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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Nov 01. 202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지구본_요네즈 켄시

僕ぼくが生うまれた日ひの空そらは 高たかく遠とおく晴はれ渡わたっていた

보쿠가 우마레타 히노 소라와

타카쿠 토오쿠 하레와탓테이타

내가 태어난 날의 하늘은 높고

아득하게 개어 있었어


行いっておいでと背せ中なかを撫なでる 声こえを聞きいたあの日ひ

잇테 오이데토 세나카오 나데루

코에오 키이타 아노 히

다녀오라며 등을 어루만지는

목소리를 들었던 그날


季き節せつの中なかですれ違ちがい 時ときに人ひとを傷きずつけながら

키세츠노 나카데 스레치가이

토키니 히토오 키즈츠케나가라

계절 속에서의 엇갈림 속에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光ひかりに触ふれて影かげを伸のばして 更さらに空そらは遠とおく

히카리니 후레테 카게오 노바시테 사라니

소라와 토오쿠

빛에 닿아 그림자를 뻗어

하늘은 더욱 아득히


風かぜを受うけ走はしり出だす 瓦礫がれきを越こえていく

카제오 우케 하시리다스 가레키오 코에테이쿠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해 잔해를 넘어가


この道みちの行ゆく先さきに

誰だれかが待まっている

코노 미치노 유쿠사키니 다레카가 맛테이루

이 길이 향하는 곳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


光ひかりさす夢ゆめを見みる いつの日ひも

히카리 사스 유메오 미루 이츠노 히모

언제나 빛이 비치는 꿈을 꿔


扉とびらを今いま開あけ放はなつ

秘ひ密みつを暴あばくように

토비라오 이마 아케하나츠 히미츠오 아바쿠요오니

지금 문을 열어젖혀, 비밀을 파헤치듯


飽あき足たらず思おもい馳はせる 地ち球きゅう儀ぎを回まわすように

아키타라즈 오모이하세루

치큐우기오 마와스요오니

질리지도 않고 떠올려, 지구본을 돌리듯이


僕ぼくが愛あいしたあの人ひとは 誰だれも知しらないところへ行いった

보쿠가 아이시타 아노히토와 다레모

시라나이 토코로에 잇타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갔어


あの日ひのままの優やさしい顔かおで 今いまもどこか遠とおく

아노히노 마마노 야사시이 카오데

이마모 도코카 토오쿠

그날 그대로의 상냥한 얼굴로

지금도 어딘가 먼 곳에


雨あめを受うけ歌うたい出だす 人ひと目めも構かまわず

아메오 우케 우타이다스 히토메모 카마와즈

비를 맞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この道みちが続つづくのは 続つづけと願ねがったから

코노 미치가 츠즈쿠노와 츠즈케토 네갓타카라

이 길이 계속되는 건 계속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야


また出で会あう夢ゆめを見みる いつまでも

마타 데아우 유메오 미루 이츠마데모

언제까지나 다시 만나는 꿈을 꿔


一ひと欠片かけら握にぎり込こんだ 秘ひ密みつを忘わすれぬように

히토카케라 니기리콘다 히미츠오 와스레누요오니

한 조각 움켜쥔 비밀을 잊지 않도록


最さい後ごまで思おもい馳はせる 地ち球きゅう儀ぎを回まわすように

사이고마데 오모이하세루 치큐우기오

마와스요오니

끝까지 떠올려, 지구본을 돌리듯이


小ちいさな自じ分ぶんの 正ただしい願ねがいから始はじまるもの

치이사나 지분노 타다시이 네가이카라

하지마루 모노

작은 나의 올곧은 소망에서 비롯되는 것


ひとつ寂さびしさを抱かかえ

僕ぼくは道みちを曲まがる

히토츠 사비시사오 카카에 보쿠와 미치오 마가루

외로움 하나를 껴안고 나는 길의 방향을 바꿔


風かぜを受うけ走はしり出だす

瓦礫がれきを越こえていく

카제오 우케 하시리다스 가레키오 코에테이쿠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해 잔해를 넘어가


