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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13. 2019

자본과 자본주의

비타악티바 홍기빈 '자본주의'_정치해봄


1.들어가기


자본주의라는 말과 자본은 어떻게 다를까? 자본은 역사의 어떤 시점에 발생하여서 지금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일까? 신자유주의=자본주의로 치환된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자본을 정의하고, 자본에서 파생된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정치해봄'에서 진행하는 비타악티바 개념사시리즈 오늘은 홍기빈 선생님이 쉬운 언어로 정리해주신 '자본주의'를 공부한다. 



2. 자본주의, 구성


1장 - 자본, 자본가, 자본주의라는 크고 모호한 말의 개념에 대해 살펴본다.
2장 - 경체제제, 나아가 특정한 사회적 상태로서의 '자본주의'의 역사를 개괄한다.
3장 - 1장에서 논의된 자본의 정의와 2장에서 논의된 자본주의 역사의 전개를 결합, '자본주의'를 세 가지 기준 - 생산, 화폐, 권력 - 으로 정의한다.
4장 - 생산, 화폐, 권력으로서의 자본주의 사회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한다.



목차


1장 자본과 자본주의- 두 개의 수수께끼 
1. 말썽꾸러기 용어 '자본주의' 
2. 계급 사회로서의 자본주의의 정의 
3.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 
4. 자본, 자본가, 자본주의 
자본이라는 수수께끼 
'자본'을 딛고 '자본주의'로 

2장 자본주의의 발생과 발전- 화해, 생산, 권력 
1. 화폐 경제의 발생 
2. '자본'의 발견 
영국의 농업 자본주의- 울타리치기와 'improve' 
'자본'과 '이윤'의 발견 
3. 권력과 자본주의 
중상주의 국가와 금융 
중상주의 국가와 독점 기업 
자유방임 자본주의로의 전환 

3장 고전적인 자본주의 이론들 
자본- 생산이냐 돈벌이냐 권력이냐 
1. 생산으로서의 자본- 리카도와 마르크스 
생산의 주역, 기계 
데이비드 리카도 
카를 마르크스 

2. 화폐로서의 자본- 좀바르트와 베버 
19세기 독일의 맥락 
베르너 좀바르트 
막스 베버 
3. 권력으로서의 자본- 브로델과 베블런 
독점 자본주의 시대 
페르낭 브로델 
소스타일 베블런 

4장 21세기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향 
1. 예언들은 실현되었는가- 지금까지의 경험 
산업 자본주의는 침체하게 되는가 
자본주의에 맞서는 사회 세력이 필연적으로 출현하는가 
금융 자본주의는 부활했는가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아닌 것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창조적 파괴'는 생태적 위기라는 한계를 만난 것인가 
2. 결론을 대신하여- 생산, 화폐, 권력의 결합체로서의 자본주의 

읽어야 할 책들 
개념의 연표- 자본주의 


https://youtu.be/I1uYseq7Vvc

자본주의에 대한 짧은 설명_홍기빈


3. 각장, 이야기



1장 : 자본과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수수께끼


'자본주의'란 말은 학문적으로 엄격히 규정되기 이전부터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가치 판단을 함의한 채 일반인들이 먼저 쓰기 시작했던 까닭에 "이미 19세기 말부터 보수적인 사회과학자들"은 이를 과학적 개념어로 사용하지 않았다. "전 세계 경제학과"를 지배하는 800쪽짜리 경제학 교과서 <맨큐의 경제학>에는 자본주의라는 말이 '단 한번' 나오며, 스티글리츠의 937쪽 짜리 교과서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경제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정치적 견해를 가장 보편적으로 요약하는 것은 '반자본주의'라는 슬로건이다.

맑스주의는 자본주의를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 경제 체제 및 이를 토대로 성립하는 사회 구성체"로 정의한다(사적 소유라는 재산권에 기초하여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임금노동'을 통해 '상품'을 생산하는 경제체제). 그러나 모두 모호한 말 뿐이다. '생산 수단'의 범위는 어디 까지인가? 공장 기계와 원자재와 유형의 자산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지식, 기술, 특허권, 기업 브랜드과 같은 무형 자산까지 포함하는가? '사적 전유'의 범위와 의미는 어떻게 규정되는가? 법적 제도로써 '사적 소유권'의 범위는 나라에 따라, 소유물의 성격에 따라, 소유물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의 성격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노동자'는 누구인가?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한 까닭에 노동을 임금과 교환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기업의 소유주를 제외하고는 예외없이 노동자라 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가'는 누구인가? 현대 자본주의의 지배적 생산 조직인 주식회사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다. 오늘날 개인이 최대 주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군림하는 주식회사는 몇이나 되는가?

