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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19. 2023

메타내러티브를 회복하자_밀뱅크

존밀뱅크_신학과 사회이론 서문

지난 시간까지 제임스 스미스의 책들을 읽었다. 제임스 스미스는 인간이 자신의 습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과 성경의 실천을 매우 강조했다. 따라서 '습관의 형성'과 같은 책들을 기반으로 스미스의 3가지 책은 최근들어서 가장 많이 읽는 책이다. 여기서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인 telos를 향해서 가야하지만 현대 사회는 반대로 개인의 목적인 욕망에 머물렀다고 비판한다. 개인의 욕망이 자신의 소유권과 인권과 연결되면서 사회 자체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면 그러한 개인이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게 되면서 국가는 '권력의 장'이 되어 버린다. 밀뱅크는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개인'의 탄생 과정에서 인간의 목적을 잃어 버린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오늘부터는 영국 성공회의 신학자이면서 노팅엄 대학교의 교수인 존 밀뱅크의 사상을 살펴본다. 이름하여 '신학과 사회이론'이다. 


https://brunch.co.kr/@minnation/3308



0. 들어가기


'이성과 합리성의 세계'인 근대를 넘어서는 시점은 '부정'이 등장할 때다. 이성으로 탄탄하게 합리적인 체계를 만들었던 근대세계에서 나오려면 그 근본부터 도전해야 한다. 무엇이 근대를 만들었는가?라는 생각을 해보면 결국 인간이 가진 '이성'이다. 그러면 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중세가 지나가는 가을에 책을 썼던 요한 하이징가의 전망과 같이, 정통주의자들은 근대성 이전으로 돌아가는 회귀노선을 택한다. 빠름에 따라서 다르지만 느리고 점진적인 변화보다는 급하고 수직적으로, 깊이있게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은 '급진 정통주의'였다. 수직적으로 문제의 원인에 접근해서 빠르레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당연히 성경일 것이다.


정통주의에서 '정통'은 무엇일까? 당연히 성경일 것이다. 그러나 급진정통주의가 시작점으로 혹은 회귀점으로 잡는 지점은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발타자르나 쿠자누스와 같은 중세시대이다. 기독교적 국가의 이념형이 시작되고, 탄탄한 세계를 실재화시키던 시절에 관심과 논리의 핵심은 하나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이 만나는 현재의 지점에서 어떤 것이 우위를 가지고 있는지였다. 왜 여기에 집중하게 되는가? 사실 급진정통주의자들의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세속화의 논리'에 압도된 교회론과 구원론이다. 그럼 어떻게 세속화를 구분하거나 몰아낼 것인가? 이런 고민에서 무엇보다 세속화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진행되기 위한 기반이 되었던 기원을 찾아간것이다. 그래서 중세시대로 간다. 보편성, 유명론, 오캄의 면도날과 같은 어마무시한 단어들이 버티고 있는 지점이다. 



1. 큰그림을 그리자


밀뱅크는 서론에서 자신이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사회이론가들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니체의 철학이 회의적인 태도로 인해서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근대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발전한 신학적 흐름은 철저히 회의적인 태도가 교양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합리성의 흐름에서 비합리적인 부분으로 밀려났고, 단지 생각이나 이념에서만 밀려난게 아니라 실제로 일이나 삶의 스타일, 문화의 영역에서도 물어나게 되었다. 비합리적 주관성을 가진 '신앙인'들이 공론장에서 활동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신학자들이다. 


그래서 밀뱅크는 오히려 반대로 주장한다. 


메타담론으로 돌아가자! 메타담론으로 복원하자! 밀뱅크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다시 전체를 설명하는 방식을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신앙과 신학은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자리에서 쫓겨나서 비통한 심정으로 종말이라는 구출을 기다린다. 그러나 반대다. 신학은 이러한 근대적인 합리성에서 벗어나 포스트모던적인 방식으로 메타담론으로 돌아가야한다.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은 모더니즘을 벗어난다는 뜻의 탈현대주의를 뜻한다. 현대의 종살이하던 생각이 자유를 맞이하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거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자리매김된 신학 : 세속이성에 의한 자리매김된 신학은 두가지의 특징을 갖는다.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몇몇 특수한 내재적인 영역에 관한 지식을 우상숭배적 방식으로 연결짓는다.

신학은 표상을 넘어선 숭고성에 대해서만 그저 넌지시 암시하는 정도에 구속될 뿐이고, 그럼으로써 합리적인 견지에서 볼 때는 완전히 명료하지만, 자율적 세속 영역이라는 개념을 부정적으로 확증해주는 기능을 한다. 


