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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Sep 09. 2023

다시 리셋버튼을 눌러야 한다

잃어버린 메아리를 찾아서 나를 돌아보기


때론 길을 걷다가 멈춰야할 때가 있다. 


급하게 시간에 쫓겨서 발걸음을 재촉하기보다는 한발짝 한발짝 중력을 꽉 눌러서 걸어야 하는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시간이다. 시간이 더 흘러가기 전에 재촉하는 나를 멈춰세우고, 내가 왜 그렇게 나의 목소리를 잃어 버리고 무거워진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지금은 멈춰서 생각해야하는 때이다. 그러니 최대한 자신에게 솔직하게 자기인식을 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이 없다면 나는 '나다움'은 커녕 다른 사람들의 욕망으로 살다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빈 인생을 살것만 같다. 


사람들은 순간순간 자기를 속이며 산다. 처음에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거나 위선을 떨거나 허세를 부리는 순간 스스로가 알아채고 그것을 제지하려는 마음과 만난다. 그러다가 하나둘씩 마음 속의 동굴을 막아 머리면 이제 양심의 메아리는 울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참을 자신이 외쳤던 거짓말로 살아가다가, 순간 자의든 타이든 자신이 막아버린 동굴 앞에 도착한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느순간 자신이 하던 대로가 아니고, 자신이 걷던 길이 아니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본다. 무엇이 그를 바꾸어 놓았을까? 내면의 고통일까 아니면 주변의 이야기들이었을까? 방황하며 두리번 거리는 그는 어느순간이 지나면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길로 쭉 걸어가 버린다. 


나는 항상 머뭇거렸던 것 같다. 이 길이 정말 맞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라는 머뭇거림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그다지 동기부여를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하고, 그 말을 하고, 그 사람을 만나야하고, 지금은 견뎌야하고, 지금은 움직여야 한다는 것들을 '스스로 동기부여'하기도 몇십년이 흘렀다. 그래서 머뭇거림은 나의 정체성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우유부단하다거나 마음이 약해서라고 말했다. 지금도 나는 머뭇거리고 있다. 돌아온 길을 뒤돌아 보면서 앞으로 갈 길을 두리번 거리고 있다. 머뭇거림에서 그런데 연민도 생기고 공감도 생기고 눈물도 생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려는 마음도 생기고, 어떤 이를 용서라려는 마음도 먹게 된다. 


이상하게 내가 말하는 것이 공동에 빙빙돌다가 땅으로 푹 꺼져버리는 때가 있다. 말하는 것이 멀라가지 못하고 생명력 없는 꽃처럼 시들어버리는 때가 있다. 그 때는 여지없이 내가 알지못하는 사이에 나를 스스로 속이고 점점 나의 영혼과 멀어지는 단어들을 꺼냈기 때문이었다. 어느순간 이상해서 멈칫거리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이때는 아예 멈춰버리고 다시 멀어진 나의 마음을 붙잡아 보려는 노력을 한다. 지금이 딱 그 때다. 토요일 오후 4시를 넘어서는 시간 말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엇이 생명력을 앗아갔을까?생각해보고 고민해보니 몇가지가 떠오른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기운이 빠진다


