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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l 27. 2023

존롤스가 정의론에서 싸운 것들

존롤스_정의론과 정치적 자유주의

0. 들어가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하버드교수 마이클샌들의 책을 실제로 보면 '정의가 무엇인지?'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자인 마이클샌들 교수는 사람들의 합의를 통해서 정의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인 사람들에 따라서 정의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원래 '정의론'의 원조는 마이클샌들 교수가 아니라 존롤스의 '정의론'이다. 누군가 '정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1921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존 졸스는 1943년에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학부를 마치고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말미에 필리핀전투와 파푸어 뉴기니 라이예트 전투에 참여하게 된다. 실존주의의 대가인 샤르트르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면서 누군가에게 '정의'가 누군가에게는 '부정의'가 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정의'가 사라진지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은 단지 나의 편견인가? 정의라고 하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러면 안되지?'라고 하기보다는 '그럴줄 알았다'라고 자연스런 문화가 되어 버림 부정부패와 도덕적 헤이, 엘리트계급의 만행들이 자연스럽다. 다들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속에서 돈이 전부인 세상이라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삶의 희망'을 그럼 어디서 찾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우리는 '정의'를 생각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초를 다져야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강자의 힘이 윤리다'라고 하는 학자들을 넘어서 오늘은 칸트의 후예라고 불리우는 자유주의 영미철학의 결정체인 존롤스의 이론들을 탐색해 본다. 과연 롤스는 정의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사회 속에서 안착시키는지 알아보자.



1. 존롤스의 무지의 베일


존롤스하면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실험이 유명하다. 무지의 베일을 현대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친구 9명이 오랜만에 모였다고 해보자. 친구들하고 피자를 시켜먹을려고 한판을 시켰는데 덮개를 열어보니 칼로 자르지 않아서 원판 그대로 왔다. 그런데 친구들은 모두 배가 고파서 다들 많이 먹고 싶어한다. 이거는 싸울수도 없도 어떻게 할까? 그러다가 한 친구가 묘책을 냈다. 방이 많은 집이었는데 친구들은 한명씩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에는 피자가 놓여 있다. 피자를 자르는 순서를 마음대로 정했다. 이 다음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피자를 공평하게 자를 수 있을까? 모두가 군말없이 피자를 자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제일 먼저 자른 사람이 제일 마지막에 먹는다


친구들은 모두 다른 친구가 얼마나 먹고 싶고 어떤 친구가 잘랐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한명씩 나와서 이전에 잘랐던 친구가 잘라 놓은 조각을 자신의 기준대로 자른다. 그런데 마지막에 보니깐 모두 공평하게 생각할만큼 비슷한 조각으로 잘라진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친구들도 어리둥절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친구들 중에 한명이 냈던 제안이 통했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맨처음 자른 사람이 맨 마지막에 먹는 것이었다. 모두가 배가 고픈 상황이라서 다들 많이 먹고 싶었지만, 먼저 칼로 자를려고 했던 친구가 자신이 가장 마지막에 먹는다고 생각하니 가장 정확하게 반으로 자른 것이다. 두번째로 자르려고 나왔던 친구는 반으로 잘려진 피자를 보면서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먹을 자신의 순서상 또 가장 정확하게 십자가 모양으로 자른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까지 가장 공평하게 피자가 잘라졌다.




무지의 베일을 통해서 존롤스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공평하게 만드는 '절차'를 제시한다. 이 무지의 베일의 일화에 전제하는 인간관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간다는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목적의 왕국으로서 '보편적 윤리를 가진 인간의 자유'를 증진할 때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추구하고 다른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에 적절한 제도를 설계하면 그 제도의 절차에 따라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존롤스가 꿈꾸는 세상은 이른마 민주적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하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자유주의자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의 윤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과 작업인 그리고 한나아렌트의 시민적 덕성까지 생각나는 존 롤스의 '자유주의'는 이렇게 해서 다양한 논쟁과 첨예한 대립을 만들어 낸다. 누군가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고민한다면 반드시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들이다.


심지어 수능에도 나오는 무지의 베일!!