자유주의적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를 하나의 이념형으로써 '시장경제'와 동의어로 쓴다.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에 기반한 개인들이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화폐를 매개로 계약을 맺어 형성된 가격 체제를 통해 사회의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경제체제'다. 그러나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아닌 것이 무엇이며, 자본주의인 것이 무엇인가? '자본주의'가 발흥한 19세기 초 이래 나타난 현실 경제체제에서 이러한 '이념형으로서의 자본주의' 개념이 출현한 적이 있었던가? 보호주의와 결탁한 자본주의, 파시즘 경제, 케인스주의적 자본주의, 독점 자본주의 혹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말하는 '국가 자본주의'중 이에 부합하는 것은 없다. 시장의 작동 이외에 일체의 요소가 개입하지 않는 순수한 '시장경제'로서의 자본주의, '자연적 자유의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 혹은 당위일 뿐이다. 확실한 것은 '자본' 혹은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매우 논쟁적이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브로델에 따르면 '자본'이라는 말은 12세기 이탈리아 상업 도시의 문서에서 부터 출현하며, 16세기경 화폐 자본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고, 18세기 프랑스 중농주의자들에 의해 '생산자본'의 의미로 쓰였다. '자본가'라는 말은 17세기 중반에 나타났고, 18세기 말까지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을 뜻했다. '자본주의'는 이 두 단어에서 파생되어 19세기에 새로이 나타난 정치경제체제를 비판적으로 일컫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으며, 1902년 좀바르트의 대작 <근대 자본주의>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한다(맑스의 자본론에는 '자본주의적 체제'라는 말이 두 번 나올 뿐이다). 19세기 말 이후 세계경제가 소위 '독점 자본주의'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사회 전체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변형을 겪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경제사상가들은 좁은 의미의 경제체제가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현상들의 총체로써 '자본주의'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부터 오늘날 까지 이 말의 정확한 정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주의'를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체제'로 정의하고 '자본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기로 하자.

주류 경제학이 제시한 물질적 정의, '생산에 투입되는 생산 도구와 재료의 총합'은 소위 '자본의 총계 문제'라는 20세기 사회과학의 가장 요란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생산에 투입되는 생산 도구와 재료의 총합이 단순히 '화폐적 가치의 총합'이라면 '노동'의 화폐적 가치는 왜 합칠 수 없단 말인가? 왜 '노동'은 '자본'에 속할 수 없는가? 해답은 없다. 다만 자본의 이미지를 크게 '산업', '화폐', '권력'이라는 세 단어를 줄기로 그려보자.





2장 : 화폐, 생산, 권력으로서의 자본의 역사


중세사회는 대토지를 소유한 영주와 영주의 땅에 예속된 농노로 구성된 자급자족적 정치경제적 단위인 '장원'으로 이뤄진 사회였다. 중세 경제의 자족적 성격은 농업 생산력 향상, 십자군 원정으로 촉발된 도시간 상업 네트워크의 형성과 교역, 14세기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의 격감과 농노 지위의 변화, 30년 전쟁과 영토국가의 출현, 종교개혁, 르네상스, 상업 및 산업의 폭발적 성장, 지리상 발견과 팽창, 신과학의 출현 등을 계기로 변화한다. 이 모든 변화의 핵심은 경제생활이 화폐를 매개로 한 시장에서의 교환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이다. 근대 국가의 출현 과정에서 유럽 대륙이 상시적 전시 상태에 진입하고 전쟁이 대형화되자 영주와 국가의 조세는 화폐로 지불하게 된다. 국가는 조세 수입의 극대화를 위해 화폐 경제의 확장을 극대화하는 국가 형태로 변화했다. 르네상스의 도래 이후 경제적 이익의 추구를 목표로 삼는 태도의 확산 역시 화폐 경제의 정립에 영향을 미쳤다.

