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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Oct 23. 2022

물질 세계에 신이 들어온다면?

깊은육화와 생태적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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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닐스 그레게르센과 엘리자베스 존스과 같은 주요 신학자들이 제시한 생태적 관심과 깊은 육화라는 개념을 통ㄹ해서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방법을 논한다. 기독교에서는 물리적 기독론이 먼저 나왔다.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을 근대 신학에서는 휴머니티한 그리스도로 설명을 했다. 이것이 역사적 예수이다. 예수를 도덕적인 인간으로 본 것이다. 근대에서는 그랬지만 고대에서는 그리스도를 육화의 신비로 본다. 다시 말하면 도덕적인 판단 이전에 우주론적 기독론을 말한다. 로고스 개념도 영지주의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화되어서 육체로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 예수의 인성을 중심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예수의 육체의 존재적 의미를 중심으로 볼 것인가?라는 질문들이 고대에서는 주로 이루어졌다. 


동방신학에서는 예수의 성육신사건을 '신화'로 연결한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말은 인간이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한다고 본다. 신격화, 신성화라는 논리는 정교회의 구원론에서 매우 중요하다. 성육신의 교리에 이것이 연결되면 부활로 이어진다. 신이 육체적 물리적 조건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도 신성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신성에 참여하는 것은 물리적 참여를 말한다. 그래서 '화채설'도 나오고 육체적 변형도 이야기하게 된다. 그러니깐 어떻게 보면 근대 기독론은 인격적이거나 도덕적인 성품이 매우 중요하게 여겼지만, 고대에서는 물질의 부활과 구원이 자연적이었다. 다시 말하면 생태적 관점에서는 고대 기독론이 더욱 깊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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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육신의 두 가지 


육화에 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이 있다. 직접적 의미의 육화란 하나님이 한 인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물질적 몸을 통해 육화하셨다는 거시다. 넓은 의미의 육화는 그리스도 또한 온 우주의 지구의 생물학적 조건과 사회적 조건을 공유한다는 의미로 다른 존재들을 포괄한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인류는 인간이 대우주 속의 소우주라는 고대 관념을 통해서도 이것을 공유한다. 넓은 의미의 육화를 통해 대우주 안의 소우주로서 그리스도의 의미는 특별한 모순을 갖는다. 깊은 육화를 주장하는 생태 신학자들은 온 우주에 대해 그리스도는 누구인지에 관한 넓은 의미를 독자들에게 상기시킴으로써, 직접적 의미의 육화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육화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한가지 논의할 점이 있다. 이러한 성육신과 진화론을 견주어 보는 것이다. 이것도 두 가지의 관점이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육화가 진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진화론이나 생태진화론으로 발전한다는 관점이다. 또 다른 관점은 '정의'의 차원에서 그리스도는 '진화론'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위해서 오셨다는 관점에서 진화론과 상반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이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는가가 중요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어떤 위치에 놓고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우리가 세계와 생태계 그리고 그 안에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 깊은 육화란 무엇인가


닐스 그레레르센은 깊은 육화라는 용어를 가장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그는 그것을 진화론적 개념을 갖고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특정한 경우에 적용하였다. 또한 그는 기후 변호를 포함한 생태계적으로 중요한 현실 상황과 관련하여 이 용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가변적 물질성의 전체 매트릭스'안으로 들어갔다. 그레게르센은 고대 그리스의 '육체' 혹은 '몸'의 의미를 현대에서 사용하는 취약한 신체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실재를 포함하는 보다 넓은 범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구체화하면서 '육체'를 우주의 한 처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자연 세계를 포함하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그 단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깊은 육화에 관한 그레게르센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나자렛의 유대인 예수의 구체적인 인생 스토리를 취함으로써, 창조된 존재의 물질적 조건과 결합하여 모든 생물학적 생명의 형태의 운명을 공유하고 귀하게 하며, 감각을 가진 피조물의 고통을 경험하는 포괄적인 방식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로고스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육체로 만들어졌다. 