2. 존롤스와 공동체주의


존롤스가 속해 있는 자유주의주의 진영은 여러가지 갈래에서 적들을 가지고 있다. 적이라고 하기에는 좀 과장된 것 같지만 그 만큼 다른 관점에서 사회구성과 인간의 존재, 법과 질서를 바라보는 것이다. 먼저 자유주의는 인간이 어떤 연고도 없이 태어나지만 그 스스로 윤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칸트의 순수이성과 선험적인 경험'과 같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서 아무런 도움이나 교육 없이도 내재된 윤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추구하면서 자신의 욕망과 다른 사람의 욕망이 경함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제도와 규칙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인간을 생각하고 사회의 구성방법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유'는 모든 영역에서 존중되고 지켜져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서 공동체주의자들은 인간은 처음에 백지상태에서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사회, 국가에서 태어나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가 인간의 세계관을 결정하고 사회의 구성방법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보통 공동체주의자들로는 매킨타이어를 비롯해서 마이클샌델, 마이클왈쩌와 같은 학자들인데 이들은 교육과 합의, 공론장을 통해서 사회규범이 정해져야하고 공동체는 동일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음세대를 길러낸다고 믿는다. 따라서 공동체가 가진 중요한 지식과 가치를 전달하는 교육의 중요성이 자유보다 중요하게 된다. 이러한 공동체주의자들은 공동으로 정한 규칙과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의 비전을 통해서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존롤스를 비롯해서 자유주의자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인간은 '무연고적 자아'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태어나서 자유를 추구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가정, 사회, 공동체의 상황을 학습하면서 가치가 형성되기 때문에 인간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 욕망으로 타락하도록 방치하는 샘이 된다. 따라서 존 롤스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서투른 결론'이며 그런 자유주의자들의 세상은 결국 싸움과 전쟁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 존 롤스의 자유의 우선성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선한 목적을 가진 존재로서 삶의 기반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힘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 사회가 비합리적인 규칙과 방법론으로 운영된다면 그것은 자유를 제약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특히 인간이 자유는 그 자체로 경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동양에서 말하는 '측은지심'을 발휘하여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자유를 먼저 챙기는 성숙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교육으로 한다면 공동체주의가 되지만 이것을 적절한 제도와 절차를 통해서 한다면 자유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자유는 선택의 여부라고 보기 때문에 제도는 만들되 그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존 롤스와 자유지상주의 외친 '로버트 노직'



3. 존롤스와 공리주의


사실 존 롤스가 공동체주의자들과 했던 논쟁은 자유주의 내부의 복지국가 논쟁이나 국가가 중립적일 수 있는가 혹은 윤리란 무엇인가의 문제였다. 이 문제는 국가자체를 따뜻하고 평화로운 이상적인 존재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에 있어서는 비슷한 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공동체'라기보다는 '사회'에 가깝다. 사회에서는 이해관계자들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뭉쳐 있는 집단 혹은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목적이 끝나면 그 사회는 다른 방식으로 헤쳐모여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는 오히려 그런 목적이 없을 때가 많고, 있더라도 공동체가 먼저이고 더 중요하게 된다. 가족공동체에서 누군가 헐벗고 있으면 목적이 없더라도 따뜻한 밥과 위로를 건내지 않는가? 그러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누구나 말하듯이, "결국 혼자 남는다"라고 하는 사회적응하는 방법이 공리주의의 핵심이다.


옳음 vs. 좋음


공리주의는 수학적인 세계관에서 가장 큰 영향력과 가장 큰 효용이 있는 선택을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샌델은 하버드에서 몇년이나 최우수 강의상을 받는데 수업을 들어보면 일종의 사고실험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타고 있는데 갑짜기 브레이크가 고장나고, 낭떨어지로 위험천만한데 앞에 한 아이가 넘어져 있다. 과연 운전사는 핸들을 꺾어야하나? 아니면 아이를 치고 넘어가야 하나? 이러한 질문에서 공리주의자들은 당연히 아이를 치고 가는게 타고 있는 승객들이 더 많기 때문에 좋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라도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결국은 이 사회에 더 좋다는 것이다. 역사상 공리주의자들은 가장 많았고, 또 앞으로도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존 롤스는 이러한 '좋음'의 세계관에 돌을 던진다. 그리고 끝까지 싸운다.



