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Nov 05. 2023

요즘 근황

2023년 11월을 시작하며

어느날 작가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까지 글을 많이 쓸것을 예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작가'라는 정체성이 주어지고 점점 구독자가 늘어나면서 일말의 '사명감'같은 것이 생겼다. 20살때부터 인터넷 플랫폼에 글을 쓰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쓴 적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내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했던 때부터 '배운 것은 모두 기록으로 남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처음 글을 3개에서 4개정도 썼을 때 주변 사람들이 '비웃던' 장면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그때 '너보다 글 잘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너가 작가냐? 그거 그냥 그 플랫폼에서 사람 끌려고 그러는 거다'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말이 하도 많은 내게 언제나 TMI가 심하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그때부터 '이왕 이렇게 된거 그럼 내 이야기는 사람들이 별로 들어주지 않으니깐 다 써버리자!'라고 생각했다. 천재도 아니고 영재도 아닌 내게 꾸준히 노력해서 '작가'가 되자라는 목표는 없다. 다만 내가 공부하고 느낀 것을 최대한 나누고 싶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러면 된 거지! 뭐.



17세기 초기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처럼 나는 이상과 현실을 연결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것은 이상적인 미래와 현실적인 오늘을 연결하는 것이기도 하고 글을 쓸 때 항상 현실적인 정보와 팩트를 기반으로 쓰되 철학과 사회학 그리고 심리학 같은 이론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각을 하고 싶어서 연결하기도 한다. 정치학과 정책을 전공했던 내게 최근들어 많이 쓰고 있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글들은 기존의 글들보다 2~3배는 더 시간이 들어간다. 마치 중학생이 되어서 이제야 수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처럼 과학기술은 하나도 몰라서 더듬거리면서 배우고 또 찾아가고 있다. 그런데 하면 할 수록 너무 공부가 재미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들이 총 동원되어서 머릿속에서 하나로 이어지는 경험들을 요즘들어 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 혹은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이것과 저것을 연결하는 일들을 한다.


박사과정에 들어온지 이제 2학기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1학기때는 통계에 자신이 없어서 기말과제로 소논문을 써야할 때 1달을 밤을 새우면서 통계프로그램과 씨름을 했더랬다. 그래서 겨우겨우 힘을 짜내서 3개의 소논문을 쓰면서 어느정도 한계를 넘어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2학기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기술경영대학원의 수업들과 과학사회학의 수업들 그리고 매주 불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과학기술정책론' 때문에 부담감과 한계를 동시에 느끼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과학기술정책론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정책이론이 함께 만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국가들이 과학기술정책을 어떻게 만들고 적용하고 있는지를 배우는 수업이다. 아직 8주밖에 배우지 않았지만 기술주도 이론과 수요견인 이론과 같은 과학기술정책의 우선순위도 배우고 연구자들의 거버넌스 관리와 국가혁신체제와 같은 부분도 배운다. 그 중에서 지금도 머릿속에 가득차 있는 생각은 슘페터주의와 신슘페터주의이다. 일명 '파과적 혁신' 혹은 '진화경제학'이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화요일마다 배우는 '기술가치평가'수업은 그 분야의 오랜 경험을 가진 겸임교수님께서 오셔서 기업을 가치평가하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여기에 기술이 들어갔을 때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를 배우고 또 적용해본다. 다음주 화요일까지 중간고사 시험을 치뤄야 하는데 어렵지는 않지만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어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은 과거의 관점에서 비용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보면 '비용접근법'과 현재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시장에서 비슷한 기업들과 비교해보는 '시장접근법'이 있다. 시장접근법을 보통 벨류에이션이라고 부르면서 재무모델링을 한다. 그리고 기술가치평가는 보통 미래에 수익이 들어오는 것을 예상해보고 현재 가진 혹은 미래에 등장한 기술을 적용했을 때 매면 그 가치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혹은 떨어지는지를 계산한다. 그래서 이렇게 기술가치평가수업을 들을 때면 내가 알고 있는 기업들의 가치평가를 해보고 이 기업들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었을 때 어떻게 가치가 올라가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수업을 듣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내 머릿속에는 다양한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혼자 미친사람처럼 걸어가는 내내 머릿속에서 스크린을 여러개 띄워놓고 서로 연결하면서 모르는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간다. 그러다 보면 집에 도착해있고 체력관리를 위해서 헬스장으로 향한다. 달리기를 하면서도 계속 아까 고민하던 것들을 생각해보고 찾아본다. 이렇게 살 것이라고 10년전에는 아니 불과 1년전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몰입을 해본 경험이 쌓여갈 수록 공부하는 것 자체가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야 이걸 깨닫다니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누구와 비교하기 보다는 결국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이렇게 걸어가고 있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내일 아침에 다시 힘이 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요즘들어 미야자기 하야오 감독이 던진 질문들이 마음 속을 떠나지 않는다. 머릿속은 계속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넘치지만 마음 속에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사골우려내듯이 우러 나온다. 그러다가 독일의 베르톨트브레히트의 시가 생각나기도하고 김수영 시인의 시가 떠오르기도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을 놓치지 않고 걸어가야 겠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 답이 안나오는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고 질문을 바꾸어 보면 신기하게도 아주 명확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고 삶이 가치있다고 느낄 수 있는 인사이트가 넘치며, 근심과 걱정이 없이 최대한 오랜 기간을 사람들과 사랑하면서 사는 것. 이런 것은 충분히 어떻게 살지에 대한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 결국 혼자서는 미래도 없고, 열심히 살 이유도 없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또한 이전시대 혹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선배들과 후배들을 생각하면 삶에 대한 가치와 보람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느낌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렇게 살자!라고 이야기할려면 일단 내가 더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품고 배려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읽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에서 기획하는 일도 하고 있다. 정치적 독서클럽인데 리뉴얼을 해야해서 홈페이지도 만들고 의미와 비전에 맞게 로고도 만들고 있다. 이런 일들을 귀찮기도 하지만 하던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서도 조직을 만들고 움직이고 또 전략을 짜고 실행해보는 경험들을 해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읽는 사람들에서는 매월 책의 저자를 초대해서 현안을 다루고 있다. 최근에 '이탈리아로 가는길'의 저자를 초청해서 강의를 듣는데 너무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다양한 그래프를 통해서 노무현대통령의 등장 이후에 팬텀정치가 되어 버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을 살펴보았다. 물론 나는 노무현대통령을 존경하고 따르지만 그가 남긴 '민주주의 미래'인 '진보의 미래'는 앞으로 풀어나가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열린다고 생각하기에 노무현대통령이 남긴 것 그리고 그가 멈춘 곳에서 다시 걸어보려고 한다.



