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한동대학교를 다니면서 경험하게 된 것들
한동대학교를 졸업한지 벌써 13년이 지났지만 한동대에서 있었던 일들은 평생 두고 간직할 추억이 되었다. 한동대학교 학부모 한분이 한동에서 받은 은혜를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책을 출간하자고 하셨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한게 별로 없구나.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느끼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이 더 뚜렷이 보이는 것도 같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한동으로 부르심을 받은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그 당시 제가 다니는 교회에 권사님이 '한동대 사람들'이라는 약간은 낡고 허름한 디자인의 책을 건네주셨는데, 보자 마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처음들으본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빛처럼 밝게 빛나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모태신앙은 아니고 중학교 1학년때 처음 교회를 나오게 되었는데, 친구가 교회에 이쁜 누나들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 사춘기로 넘어가던 시절 중등부실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를 누구보다 환하게 반겨주시던 선생님들의 얼굴과 목사님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3년을 즐겁게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제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고, 속사람이 조금씩 바뀌는 것도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수련회만 가면 곤혹스러워서 견딜수가 없었어요. 기존에 교회를 다니던 친구들처럼 아무리 은혜를 받고 우는척을 해도 마음의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급기야는 수련회가 끝나고 교회를 떠날 결심하게 하게 되었어요. 시간낭비 같고 마음은 허전하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더라구요. 그때 문득 '이렇게 떠날 거면 정말 중요한게 무엇인지는 알고 떠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주일학교 선생님과 친한 친구들이(지금은 이집트 선교사가 된 친구도 있을 정도로 신앙이 좋았던) 왜 우는지, 그렇게 울 정도로 은혜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관찰해 보니 결국 성격책이더라구요. 그래서 그때부터 매일 저녁 10시부터 11시까지 1시간동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성경책을 읽었어요. 예전에 검은색 표지에 빨간색으로 책끝이 칠해진 성경책 기억나시나요? 그 성경책을 각주 하나도 없이 요한복음부터 시작해서 1년동안 정독을 했어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이스라엘 역사가 너무 복잡하다고 느껴졌는데, 1년이 지나니깐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어요. 1년동안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고,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들의 못된 마음, 예수님의 은혜와 제자들의 배신과 같은 주제들에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어느덧 성령체험까지 했던 저는 저도 모르게 공부를 잘하게 되어있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책을 정독하면서 고민하듯이 읽은 건 성경이 처음인데, 그 때 독서력과 문해력이 올라간 것 같아요. 그래서 중학교 1학년때만해도 반에서 꼴찌를 면치 못했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제법 공부를 잘하게 되었어요. 물론 이 때 전도도 많이 하게 되었죠. 친구 어머니들께서 저랑 같이 다니면 성적오른다고 같이 다니라고 했고, 친구들은 제가 공부를 못하다가 잘하게 된 이유를 보니 교회를 다녀서라고 생각했었나봐요. 그런데 고3을 지나면서 수능체질이 아니었던 저는 매번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좌절을 경험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한번 더 생각해야하는 '메타인지'가 필요했는데 아직 그게 부족했던 거죠. 그래서 모의고사가 끝나면 친구들은 놀러가는데 저는 독서실에 와서 1시간 기도하고 1시간 엎드려자고나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었더랬어요.
그렇게 1년이 어느덧 후다닥 지나가고 수능시험에서 기존 성적보다 몇십점이 올랐어요. 더군다나 문과체질인 제가 그당시 물리수업이 너무 재밌어서 열심히 했는데 과학탐구를 만점받는 일도 있었던 거죠. 부모님을 포함해서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놀라고 계셨지만 성적은 사실 한동대 정시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점수였어요. 그런데 그 때 교회 권사님께서 자신의 아들들을 3명이나 한동대에 보내셨다면서 그 때 처음 들어본 한동대학교를 권유해 주셨어요. '한동대 사람들'이라는 책을 받고 읽으면서 교수님들이 사명의식과 전문성, 탁월한 식견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너무 맘에 들었어요. 그래서 불신자이신 부모님께 '한동대 사람들'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렸고 한동대 입학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2001년도에 있다가 사라진 '한 영역 만점자 전형'이 있는 거에요. 그래서 결국 저는 과학탐구 영역 만점자 전형으로 한동대에 특차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제 인생에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이렇게 좋을일이 있을 수 있냐고 말이죠.
이렇게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한동대에 오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마음 속에 'Why not change the world?'를 품고 살아가게 되었답니다.
01학번으로 한동대에 입학하고 나서 한동안은 외로운 시절을 보냈어요. 수강신청을 하고 영어수업에 들어갔는데 대부분 친구들이 외고 혹은 과학고 출신이여서 영어를 너무 잘하는거에요. 그리고 이들을 뛰어넘는 존재들이 있었는데 바로 선교사님들 자녀들이었어요. 외국에서 오랜 경험을 하고 온 친구들이다 보니 거의 외국인들과 수업을 듣는 것 같았어요. 이러한 충격도 잠시 한동대 기숙사에서는 선배들과 한방을 쓰면서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졌어요. 한동대 로고송에도 나오는 창조관 벽등 밑에서 97학번 선배님과 닭다리를 뜯으며 이제 막 도서관에서 방으로 오신 95학번 선배님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게 인성교육이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데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한동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시간들이 이전에 제가 살던 방식과는 다른 시간대에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어느날은 토요일 아침 옆 방에 놀러 갔는데, 경영경제 학부에서 수석을 하던 96학번 선배와 언론정보학부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공부하시는 97학번 선배님이 논쟁이 붙었었어요. 내용은 '하나님 나라가 벌써 왔느냐 아니면 아직 안왔는냐?'였어요. 사실 이 주제는 '전천년설과 후천년설'과 같은 신학적 논쟁이면서도 예수님이 '이미와 아직'이라는 시간 속에 계시다는 심오난 내용이었는데요. 어깨 넘어로 선배들의 논쟁을 들으면서 계속 고민하게 되더라구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면 지금 일어나는 수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반대로 아직 오지 않았다면 오시기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야하고 그렇다면 구원이란 무엇일까? 이런 고민들이요. 몇날 몇일을 고민하다가 교수님들을 만나면 이런 주제를 물어보고 한참을 이야기를 듣고 토론했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 수요일 팀 모임은 교수님과 학생들이 하나가 되는 자리이면서도 채플을 드리고 함께 어울려서 놀수 있는 자리이기도 해서 기대감이 항상 있었어요. 예배드리는 기쁨도, 찬양의 기쁨도 있지만 교수님과 제자들이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간직한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2학년때는 찬양가수이자 한동대 교수이신 조준모 교수님의 새 앨범이 나와서 팀모임을 할 때마다 항상 노래를 불렀던 기억도 있어요. 그리고 제가 3학년때는 전국립외교원장이신 김준형 교수님의 '애처가'의 삶을 듣는 것이 그렇게 재미가 있더라구요. 세계정세와 국제정치를 이야기하시면서도 가장 소중한 가족들을 위해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게 진정한 멋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구요.