내 마음과 내 생각이 하나의 언어로 통일되던 때는 '그 사람'이라는 대명사를 굳이 쓰지 않아도 되었다. 아무리 잘못한 사람들에게도 어떤 평가의 말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사 어떤 표현을 했더라도 거기에 마음까지 얻어 놓지는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 사람만 생각하면, 그 사람들만 생각하면 마음의 무게가 생각의 무게보다 훨씬 무거워서 그냥 마음이 상해버리고 생각도 멈춰버린다. 이런 상태로 잠이 들고, 이런 상태로 잠이 깨고 나면 나는 전혀 새로워진 느낌을 받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월요병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미 그 사람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정해놓았지만 '그 사람'들과 사회생활은 해야하기에 예의는 차리게 된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아서 뚝뚝 끊겨버리는 대화나 제스처, 표정을 스스로 느낀다. 어느순간 이것들이 만성화되고 나니 그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현현과 재현 사이에서 고민인 것이다. 대학시절부터 들었던 현현present은 그 자체로 선물이란 뜻과 함께 오직 이 순간 한번에만 국한되는 '찰나'와 똑같은 말이다. 반면에서 재현represent은 현현을 다시 보여준다는 것이니깐 이전에 있던 것들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재현에서는 기념이나 기억은 될지 모르지만 현현에서의 생생한 감동과 매번 달라지는 다양성을 느낄 수가 없다. 직업도 마찬가지로 재현을 하는 직업은 아주 쉽게 매너리즘에 빠지지만 현현이 가득한 직업은 언제나 두렵고 설레고 기대되고 불안하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 사람'에게 나는 매번 이미 정해 놓은 재현을 하고 있던 것이다. 무거운 마음과 복잡하게 판단과 비난을 섞어 놓은 생각이 그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이미 나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삶의 태도는 재현되는 예의바른 방식이지만 마음은 이미 생동감이 없고, 기대감이 없어서 나라도 그런 나와 대화하고 싶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상대방에게서 느끼지만 그 사람은 여전히 그렇게 행동하기에 나는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해서 '그 사람이 먼저 그런거고, 그 사람은 바뀔 생각이 없으니깐 지금 내가 이렇게 차갑게 하거나 다른 사람과 다르게 대해도 괜찮아'라는 마음 속의 언어를 재생시킨다. 그리고 나면 당연히 그 사람을 대하는 건 언제나 기계적이고 냉정해지고 더 이상 질문이나 코멘트를 달지 못하도록 과잉된 정보나 화가난 듯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나면 우세해진 분위기에 짧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버린다.


이런 반응들이 쌓이면 곧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 되고, 나의 기본적인 태도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너없고 매력없는 사람이 된다라는 측면보다는, 이렇게 생기없고 무의미한 대화 속에서 어떤 생명력도 드러나지 못한다는 것이 슬프다. 오늘은 오랜만에 토요일 오후 모든 일정을 접고 방에 들어 앉아서 이런 생각들을 해 본다.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나름 정당한 생각들과 마주 앉아서 스스로 물어보는 중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이 정말 나 다운 방법일까? 앞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하지?'이런 생각들 말이다. 괴로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어느순간 사람들이 머뭇거리면서 멈춰선 때에는 자신의 두려움이 공포로 변하던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이 내일로 걸어가는 열정이 되던지 둘 중에 하나가 된다. 


다시 리셋버튼을 눌러야 한다


다시 그러는 수 밖에 없다. 사람들에 대한 평가와 비난을 버리고 다시 처음 만난 것처럼, 이전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바보처럼' 잊어버리고 순수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달라진 점은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의도의 변질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진정성을 잃어버린 이들이 진실해질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능력이 없어서 기회주의자가 되어 버린 이들에게 다시 힘을 기를 수 있게 동기부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들을 시작해야 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게 주어진 고민과 질문들을 모른척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고 지나치지만 어떤 사람은 그 문제를 들춰내서 해결하고 그들이 가진 두려움을 사랑과 희망으로 바꾸어주기도 한다. 그러니 나도 희망의 살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려면 먼저 내가 희망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럴려면 내 안에 재현이 아닌 현현의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야 한다. 두려움과 무료함이 아니라 사랑과 생상함으로 하루를 살아야 한다. 그럴려면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일어서야 한다. 마음 속에서 고요한 힘이 생긴다. 다시 한번 도전해보자라고 하는 동굴의 메아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조금 더 집중해보자. 조금더 노력해보자. 누군가에게 희망이 발견되는 그 순간이 나의 목적이기에 오늘도 희망을 찾아서 다시 어깨를 들썩이면서 숨을 내쉬어 보자. 내일 다시 잃어버린 나의 목소리를 찾아내길, 스스로 속이고 있던 마음을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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