이탈리아의 길'의 작가를 한번 더 모셔서 전라디언의 굴레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듣는다. 그런데 이 전라디언의 굴레는 작가 자체도 전라디언이여서 그런지 왜 호남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하층민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지를 역사적인 자료들로 보여준다. 해남에서 태어난 전라디언의 후예로써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전라도의 어르신들이 1950년 이후 사회적으로 어떻게 사회적으로 배제되었는지를 보여주기에 읽다가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버지에게 '일 못한다'라고 핀잔을 주지는 않는다.


1974년 학력도 낮고, 집에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전라디언이 생면부지 서울이라는 전쟁터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 그 당시 국제개발의 차원에서 냉전과 함께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녹색혁명이 일어났고, 그에 따라서 농촌의 혁신을 농촌인구를 도시로 몰아내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그러니 그 때 물밑듯이 서울로 올라온 전라디언들은 하나의 무기도 없이 오직 노동력만으로 개발도상국의 심장에서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을 지켜냈다. 이전에 브런치에 아버지에 대해서 감상에 젖어서 쓴 글들이 왜 그렇게 구슬펐는지를 이제야 좀 알아가면서 이번에 저자를 만나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인사이트가 넘치는 대화를 하면 이렇게 즐겁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더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최대한 많이 남겨야 겠다. 앞으로 학업말고 쓰고 싶은 글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 11번째 이야기', '월터핑크의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에서 나오는 3가지의 비유', '관념론과 유명론 그리고 실체론 사이의 긴장', '국가경쟁력 평가 기준에 대한 논고-GDP가 아닌 기술가치에 대한 평가를 반영하여',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 평론', '나의 아저씨의 몰락과 평안에 이르지 못하는 밤', '이븐시나의 중세철학의 과제', '책임정당과 정당의 존재 이유'같은 것들이다. 내년 3월 책을 내려면 부지런히 글을 쓰고 또 주제도 골라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인사이트가 넘치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내용을 많이 다루어보고 싶다. 자! 내일 다시 시작해보자. 그러기 위해서 운동을 하러 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만들어주는 원칙과 요즘에 고민하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