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보는 방법
나르시스는 자신의 얼굴을 비취는 강물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 강물을 떠날 수 없어서 꽃이 되었다
왜 떠날 수 없었을까
그 강을 떠나면 곧 자신의 얼굴을
잊어 버리니깐 말이다
그것은 결국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 만이 진짜라고 믿고 그것을 간직하기 위해서
사진을찍고
비디오를 찍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좀 더 크게 보면 우리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생성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우상은 우리의 반영이다
우리 욕망의 투영이다
안전하고 싶은 욕망과 이기고 싶은 욕망
가지고 싶은 욕망이 우상을 만들어 낸다
다산과 풍요
전쟁과 승리
소유와 재물
욕망의 투영은
보이는 우상으로 드러난다
장보드리야르는 바로
이것을 시물라시옹이라고 한다
시물레이션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실재는 없는 것이며
가상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상이 또 가상을 만들어내는 세상
매트릭스 같은 세상이 지금이다
그 세상에서은 곧 진정한
나 자신도 잃어 버리게 만드는 세상이다
우상들의 천국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은 없다
시뮬레이션을 깨는 방법은,
구조화된 시물라르크를 깨는 방법은
결국 몸의 현상학이다
실체를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몸을 통해서 믿는 것이
표현되고 행동으로 이어져
나의 의식과 마음에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방법은
내가 무시할 수 있는 가장 소외 시키기 쉬운 타자가
누구인지를 기억해 내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웃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그 이웃이 나에게 해를 끼칠 때는 어떠한가
오히려
거울에 비추인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이웃에게 비추인 자신의 기억을
찾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지금도 내 앞에, 옆에
내가 언제나 무시 할 수 있는 그들
언제나 혼낼 수 있거나 거부할 수 있거나
업신 여길 수 있는 그들이
바로 나를 알려 주는 진정한 정체성의 거울이다
진정한 거울 앞에서
나는 진정으로 변해가는 나를 본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
우리 앞에 우상과 함께
한편에서는 고와와 과부가 아른거린다
나를 알려 주는 그들의 존재 앞에
나는 몸으로 반응한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