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하루 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빛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
웅성웅성 가장 근심스런 색깔로 西行(서행)하며
이미 어둠이 깔리는 燒却場(소각장)으로 몰려들어
몇 점 폐휴지로 타들어가는 午後 6시의 참혹한 刑量(형량)
단 한 번 후회도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時間(시간)
바람은 긴 채찍을 휘둘러
살아서 빛나는 온갖 象徵(상징)을 몰아내고 있다.
都市(도시)는 곧 活字(활자)들이 일제히 빠져 달아나
速度(속도) 없이 페이지를 펄럭이는 텅 빈 한 권 冊(책)이 되리라.
勝負(승부)를 알 수 없는 하루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패배했을까.
오늘도 물어보는 사소한 물음은
그러나 우리의 일생을 텅텅 흔드는 것.
午後(오후) 6時(시)의 소각장 위로 말없이
검은 연기가 우산처럼 펼쳐지고 이젠 우리들의 차례였다.
두렵지 않은가.
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
문득 거리를 빠르게 스쳐가는 日常(일상)의 恐怖(공포)
보여다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살아 있는 그대여
오후 6시
우리들 이마에도 아, 붉은 노을이 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지?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우리는 이제 각자 어디로 가지?
노을_기형도
태양이 눈물을 흘리며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우리들의 가슴은
어느덧 차갑게 식어 버린다
붉은 노을이 우리의 속사람처럼 까맣게 타들어간다
낮동안 빚을 지고 살던 사람들이
밤이 되니 모두 하루의 걱정은 한숨으로 묻어두고
다시 두더지 갚은 집으로 걸어들어간다
내일 다시 갚아야할 돈이 있는 사람들은
내일을 희망으로 두는 일은 고사하고
오늘 하루를 제대로 쉬는 것조차 한숨으로 대신한다
도시를 가득 매웠던 돈이 되는 단어들이
한장의 휴지장처럼 폐지에 담겨지고
길거리를 가득 매웠던 매연들도
노을의 한 조작이 되어서 하늘로 돌아간다
아직 제대로 살이 돋아나지 않은
우리들은 어떻게하지
이글거리는 태양에 생살깣을 다 지지고나서
밤에 잠들지 못하는 피부를 가진 우리는 어떻게 하지
두려운 이들의 그림자가 서로의 얼굴을 감추고
우리 이마에 반짜이던 별빛도 검은 매연에 가려져 버린 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지?
아직 살아나지도 않은 심장으로 내일을 뛰어야 하는데.
내일아침 3알의 약을 먹으면 좋아진다던
의사선생님께 우리는 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나요?
라고 물어보는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내일도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민네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