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해봄스터디_캐리폴라니레빗의 마지막 이야기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18세기를 넘어가는 시기에 화폐경제를 기본으로 하고 '경쟁우위'를 핵심으로 하는 오스트리아학파가 어떻게 세계의 경제를 신자유주의로 몰고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고도의 자본주의가 구조화되고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시장'이 '자기조정'기능을 가진다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원래는 '정치학'의 하부요소로 존재하던 '경제학'이 거대한 전환을 통해서 '경제정치학'이 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가 당연한 세상이 원래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아주 오랜시간동안 경제학은 정치학의 하부요소서 먹고사는 문제가 핵심이었지만 2차 산업에서 제조업과 자본가가 등장하면서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자본주의가 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정치와 경제의 싸움은 현재에는 국가의 권위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베이징컨센서스'와 시장의 우위성으로 만들어진 '워싱턴 컨센서스'의 대결이다. 중국의 방식을 보통 신권위주의라고 부르고 이러한 전통은 1980년대 후반 등소평의 '흑묘백묘'이론을 통해서 정치는 마오이즘이, 경제는 자유시장경제가 연결된 형태이다. 이에 반해서 미국식자본주의는 무한경쟁을 기반으로 '시장의 자유'가 가장 최고의 가치를 가지게 만드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전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1929년 대공황이후에 케인즈식의 경제학이 유행을 하게 되었지만 레이건을 지나오면서 미국경제는 완전히 자유주의 전통을 따르게 되었고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서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출범시켰다. 그 와중에 칼폴라니의 딸인 캐리폴라니 레빗은 거대한 전환에서 거대한 금융화로 바뀌는 지점에서 실물경제가 금융화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나면서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시스템이 만들어지는가는 보여주고 있다.
오늘은 거대한 전환에서 거대한 금융화로 바뀌는 과정의 마지막을 살펴보려고 한다. 캐리 폴라니 레빗은 사실 개발경제학자로 더 유명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개발경제학의 관점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럼 11장에서 15장까지의 내용을 한번 알아보자.
11장 2008년의 거대한 금융화 (금융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과 결과)
30년간(1940~1970)의 고성장을 자아낸 '착근 자유주의 embedded liveralism'모델을 지탱한 것은 권력과 자본 이동을 동시에 규제하고 제한한 제도틀이었다. 금융은 생산을 따라야 했다.
1945년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북아메리카의 소득분포는 그 이전 어느 때보다 또 그 이후 어느 때보다 평등했다. (중략) 1980년대 소득격차 지수는 300에서 500으로 증가했고 1990년을 통해 계속 늘어났다.
영미식 자본주의 유형에서 금융은 생산으로부터 분리됐고 자본시장은 상이한 기업의 장기 생산능력을 판단하는 고유의 유용한 기능을 상실했다. 일단 주주가치라는 기준이 좋은 기업 경영의 목표가 되면 자본시장은 거대한 카지노로 변한다.
나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호시절을 지탱하던 제도 틀을 붕괴시킨 전환 과정을 거대한 금융화로 부르면 어떨까, 제안한다.
대처와 레이건이 도입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기업들이 돈을 댄 대학 연구소와 싱크탱크의 경제학자들이 설계했다. 능수능란한 정치 기술이 구사되었고 감세의 약속을 미끼로 사용했다. 소득세율 인하가 산출 증가를 유도하고 결국 총 세수를 늘릴 것이라고 주장한 공급 측 경제학은 포퓰리스트적 호소는 담고 있지만 아무런 과학적 가치도 지니지 않은 유혹적인 이데올로기였다.
자본의 금융화는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극적으로 진행되었고 여기서 금융시장에서 나오는 소득이 GDP 성장에 기여하는 비중은 불균형하게 증가했고 실물경제는 공동화를 겪었다.
영국에서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1971년 32%에서 2006년 14%로 떨어졌고, 미국에서는 같은 기간에 23%에서 13%로 감소했다. 미국에서 금융, 보험, 부동산에서 나오는 소득은 1970년 15%에서 2007년 21%로 늘어났다. 금융과 보험만 보면 1971년 GDP의 4%에서 2007년 8%로 증가했다.
경제학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의 실질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중략) 경제가 그 안에 존재하는 사회의 맥락에서, 그리고 민간과 공공 당국 간에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맥락에서 실질적 경제를 연구해야 한다.
12장 발전경제학의 전망 (경제학과 지배 이데올로기의 관계)
-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은 이후에 발전된 비전(이론/패러다임)으로 하나의 비전을 대체함으로써 진전하지 않는다. 여러 이론이 현실의 다양성과 복잡성의 상이한 측면을 밝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 대중의 믿음과 달리 사회과학 패러다임과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 간에 단순한 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 각 이론의 출발점은 당대의 정치-경제-사회의 현실과 지배적 철학에 연관되어 있다. 이로 인해 '이데올로기' 요소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개입한다. (1) 지배적 패러다임의 담론은 그것을 정식화하는 지식층의 의제를 반영한다. (2) 이론이나 패러다임은 기존 권력관계를 유지하거나, 개혁하거나 또는 전복하기 위한 정치투쟁 내 경합 세력의 이득을 반영하기 위해 각각 소환된다.
- 탈육체화한 현대 경제학의 개인은 '탈착근된' 경제의 지적 반영물이다. 진정으로 탈육체화한 유일한 생산요소는 화폐자본이다. (중략) 화폐자본은 이러저러한 투자로 인해 어디에서 생산 행위가 일어나고 무엇을 생산하며 누가 고용되고 누가 실업 상태로 방치되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다. 화폐자본은 국제적 이동의 결과에 따른 환경 악화나 지리적 분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 사상은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경제 이론체계에서 과학적 요소와 거기에 들러붙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외피를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확히 내 주장의 핵심이다.