그렇게 한동에서 저는 조금씩 만들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밥먹듯이 듣고 노래하고 토론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선배들의 모습 그리고 현장에서 문제를 찾고 그 해답을 들고 오신 교수님들, 그리고 매일 첫시간과 끝시간으로 부르셔서 은헤를 주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까지.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어떻게 '세상을 바꿀 생각'을 안할 수가 있을까요? 자연적으로 제 마음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소명이 생겼는데, 그것은 한동에서 경험한 공동체의 이상향을 큰 나침반이 되었어요.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를 통해서 '정체성'이 만들어지는데 한동은 저에게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어요. 보이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한동대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하필 왜 포항이냐?이런 것 말이죠. 제가 선배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김영길 총장님과 관련된 이야기에요. 한동대가 설립되던 시기 전국적으로 '기독교대학'에 대한 염원이 가득했고, 하나님의 대학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해요. 그러던 중에 김영길 총장님이 초창기 한동대의 멤버셨던 교수님들과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보았다고 해요. 원래 한동대가 있었던 땅은 '마주앙'이라는 브랜드를 가진 포도주 밭이었는데 그곳에 예수님이 내려오셔서 "이 곳에서 날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주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한동대는 포항의 칠포 바닷가 근처의 바람이 아주 많이 부는 언덕에서 갈대상자에 실려 내려온 모세와 같은 리더들을 잉태하는 곳이라는 비전을 보셨다고 해요.
생각해 보면 모세가 갈대상자에 담겨져 왔을 때는 아무런 힘이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하잖아요? 정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 거죠. 마치 신입생으로 들어온 한동의 새내기들과 같은 느낌이죠. 선택받았다기 보다는 약한자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온실속에 화초인 한동인들은 온실의 보호가 없으면 제대로 살 수 조차 없는 사람들이지만, 조금씩 한동에서 성장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킬 책임을 감당하는 인재가 되어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동에서 '광야'라는 단어를 많이 쓴 것 같아요.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만이 힘이 되며, 그 누구의 손길도 기대할 수 없는 곳. 그 광야에서 우리는 만들어 가고 또 새로운 비전을 보게 되는 모세와 같이 커가는 것 같아요.
지금은 한동대가 취업율이나 교육부 지정 혁신대학과 같은 타이틀이 붙지만 한동대를 사람들이 모르던 시절 한동을 표현하는 광고는 2가지가 있었어요. 하나의 광고는 지도가 저기저기 꾸겨져 있고 바로 옆에 다리마가 있는 그림이었어요. 그리고 "세상이 너무 꾸겨져 있습니다. 세상을 펼 수 있는 사람들을 기다립니다"라는 문구가 있었어요.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이런 이미지였던 것 같고, 그것 때문에 선배들이 많이 한동으로 왔다고 들었어요. 다른 이미지는 옷이 헤져 있고 그 옆에 바늘과 실이 있는 그림이었어요. 그 광고에서 문구는 "세상이 너무 찢어져 있습니다. 세상을 꼬맬 인재들을 기다립니다"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한동의 첫 걸음은 세상의 문제 가운데서 한동인들이 해야할 일을 명확하게 보여준 것 같아요. 우리는 찢어지고 꾸겨진 것으로 부르심을 받고 그 곳에서 결국 세상을 반듯하게 펴나가고, 찢어진 관계와 조직을 꼬매는 일들을 하는 거죠.
생각해 보면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기에 '고지론'과 '미답지론'의 싸움이 한창이었던 것 같아요. 고지론은 영향력을 최대한 많이 끼치는 자리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미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러한 생각을 철학으로 가진 선배들과 친구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하나님 나라를 더 멀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 것 같아요. 그에 비해서 '미답지론'은 하나님이 주신 길을 우리가 다 알 수 없으니 한 발짝 한 발짝 겸손히 걷자였어요. 그래서 미답지론은 일종의 '선택적 가난'과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서로 토론하고 돌보면서 만들어져 가는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되요. 마치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과 같이요.
어떻게 보면 소년이 자라가면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 시기와 같이 한동인들은 '우리는 누구일까?' 혹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하고 기도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있는 것 같은데 그 당시 마케팅 학회에서는 학기마다 포럼을 했는데, 생각나는 주제는 '우리는 세상과 무엇이 다른가?'였어요. 탁월함은 당연히 우리가 가져야할 요소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유는 결국 '진실함'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진정성'과도 같은 단어인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무감독 양심시험은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에게 실력으로 만들어진 '인재'에 대한 진정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고, 팀모임은 공동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을 진정성으로 삼기 위한 훈련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당시 학교 인트라넷에 포항 육거리에서 무단횡단을 했는데 이 부분을 회개한다거나, 도서관 게시판에 붙어 있는 천원에서 만원짜리의 '분실문'을 보면서 서로서로 뿌듯해 했던 것 같아요. 한동은 무엇일까? 한동인은 누구일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 결국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라고 명령하신 삶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해요.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서 일을 하다보니 학교에서 그렇게 귀가 따갑게 들었던 "Why not change the world?"가 오히려 더 구체적으로 "How to change the world?"라고 들리는 것 같았어요. 왜 세상을 바꿔야 하는지를 알았는데, 어떻게 바꿔야하는지에 대한 부분은 한동에서 배운 기본적인 원리를 가지고 우리가 실행하면서 발견해야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쩌면 한동을 졸업하는 모두는 '어떻게' 바꾸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조금씩이라도 세상을 바꿔가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실제적인 대안을 가지고 변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원하셨던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자주 해요. '하나님의 방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게 원래 한동인들의 정체성이 아닐까요?
