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없는 노동_과학커뮤니케이션
주요 주제 : 플랫폼 자본주의와 노동_유령/그림자/감정/미세노동
논의 방향 : 배달, 운송, 데이터라벨링, 크리에이터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플랫폼 자본주의와 노동의 현실 조명
참고문헌 : Jones, Phil. 『노동자 없는 노동: 플랫폼 자본주의의 민낯과 미세노동의 탄생』, 롤러코스터, 2022.
- 서문, 매커니컬터크 미세노동의 탄생 (pp.9-63)
- 지워지는 노동자 (pp.127-156)
여름의 향기가 무더움으로 옷을 갈아 입던 작년 5월 서울대에서 개최된 과학기술포럼에서 오랜만에 '기술철학'을 전공으로 하는 교수님을 만났다. 학부 때는 기술철학 자체가 너무 생소했는데 이제는 어느덧 기술철학의 중심부로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주목해야 했던 것은 기술철학을 전공으로 하는 교수님의 씁쓸한 표정이었다. 그날 포럼의 주제는 우리나라에서만 유명한 '브뤼노 나투루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이었지만, 그 교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포럼이 끝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왜 그렇게 씁쓸한건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 교수님과 같이 비슷한 표정이 되었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보고 거기서 학회를 했는데, 그 학회가 열리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했다. 그 현상을 보면서 현상과 멀리 떨어져서 이론적으로 그 현상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다. 들어보니 결국 오픈AI사에서 방글라데시의 노동자들에게 chatGPT의 명령어를 최대한 누구도 하지 않을 질문을 입력해서 AI의 답변능력을 높이는 것에 대한 학술행사였던 모양이다. 그 행사를 하고 오는 내내 그 노동자들의 무뚝뚝한 대답과 멍한 눈빛, 시시각각 자리를 바꿔가면서 다른 사람과 교체하고 있는 모습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과학기술학회에 오니깐 '브뤼노 라투르는 우리는 한번도 현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라는 주제로 행위자들의 연결되어서 네트워크를 이루는 현상 자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인간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으니, 혀를 끌끌찰 수 밖에. 항상 그렇지만 현실의 문제와 담을 쌓고 이론적인 환상이나 형이상학 놀음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오를 수 밖에 없다. 지금 저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그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논의하는 이론을 들이대고 서로에게 누가 합리적으로 설명했는지 박수를 보내고 있는 현상이라니. 어떻게 할까? 결국은 그 대안을 낼 수 밖에 없다. 오늘에서야 알았지만 이것을 일컬어 '메커니컬터크'라고 부르거나 혹은 '미세노동'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1. 미세노동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자연스럽게 디지털화된 삶을 누리며 언제나 어디서나 콘텐츠를 즐기고 누구와도 연결되면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은 알고리즘의 힘이 아니다. 오히려 푸돈을 받고 육체를 갉아먹는 누군가의 노동때문이다. 이 세상의 진리가 그렇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누리면 그 만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물리적으로 누군가 부유해지면 누군가는 빈곤해진다. 가상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데이터를 많이 가지게 되면 누군가는 데이터를 빼앗긴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물리적인 세계나 디지털의 세계나 '제로-섬'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중개하는 사람들이 '언어'만 긍정적이고 신비함으로 바뀌었다.
