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억나게 해 준 것들
당신의 살결의 나이테를 보고 있으면
당신이 이야기한 생물학이 생각나곤 했다
하나의 세포가 분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과
생명공학을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센트럴 도그마 같은 이름들이
당신과 함께 항상 배경을 차지하고
나의 마음에 계속해서 낯설지만 아름답게 자리잡았었다
매번 당신에게 편지나 선물을
혹은 글을 선물해 주리라는 약속이 방금 생각났다
기억의 나이테가 추억으로 가는 도중
당신을 처음 만났던 바람의 숨결이 생각났다
의지와 의지가 만나는 자리에서
언제나 랑시에르가 생각나듯이
바람과 아름다움이 만나면
나는 어느 수필가가 쓴 책이 아니라
당신의 눈동자가 생각나고
설명할 때 달라지는
당신의 성대의 울림이 생각났다
남들과 다르게 살려고 노력하는게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게 달라지는
신기한 당신을 볼 때마다
나는 매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이기적이지 않으면
곧 열매를 맺고 새로운 꽃을 피우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당신이었다
이렇게 막 써내려가도 수필이 되는 것은
라캉'식으로 말하면 당신에 대한 상상계가 풍부하기 때문이겠다
당신의 희고 보드라운 살결을 만나면 항상
나는 여성이 주는 아름다움이 생각나는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과 길항적으로
당신이 걸어온 삶의 아름다움이 떠올랐다
페미니즘을 많이 접한 친구들이 이야기하듯이
여성으로 먼저 바라보기 전에 나는 언제나 인간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도, 좌파도 우파도
사랑하면 초월하게 된다는 대안을 얻은 것 같다
당신이 있기에
당신의 살결이 주는 여운이 있기에
나는 여전히 살아있는 마음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살결로 숨을 쉴 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인간인 것 같다
살결들이 잠잠하다가 어느순간
살갗으로 변하여서 아름다움을 감지하게 하거나
외로움을 직시하게 하거나
불평등과 차별을 감지하게 하더라
당신을 만난 후로
살갗들이 더욱 춤을 추고
당신의 말들이 더욱
나의 생의 감각을 일깨워 주더라
내가 과거형으로 쓰는 것은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지금 시점에서 당신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당신이 그렇게 살아달라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싶다
그냥 당신을 인정하고 즐기고 싶었던
낭만적인 과거의 어느 시점의 나의 모습과
만났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렇게 가끔은 자신이 살아온 시점에서
과거의 어느시점을 돌아보아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이니깐
나는 내가 되는 방법으로
당신과의 시간들을 돌아보는 중이다
당신의 살결이 말한다
당신의 인생의 깊이와 고민의 높음과
고뇌의 짙음을.
그래서 나는 당신을 생각하다가
글을 쓰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웃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인생이 어느날 말을 걸어 올 때
나는 그 시간 당신과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었다고
그래서 후회할 겨를도 없이
지금을 낭만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살결이 유난이도 하얗던 당신
오늘 밤은 유난히도 어두운 하늘에 떠오는 별stella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