교회를 처음 나갔을 때의 잊을 수 없는 커다란 환대가 한동에서도 이어졌어요. 이제 막 20살을 넘긴 저에게 이미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한동에 오신 교수님들의 배려는 언제나 어느순간에도 만날 수 있는 은혜의 빗줄기 같았어요. 보통 사람이 13살이 넘으면 세계관이 고정되어서 잘 안 바뀐다고 하는데, 유일하게 바꾸는 시점이 롤모델이 바뀌는 것이랑 새로운 경험을 할 때라고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한동에서는 '새로운 롤모델'인 교수님들과 '새로운 경험'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저에게는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매년 팀이 바뀔 때마다 팀 모임에서 뵙는 교수님들의 보살핌과 사랑이 지금까지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역시 한동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은혜의 포인트를 교수님들의 사랑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 둥록금을 위한 기도 부탁에 등록금을 내 주시던 김성옥 한동 교수님
한동에서 군대를 가기 전에 하나님이 참 많은 교육과 성경공부를 시키셨더것 같아요. 제가 입학했던 2001학년도에는 한동에서는 '비전스쿨'이나 '교수님들과 함께하는 성경공부', '성경적 토지모임', '창조과학세미나'와 같은 기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입생이라면 교수님들과 함께하는 성경공부 1개 이상은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요. 지금 한동에서 명예교수이신 김성옥 교수님과 성경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한참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성경을 묵상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기도제목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가난한 가정형편을 이야기하면서 '등록금'마련이 기도제목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다 같이 기도제목을 나누고 헤어졌는데요. 김성옥 교수님께서 따로 저를 불러서 등록금을 직접 내주시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세상에 살다보니 이런 환대를 넘어서 은혜를 받고 살 수 있나 싶었어요. 눈물이 흐르고 무엇인가 가슴 속에서감동이 솟아 났습니다. 남이라면 남이고 관계가 없다면 관계가 없을 수도 있을 사이인데 이렇게 덜컥 400만원이나 되는 등록금을 내신다고 하니 너무 감사했어요. 교수님께 연신 감사를 드리고 아쉽게도 그 다음에는 찾아뵙지도 못했어요. 미안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마음에 '빚진자'가 되어 버린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생각한게 이렇게 받은 은혜를 교수님께 갚을 수 없으니 앞으로 제가 만나는 사람에게 갚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사랑은 오직 전이에 의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고요. 저는 나중에서야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이 보이는 인간들을 통해서 전해진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지금도 멘토링을 하면서 중고등학교 친구들을 아무런 댓가 없이 만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2) 세상의 고통과 이웃에 대한 감성을 '한동정신'으로 전해주신 이국운 교수님
한동에서 잊을 수 없는 만남이 어려가지 있었는데 지금 제가 바라보는 비전을 꿈꿀 수 있게 인도해주신 이국운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2학년때 처음으로 '법과 정치'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4학년 선배들과 매우 철학적인 토론을 하게 되었는데요. 사실 그 때는 무슨 말이지도 모르고 유명한 철학자들을 이야기하고 법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 수업은 법학부 이국운 교수님의 최고난이도의 수업이었는데 무턱대고 재밌을 것 같아서 신청했다가 교수님의 강의와 탁월한 시선에 반해 버렸어요. 그래서 군대를 다녀와서 부터는 쭉 이국운 교수님의 수업을 빠짐없이 듣고, 학문과 신앙연구소 조교를 하면서 어깨넘어로 기독교 세계관과 학문과 신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배웠어요. 특히 헌법 수업에서는 '법과 이웃'이라는 주제로 선한사마라인의 비유가 어떻게 우리가 법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지를 온 몸으로 경험하는 수업이었어요.
제가 학문과 신앙 연구소 조교를 하면서 매주 교수님들의 독서모임을 준비하는 업무가 있었는데요. 하루는 제가 그걸 까 먹은 거에요. 원래는 연구소에 먼저 가서 자리정리를 하고 간식을 준비해야하는데요, 심지어 들어가는 문 열쇠를 제가 가지고 있었거든요. 저녁 6시까지 준비를 하고 저녁 수업을 들으러 가야하는데 그날 마침 핸드폰 배터리가 없었서 전화는 꺼졌고 저는 준비해야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체, 친구들과 즐겁게 밥을 먹고 산책까지 하면서 시간을 보낸거죠. 저녁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에 와서 핸드폰을 충전하고 전화기를 켜보니 이런 세상에! 교수님께 전화와 문자가 와 있던 거에요. 순간 머리가 주뼛주뼛하면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이 '아 맞다! 독서모임 준비해야하는데!!'라면서 급하게 교수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이국운 교수님은 웃으시면서 "경인아 너 덕분에 오늘은 교수님들과 산책하면서 즐거운 이야기른 나누었단다. 다음주에 보자꾸나!"라고 하시는 거에요.
