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향기_한병철
형식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대부분의 고민이 삭제된다
이미 형식은 그 자체로 고민의 결과임으로
우리가 만나는 형식은 그 자체로 해답이다
그래서 형식에 묻혀있는 이에게는
고민이 사라지고 고민이 사라진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이 남의 시간으로 도배되었다는
것을 뜻하지만 일정한 시간까지는 안주한다
그러나 그 형식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자신도 진부함을 느낄 때 또 한번 유혹이 온다
다른 형식을 가져올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자신이 고민해서 그 형식을 만들지
국가라는 형식이 그랬고
사회하는 형식이 그랬고
우리가 교통과 통식 형식이 그랬고
심지어 사람을 만나는 형식이 그랬다
그 형식에 의존하는 이들에게는
시간은 빨리 지나가야 하는 장애물이다
자신이 이루어야 하는 형식의 결론을
방해하는 시간의 장애물을 걷어내기 위해
더 빨리 가속화된 형식을 발명하고
가속도가 붙은 삶은 더 이상 리듬이 없어진다
시간이 자신을 전복해버린 인생에서
다름이를 돌아볼 여유는 자연히 없다
소유로 자신의 인생에 무게를 들려는 이들은
역시나 그 소유의 형식에 갖혀버린다
자신이 가진 것이 자신이 아니지만
그것 외에는 자신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진다
길이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지금 여기는 길이다
어쩌면 그 형식 자체가 어디로 갈 수 있는 길이다
그러니 이 길에서 만난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고민을 풀어보련 인내도 해보고
삶 속에 흘러넘치는 생명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는 길이다
사실 우리는 항상 길에서 걷고 있었다
가끔 시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을 만난다
그의 안에서 넓은 공간을 발견한다
수 많은 고민들이 공간을 가득 메워도
언제나 무한한 여유로 또 새로움을 만드는
그와 만나는 시간은 그 자체로 구원이다
더욱이 같이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길을 걷다 만나고 싶다
여유가 리듬을 만들어내는 이외 함께!
시간은 열려있다
고운 향기가 나는 길로 우리를 초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