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그랬다면
잠실까지 연희동에서는
꽤 먼 거리였다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변변한
차 한대 없는 우리집에서
먼 거리를 간다는 것은
계속 서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20분정도 서 있으면 어린나이에
지옥이 임하는 것 같았다
땅이 가지고 있는 중력은 피를
다 빨아먹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린시절 먼 길을 갔던
기억들은 잘 잊혀지지 않고 힘든 일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람부는 가을의 토요일 아침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책 몇권을 챙겨
수업을 듣기 위해서 급행전철을 탄다
악명 높은 9호선 급행은 언제나 사람으로 붐빈다
평일에는 거의 625피난가듯이
휴일에는 2호선 출퇴근 길처럼.
그래서인지 9호선에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사람사이 인정이 없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상황이 인간을 저속하게 만드는가
환경이 사람의 인성을 망쳐놓는가
초등학생 또래에 아이들 2명과
그 친구들의 어머니가 앉아 있는 내 앞에 섰다
나는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을 읽으며
아직도 30분이나 남은 시간을 멀하면서 보낼까
여유로운 토요일 아침을
누릴려고 하고 있었다
작은 아이가 발을 동동구르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다그채면서 참으라도 한다
불현듯, 어린시절 지구가 나를 끌어당기던
시간이 생각나서 다음역에서 내리는 척하면서
일어났다
급히 다른 칸으로 옮겨가서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했다
산토리니로 기억될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은
"보수주의는 냉정하고 침착하다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일, 자신의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는 모든 것을 동원한다" 라고 했다
(나는 이런 보수적 정의에 전혀 동감하지 않는다
개인주의가 만들어놓은 이기주의에 집합체라고 생각한다)
점점 사람들이 보수화되어간다
어려움이나 힘든 것들을 피하려고 한다
문제는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우리의 인성이 바닥나고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자리하나 비켜주는 것도
머뭇거리는 인성에서 나는 스스로 보수화 경향을
감지한다
머지않아 보수화 경향은 구조화되고
인생의 집을 견고하게 짓겠지
그러기 전에 나를 돌아본다
나의 경험들을 돌아본다
인생은 작은 것으로 결정된다
작은 행동이 큰 방향을 결정한다
경험의 중심에서
우리가 선택한 것들이 우리를 이룬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의 한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그리고 다가오는 자극에 대해서
인생은 다른 반응을 할 수 있다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가
경험을 돌이켜보고
나를 다시 찾아가는 시간들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이
낯설게 나를 보고
이 세상을 의심한다
내가 만약 그랬다면
나는 어땠을까를 고민하던 그 때로
나는 유아기에서부터 청년까지
경험을 돌이켜서 공감의 시간대로 간다
칭얼거리던 초등학생 아이의
다리가 조금은 편안해 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