세계최초의 '미세노동'(mirowork) 노동 중개사이트인 메커니컬터크(Amazone Mechanical Turk)가 공식적으로 오픈한 날 그 유명한 아마존의 회장인 제프베조스는 말한다. "그건 한마디로 미세노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단돈 몇 센트로 사진 속에 삶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을 맡길 수 있는 거죠"라고 말이다. 메커니컬터크와 같은 사이트에서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노동의 개념을 제공한다. 인공지능을 훈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미지 속의 사람에게 태그를 붙이는 일과 같은 단 몇 분, 몇 초 안에 끝나는 짧은 작업들을 중개하는 노동을 '미세노동'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기업들은 인공지능의 안정화와 정확성을 위해서 기존의 정리되지 않은 데이터를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태그를 붙이고 분류하는 작업을 시킨다. 이른바 '인간지능 작업'(HIT, Human intelligence task)라고 하는 대형자겁을 다수의 초소형 작업으로 나누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방식이다. 의뢰인이 메커니컬 테크에 HIT를 등록하면 수 많은 Turker로 불리우는 노도자들이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얻듯이 서로 경쟁하면서 일에 지원한다. 그러면 노동의 시작되어서 아주 단순한 작업들을 흐리멍텅한 눈으로 계속해서 응시하면서 클릭을 한다. 이 과정에서 중개하는 플랫폼들은 20%이상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들의 하루종일 일해도 받는 금액은 하루에 2달러가 되지 못한다. 1시간에 2달러는 받을 수는 있겠지만, 1시간을 연속으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에 2달러를 벌기 위해서 하루종일 대기를 타야 한다.
최저빈곤선 1.9달라와 하루시급 2달러의 메커니컬터크의 삶은 똑같다.
중개하는 플랫폼은 플랫폼자본주의의 특화된 형태로 자본가에는 각성제가 되고 노동자에게는 마취제가 된다. 애픈Appen, 스케일Scale, 클릭워커Clickwork와 같은 플랫폼 기업이 대표적인 예로, 이들은 아마존의 테크니컬터크의 모델을 모방해서 정제된 데이터와 저렴한 노동력을 거대 공룡기업인 페이스북과 구글, 심지어 미국방성에까지 제공한다. 이들은 노동경제에서 밀려란 소위 '잉여인간'들을 찾아서 IT기업들에게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한다. 의뢰받은 노동자들은 짧은 시간만 고용되어서 데이터를 생성하기 때문에 아주 빠른시간에 짧은 노동을 끝내고 취업과 실업상태를 오가면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한다.
미세노동은 전지구적 노동의 위기를 꼬아버리는 문제아다
월드뱅크와 같은 자본주의를 미래의 대안으로 생각하면서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조직들은 언제나 깔려 있는 전제는 '유효노동인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이다. 놀고있는 유휴 인적자본들을 활성화시켜서 새로운 노동을 맡기면 가계 부채, 빈민가의 증가, 평균임금의 저하, 경제 위기와 같은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결국 '미세노동'도 미래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포함시켰다. 따라서 사람들이 어떤 노동을 하든지, 어떤 신세로 전락하든지 일단 '노동상태'만 된다는 얄팍한 논리로 사람들을 모두 알고리즘을 만들어주는 메커니컬 테크로 만들고 있다.
문제는 다양한게 심각하다. 미세노동 혹은 '클릭노동'으로 불리는 이러한 노동은 아무리카 케냐의 다다브 난민들이 동원되기도 하며 레바논의 샤틸라 안민촌에서도 대부분의 난민들을 알고리즘에게 자동인식을 가르치는 노동자로 전략시킨다. 이른바 '새로운 빈곤포르노'가 등장한 것이다. 빈곤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노동의 방식을 제공함으로써 노동인구가 되기도 하고 푼돈이지만 생산력을 기를 수 있다는 거짓 희망으로 인도하고 있다. 난민들은 IT산업에 동원되어서 자신들이 스스로 데이터의 진원지가 되면서도 데이터를 정제하면서 또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 낸다. 자신이 어떤 데이터를 만지고 이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디지털 인질'의 되어서 살아있는 모세혈관의 압력을 위해서 손가락의 클릭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범산복합체(prison-industrial cmplex)가 등장하기도 한다. 범삼복함체란 잉여인구인 주로 흑인이 교정시설에 수감되어서 형벌의 일환으로 무보수에 가까운 보상을 받고 강제로 일하는 시스템이다. 이전에는 이런 노동이 밭을 갈거나, 바위를 깨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클릭경제의 하수인으로써 '가상의 조립라인'에 투입되어서 데이터를 클리닝 하거나, 라벨링을 함으로써 산업의 역군이자 교정시설의 모범생이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오마주하면서 전유하지면 '은밀한 자동화 장소'에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른체 자신의 인생과 시간을 들여서 누군가에게 데이터를 제공하고 알고리즘을 정교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간략하게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세대를 구분하자면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으로부터 노동하며 생산물을 얻게된 시기를 지나면 2차 혁명으로 '제조업'의 혁신이 온다. 한나아렌트의 구분에 의하면 이러한 '작업의 결과로서 제조물인 인공물'은 인간보다 오래살면서도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편리함을 준다. 인간은 제조되는 것이 어떤 영향력과 어떤 기간동안 살아남아서 영향력을 미칠지 모르지만 일단은 다량으로 생산하고 소비한다. 그러다가 결국 1970년대 오일쇼크를 맞으면서 자연스럽게 제조업이 주춤하게 된다. 사실 제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공산품은 인류가 몇 번을 쓰고도 남을 만큼 넘쳐났다. 공급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공급을 만들기 위한 '노동력'은 마르크스이 말이 진리처럼 여겨질 정도로 공장노동자로 도배를 했다.
