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복길잡화점을 보고와서
연극 복길잡화점을 보고와서
느낀 단상
20평도 안되는 무대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겹치는 동선들, 흔들리는 시선들, 요동치는 감정들, 눈시울을 적시는 감동들. 객석에 앉아서 간단한 기대를 가지고 몰입하기 시작했다. 복길잡화점이 다루는 이루는 '치매'였다.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개인적으로 소화하려고 애쓰는.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하는 50대에 태어나신 어른들이 축적된 기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만 남겨 놓고는 망각의 방식으로 생을 택하는 방법이다. 치매에 걸리신 어르신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언제나 '병적'이다. 그래서 치매가 있으신 어르신을 돌보는 가정에서는 '근심거리가 가득한' 분노의 함성이 들려오기 마련이다.
복길잡화점도 그랬다. 전통적인 치매를 다루고 있구나! 그러니깐 '신파극'정도가 되겠네.라고 생각했다. 함께 오랜시간 멘토링을 했던 청소년들과 함께 방문했던 터라 이 친구들이 지루해하면 어떻게하지?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후원으로 오게된 공연이라서 감사한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의 시간도 중요하기에. 복길잡화점이 시작되기 전의 복길이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의 시작 그리고 현재로 돌아온 상황에서 갈등상황들. 갑짜기 냄비에서 튀어나온 TV리모콘. 치매에 대한 고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해병대 출신의 고집불통인 아버지는 자신의 아내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복길이와 가족들을 불러서 이 사실을 알리고 병원에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선 끝내 병원에 보내지 못하고 2일만 시간을 달라고 말한다. 자신이 자신의 아내와 가장 사랑했던, 그래서 복길이가 생겨났던 1983년의 어느날로 가서 기억을 회복시켜보겠다고.
배우들은 마치 자신들의 인생인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소나기 같은 눈물을 흘렸다. 관객들도 울고 나도 울고, 모두가 울었다. 그리고 소중한 가족과 함께한 추억을 떠올렸다.
문학은 언제나 우리의 삶에서 '여유'를 제공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인생에 자유를 허락한다. 최백호씨의 '바다 끝'이 흘러나오고 자우림의 인생 짙은 목소리가 선율과 함께 무대를 가득 메우면서, 배우들의 한숨과 울음과 기쁨이 사람들을 술렁이게 하면서. 삶의 숨가쁜 현장 속에서 피어난 여유로운 시선은 '나는 어떻게 살고 있지?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사셨지? 우리 아버지는 어떤 그리움으로 살고 있지?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지?'라는 과거로 데리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연극을 보고 있던 청소년들도 눈물을 감추면서 고흐의 삼나무길을 오고가는 듯했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청소년들과 이야기하면서 '자신들도 너무 힘들었다고, 자신들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 우리도 때로는 망각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다고,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미래가 너무 거대한 바위같이 존재한다고'라는 고백을 들었다. 우리는 어쩌면 연극배우들처럼 이 삶이라는 무대에서 매번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누군가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가끔 그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욕망으로 살지 않아도 충분히 나의 자유로움으로 살아도 괜찮은. 누군가의 후원으로 이 기회가 마련되었지만 충만한 삶의 자유 속에서 멘토링하는 친구들과 연극이 끝나고도 한참을 우리의 삶에 대해서 나누고 또 앞으로 미래에 대해서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기로 약속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잡화점'이지 않을까? 기억의 잡화점, 추억의 잡화점 말이다. 사랑을 담고, 마음을 담고, 기쁨을 담아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건내주고, 사랑을 건내주고, 인생을 건내주는.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가족들을 더 이해하고, 그러지 못했지만 용서해야할 사람들을 어서 빨리 용서하는 발걸음으로 옮겨야겠단 생각도 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 배우들의 인생에 대한 찬사와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이런게 선물이 아닐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감동과 마음의 만족함. 복길잡화점을 보고 와서 이제는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그들의 잡화점이 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