경제사가들은 흔히 근대 세계의 경제를 상업 자본주의, 제국주의, 탈식민지 시기의 세 부분으로 구분한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을 원리로 이윤을 남기던 상업 자본주의 시대는 점차 이윤을 위해 생산을 조직하는 시대로 옮겨갔는데, 16세기에서 17세기까지 계속된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은 이윤 창출을 위해 생산을 조직한 핵심적 사례였다. 영주들은 울타리 치기를 통해 개방된 농지와 공유지에 대한 토지의 사적 소유를 확립함으로써 이윤을 위한 생산 관계의 조직에 나섰다. 사유지는 모직물 무역 확산에 발맞춰 양 방목지로 변모했으며 영주에게 지대를 지불하고 토지의 경영권을 넘겨 받은 차지농업가가 등장했다. 빈농은 농업 노동자로 고용되었고, 농업 생산은 점차 이윤 창출에 기반한 자본주의적 형태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화폐 가치에 기반한 '이윤'과 '생산성'이라는 개념은 토지 임대에 대한 지대와 차지농이 농업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의 형성, 모직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산의 조직화를 거치면서 구체화되었다. 특히 농업과 달리 토지와 노동 이외에 다양한 생산 투입물을 필요로 하는 산업 부문의 성장은 생산 과정에서의 재투입을 위한 '자재stock'의 축적과 함께 그런 것의 소유자로서의 '자본가' 계층의 형성을 촉진했다. 이처럼 근대 유럽 문명에 나타난 화폐적 이윤에 대한 추구는 농업을 포함한 사회적 생산 과정을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하면서 자본가, 노동자, 이윤, 임금 등의 새로운 사회적 형식을 출현시켰다. 이것이 '자본'의 출현에 대한 산업 형성 과정에서의 설명이다. 산업 생산의 발달 과정과 자본의 출현을 동일시 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생산된 가치를 재분배하는 체제'라는 '가치이론'의 입장에 서 있다. 이는 생산 활동 그 자체로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출현을 연역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화폐 경제가 작동하는 장(자본주의 사회)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새로운 정치사회적 제도를 정비해야 하며, 이는 권력을 조직하는 정치의 영역에 속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근대 국가라는 권력체가 기획하는 대규모 사업의 전개 과정을 통해 자본의 형성을 설명할 수도 있다. 전술했듯 30년 전쟁은 유럽 대륙을 영토로 구획되고 대규모 관료 조직으로 구성되는 절대주의 국가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17세기 이후 전쟁 규모가 커지고 그 발생이 빈번해짐에 따라 조세 규모의 확대는 불가피했다. 화폐 경제체제를 부양하여 조세 수입을 늘리기 위해 국가는 대규모 시장 경제의 창출해야 했으므로 자치 도시와 길드로 분열된 영토를 단일한 화폐와 도량형으로 통일된 전국 시장을 만들어갔으며, 원거리 무역으로 확장된 세계 시장에서 금과 은을 들여왔다. 이른바 중상주의의 시대다. 그러나 중상주의 원리의 도입과 시장사회로의 재편만으로도 전쟁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 동원에 대처하기란 역부족이어서 대규모 금융가와 거래할 수밖에 없었다. 14세기 피렌치의 메디치나 16세기 독일의 푸거 가문 등은 절대주의 국가와 거래하며 나란히 성장했다. 특히 17세기 영국 왕실은 안정적인 자금 융통 장치 마련을 위해 영란 은행(Bank of England)을 설립, 국채를 발행했다. 즉 근대의 화폐 제도는 국가의 권력 추구과정에서 중상주의적 활동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또한 초기 자본주의 발생기, 자본의 축적은 국가의 지원을 얻어 해상로를 개척함으로써 무역을 독점하는 대규모 모험사업을 통해 발생했다. 최초의 국가적 자본 동원과 경영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였고, 오늘날과 같은 주식회사는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시초였다. 국가의 강력한 지원 아래 완전한 무역 독점권을 행사한 이들 '기업'은 준국가기관과 같았다. 화폐 경제의 인프라 구축과 자본 축적이 충분히 진행된 18세기 중반 이후에는 경쟁적 가격 시장이 형성되고 생산력이 보편적으로 확장되면서, 무역으로 엄청난 이윤을 독점하는 대자본가와 그 배후의 국가 권력이 시장 경제 작동의 걸림돌이라는 비판을 받기 시작한다. 19세기 유럽 곳곳에서 터져나온 시민 혁명과 함께 '시장을 내버려 두라'는 구호는 현실의 정책이 되었으며, 자유방임의 이상이 실현된 19세기 말 시장 경제는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중상주의적 원리에서 자유방임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모두 국가 활동의 산물이었다. '시장을 그냥 내버려 두기' 위해서는 19세기 자유주의 국가의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입법 및 행정 활동으 필요했다. 즉 자유방임 경제는 국가의 의도적 활동의 산물이었다.


