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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an 15. 2023

자유민주주의는 기독교와 친화적인가?

왕을 기다리며_제임스스미스_3장 복음의 분화구

제임스 스미스의 왕을 기다리며는 한마디로 정치신학이다. 정치신학은 공공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갖게 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공공의 영역인 국가, 사회, 시장과 같은 영역들 안에서 그리스도는 어떻게 영향을 미쳤고, 또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거나 적용해야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이다. 제임스스미스는 이러한 정치신학의 관점에서 올리버 오노도반의 저작들을 가지고 와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재해석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지상의 도성은 서로 같이 겹쳐 있으면서 아이러니하게 역설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세속적인 정치도 영향을 받고 되고, 또한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가게 된다. 


역사 안에서, 국가 안에서, 자유 민주주의의 제도와 실천 안에서 복음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곳곳에 복음의 분화구가 날 수 밖에 없다. 서양 민주주의사에서 이러한 복음과 교회의 영향력을 제고해 본다면 한국사회에서도 당연히 이러한 영향력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오늘은 교회사와 자유민주주의의 역사를 통해서 공공신학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또한 놓치고 있는 것 혹은 한국적 상황에서 적용이 불가능한 것들도 찾아보자. 서양의 기독교사가 그렇다고 할지라도 한국의 교회역사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minnation/3270



인정받지 못한 입법자

시인은들은 인정받지 못한 세상의 입법자들이다_퍼시 비시 셸리

시인들은 대담한 창의성과 혁신적 통찰로 법의 윤곽과 우리가 살아가는 지상 도성의 경계를 그려낸 시민사회의 건립자들이다

우리에게 종말을 보게 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께 하여 왕권신수설에 도전하여 신민이 아닌 시민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이다. 

마찬가지로 신학자들은 인정받지 못한 입법자이다. 교회라는 통찰력과 계시, 실천과 예전은 국가의 주기와 헌법의 전망, 이론 의례를 나아왔다. 이것은 국가가 교회법에 의해서 형성되었다는 증거이며 에클레시아라는 정체성을 국가도 일부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공공신학적 교육

이장은 복음의 분화구로서 교회의 공공신학이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첫번째로 기독교 정치신학의 공적 책무의 한부분으로 자유 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아본다. 자유민주주의가 개신교의 소유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유민주주의가 게몽주의적 합리주의로 부터 독자적으로 출발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올리버 오노도반은 "반세기의 정치사 연구를 통해 분명해진 점은, 정치적 우선순위의 이러한 새로운 조직화의 뿌리가 그 보다 앞선 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뿌리는 종교개혁, 후기스콜라주의, 초기 스콜라주의, 카롤링거 왕조 시대, 교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수도원 공동체, 교회법, 고해와 같은 기독교 공동체의 구체적 형태까지 올라간다고 말한다. (p169)

기독교 신학은 한 백성이 정치적 책무를 수해하기 위해 필요한 실천적합리성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고대의 역할을 계속 이어간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서 전개한 이론을 살펴보면서 자유주의 유산과 영향이 단순한 악마화와 거리두기가 아니라 국가를 일종의 경쟁적 에클레시아로 볼 필요가 있다. 


보냄: 참여를 위한 분별

기독교 정치 신학은 복음이 서양과 현재의 세계에 미친 강력한 영향의 산물인 자유민주주의의 양상들에 대해서 긍정적이면서도 섬세한 이해를 해야 한다. 

폴리스로 부터 교회와 우리를 단순히 섞여 지내는 정도로 정리하는게 아니라 자유주의적 제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를 분멸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예배의 마무리는 보냄이기 때문에 예배가 고립된 영토의 의례라기 보다는 사명으로써 시장과 선거, 기업과 지방정부 의회라는 다른 공간으로 보내는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우리의 사회적 상상력이 빚어지는 공간이며 그 자체로 목적이나 대안이 아니라 분별할 수 있는 훈련을 받는 성령의 교육 공동체이다. 

그것은 단순한 대립의 방법이나 방어적이지 않고 참여, 협력, 비판의 여지를 가진 실천적 지혜와 신중함이다.

구속사를 통해서 드러난 것은 추상적인 원리가 아니라 역사 안에서 우리를 발견하게 되면서 세속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에서 수정가능한 분별 능력을 갖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정치분석과 문화해석을 위한 신학

1) 우리는 복음 자체에 담긴 정치적 전망의 윤곽을 분별해야 한다. 

2) 우리는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제도와 실천의 독특한 결과를 분별해야 한다.  

3) 신학적으로 굴절된 자유민주주의의 계보를 분별하도록 훈련받고 예배를 통해 성경의 이야기에 몰입함으로써 세상에 보대신 시민들로서 현세적 분별을 지속적으로 작업한다.


정치신학이 한 일은 후기-근대 서양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삶에 관해 사고하는
난해한 도전을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해명하는 것이다


민주적 자유주의의 교회적 기원

우주로부터 온 폭격에서 곳곳이 분화구처럼 움푹 파인 행성의 표면처럼 지난 시대의 정부들은 동이 트듯 밝아오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_오도노반

복음이 서양의 자유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분화구들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정치제도 중에서 그 유전자가 교회의 계승자임을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가? 

올리버 오도노반은 공공신학이 한 일 중에 하가 서양의 자유민주주의 안에 있는 우리의 정치적 제도와 의례에 대한 신학적으로 굴절된 계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공공신학자의 일은 이러한 가려진 관계와 영향력을 드러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대표이신 그리스도에서 국회의사당까지

오도노반은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기독교 세계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왕의 초림에 의해 정치적 권위가 대체된 후 남겨진 것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통치권력은 현세적이기만 한 권력을 소유하며, 질서와 법과 영원한 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어느순간부터 국가는 타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으로 드러나는데 이것은 통치자에게 책임을 묻는 민주주의 핵심을 계속 주장하게 된다. 

