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우산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가는 빗줄기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현듯 과거의 비슷한 기억들이
빗줄기 처럼 쏟아 내린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고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정취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참 신기한 동물이다
적어도, 자신의 기억은 자신만 알 수 있다는
면에서 말이다
어린시절을 떠올리는 때는
어쩌면 내 나이가 많이 들었다 혹은 삶이 이제 익숙해졌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어린시절 서울한 복판에서 문명의 손이
닿다가 만거 같은
도시빈민들의 삶을 살아냈던 나에게는
빗줄기라는 것은 매번 가로등 사이로 떨어지는
운명과 같은 것이었다
노오란 가로등이 연희동 산중턱까지 비춰주면
술한잔 걸치신 동네 아저씨의 흥얼거림이
간간히 들릴 때쯤
나는 공동주택의 작은방 한구석에서
이불을 움북 뒤집어 쓰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더랬다
세상은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진걸까
정말 사람은 죽어서 지옥에 가는걸까
착한일을 하면 된다는데,
얼마나 착하게 살아야 하는걸까
불평등은 어디서 오는걸까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도시빈민들이 흔히 겪는 사고의 함정은
내일은 조금 달라지겠지라는 헛된 희망이다
헛된 희망.
도시에서는 좀처럼 예상된 일 외에는
잘 일어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합리성이라는 게 도시의 제도와 시대를 만들면
막연한 긍정주의는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기 마련이다
사실 나는 낯설었다
삶이 나에게 부여한 모든것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언제나 학교라는 공적인 공간에
개인적인 나'라는 존재가 어떤 식으로 자리를 잡는지 불안해 했다
그래서 전혀 나의 참됨과 관련이 없는
내 이름이 불려질 때면 나는 항상
낯설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에서야
아' 내 이름이 민경인'인구나 했다
나는 한글이 매우 낯설었다
그래서 한글을 연습할 때 항상
그림 그리기의 축제였다
물론 많은 선생님들은 나를 한글도 모르는
사회에 부적응자 정도로 생각했고
나는 한국'이란 단어를
우리나라 지도로 그렸던 적도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게 언어의 사회성의 측면에서
기표와 기의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림으로 그리는게
뇌가 이해하기에는 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글 뿐이겠는가
구구단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의 두뇌는 더한다는 개념은 있지만
곱한다는 개념은 없다
이상하게도
내게 매우 낯설었던 개념을 가지고
친구들은 너무나도 빨리 적응하고 그대로
구구단을 외우며 세상을 따라갔다
나는 스스로 세상과 소외되어서
아 인생이란 무엇일까, 정말 나는 이상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던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장을 했었는데
반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는
여름방학 교재의 갯수를 세었던 기억도 있다
그 때 당시 매번 20단위를 넘어가면
까먹는 버릇이 있었다
20이라는 숫자 다음에
어떻게 21이라는 숫자가 나오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나는 칸트가 이야기하는대로
하나'라는 특성을 덩어리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매번 분석적으로 갯수화시키는 것에 대해서
나의 뉴런 세포들이 인지부조화를 겪었던 것 같다
낯섬의 철학을 이야기하자면
밤을 새어도 모자를 판이다
오늘 낮에도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엇! 이 단어는 이상하게 이 물건의 이름이 되었네' 라고 느꼈으니깐.
다행히 요즘 시대에는
이런 생각이 천재들의 생각법이라고 한다
머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천재라는 단어가 또 낯설다
그냥 삶에 대해서 조금만 진정성을 갖게 되면
금방 알게 된다
우리가 겪는 순간은 시간과 공간이 처음 만나는 자리라서 항상 낯설다는 것을 말이다
혹시나 낯섬의 감각이 살아나면 말이다
인생을 쉽게 살지 못할게다
모든 개념과 단어 그리고 사건에서
수만가지의 생각의 개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식이란 원래 그런게 아닐까한다
무엇이든 연결하지만 사실은 어떤 공통점도 없는.
낯섬이 감각으로 생기는 순간
흔히 작가들은 글을 쓰고,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기술자들은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구상을 내어 놓는다
나는 지금시대가 좋다
이런 이상한 생각이 존중받는 사회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낯설게 평생 살것 같다
마치 모든 것을 처음 보듯이
사실은 모든 것이 어느순간에나 처음이긴 하다
이 공간, 이 시간에는 항상
모든 사물이 처음이니깐 말이다
아
이렇게 써 놓은 글도
낯설다
나는 누구였던 걸까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