정말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엄청나게 심하게 혼나도 모자를 판에 교수님의 인자한 목소리와 하나도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자비가 이런 것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어요. 그 후로도 저는 생각하기도 싫은 실수들을 저질렀지만 그 때마다 교수님은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가르쳐 주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그 때의 사랑과 용서는 잊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한창 세상에 대한 반응과 태도를 만들어갈 시기에 저는 그렇게 인생의 스승님들을 통해서 만들어져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국운 교수님께는 그 후로 졸업할 때까지 정치철학과 법철학, 법사회학을 배우면서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하는지를 사사받게 되었어요. 만약 이런 만남이 없었다면 '세상을 바꾸자'라는 말이 허공에 떠돌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보는데요.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서 서울에서 이것저것 배우면서 조금은 교만한 상태로 교수님을 찾아뵌적이 이었어요. "교수님 제가 이제는 존 롤스도 알고, 마이클 왈쩌도 알고, 최근 유행하는 슬라보예 지젝도 알아요"라고 저도 이제 그런 수준이라고 자랑하듯 말씀을 드렸는데요. 흐뭇한 미소로 듣고 계시다가 마지막에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러 포항역에 갈 때 한 마디 말씀을 해주셨어요. "경인아 그런데 이웃을 정말 돕고 싶으면, 그렇게 공부하면 안된단다"라고요. 당시에는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교수님과 헤어졌지만, 지금까지 그 말씀이 귓가에 멤도는 것 같아요. '배워서 남주자'라는 말이 허공에서 멤돌다가 제 마음속에 깊이있게 박히는 순간이었어요. 실제로 서울로 돌아와서 제가 공부한 것들을 돌아보니 남들을 위한 게 아니라 제 만족을 위해서 하던 것들일었더라고요. 다시 마음을 붙잡고 정말로 배워서 남주려면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를 고민해보니 결국 제가 가진 지식을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었더라구요. 한동에서 만들어진 질문들이 하나씩 답을 찾아가는 시간들이 몇년이 지나고 혹은 몇 십년이 지나야 오는 것 같아요.
3) 인생의 멘토이자 신앙의 멘토이신 김대옥 교수님
한동에서는 인생의 멘토이신 교수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특히 신앙적인 멘토로는 항상 존경하고 또 힘들때마다 생각나는 김대옥 교수님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2007년 복학하고부터 한동대학교회를 다녔는데요, 한동대학교회에서는 '베다니, 베들레헴'과 같은 이름의 여러가지 순모임이 있었어요. 저는 '베다니'라는 순모임을 참여해서 순장을 했는데요 그 때 교목실 소속의 김대옥 교수님께서 베다니를 담당하셨었어요. 거의 3년동안 매주 교수님과 한동 후배들과 예배가 끝나고 말씀도 듣고 소풍도 가고, 파티도하면서 즐겁고 따뜻한 시간을 보낸 것이 지금도 너무 감사한 일이에용.
특히 베다니 순장들을 위해서 매주 목요일 저녁 진행된 성경공부 시간은 신앙의 기초를 다지면서도 그동안 궁금했던 부분들을 모두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신학의 기초와 신앙의 기본을 배우는 시간이었고 이러한 시간을 통해서 저의 신앙도 안정적이 되어 갔어요. 예를 들면, 방언이나 예언과 같은 은사에 대해서도 김대옥 교수님은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우리와 깊은 대화를 하고 싶으시다면 은사를 사용해서 우리도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실까?"와 같은 이야기로 간단하게 은사의 목적을 설명해주셨어요. 그리고 "율법의 기능은 첫 번째가 정죄가 아니라 바로 거룩이다. 거룩을 위해 존재하는 율법을 우리가 정죄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우리는 바리새인이 될 꺼야"라는 말씀들을 해주시고 순장들은 같이 토론을 했어요. 돌이켜보면 조직신학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아주 쉽고 즐거게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매주 주일 오후에 베다니 모임은 저에게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성장의 시간이었고 김대옥 교수님이 삶으로 보여주신 정직하고 소신있는 삶의 모습은 인생에 대한 '롤모델'이 되었어요. 불의와 맞서 싸우면서도 말씀 가운데서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삶과 언어 그리고 행동 속에서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배우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항상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은 말씀 안에서 마음을 정하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태도가 배어 있는 것 같아요. 하루를 시작할 때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을 가져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태도가 김대옥 교수님께 배운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질문: 신앙심이 두텁지 않거나 허울뿐인 믿음이 있거나 믿지 않는 친구들은 어떻게 학교에 적응하고 변화했는지 궁금해요
제가 한동에 다닐 때는 신앙이 있는 학생들이 70%정도 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깐 30%의 친구들은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학생들이었는데요.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기숙사에서 누구를 방돌이, 방순이로 만나는가가 중요했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한동에서는 '새내기 섬김이'제도를 만들어서 새내기들이 새내기 섬김이와 같이 신입생활을 지내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새내기섬김이를 3년정도 하면서 신입생들과 함께 지냈고요 그 중에서 믿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많지는 않지만 변화가 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요 그 이유는 선배들과 친구들의 삶과 태도를 보고 '하나님이 계신 것 같아'라는 말을 할 때였어요. 우리는 보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그 때 더 깊게 깨달은 것 같아요.
