학과 사회가 밀접한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함께 ‘구성’되고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는 과학과 인문학으로 대별되는 ‘두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일 뿐 아니라 과학과 사회의 바람직한 관계정립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것이다.
현재, 과학기술사회학은 국내외에서 학술적으로 제도화되어 가는 동시에 보다 폭넓은 주제를 다루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통과 관점들을 도입해 성숙해 나아가고 있다. 인생주기에 비유하자면 이제 성년기에 들어서고 있는 셈이다. 과학기술사회학은 과학지식과 기술의 사회적 구성에 대한 사례연구 및 이론화를 위한 그 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문화 및 성(gender)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탈식민주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 등으로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과학기술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심 요소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점차 국가와 기업계에서 과학기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공공 및 민간영역에서의 문제를 다루는 사회과학의 전통적 관점에서 과학기술은 국가와 기업의 정책 또는 경영활동의 외부적 요소로서 간주되어 왔다. 그 결과 과학기술이 활용되는 시스템 내부의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과학기술과 국가 또는 기업의 발전을 연관짓는 선형적 사고가 정책 및 경영활동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유사한 과학기술 활동을 수행하는 국가와 기업이 서로 다른 결과를 일으키는 탈구현상이 관망되면서 세간의 관심은 차츰 특별한 성과를 창출하는 시스템의 내재적 특성에 맞추어졌다. 그 결과 어떠한 국가시스템, 조직체계 또는 정책과 전략이 특정한 국가와 기업에서 과학기술의 변화를 촉진하는가, 이를 통해 어떻게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개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국가와 기업과 같은 시스템 내부에 존재하는 요소로 인식됨에 따라 시스템의 다른 구성요소들과 과학기술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었고, 연후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 및 기업 차원에서의 관리와 경영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과학관리학은 이러한 배경과 필요성에 따라 과학기술을 과학기술자의 영역으로 제한하지 않고 국가와 기업의 정책 및 경영활동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다루는 접근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국가 단위에서 과학기술의 혁신에 효율적인 시스템을 설계하고 과학기술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에서 과학기술이 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과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에서 기업과 같은 조직의 기술혁신을 위한 전략을 구성하고 적절한 조직체계를 설계하는 것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이 포함된다. 이러한 영역은 일반적으로 과학기술정책, 산업정책 그리고 기술경영으로 분류되는데, 그들은 주로 행정학 또는 경영학적 방법론에 입각해 논의된다.
바야흐로 과학기술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생명공학이나, 정보통신공학과 관련된 기사들이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것도 이젠 그리 낯설지 않으며,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상업 광고에서도 과학기술과 관련된 내용들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다. 이런 전통적인 매체를 통해 노출되는 과학기술과 대중의 커뮤니케이션은 과학언론학의 일차적 대상이 된다. 초기의 과학언론학은 어렵고 전문적인 과학기 의 내용을 어떻게 쉽게 제대로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사회적 역할의 확대되고 강조됨에 따라, 과학기술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 현상은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어가고 있어 과학언론학의 학문적 영역이 날로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대중과 과학기술자 집단의 일방적 소통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 내―집단 간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정책결정자나 산업과 관련된 이해당사자 등이 개입된 복합적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과 대중의 통로가 되는 매체도 신문, 잡지 뿐 아니라, 뉴미디어, 상업광고, 공상과학 소설이나 만화, SF 영화, 박람회나 산업전시회, 과학관이나 자연사 박물관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매체기술(media technology)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운 매체기술의 도입과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당대의 사회정치적인 요소나 문화적인 요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과학기술을 사회학, 인류학, 기호학, 페미니스트이론 등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요구가 날로 증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