_Gregersen, "The Cross of Christ", Gregrsen "Christology", Gregersen, Incarnation



3. 깊은 육화란 무엇인가_엘리자베스 존슨


로마 카톨릭의 여성주의신학자인 엘리자베스 존슨은 깊은 육화에 관한 그녀 나름의 해석을 통해 헬레니즘의 그리스도론과 범신론에 관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존슨은 구체적인 생태적 관계와 생태윤리를 위한 시사점에 관해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관심을 가진다. 그녀는 육화의 일시적이고 유한한 본성을 강조하기 위해 육신이 되신 말씀을 강조한다. 다른 많은 생태신학의 저술가와 마찬가지로 존슨은 특히 토마스 베리의 저작에 의해 알려진 생명의 진화적 기원과 그에 따른 상호연결성에 매혹되었다. 


즉,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형태는 말 그대로 별똥별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깊은 육화의 개념이 특히 생태론에 적합하게 된 것은 연속성과 연결성에 관한 감각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리스도가 되신 육신 또한 우주와 공유하는 물질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존슨은 우주적으로 해석하는데 있어서의 문제도 인정한다. 최근 200년간의 그리스도론 학문은 예수의 생애와 사목의 역사적 측면을 가장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존슨은 예수가 인간과 자연 세계에 대한 주목을 의미하는 '깊은 사목'을 갖고 있다는 개념을 통해 해법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그것은 모든 창조된 우주에 대한 연민을 뒷받침하는 예수의 사랑하는 사목이다. 존슨은 모든 피조물의 고통과 죽음을 포함하여 폭력적인 고통과 연대하는 예수의 수난에 관한 성찰에 이어 '깊은 십자가'의 개념을 자세히 설명한다. 깊은 부활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또한 인간을 넘어 모든 생명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한다. 존슨은 깊은 육화에 관한 스토아주의의 개념을 깊은 직무, 깊은 십자가에 못 박힘, 깊은 부활을 통해 수정했다. 



4. 깊은 육화, 하나님의 드라마_발타살


우리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의 작품을 바탕으로 하나님 드라마의 신학적 개념과 연결하여, 지혜인 호크마를 강조하면서 신학적 개념과 연결하여 지혜인 호크마를 강조하면서 행동을 강조한 요한복음의 해석에 힌트를 가져온다. 폰 발타살의 그리스도론은 실재적이며 경험적으로 지향되어 있으며, 그의 사상에는 초기 교회 교부인 고백자 막시무스로부터 유래된 우주적 요소가 있다. 그러므로 폰 발타살이 연결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생태 그리고 인간의 관계는 생태론의 근거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생태론적 해석이 주어졌을 때 드라마는 폰 발타살과 비교하여 생태와 진화에 관한 과학적 지식에 더 깊이 근거한다. 


육화는 그리스도의 육신이 연약하고, 고통스럽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역사에
깊숙이 체화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깊다. 


육화는 그리스도의 육신이 연약하고, 고통스럽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역사에 깊숙이 체화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깊다. 그러나 그러나 존슨이 애써 지적해 왔듯이, 육화는 보편적이고 심오한 의미가 있는 동시에 하나의 특별하고 유일한 역사로서도 중요하다. 폰 발타살은 하나님의 드라마란 인간 경험의 외부로부터 발생하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이 일어나는 곳에서 신비적 경험으로 체화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로욜라 이냐시오의 통찰에서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 가운데 존재한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전형 혹은 도전이란 인간의 성취를 상대화하여 믿는 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에 더욱 순종하도록 박차를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깊은 육화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알아차리기 위한 전제 조건은 인간이 자연 세계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스토아 학파의 로고스 개념


스토아학파에서는 '로고스'는 모든 곳에 산재해 있다고 본다. 로고스를 불이라고 본다. 불이라는 것은 어디나 산재해 있지만 발화점이 있어야 불이 된다. 이렇듯이 어떤 계기가 있어야 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로고스는 어디서나 산재해 있지만 그것을 깨닫는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로고스는 그리스개념으로 만물을 움직이고 운영하는 힘으로 본다.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로고스를 그리스도로 해석하고 이것을 '로고스기독론'이라고 하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 주로 사용한다. 현재 한국교회는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안디옥학파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역사적 인물로서 그리스도는 우리가 역사를 생각하는 그림에서 등장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진리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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