시장경제 흐름



3장 생산, 화폐, 권력으로서의 자본에 대한 고전적 이론들


리카도와 맑스는 자본의 본질을 '생산'의 측면에서 파악했다. 리카도가 자본을 기계와 같은 유형 자산으로 파악했다면, 맑스는 생산관계로 보았다. 생산은 인간이 자연과 맞붙어 뭔가를 얻어내는 것이며,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생산을 위한 세 요소로 토지 자본 노동을 제시한 바 있다. 18세기의 산업혁명은 이 중에서 '자본'에 해당하는 기계의 비중을 압도적으로 늘려 사회전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했다. "자본(기계)을 앞세운 생산이 최대 이윤을 거두는 것이 경제와 사회의 최고 이익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고도로 발달된 생산성의 산물은 자본에 재투자되어 더 높은 생산성을 낳아야 했다. 이를 위해 노동자와 지주, 국가에 분배되는 이윤의 몫을 최대한 줄여 축적해야 하며, 자본의 팽창과 축적, 활성화를 위해 인간과 자연, 사회 조직을 끊임없이 재구조화하기 위해 모든 것들의 '상품화'가 필수적이다. 사회의 모든 권위 체계(특히 정치와 경제)는 시장의 자기조정과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 리카도는 이러한 비전을 가장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그가 보기에 장기적으로 사회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자본의 끊임없는 축적이 유일한 길이었다. 토지는 수확 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며 인구의 증가는 토지 부족과 계급 분배의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리카도가 보기에 인간 사회는 무한한 욕망과 희소한 자원 사이의 역학관계로 움직이는 기계적 시스템과 같았으며, 경제학은 이 역학관계의 체계를 해명하는 학문이었다. 경제는 스스로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기계와 같았으므로 그가 곡물법, 구빈법의 철폐와 화폐의 철저한 금태환을 주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맑스는 리카도의 '노동 가치론'을 뒤집어 자본은 노동의 산물이며 자본의 축적은 노동 착취의 결과라 주장한다. 노동자는 자본에 자신의 노동을 양도함으로써 소외된다.(<경제학-철학 초고>) 맑스의 '노동 가치론'에 따르면 자본은 기계와 같은 유형 자산이 아니라, 노동이 축적, 증식하여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탈바꿈하는 생산 관계, 즉 '자본주의적 생산이라는 사회적 관계'였다. 이 관계 안에서 자본은 화폐, 기계, 원료, 생산물 등 다양한 모습을 취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이란 사실상 노동자의 잉여 노동을 끝없이 착취하며 팽창하는 자본가의 권력을 지칭하는 것과 같다. 리카도와 맑스는 모두 자본을 '생산'의 측면에서 파악했음에도, 그 해석상의 차이는 리카도를 자유주의 경제학의 아버지로, 맑스를 사회주의의 아버지로 만들었다.