-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제도적, 역사적, 문화적 현실을 과도하게 추상화시켰다 두 교조 모두 19세기 서방 산업문명의 지배와 자기 확신을 반영하는 보편주의를 내세웠다. 사회의 보편적 과학이 존재하고 그에 기초해서 경제발전과 사회변화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근대성의 오만이다.
- '시장 마법' 패러다임은 유혹적이다. 왜냐하면 신고전파 경제학의 논리 일관성이 경제적으로 힘 있는 사람들의 자기이익 추구에 지적 존경심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이것은 비극적 환상이다. 현실에서 그것은 부자와 권력자들이 전 사회에 불평등과 부정의를 강화하고 사회연대의 능력을 와해시키는 가치체계와 '게임 규칙'을 부과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중략) 이것은 우리의 삶이 기본적으로 시장의 힘에 의해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발전은 궁극적으로 물리적 자본이나 외환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적 창의력의 뿌리를 자극해서 민중을 자유롭게 하고 민중에게 권능을 부여해서 그들이 자신의 지성과 집합적 지혜를 실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적 능력의 문제이다.
13장 발전경제학의 기여
- 경제가 사회의 기초를 형성한다는 주류 경제학자와 마르크스주의자 양쪽의 일반적 믿음과 정반대로 나는 강한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인 사회관계라고 생각한다. 공평한 경제질서는 반드시 공평한 정치, 사회 질서에 기초해야 한다.
- 발전경제학의 측면에서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론적인 흐름은 아래와 같다. 근대화이론에서 시작해서 종속이론과 젠더이론을 거쳐서 1970년대가 되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집중하게 된다. 1980년대에는 비로소 신자유주의 이론이 등장하면서 캐리가 말하는대로 전세계가 거대한 경쟁장이 된다.
14장 주권, 민주주의, 공평한 성장의 원리 위에 발전할 권리를 되찾기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 (발전권의 회복)
- 금융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생산 경제에 복무해야 한다. 특권 계급을 위한 경제 따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경제 따로가 아닌 통합된 사회라면 생산 경제는 전체 인구에 대한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 IMF는 브레턴우즈 체제 설계자의 의도대로, 일시적인 국제수지의 문제를 겪는 나라들에게 중기 금융을 제공하여 필수적인 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최초의 임무로 되돌아가야 한다. 사회 인프라스트럭처의 잠식이라는 장기적 충격을 주는 긴축적인 통화, 재정 정책에 의해 위기를 심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우리는 발전도상 세계의 시민사회와 정부가 지역 협력의 틀 안에서 발전권의 회복을 주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중략) 극단적인 권력 불균형으로 향하는 세계의 흐름이 역전될 때까지는 국제 협상에서 기대할 바가 거의 없을 것이다.
- 불모의 단일경제학의 교리에서 경제학도들을 해방시키는 방법으로 모든 차원에서의 경제발전을 공부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여기에다 경제사상사, 중상주의적 정복시대로 시작된 자본주의 역사, 유럽인들의 정주와 정치적 식민주의,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도상국과 그 지역의 경험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15장 세계화의 발전: 서방의 쇠퇴와 나머지 세계의 부상 + 후기
- 서방이 쇠퇴하는 과정, 자본주의(신자유주의)를 선택한 국가의 쇠퇴를 서술한다.
- 초국적 기업이 관리하는 생산의 국제화를 묘사하는 용어로 '세계화'를 도입한 것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마케팅에서 언어가 지니는 중요성을 보여주는 뛰어난 사례다. 이것은 국경 없는 세상과 지구를 가로지르는 소통을 시사하는 매혹적인 용어다. '세계화'라는 말이 '국제적인 무역과 투자의 가속화'라는 말을 대체하면서 국가와 국경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 금융시장은 사회적 유대를 대량으로 살상하는 무기가 되었는데, 문제는 이 사회적 유대가 민주적 시장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접착제라는 데 있다. 자기조정 시장은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폴라니의 논쟁적 주장은 오늘날 더 이상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BRICS는 남반구의 집단적 부상을 위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히 제국주의적 후견과 저발전으로부터 아프리카를 해방시키기 위한 새롭고도 중요한 플랫폼을 대표한다. 탐욕과 단기적인 이득 추구로 1930년대보다 더 깊은 위기를 낳은 영미 자본주의의 가치가 계속해서 나머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 발전은 궁극적으로 사회가 대중들이 가진 창조성의 뿌리를 건드리는 능력, 사회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지성과 집단적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고 권한을 부여하는 능력이다.
- 자본주의는 금융적 부의 축적과 경제성장이라는 서로 충돌하는 목표들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는 유로지역의 위기로 표출되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중심부의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와 남반구의 신흥 경제 사이의 갈등이 계속 커지고 있다. 통상의 경제 이론은 이 문제들을 전혀 다룰 수 없으며 이러한 유형의 분석을 개념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 우리가 새로운 체제의 등장을 자본주의적 또는 사회주의적이라는 범주로 나누지 않았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등장은 경제에 대한 자본주의적 관리의 논리와 사회 및 정치에 대한 비자본주의적인 관리의 논리를 보완적이거나 갈등적인 방식으로 결합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아래 내용은 참고용으로 1990년대 이후부터 논의되는 자본주의 다양성(소스키스)과 복지국가 논쟁(에스핑엔더스), 민주주의의 패턴(레이팔트)의 논의를 보여준다. 논의할 사항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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