국가는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 존재하지만, 그리스도의 비래나는 권위 아래 있는 국가는 결코 그 자신의 법으로 심판하지 않고 법 아래서 심판한다. 근대국가의 '법치주의'의 뿌리는 결국 성경의 맥락과 연결된다.

우리가 정부에 책임을 물을 때마다 왕이신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유산을 담은 정치적 행동을 하고 있는 샘이다. 

헌법에 관한 사상이 기독교 정치의 전통과 최선의 정부형성가 무엇인가에 관한 고전적 사상을 부결하는 특징 중에 하나가 되었다. 법이 통치자에게서 나오지 않고 보편성에서 나온다. 


기독교 세계의 정치사상에서는 그리스도의 보편적 통치라는
보편성이 법 안에 자리잡게 했다



오도노반의 계보학 4가지 특징_예수가 왕이시다

1) 자유주의 사회는 자유에 의해서 특징지어진다. 복음이 자유를 해방시키며, 주의 성령께서 자유를 보장하신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기존의 권위를 해체하고 사랑의 법의 통제 안에 두셨다. 즉, 자유의 선포인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몸이 고통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로부터 긍휼을 베풀라는 독특한 부르심이 생겨났다. 이것은 자유주의 사회에서 심판 중 '자비'라는 것으로 표현된다. 교회는 자비의 폴리스이다. 

3) 교회가 심판하기를 주저하는 것은 인간적 질서의 안정성에 대한 확신의 반영이다. 기독교적 정치적 상상력을 승인하는창조의 신학은 창조질서의 부활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4) 우리가 말하기의 자유와 연관시키는 말하기에 대한 개방성이다. 권위자들에게 복음을 말하고 선포하는 자유는 서로에게 말하기, 예언자적 도전, 공적 확신의 습관을 퍼트렸으며 시민들에게 퍼졌다. 



오도노반의 자연권 교리 세가지

1) 각 인간이 다른 인간을 노예나 주인이 아니라 인류 안의 동반자로 대할 수 있게 하는 자연적 평등에 대한 인정

2) 친밀한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하는 친화성의 구조, 공동의 삶과 공동선이라는 개념 자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연대의식

3) 각 개인, 공동체, 독립체에 완결성을 부여하는, 또한 새로운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사회의 교환에 참여하게 하는 상호 작용과 '소통'의 방식을 상상하는 호혜의식


그 외의 특징들, 오노도반의 '열방의 욕망들', '심판의 방식'

개인은 사회에 대해서 어느정도 초월성을 지녀야 한다. 

권위는 자유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자유를 위해 행사되어야할 선이다. 

인정이 권위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예배'를 통해서 드러난다. 

인정은 권위의 인식과 대표라는 개념으로 연결된다. 인정받은 이가 대표가 되며, 대표는 권위를 가지게 된다. 

백성됨이 정부보다 선행한다. 정부와 백성, 백성과 정부가 서로 마주할 때만 정치가 생겨난다. 정부는 백성을 보존하고 지키며, 정부는 백성을 대표한다. (이것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현실정치로 반영되며, 대한민국 헌법 1조에서 나오는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와 연결된다!)

근대 자유주의는 '양심적인'근대적 개인으로 회심이라는 부담을 상속받는다. 


유산의 폐허

근대 초기자유주의의 토대는 파편 아래서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 위의 후기 근대적 자아와 정체성 정치라는 허약하고 겉만 화려한 건물을 만들었다. 

왜곡된 개인주의가 기독교 세계 안에서 출현한 개인에 대한 선하고 건전하며 성경적인 긍정을 약화시키도록 두어서는 안된다.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행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산에서 또다른 근대적 개인이 출현한다. 데카르트, 홉스, 로크가 말하는 원자론적 개인이라는 신화이다. 

유산은 선택적이다. 어떤 유산을 받아들일지는 선택적이다. 소망을 품고 하나님과의 내적 대화에 집중함으로써 형성된 것이 아니라 사물의 핵심에 다가가고 전략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개인성의 실현이다. 

내면의 성은 비어 있다. 거기서 발견할 하나님과의 만남같은 것은 없으며, 따라서 그 결과는 절망이다. 이것을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오도노반과 스미스의 기획

오도노반과 스미스는 자유주의 전통과 민주주의 전통에 복음이 끼친 영향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흡사 기독교의 발흥을 쓴 로드니 스타크의 논리를 따르는 것도 같지만, 차이점은 '예전'으로서 행동에 영향을 미친 제도와 행사들이 우리의 문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가치'와 '사실'의 구분을 해보면 기독교의 가치, 부활의 가치, 복음의 가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운영에 있어서 헌번에 가치와 시민권, 참정권과 행복추구권과 같은 부분에서도 복음과 부활, 예수님의 삶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기획은 개혁신앙으로 보면 일종의 '승리주의'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잘못된 선택이 일어나는 제도적 부정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승리한 것들만, 좋은 것들만 하나님이 하시거나 복음의 영향이고 그외의 것들은 인간의 타락이라고 하는 간편한 논리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만들고 자본주의 문화에 익숙한 이들의 북미신학의 특성상 낙관주의와 교묘한 승리주의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적 맥락에서 적용하려고 하면 한국의 근대 역사에서 드러난 기독교의 타락과 문제점들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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