밀뱅크는 이러한 신학을 구출하기 위해서 싸움터를 전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 이론'이다. 사회이론이란 특정한 기호학이나 도상적 코드체계와 결부된 특별한 사회적 행동과 관행으로부터 발생하면서 역사적으로 우연으로 만들어진다. 가장 쉬운 예는 정치학이나 사회학 같은 사회과학의 범주이다. 밀뱅크는 이것을 신학이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고 믿고 사회 이론 안에서 추방된 교회와 하나님의 존재론을 사회이론 안에서 다시 설명하려는, 정초지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밀뱅크는 결국 싸워야할 대상으로 '니체'를 선택한다. 니체가 설명하고 있는 관점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 먼저는 기독교에 정초한 상황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킨 상황에서 논쟁을 시작한다. 





2. 메타내러티브의 시작


밀뱅크가 하는 커다란 작업은 '메타내러티브'라고 하는 거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사회이론의 영역에서 쌓여진 오래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들춰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회이론이 근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존재론이 과연 맞는 것인지를 묻는다. 그것은 어쩌면 사회 이론에 따라서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것들이 하나의 모델이 되고, 구조가 되어서 그 위에서 기독교는 '자리매김' 당하면서 조금씩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세상을 정복하자는 논리가 아니라, 사회 이론이 가지고 있는 자의성과 주의성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정말 맞는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밀뱅크는 다음과 같은 비전을 제시한다. 



밀뱅크의 비전

신자유주의 시대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가톨릭적 그리스도교의 현실관이다. 

고대의 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중세와 현재의 덕성을 연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니체의 관점주의가 결국 회의적으로 몰락할 것이고, 사회 이론의 토대를 다시 건설해야 한다. 

사회이론이 가지고 있는 자의적인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무화'의 작업을 통해서 기독교가 잘못 자리를 잡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니체의 허무주의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알레스데이 매킨타이어의 덕의 윤리를 강조한다. 




3. 밀뱅크가 거리를 둔 이념들


영국성공회의 기반을 가지고 있는 급진정통주의자로서 밀뱅크는 가톨릭적 존재론을 주장한다. 원래 가톨릭은 기독교 신비와 제의, 현실과 실제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지만 근대를 지나면서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했고 신학은 이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밀뱅크는 그리스도교를 재상상함에 있어서 자유주의, 실증주의, 변증법, 허무주의에 대해서 대립각을 세운다. 탈-기독교 혹은 포스트 기독교에 도전을 주는 이러한 세계관들에 대해서 제대로 응대하지 못한 결과가 결국 그리스도교의 타락과 몰락이다. 정통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원래 기독교가 바라보던 관점과 인식을 부활시키고 더 나아가 그들의 넘지 못했던 초월의 이념까지 가보는 것이 필요하다. 


4가지 이론들

자유주의 : 자유주의가 말하는 평화가 그저 계약에 기초한 것이라면 진정한 자유와 다르다. 진정한 자유는 상호합의와 선물교환에 의한 평화를 기반으로 한다. 스토아 주의는 원자유주의라고 볼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 그리스도교는 오히려 탈자유주의적이면서도 초월적 상호관련성과 무대가성을 중시한다. 

실증주의 : 실증주의는 후기 그리스도교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선, 존재, 힘, 실증성과 같은 요소들이 중세의 브렌타노를 거치면서 현상학이 되었고, 이것은 근대 실증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보편적보다 특수성을 강조하며 사회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인과관계를 필요로 한다는 관점이다. 근대 실증주의는 이후에 어귀스트 콩트의 의해서 사회학으로 발전하였는데 이른바 '사회과학'의 탄생이다. 사회과학의 핵심은 사회학으로써 실증주의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변증법 : 변증법은 그 자체로 모든 역사를 설명할 수 없고, 역사의 단계로 변증법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나 진보의 방법으로는 변증법이 가능하다. 변증법의 문제는 결국 초월을 사라지게 만들고 인간의 이성이 천국의 왕국을 차지하게 하는 것이다. 

허무주의 : 근원으로 가보면 아무것도 없다라는 허무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근원으로 갈 수록 인간의 진면목을 볼 수 있고, 실제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허무주의는 결국 순수헝이 공허와 존재론적 폭력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무의미 내지 불합리의 존재론적 지배에 대해서 내리는 결론이다.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4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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