この道みちの行ゆく先さきに

誰だれかが待まっている

코노 미치노 유쿠사키니 다레카가 맛테이루

이 길이 향하는 곳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


光ひかりさす夢ゆめを見みる いつの日ひも

히카리 사스 유메오 미루 이츠노 히모

언제나 빛이 비치는 꿈을 꿔


扉とびらを今いま開あけ放はなつ 秘ひ密みつを暴あばくように

토비라오 이마 아케하나츠 히미츠오 아바쿠요오니

지금 문을 열어젖혀, 비밀을 파헤치듯


手てが触ふれ合あう喜よろこびも 手て放ばなした悲かなしみも

테가 후레아우 요로코비모 테바나시타 카나시미모

손이 맞닿는 기쁨도, 놓아주었던 슬픔도


飽あき足たらず描えがいていく

地ち球きゅう儀ぎを回まわすように

아키타라즈 에가이테이쿠

치큐우기오 마와스요오니

질리지도 않고 그려가, 지구본을 돌리듯이


지구본_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ost


https://youtu.be/NucMRT0kftM?si=raly6E1N2wo7Jonn

지구본_요네즈 켄시






나는 지브리의 음악을 평소 즐겨듣는 편은 아니다. 음악은 언제나 시대가 움직이는 과정에서 공간을 긁을 때 나는 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브리의 미야자키하야오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일본의 근대화가 꿈꿨던 제국과 꿈이 바스라지던 소녀와 소년시기의 아련함을 애뜻함으로 현을 튕기기 때문이다. 지금 세대는 이전세대에게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역사라는 상징을 전수받는다. 그것이 말투이건, 목소리이건, 발음을 내는 방법이건, 옷을 입는 방법이건, 생각하는 방법이건 말이다.


인생에서 과거의 과오를 떠올리고 그것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는 언제나 아쉬움이 묻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에게나 리즈시절이 있듯이, 일본이 가진 리즈시절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꿈이 꺽이기 전의 제국주의 시대였을 것이고, 다시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1970년대 이후가 되지 않았을까? 그 시절을 '추억은 방울방울'에서 담아내고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 '센과 치이로의 여행'을 떠나고 역사속에서 자신들을 계속해서 응원해주던 '이웃집 토토로'를 불러와서 기억하는 방식이다.


칼 융의 의하면 우리의 무의식은 개인적으로 형성되지 않고 집단적으로 형성된다. 내가 어떤 곳에서 태어나서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는 혼자서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이 모든 것들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어떤 사건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 시대에 태어난다는 것은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와 그 시대가 풀지못한 숙제 그리고 그 시대에 당연했던 것들을 그대로 학습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거스를 수 있다면 그 시대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지혜를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거스르지 못한다면 그 시대가 당연했던 것들이 자신에게도 당연해지는 것이 정상이다.


개인의 역사에서도, 집단의 역사에서도, 국가의 역사에서도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그 상태로 다음세대에게 전수하게 된다. 지혜로운 다음세대가 나와서 그것들을 미래에서라도 돌이키면 새로운 길이 열리지만 그 다음 세대가 선배들의 과오를 돌이켜서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경우는 매우 적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혹은 이런 영화를 보면서 집단적으로 형성되는 무의식을 돌이켜서 의식으로 끌어내고 이것을 해석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해석에 잠식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 때는 그랬을 수 밖에 없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으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80년을 넘게 일본의 역사를 살아내고 또 역사를 만들어 간 거장에게서 제국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의 아들이 만든 코쿠리쿠 언덕에서도 제국의 향수를 맡는다. 자신들의 의식세계 바깥으로 나가보지 못한 사람들 마냥 자신들의 그리운 그 때의 정취는 사실 그 이전의 역사가 만들어 놓은 터전에서 풍기는 냄새였을 것인데 말이다. 이 작품에서 1944년의 그을린 얼굴이 여전이 지금도 보이는 것은 그 당시의 전쟁의 원인이 마치 다른 사람에게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깐 태평양 전쟁이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사건들이 사실은 일본의 제국주의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쟁을 추억하는 나라에서 평화는 없다. 마찬가지로 전쟁을 기념하는 나라에서 자란 어린이들은 전쟁을 낭만의 주제로 삼는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이렇게 들린다. 그대들 시대가 그대들에게 짊어지게 만든 역사를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인가? 아니면 그 역사의 무게만큼 깊이 파인 발자국들을 기념하면서 살 것인가? 타자와의 공존이 가능한 세상이 아니라 누군가 위대한 사람들을 계층화해놓고 가장 높이 있는 사람을 칭송하면서 하루하루 자신들의 부족함을 낭만화하면서 살 것인가? 이 작품의 원작인 요시노 겐자브로의 책들에서는 어떤 냄새가 풍길까? 다시 한번 냄새를 맡는다. 제국의 냄새를 완전히 털어내버리지 못한 이들의 뿌리는, 미디어에서 흘러다니는 향수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제국에 대한 향수처럼 느껴진다. 다소 비판적인 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으면 그 후대들이 그것을 유산으로 받는다. 개인의 인생이건 한 국가의 인생이건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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