자본을 '화폐'가 아닌 생산 장비나 사회적 생산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직관과 어긋난다. 19세기 중반 생산 혁신이 절정을 이루던 영국에서 자본주의를 연구했던 리카도나 맑스와 달리, 같은 시기 독일의 좀바르트와 베버에게 자본주의의 본질은 '더 많은 이윤의 추구'라는 정신적 태도였고, 자본은 무엇보다 화폐였다. 좀바르트는 <근대 자본주의>라는 대작에서 20세기 초까지 축적된 유럽 경제사 연구의 모든 문헌을 섭렵하면서, '더 많은 화폐를 얻기 위한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정신적 태도'를 자본주의의 본질로 규정했다. 더 많은 화폐 이윤을 얻기 위한 계산적 합리성의 원리가 모든 사회 구성원과 전체 제도의 작동 원리에서 발견되는 상태의 확장이 근대 자본주의의 출현이다. '화폐' 창출을 욕망하는 인간은 사물을 자신의 욕망이 아닌, 화폐로 측량가능한 익명의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정신적 태도의 확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 복식부기의 발명이다. 대변과 차변을 나누어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변동 수치를 기입하는 복식부기의 논리체계는 유럽인들의 머릿속에 대차대조표를 새겨넣었다. 인종주의자였던 좀바르트는 복식부기적 사고의 확산 원인으로 유대인을 지목했다. 막스 베버 역시 '화폐적 이윤을 추구하는 합리적 정신'의 등장을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로 보았다.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은 유명한 저작이다. 베버에게 역시 '합리적 이윤 추구'란 복식부기적 화폐 추구의 논리를 뜻하며, 자본주의 사회는 그런 사유가 확산된 사회를 일컫는다고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베버는 <경제와 사회> <사회경제사> 에서 '정신적 태도'에 더해, 자본주의 사회 확립을 위한 제도적 특징을 나열했다. 자율적 기업의 생산 수단 전유, 상품과 노동 시장의 자율성, 상품 생산의 기계화, 자유로운 임금 노동의 존재 등이다. 자본을 '생산 과정에 위치한 무엇'으로 정의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생산 과정의 확장'으로 이해한 리카도 및 맑스와, 자본을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화폐'로 이해하고 이를 추구하는 정신적 태도가 사회 전체의 조직 원리가 된 상태를 자본주의 사회로 정의한 좀바르트 및 베버의 이론은 중요한 대극을 이룬다.

맑스와 리카도, 베버와 좀바르트는 자본을 생산활동과 화폐라는 상이한 범주로 구분해 규정했지만, 정치와 구분되는 영역으로서의 경제부문을 상정했다는 점에서 같다. 즉 그들이 정의한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부문의 역동적 변화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를 뜻하지만, 그럼에도 정치부문과 경제부문의 구분을 전제한다. 한편 페르낭 브로델과 소스타인 베블런은 자본을 '권력'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권력체제'로 정의한다. 자본이라는 '권력'은 화폐 가치를 창출하는 시장의 영역에서의 이윤을 전유하는 권력이다. 특히 브로델은 '화폐를 매개로 한 교환행위'인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를 구분하면서, 자본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경제에서 항상 최고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권력'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국가의 독점적 지원을 받은 동인도 회사나 대서양을 무대로 약탈을 자행했던 영국의 사설 해적단 등으로 나타났다. 베블런의 경우, 우선 산업 활동과 영리 활동을 구분하면서 산업활동을 '인간이 집단적인 물질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지식과 기술, 문화를 총동원하는 총체적이고 유기체적인 과정'으로, 영리 활동을 '화폐로 표현되는 이익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적이고 차등적 과정'으로 정의했다. 어느 시대의 어느 기술적 단계에서나 집단적, 총체적 기술이 집약된 생산 수단이 존재하기 마련이며, 자본이란 그러한 '공동체 전체의 생산력이 집약된 유형 무형의 계기를 자산으로 만들어 소유하는 권력'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생산 활동과 무관한 영리 활동이 공동체 전체의 산업 활동을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권력 자본론은 앞선 두 가지 이론에 비해 큰 지지를 얻지는 못하지만, 그 일관된 설명력으로 세계체제이론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4장_21세기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향



