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를 흘러넘쳤다
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입 속의 검은 잎_기형도
저녁마다 바위에서 검은 부엉이가
여기저기 날개를 퍼득거렸다
그를 본건 텔레비전 화면에서
이따금 소리를 지르는 모양이었다
걸출한 경상도 사투리를 아무런 걸림없이
거리에다 늘어놓는 그의 말주변에
어떤이는 박수를 쳤고 어떤이는
고개를 절래절래했다
그렇게 그가 내는 소리는
거리에 은행잎을 몰고 다녔다
새벽이면 인심좋은 청소부도
그 소리를 한가득 주워 담느라 혼이 났다
그리고 어느날 그일이 터졌다
검은부엉이들이 바위를 탓하고 있을때
거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었고
그의 장례행렬은 검붉은 비와 파란비를
동시에 흩날리며 하나의 소리가 되었다
어떤이는 망자를 다그쳤고
검은 법복의 사내들의 말을 들은
검은 부엉이들은 논뚜령에 빠졌다던 시계를 찾았다
나의 눈은 천천히 멀어져갔다
이내 모든 것이 검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검은법복을 입은 그들이
그를 끌고 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검게 물든 들판은 100년만에 다시
가르마처럼 갈라졌다
가끔 그가 허수아비처럼
불쑥 나타나 검은 부엉이들을 쫓아낸다
그때부터 그의 소리를 듣는 자들은
눈이멀고 검은 법복의 사나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부엉이들이 나는 두렵다
검은법복을 입는 검은 부엉이가 나는 두렵다
허수아비처럼 가끔 소리를 지르는 그의 망령이
다시 파란비를 내려줄때까지
멀어버린 내 눈은 온통 검게 물든 세상에서
방황하며 악착같이 소리지른다
검은비 속은 부엉이_민네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