학기가 마무리되어 가면서 채플을 드리고 교수님들을 만나고, 선배들과 또한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은 학생들 중에서 신앙이 없는 학생들은 교회에 다니고 신앙을 갖게 되는 경우도 생겼어요. 그래서 매 학기가 거의 마무리 될 때쯤 포항 칠포 바닷가에서 침례를 받는 행사가 진행되었어요. 저도 여러번 참석했는데 정말 감동적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행사였어요. 목사님들께서 신앙을 가지게 된 친구들과 함께 물 속으로 들어가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라고 선포하는 순간 모두가 박수를 치고 기도하고 환호를 하면서 준비한 꽃다발을 전해주는 뭉클한 장면들을 보게 되지요. 정말 많은 친구들이 울었어요. 한동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삶의 방향이 바뀐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질문 : 서울의 유명한 기독교 대학들도 모두 미션스쿨이지만 기독교 정신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한동대가 만약 서울에 있었으면 학교의 정체성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한동대의 정체성을 잘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사실 한동에서는 그 당시 우리는 '수도원'에 갖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온실 속 화초'처럼 신앙을 가지면 안된다는 말들도 있었고요. 그래서 그 때 선후배들과 많은 논쟁을 했던 것 같아요. 한동 안에 있으면 존재론적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과연 하나님이 여기로 인도하신 건 어떤 의미일까? 부르시지 않은 건 아닐까? 불렀는데 내가 잘못살고 있는건가? 이런 고민들이요. 더군다나 포항에서도 북쪽으로 한참을 올라와야 하고 주변에 어느것 하나도 없는 떨어져 있는 섬과 같은 곳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이런 고민들을 하다보면 때로운 희망이 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한동을 떠나서 서울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한동대를 상징하는 '갈대상자'를 묵상해본 적이 있어요. 갈대상자가 주는 의미는 한동으로 떠내려온 한동인들이 조그마한 갈대상자에 담겨져서 보내진 건데요. 생각해보면 그 갈대상자에 담겨 있는 아기는 미래에 200만명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아기에 불과하거든요. 그러니깐 성장할 때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지요. 한동에 들어와서 '내가 이런 사람이야, 나 이런 점수를 가지고 있어, 나 원래 여기 있어야할 사람이 아닌데 수능에서 실수해서 여기 있어!'라고 생각한다면 한동의 정체성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신앙적으로도, 학업적으로도 너무 부족해서 갈대상자를 타고 살기 위해서 여기 왔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나니 누군가가 쉽게 폄하하는 '온실속 화초'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강해졌고, 그 온실이 없으면 금방 말라죽고 말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동에 들어온 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니 태도는 자연스럽게 결정되었어요. 최대한 도움을 많이 받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성장하며 미래의 언젠가 하나님이 쓰신다고 하실 때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는 것이었어요. 사실 한동 안에서도 신앙공동체가 워낙 많기도 하고 한동에 신앙을 가지고 입학한 한동인들은 나름 왕년에 고등부 회장이나 찬양팀 인도자는 안해 본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야기하면 고리타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동에 나름 오랜시간을 있으면서 그러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이 장소에, 이 시간에 나를 여기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공부하다가 보니 저의 정체성도 잘 정리가 되도라구요.
한동의 정체성은 '갈대상자'라고 생각해요. 미래의 지도자이지만 한동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겨우 성장할 수 있는 모세와 같은 아기. 그래서 이러한 깨달음이 있기까지 한동은 '광야'이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음성이 자주 들리는 사막 한 가운데라는 생각도 하는 것 같아요. 주변에 놀게 없어서 농구 아니면 공부, 아니면 기도 밖에 할 게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한동이 서울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도 생각해 봤는데요. 학생들도 학생들이지만 학교 운영 차원에서도 쉬웠을 것이고, 한동으로 입학하려는 학생들도 많았을 것이고, 멋있어 보이고 탁월해 보이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썼을 것 같아요. 학생들이나 교수님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정말 세상을 바꾸고, 배워서 남주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라면 일정한 절제와 단절이 필요한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자랑할게 하나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학교, 자랑할게 하나님 밖에 없지만 세상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부르심을 받아서 순종하는 겸손한 한동인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해가는 성장드라마가 한동에서 계속 써 내려져 가는 이상 미래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작은 자를, 가장 약한 자를 들어서 쓰시는 하나님이 갈대상자에 담겨져 온 약한자들 중에 약한자인 한동인들을 강한자로 성장시키는 과정이 기대가 되는 것 같아요.
한동에서 만난 친구들과 선배들 그리고 후배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좋아요. 또래집단의 힘이 매우 큰 것 같아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하루하루 만들어가는 삶의 조각들이 서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느낌을 갖게 된다는 건 정말 짜릿한 일인 것 같아요. 한동에서 만난 빛과 소금과 같은 선배와 후배들 그리고 동기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몇 명이 생각나는 것 같아요.
제가 1학년때는 95학번 선배님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보통 군대를 다녀와서 원숙한 느낌이 드는 준사회인급의 선배님들이었어요. 그 중에서도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면서 한동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선배가 생각나요. 이국운 교수님의 법과 정치수업에서 처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요. 그 선배가 보여주는 인상과 급진적인 말투와 다르게 보여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한동에 가면 사회봉사를 해야하는데요 그 당시에는 포항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섬김의 기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는 선배가 하고 있는 봉사활동을 듣고 어리둥절했어요. 독거노인들을 찾아가서 식사를 해드리는 사회봉사였는데요, 그 터프한 선배가 포항 죽도시장에서 고등어를 사거서 정성껏 손질해서 어르신께 대접한다는 거에요. 매번 그렇게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식사를 만들어드리고 어디 아프신 곳이 없는지 이것저것 살펴보는 사회봉사를 하고 있다는 거에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하나도 티를 안 내고 어르신들을 보살피고 있었던 95학번 선배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엇인가 내가 놓치는게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로 학교 구석구석에서 아무도 모르지만 묵묵히 섬기고 있는 선배들을 만나면서 교수님들에게 뿐 아니라 선배님들에게도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그런 선배가 되고 싶어서 군생활이 끝나고 복한한 후에는 신입생들과 함께하는 새내기 섬김이도 하고 순장도 하고 그 외에 다양한 기도회에서 후배들을 만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봉사를 할 때 포항에 있는 아동결연단체를 찾아가서 졸업할 때까지 3년동안 초등학생 친구와 같이 매주 놀고 밥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먼저 본을 보인 선배들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따라가 보고 싶었던 것도 같아요.
한동 인스퍼레이션 앨범을 만든 선배들의 마음
2000년대에 발매된 앨범 중에서 '한동 Inspiration'앨범이 있어요. 10곡정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한동 선배들이 작사작곡을 하고 보컬까지도 동아리들이 맡아서 작품을 만들었어요. 첫 인트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곡까지 한동인이라면 꼭 들어보고 기억해야할 음반이라고 생각해요. 첫 인트로에서 '상한 마음을 싸매여 주고, 묶인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억울한 자들에게 희년의 소식을 전하길 원하며'라는 부분이 있어요. 항상 힘들고 지칠때마다 이 소절을 듣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배들이 자신들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비전을 후배들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곡으로 남겨놓았다는 감동과 함께 이제 나도 그 길을 걸어가면서 '거룩한 주님의 교회와 사랑이 넘치는 가정과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나라의 모습'을 만들어 보고 싶다라는 결심을 한 것 같아요.
