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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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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Dec 18. 2022

윤곽들

김원경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

약속들이 머무는 곳에서


부글거리는 해변은 목이 늘어난

티셔츠처럼 출렁거린다


얼지 않는 슬픔을 위해

면사포처럼 막 깔리기 시작한 저 노을


구두는 축축하게 젖어

곧 벗겨질 것이다


해초처럼 다른 장소에서

서로를 기다리다가 지쳐버린 곳


연안처럼 숨을 쉬는

연인이 필요할 때


어떤 바깥은 섬진강에서 남해에 이르기까지

기억의 윤곽에서 불붙는 빛의 윤곽까지


밀려오고 버려지는 것들은 경계를 문다

겨울은 왜 새가 될 수 없는 걸까


더이상 고백할 것도 변명할 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어느 별은 맨발로 뛰어내리고

전속력으로 뛰어내리고


지워지는 세상의 경계들과

비릿한 시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다

우리의 간격은 늘 물컹했고


어떤 전쟁에도 맞닿은 생이 있다

바람의 손목과도 같이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며


잘못된 예보처럼, 붉은 거품처럼

나도 경계에 불과할 때가 있다


운명은 증명할 수 없다는 듯

이제 막 얼고 있었다는 듯


물이 들어왔다 사라진다

이제 올 시간은 아무 것도 없다


-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문학동네, 2017





물컹한 해안 안쪽에 두 사람이 서 있다

서로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려는 듯


파도는 그들이 연인이 될 수 없다는 듯

매순간 경계를 긋는다


어디서부터 뒤틀린 걸까

어디서부터 엇갈린 걸까


아마도 우리의 경계가 서로를 침범하고

당신과 내가 식별할 수 없는 부분에서겠지


멀리 사라지는 뱃고동소리가

마치 이 경계의 마지막을 노래하는 것 같다


왜 파도는 새가 될 수 없는 걸까

그토록 하늘로 날고 싶었지만


그 수 많은 경계에서 날개가 꺽인듯이

그럼에도 파도는 계속해서 새의 경계를 서성인다


마치 내가 당신의 경계 안으로 들어갈때

한번도 당신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서쪽노을이 안개속을 건너는 사이에

한번쯤는 흐려지는 하늘과 바다 사이에


어쩌면 우리는 다시태어날 수도 있을거야

그때는 아마도 내가 당신이 아니라


당신도 내가 아니라

그런 생각조차 안하게 되는 영역이 있겠지


아직은 나고 경계에 불과하지만

당신의 깊이만큼 내려갔을 때에는


아마도 이런 질문조차도

물거품이 되어 도망가겠지


잃어버린 것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시간

점점 당신의 윤곽이 또렷해지는 시간


나는 다시 어제의 노을과 이별하고

오로지 나로 살아야하는 오늘로 돌아와서


떨어뜨린 것들을 찾은 중이야

이제 올 시간에 당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민네이션,

당신의 기억을 잃어버릴까봐 경계선을 지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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