19세기의 많은 사상가들은 산업 자본주의가 과소소비와 이윤율 저하, 기업의 연쇄적 파산과 공황으로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을 거치면서도 1930년대부터 국가가 시장의 총수요를 증대시키기 위한 새로운 경제 주체로 나서면서 이른바 '수정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흐름이 도입되었고, 자본주의는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남았다. 미국의 뉴딜, 스웨덴의 사민주의, 영국의 케인스주의, 독일과 일본의 국가사회주의가 그런 것이다. 1960년대까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에 근거한 포디즘적 자본주의의 발전은 노동계급의 혁명성을 거세했다. 이제는 누구도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전복시키는 세력을 배태한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오늘의 자본주의는 19세기의 그것과 질적으로 달라졌다. 1980년대부터는 '수정 자본주의'가 후퇴하고 투자 은행과 자본 시장이 세계를 지배하는 '금융 자본주의',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기업 경영, 노사 관계, 회계 방식, 금융 체제, 정부 개입, 국제 경제 관계에 이르기까지 1970년대까지 뿌리내렸던 제도와 관행들이 모두 뿌리 뽑히고 시장의 자율과 자본시장의 독재라는 원칙만으로 재구조화된 자본주의가 나타났다. 1930년대 이론적으로 논파되었던 자유주의적 사상과 사회 경제 이론이 새롭게 떠올랐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수정 자본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자본주의에 다양한 변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는 자본주의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설명해주는가 하면, 생태적 장벽이라는 성장의 새로운 벽을 맞이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란 현재로서 불가능하다. 19세기 고전 이론가들이 제시한 이론과 장기적인 역사의 경향은 20세기 들어와 모두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론가들의 예상이 아주 틀린것은 아니었으나 자본주의는 눈부신 환골탈태의 재주를 피우며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했다. 따라서 21세기의 접어든 지금 여전히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남았다. 하나의 실마리는, 자본과 자본주의를 '권력과 화폐와 생산의 결합체'로 이해해보자는 것이다. 지금껏 위대한 이론가들은 이 세 가지 요소의 긴밀한 연결이 자본주의를 구성한고 보았으나, 대부분 그 중 하나를 중심으로 사태를 설명하는 경향이 있었다. 오늘날의 과제는 자본주의를 생산이라는 현상, 화폐적 축적이라는 현상, 이를 가능케 하는 끊임없는 사회의 재구조화, 즉 권력이라는 현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https://youtu.be/7I96ZEiwGSU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특강_30년간 지구경제의 변화



4. 질문과 토론

1)'생산성'을 향상을 위해서 아래와 같은 도표가 만들어져 있다. 개선improvement는 책에서 보는 것처럼 철저하게 이윤생산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혁신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할 것인가? 


2) '소유'의 개념을 볼 때 책에서 언급한 소스타인 배불런은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자본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하자고 말한다. 자본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고, 이미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자본이라는 개념, 화폐가 가진 자본의 기능은 '공동체'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주의+자유주의가 결합된 신자유주의의 소유개념을 '공유'개념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렇다면 '소유'개념이 만들어 온 자본주의 세상에서 '공유'개념이 만들어갈 '리얼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을까? (예, 공유경제, 공유카, 공유주방) 
소유에서 공유로 갈 수 있을까?



3) '자본주의 다양성Verieties Of Capitalism'의 관점에서 '자유시장경제'로 정의된 자본주의가 아니라 '조정시장경제'로 규정된 자본주의가 한국에서도 가능할 것인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4) 자본주의를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정치'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방법론, 프로세스, 담론,주도그룹 등등은 어떻게 전략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 한국형 합의제민주주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5) 에릭올린라이트가 말한 아래표를 참고하여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야 하는가? 사회체제 수준에서 논의와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지 않나? 



6) 1997년 IMF이후 급속도로 신자유주의 체제로 귀결된 한국경제의 상황에 대해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어떤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할까? 각자가 느낀 것을 말해보자. 




5. 참고자료


1.  EBS 자본주의 5부작

https://youtu.be/0LYMTsj_eqc 


2. 강신주 자본주의 강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

https://youtu.be/cpOrhAo0dro


3.  정태인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하다'

https://youtu.be/0JT2ozh6zEs


4. 케인즈와 하이예크의 논쟁을 랩으로 '세기의 대결'

https://www.youtube.com/watch?v=Cc5n2xg7tK4

1편


https://www.youtube.com/watch?v=3H9jPf0BUxI

2편

5. 홍기빈_자본주의 다양성과 대안적인 사회 경제 모델의 원리


6. 합의제민주주의_최태욱 교수님 강의

https://brunch.co.kr/@minnation/1199


6. PPT 강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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