두 번째 곡은 '한 아이의 꿈'이라는 곡인데 어릴적에 꿈꾸던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어요. 어릴적 받은 비전을 이루어갈 때 좌절도 하고 포기도 하고 싶지만 같이 힘을 내자라는 가사에요. 가사에서 '그 아이가 자라 세상에 눈뜨고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음을 느꼈네. 좌절도 하고 꿈을 잃어버린 시간들도 있었지. 그 어디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볼 수가 없었지'라고 고백하다가 결단의 이야기로 '깨어라 청년아 오직 예수의 사랑과 정의로만 이 악한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라 너의 삶을 통하여'라는 부분으로 넘어가요. 이부분을 정말 수백번도 넘게 들은 것 같아요. 정말 깨어서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삶을 통해서 보여야 한다는 말이 선배들이 지금은 만날 수 없이 각자의 자리에 있지만 계속해서 '한동의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거든요.
저는 이것이 한동의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그냥 부르신게 아니고 이 세상의 부조리와 문제들에 반응하여 실제로 바꾸어갈 인재들을 만들어가신다는 것을 알고 '배워서 남주는 공부, 세상을 바꾸는 삶'을 사는 것이요. 잘 먹고 잘사는 것 좋지만 그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우리의 전공과 우리의 전문성을 통해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요. 그러한 한동의 정신을 기억한다면 세상 속에서 한동인들이 해야할 일은 너무 자명한 것 같아요. 무너진 곳을 세우고,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깨어진 곳을 보수하며, 두려운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좌절한 이들과 함께 새로운 비전을 갖는 것이요. 그러니 온실 속에 화초처럼 한동안에서 해야할 일은 준비하는 것, 성장하는 것, 거룩해지는 것, 그리고 섬김을 몸으로 익히는 것이 아닐까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IyvQjYckoPM
한동을 졸업할 때쯤 진로에 대한 고민이 크게 오기 시작했어요. 군대를 다녀와서 2년간 휴학하면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고, 한동에 복학하여 학생회장 선거에도 나가보고 일본에 견습선교사로도 다녀오고 한동 사랑의 동산도 7번이나 참여하고, 한동제자학교도 5번이 넘게 참여했으니 한동의 여러 면모를 누구보다 깊이있게 경험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졸업할 때가 되니깐 제가 했던 활동들이 회사 취직하는데는 별로 도움이 안되는 거에요. 그래서 일단은 취업스터디를 시작하고 영어성적을 준비하고 대기업 입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입사 지원서를 쓰면서 제가 다녀온 선교여행과 학교의 생활들을 좀 그럴듯하게 적으면 합격하는 건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마지막에 모든 것들을 다 쓰고 '입사동기'를 못쓰겠는거에요. 한동에서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명예제도'를 어기고 제게 주신 소명도 아닌 것 같지만 저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도피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 몇줄을 쓰지 못하고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고 하다가 결국 대기업 취업시기를 놓쳤어요. 그리고 국제호과 기도실로 향했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인생 망한 것 같다는 두려움에 식사도 거를 정도였어요. 그 두려움이 엄습하니까 막상 기도도 안되더라구요. 졸업시기가 한참 늦은 선배가 할 수 있는 것은 숨어다니는 것뿐이잕아요? 그래서 기도실에 숨어서 시간을 보냈어요. 암흑 같은 시간을요.
친한 후배가 래리크랩이 쓴 '네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야'라는 책을 선물해줬던 게 기억나서 2달 동안 내내 기도실에서 그 책을 읽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고민에 고민을 하다 보니 결국 저의 가장 소중한 것은 다름 아닌 '제 자신'이었고 제 자신이 만들어갈 미래였어요. 미래가 어떻게 될지가 두려워지니깐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셔서 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을 제 미래에 모두 쏟아 부은 거죠. 아주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한다면 앞으로 하나님이 아무리 좋은 것을 주셔도 결국 제가 원하는대로 갖다가 붙여서 이용할 거니깐 이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준비가 되지 않은 마음 상태였던 거죠. 이것을 깨닫기 까지 저의 시간은 멈춰져 있었고 마치 얍복강가에서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하듯이 '제 인생'을 걸고 사투를 벌였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때 문득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조각이 기도실에 걸려 있는데 그 조각에 써 있는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르시되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이었어요. 제자들에게 이르신 말씀이었는데요, 이 말씀은 무리와 제자를 나누는 중요한 말씀이었어요. 진정한 제자라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자기부인'의 문턱에서 한한기를 서성이던 저는 마침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어린 독수리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로 뛰어 내렸어요. '그럼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테니, 저는 그럼 원래 저에게 주셨던 마음 굳게 붙잡고 앞으로 나갑니다'라고 다짐하면서 자기를 부인하게 되었어요. 정말 이것이 복음이라고 느껴질 만큼 제가 부인한 것은 저의 미래였는데 제가 가진 모든 두려움도 근심도 모두 부인한 것이었어요. 자유를 얻게 되었지요.
오랜 기도실에서의 시간을 정리하고 제 방으로 내려와서 구직 사이트를 알아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시면, 제가 필요한 곳에 보내시면 어디든지 가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한국국제기아대책 기구에 청년인턴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자유로워진 저에게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고 마친내 1년이 지나서는 정식 사원이 되었어요. 그런데 기아대책에 들어와 보니 기아대책의 미션이 '하나님이 부르셨고, 우리는 그 부르심에 영적 육적 굶주림이 종식되는 때까지 응답하였다'였어요. 하나님이 너무 신실하게 저를 쓰시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었고 제가 응답할 때까지 기다려주신 것이었어요.