존롤스의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 모두가 이 사회속에서 태어날 때 누구나 자유롭게 태어나지만, 언제나 환경적 제약 속에서 태어난다. 그렇다면 이미 출발선상에서부터 다른 관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의 자유가 시작부터 제한되어 있는데도 두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는가? 일단은 그 출발선부터 맞추자는 원칙이 사회에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더욱이 이미 사회는 예전부터 작동하고 있었음으로 이미 피해를 많이 보는 자리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서 평등한 출발선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깐 자유주의자들의 원칙은 "내가 누리는 자유를 다른 사람도 누릴 수 있을 때에만 자유는 보편적이고 평등하게 작동한다"이다. 이러한 롤스의 입장은 공정으로써의 정의의 두 원칙으로 자리잡는다.



기본적으로 롤스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 이성의 부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로버트로직처럼 '인간에게 무한의 자유를 선사하는 법률이나 국가'를 상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선함을 끌어낼 수 있는 사회를 구성하고 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절차와 민주주의 방식을 안착시키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롤스는 실천적인 지식인이 된다. 자신의 이론이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회에서 누구나 자유를 누리면서도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적인 비전을 스스로 실천하려고 한다. 강자의 힘이 정의가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정의가 아니라, 좋은 것들의 합이 정의가 아니라 '누구나 자유를 누리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 것이다.


공리주의자들 '좋음'으로 사회를 구성한다면
자유주의자들은 '옳음'의 우선성을 주장한다.



4. 존 롤스와 복지국가 자본주의


존 롤스는 자유주의자이다. 자유주의자는 국가의 개입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지키고, 자유의 발현을 통해서 국가가 발전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 사회적 자유, 종교적 자유의 영역에서 모두 자유를 확산시킬려고 했다면 신자유주의에서는 '경제적 자유'가 가장 중요하고 우선시되는 항목으로 설정된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라도 어떤 자유를 우선하는가에 따라서 자유의 경합이 일어날 때 선택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존 롤스는 어떨까? 존롤스는 '재산소유 민주주의' Property-Owning Democracy를 주장했다. 그재산을 소유하는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되, 여기서도 다른 사람의 자유가 침해되거나, 최소수혜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다.


처음 정의론을 발표하고 나서 공동체주의자들의 다양한 질타와 비판 속에서 롤스는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저서를 통해서 자신의 이론을 어느정도 수정하면서 사회와 국가에 대한 대안을 내게 된다. 롤스는 현재의 자본주의는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며, 이러한 자본주의의 몰락에서는 언제나 노동자와 소수자들의 생활은 붕괴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회제도들을 셋팅하게 된다. 이를 통해서 롤스의 논의가 '정치철학'을 넘어서 정치제도와 국가구조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롤스가 제안한 사회제도
1. 정치적 자유의 공정한 가치를 보장하는 장치들
2. 교육 및 훈련에서 기회의 공정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장치들
3. 모든 이들을 위한 기본적 수준의 보건료

사회제도를 위한 조건
1. 증여 및상속에 대한 누진과세
2. 다양한 종류의 교육 및 훈련 기회의 평등을 진작시키는 공공정책

사회기본적 가치들
1. 기본권
2. 거주 이전의 자유와 직업의 선택
3. 공직 선출권 및 피선거권
4. 소득과 부
5. 자존의 사회적 기초


롤스는 일정하게 자본주의와도 거리를 두고 사회주의와도 거리를 둔다. 더욱이 롤스는 인간의 '자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자존은 Self-respet인데 스스로를 존중하는 삶을 국가와 사회의 기본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최소수혜자들이 모두 자존감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목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의료, 교육, 정치적 참여의 요건들이 중요해진 것이다. 또한, 복지국가와도 거리를 둔 것은 복지국가의 '재분배'정책이 낙인효과를 비롯해서 사회적 관계를 '시혜적'으로 만든다는 것에 반대한 것을 볼 수 있다. 롤스는 누구의 자유도 침해하지 않으면서 모든 이들의 자유가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존감'을 가질 수 있고 이러한 관계는 '호혜성' reciprocity을 기반으로 한다. 조금 더 롤스가 그리는 세상이 명확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정책학에서는 로위의 정책유형이 매우 유용하고 요긴하다. 로위는 강제의 가능성에 따라서 정책이 간접적이거나 직접적일 수 있고, 강제의 적용영역에 따라서 개별적이냐 환경이냐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로위의 정책유형은 개별적이면서 간접적인 분배정책과 간접적이면서 환경중심인 구성정책, 직접적이면서 개별적인 규제정책, 직접적이면서 환경을 중심으로 하는 재분배 정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기서 롤스가 비판하는 지점은 바로 재분배 정책이다.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인프라 혹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비판하면서 이것은 누구의 자유도 존중하는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자체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배정책으로 1원칙인 자유의 기본적인 평등과 기회를 제공하고, 구성정책으로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방식이라고 보면 이해가 조금 더 편할 것이다. 또한 상속세와 같은 경우는 다른이의 기회 박탈 및 자유의 박탈을 전제로 하는 소유권의 이동이기 때문에 규제정책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미국에서 발달한 정책학이 롤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거나 그 반대인지도 모르겠다.




