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기형도_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언젠가 부터 사람들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늦은밤 소주 한명에 터벅터벅 축늘어진 어깨를 툭툭치며
임대아파트로 들어가는 어떤 중년의 뒷모습에
1970년대 전태일 열사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이 세상은 그대로 두면 불평등과 열등감의 천국이 될까?
아니면 그냥 나두어도 그냥 알아서 좋아질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집에 들어와서 앉으면
내 몸속으로 시대의 아픔이 지나가고
내 눈가에는 누군가가 흘린 눈물인지 모를
촉촉한 물기가 스며든다
태생이 그래서 그런지 '힘내자, 화이팅'보다는 그저
그 슬픔에, 우울함에 젖어 있는 것이 더편안한 것 같다
금요일 저녁 젊은 시절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중얼거림이 들린다
얼마나 많은 삶들이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에서
희망없는 어깨로 리듬을 잃어 버렸을까?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이들에게 조그만 손이라도
건낼 수 있는 여유는 그냥은 생기지 않는걸까?
항상 이렇다 내일 아무런 긴장도 없는
편안한 주말이 다가오는 기다림 속으로
깜빡이도 안 켜고 들어오는 한숨소리
지금도 조그만 방안에서 그나마 있던 꿈도 질식되어 가는 소리
그러니깐 결국 무엇인가를 바꾼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세상의 고통과 절망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가만히 이 세상을 두고 싶은 게으름이 몸속에서 용솟음치니깐.
늦은밤 니어카를 끌고 가시는 할머니는
그렇게 희망을 손에 잡지도 못한체로 돌아가시고
축 늘어진 어깨의 중년은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어가고
밝게 자란 사람들이 내비친 미소가 부러운 알바생은
부러움이 아니라 이세상을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 그런 밤에.
나는 길 위에서 중얼거린다
계속 되내이고 중얼중얼 거린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여기저기서 아름답게 보인다
아름다운 가난이 눈발처럼 빛나는 밤에
그 눈발이 다 누군가의 눈물이 얼어서 그랬다는 것을
한참의 겨울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깨닫는다
누구나 맘 편하게 앉아서 추억이며 이별이며
주머니에서 꺼내서 시를 쓸 수 있는 세상을 그려본다
주렁주렁 볼을 타고 흐르는 수증기가
젊음이 지나가는 것이 아쉬워 젊음을 질투하는 이들 사이로
잠깐씩 보이는 눈빛을 번져보이게 만든다
무심한 탄식들이 40년은 넘었는데 아직도 볼멘소리로 들린다
길위에서 중얼거린다
방안에서 중얼거린다
민네이션_길 위에서 중얼거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98iJont-YR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