제가 지금도 일하고 있는 기아대책은 영어로는 Korea Food for the Hungry International이라고 부르고 1971년 미국에서 실립된 단체에요. 한국 기아대책은 1989년 해외를 돕는 NGO로 처음 보건복지부에 등록을 하게 되었어요. 기아대책은 말 그대로 세상의 영적인, 육적인 기아 문제에 대해서 '대책'을 만들어가는 곳이에요. 그 대책은 결국 공동체의 개발이고 '전문인 선교사'인 기대봉사단을 파송하여 지역의 리더와 지역교회를 역량강화 해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하나님나라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저는 여기서 2010년부터 지금까지 교육훈련 및 HRD, 해외사업 부서에서 긴급구호 사업등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어요.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자기부인'을 통해서 어디서든 주께서 쓰신다고 하셔서 왔는데 결국 한동에서 변화되고 성장했던 모든 것들을 여기 기아대책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아대책은 신학적으로는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진행된 통전적 선교 컨퍼런스인 로잔언약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단체에요. '통전모델' 혹은 '변혁모델'을 가지고 있는 기아대책은 한동이 말하는 'Why not change the world?'를 넘어서 'How to change the world'를 만들어가는 곳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기아대책은 현재 50여개국의 400여명의 기대봉사단을 파송하고 있고 20만명 넘는 후원자들과 국내와 해외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고 완성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여기서 기아대책의 비전과 역사, 공동체 개발방법을 훈련이나 교육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강의도 물론 하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전직원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해요. 제가 직접 세상을 바꾸는 일들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바꾸는 분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켜서 더 잘 변화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어요.
저에게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냐고 물어보신다면 아직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또한 거시적인 변화를 만들어간다기 보다는 저에게 주신 하루하루를 한동에서 배운대로 삶의 태도로 응답하고 있는 것 같아요. 2010년에 취직을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친척동생들에서 부터 시작해서 지역아동센터에 매주 찾아가서 멘토링을 진행했어요. 멘토링을 한다고 봉사시간이 쌓이거나 재물이 들어오거나 하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나누고 배워서 남주자는 한동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매번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나서 진로교육이나 경험교육과 같은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6년동안 멘토링을 진행한 학생이 취직도 하게 되어서 너무나 깊은 감동이 있었어요. 정말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한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된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렇게 멘토링을 진행하다보니 조금 더 많은 친구들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 '한국리버럴아츠센터'라는 곳에서 무급으로 사무처를 도와주면서 '초등과정 보완교육'을 기획하고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학교 시스템을 깊이있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어요. 최근에 15명이 모여서 '튜터십 칼리지'를 진행하여 수료했고, 조금 더 시스템적으로 지방자치단체와 교회들에게 지역사회의 초등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있어요. 보완교육이라는 것은 공교육의 텍스트를 인문학적으로 읽으면서 대안학교가 가지고 있는 튜터십과 멘토링을 적용하는 교육이에요. 고전교육을 공교육 텍스트와 연결해서 학생들이 요약된 문장이 아니라 책 전체를 영혼을 담아서 읽고 토론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데요.
장기적으로는 교육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되어서 보완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30년 후, 60년 후에 국가와 사회의 변화는 결국 교육에서 시작된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제가 스스로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비전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 한동에서 받은 교육때문이라면, 조금 시간을 앞당겨서 초등과정부터 세상을 바꾸는 비전을 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진행했던 멘토링의 경험과 교육관련 일을 하면서 깨달은 인사이트를 모아서 '초등과정 보완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세상을 바꾼다는 관점에서 첫단추를 채우고 있는 느낌입니다.
다음은 '사회혁신해봄 협동조합'에서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해봄 협동조합은 사회혁신을 통해서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협동조합이에요. 사회를 바꾸고 싶어하는 조합원들과 함께 정치, 조직, 철학, 혁신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어요. 청년들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과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사장으로 활동한지는 3년정도 된 것 같아요. 보완교육이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이라면 협동조합 활동은 청년세대가 역량강화를 통한 사회변화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신기한 것 같아요. 한동을 지나서 기아대책까지 오면서 결국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는 가운데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 말이죠. 기아대책에서 사역하는 것 이외의 시간들을 이렇게 사용하고 있어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하는 다른 활동은 '질병노노'라고 하는 노인요양토탈케어 서비스를 만드는 활동이에요. 행정대학원을 다니면서 공공정책을 공부했는데요 함께 입학한 동기들과 노인요양의 케어 서비스를 만들어서 '존엄한 노인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일단 지금은 대학생 에디터들과 함께 어르신들이 편하게 보실 수 있는 카드뉴스와 칼럼을 만드는 중인데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노인 정책과 요양보험 서비스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길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현재 70대를 지나는 어르신들은 태어나실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사의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겪으신 분들인데요. 지금 우리나가 어르신들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 우울하고 답답한 것 같아요. 그래서 노인요양 문화를 바꾸고자 꾸준히 청년들과 노인 콘텐츠를 만들고 새로운 요양원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이러한 활동 외에도 정당활동이나 다양한 포럼에 참여하면서 제도적인 변화와 정책적인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우리가 바꿔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바꿀 것인지는 각자의 삶에 주어진 과제와 같은 거죠. 저에게는 아주 작은 것부터 세심하게 시작하는 미션이 주어진 것 같아요. 마치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살고 부르심을 받고, 다시 이스라엘 민족들과 40년을 헤메였던 것처럼 저 역시 그렇게 한동을 떠난 후에도 계속 돌고 도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제가 가진 힘을 빼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들을 순정할지 않알지를 시험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킨 경험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냥 현실에서 순수함을 잃지 않고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끄지 않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면 보이는 사랑을 나를 통해서 실현하실까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졸업한지 한참이 되었지만, 아직도 생각해요. 한동대를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하고요. 아마도 나쁘지 않게 잘 살고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한동에 왔기 때문에 미래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매번 생각하다 보니 쉽게 살기는 글러먹은 것 같아요. 학교다닐 때 같이 기도하면서 꿈을 나누었던 후배들하고는 매번 만날 때마다 '우리 이제 망했다! 우리 맘대로 살기 힘들어!'라고 말하곤 하는데요. 하나님이 만드신 원래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너무 다르잖아요? 세상의 부조리와 고통에 힘들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까요?