5. 공적 이성과 중첩적 합의 overlapping consensus


마지막으로 롤스는 중첩적 합의라고 하는 원리를 제시한다. 종교다원주의가 가능해질려면 종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 자체는 인정되어야 하듯이, 한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국민, 영토, 주권'의 중요성과 함께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영역이든 중첩적으로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롤스의 고민은 사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자유를 누리면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였다. 따라서 자유를 중첩적으로 가지고 있는 영역에서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지점은 당연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것을 찾아가면서 '절차'를 만들고 그에 맞는 법안들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존 롤스는 어떻게 보면 '정초'foundation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선하다거나 이기적이다거나 혹은 인간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이야기한다는 '공적이성'을 가졌다거나 하는 기초를 가지고 있다. 특히 칸트로 부터 연유된 '목적론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는 대부분 동일하지만 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기본적인 구성원들이 가진 생각과 공정이성이 실현되면서 '다원화된 의견'들이 몇가지의 합의를 이룬 것이 바로 법이고 규칙이다. 한 사회를 떠 받치고 있는 법과 규율은 다원주의 사회의 유산이면서 이 사회를 유지하도록 만들어 주는 보루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이름은 자유주의'라는 문으로 들어왔는데 막상 존 롤스라는 집에 들어오니 자유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원칙과 법칙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유를 '방임'이나 '소극적인 자유'정도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대략 난감이기는 하다.



0. 나오기


간단하게 롤스와 대적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했으나 사실 아직도 고민해야할 것들이 넘친다. 그러나 정치철학의 기본적인 목적은 결국 정치적 논의를 통해서 국가와 사회, 법과 규칙, 한 사회의 올바른 발전 방향이나 비전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함이라고 한다면 존 롤스의 사상과 저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끝이 없다. 롤스가 이야기한 무지의 베일은 아직도 여러 곳에서 회자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반격들도 여러 토론에서 볼 수 있게 된다. 많은 이들이 롤스를 '이상주의자'라고 배격하기도 하고, 자유의 탈을 쓴 사회주의자라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데 잠이 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자유주의주의 기본적인 전제는 너무나 마음에 든다. 누군가 불행한데 나만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또한 사회의 약자들을 최우선을 챙기는 것은 국제개발에서도 기초선base-line을 업그레이드 시켜서 전반적인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는 방식하고도 다르지 않다. 가장 취약한 계층이 취약성을 벗어나면 덜 취약한 계층은 당연히 취약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다시 한번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던져보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고전적 자유주의 이후에 신자유주의로 인해서 편협해진 자유주의가 롤스를 통해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자유를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간다. 중첩적 합의가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최근에는 '퍼실리테이션'과 같은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인다. 어쩌면 회의할 때만 이러한 촉진자가 필요한게 아니라 이 사회의 구성과 기본을 다지는 지점에서부터 필요한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존 롤스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퍼실리테이터가 아닌가?






매주 회의설계소 친구들과 철학스터디와 OKR, 정책 스터디를 함께하고 있다. 처음에는 빈 공간이었다가 함께 참여하면서 더 많은 지식들이 붙어서 새로운 방향성이 생기는 중이다. 오늘은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에서 시작해서 데이비드흄을 지나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그리고 공리주의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철학적 방향은 국가구성의 기본이 되는 체제를 결정하기도 하고, 세부적으로는 국가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철학의 빈곤이라는 말의 반대는 풍성한 철학을 바탕으로 더 깊은 논의와 우리의 방향의 정합성과 대안의 '사유의 모험'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들어 더더욱 철학을 깊이있게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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