한동에서 하나님이 계속 만들어가신 부분은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마음의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깐 하나님의 관점을 가질 때마다 깨어진 세상에 이보고,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질 때마다 꺼져가는 마음과 좌절하는 마음이 느껴지니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살 수가 없는 거에요. 기독교는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고 부요함을 누리는 종교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하면 그렇다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잘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요. 예수님을 생각하면 평생 노숙자로 사셨던 두벌 옷 조차 없었던 예수님이 지금도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있는데 어떻게 저만 편하고 태평하게 살 수 있을까요? 행복함이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면서 느끼는 결과라고 생각해요. 그럼 나의 조건이 아니라 지금 관계맺고 있는 그리스도와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함이 느껴지는 것이겠죠?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이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고, 결국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 같아요. 단순히 죽어서 가는 '천국'이라는 개념보다도 지금 여기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다르심을 살아내고 또 만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미션과 같은 거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산다는 것은 한동대에서 배웠던 교수님들과 선배들 그리고 여전히 그 삶을 위해서 걸어가는 후배들 덕분인 것 같아요. 혼자라서 외롭지 않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서 만들어가고자 하는 한동인들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되는지 몰라요.
끊임없이 자기 부인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다움'이라는 자기인식을 계속해서 해가면 좋을 것 같아요. 매일 30분이라도 성경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가는 현장에서의 한걸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걸음은 누군가가 주목하지도 않고 또 빛나는 자리도 아닐 건데, 계속 갈 수 있는 이유는 한동이라는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것에요. 한동에 있을 때 제가 가장 많이 찾았던 곳은 4층 기도실이었는데요. 그 다음으로 첫시간과 끝시간을 진행했던 채플이었어요. 좋은 선배와 존경하는 교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의 대학'에서 하나님을 먼저 찾는 우선선위의 노력이 필요해요. 한동에 있는 동안 이러한 훈련이 후배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어요.
중세가 가을을 맞이하면서 저물어가는 시절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삶이 파편화되었고, 삶의 의미가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바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거죠. 그 결과 세계는 중세시대가 가진 문제보다 훨씬 더 참혹하게 변해갔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거죠. 깨어진 세상의 원인은 의미를 잃어버린 세상인데 한동을 통해서 학문과 신앙이 통합되고 삶의 의미가 어떤 구조에 가려지지 않고 누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것'을 깨닫는 한동의 시간들이 되면 좋겠어요.
그러니 저에게 묻는다면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순종'을 배우고, 갈대상자에 담긴 힘 없고 헐 벗은 모세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면서 겸손하게 학문과 사람들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자비로움, 겸손함, 충성됨, 사랑'과 같은 중요한 가치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비밀'이기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내가 자비를 행하고 있어'라고 느끼는 순간 그것은 위선이 되어 버리겠죠? 위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뜻을 헤아리면서 열심히 전문성을 쌓으면 좋겠어요. 학점을 위하기 전에 '하나님이 쓰신다고 하니' 그 수준에 맞게 준빈된다는 의미에서 찐 공부를 하시면 좋겠어요. 한동에서 'Why not change the world?'의 참 의미를 깨달으시기를 바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만물을 화평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닮아 어디서든 ‘피스메이커’가 되는 삶을 살기 원해서 이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요. 특히 제가 사역하고 있 기아대책에서는 인간이 깨어진 4가지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자신, 인간과 다른 인간, 인간과 피조물’의 관계가 핵심적인 4가지의 관계인 것이죠. 모든 문제의 시작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다른 관계들도 깨어졌다는 것인데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서 다른 사람과 이웃이 되고, 피조물과는 청지기가 되고, 자기 자신과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게 섬기는 ‘피스메이커’ 즉, 화평케 하는 자가 되는 것이 이 말씀에 새겨진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첫 번째로 존 밀뱅크의 '신학과 사회이론'을 추천해요. 최근에 감명깊게 있어던 책인데요 영국의 신학자인 존 밀뱅크가 중세시대가 끝나고 계몽주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세상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확대하고 있는지를 철학, 사회학, 정치, 경제, 세계사의 관점에서 짚어주고 있어서 세상을 바꾸고자 원대한 비전을 하나님과 공유한 한동인이라면 반드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유진피터슨의 '현실의 뿌리박은 영성 다윗'을 읽어보길 권해요. 한동에서 베다니 순장을 할 때 김대옥 교수님이 추천해주셔서 유진피터슨의 영성에 관심이 많아졌는데요. 다윗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갔는지를 유진 피터슨의 따뜻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어요. 사실 유진피터슨의 '비유로 말하라, 현실 하나님의 세계, 부활을 살라'와 같은 시리즈를 모두 추천하지만 먼저 '현실에 뿌리받은 영성 다윗'을 먼저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았아요.
세 번째는 반드시 철학을 공부하시면 좋겠어요. 모든 것들의 핵심에는 결국 철학적인 질문이 있으니까요. 철학은 '세계와 인간 그리고 신'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으로 시작되는데요, 한동인이라면 반드시 철학적인 소양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5년 넘게 다니면서 배웠던 철학아카데미에서 펴낸 6권의 '처음읽는 시리즈'를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현대 철학을 철학자들의 시선으로 프랑스철학, 독일철학, 영미철학, 중국철학, 한국철학에 이어 중세철학까지 다루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홍기빈 선생님이 쓰신 '비그포르스와 잠정적 유토피아'를 추천합니다. 현재 스웨덴의 교육과 정치, 외교와 복지제도를 설계한 100년 전의 사람인 비그포르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정치의 의미와 방향 그리고 대안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실 거에요. 결국 세상은 대안을 필요로 하고 우리가 어떤 대안을 준비하는지에 따라서 비웃음 거리가 될지 아니면 진실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될지가 달라질 거니까요. 함께 세상을 바꾸기 위한 대안을 만들어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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