그러나 1970년대를 지나서 공급의 과잉이 일어나면서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에 정리된 '워싱턴컨센서스'이후에는 제조업의 위기가 찾아왔다. 무분별하게 생산하는게 능사가 아니라 효율적이면서 경쟁력있는 상품만 살아남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제조업으로 미친듯이 제품을 상품으로 뽑아내던 경제가 타격을 입게 된다. 급하게 달리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가장 빠르게 달리던 아시아의 네 마리의 용들이 타격을 입었고 그 중에 하나인 한국은 IMF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외환위기를 겨우 넘겼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급브레이크는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의 몰락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퍼지면서 1970년 미국의 금태환 능력을 상실한 달러화의 위세보다 더 빨리 달리던 미국을 불러 세웠다.
이후에 제조업을 중심으로 노동은 다른 옷을 입게 되는데 그게 바로 플랫폼 노동이다. 자본가들 중에서도 누군가 개발한 것들을 따라가지 않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이들이리고 불리우는 '창조계급으로서 혁신가'들은 자본가정신으로 머리띠를 띄고 새로운 경제방식을 창안했다고 자랑했다. 제프베조스나 마크주커버그와 같은 CEO들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플랫폼으로 구현하고 플랫폼이 만들어지자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실제 물건을 팔았으나 페이스북은 사람들의 관계도와 선호도를 가지고 많은 기업들에게 알고리즘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곧 이들은 거대한 공룡기업으로 부상했고 이들의 성장만큼이나 거대한 명성이 된 플랫폼 자본주의는 미세화된 방식으로 새로운 미시세계를 창조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선호와 클릭수로 데이터를 만들어어서 그것을 재판매하거나 재구성하여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내는 세계 말이다.
주식이나 비트코인이나, 부동산이나 이것을 '시장'으로 바꾸면 모든 것들은 '제로-섬'시장이 된다. 애초에 시장이라는 것은 '한정된 자원'을 중심으로 등가교환의 원칙으로 1:1 교훈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들을 일부러 값을 매겨서 거래되는 가격을 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방식으로 '노동'을 시장으로 바꾸면 노동의 가치는 기준에 따라서 거래되는 가치가 달라지게 되어있다. 제조업이 횡횡하던 시기에는 '노동시간'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준이었다면 플랫폼자본주의에서는 '데이터생성'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준이 된다.
자신이 만들어낸 데이터만큼 자신의 존재가 입증되며, 플랫폼 자본주의의 범주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데이터가 알고리즘에 반영되는 것 만큼 자신의 가치가 입증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데이터를 생성하지만 점점 자신의 고유함과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데이터들을 돈으로 치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프로세스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새로운 클릭을 유도하는 알고리즘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모든 것들이 등가교환인 것처럼 거짓말하는 세계에서는 '역사의 전철수들이 그어놓은 철로'로써 제프베조스나 마크주커버그와 같은 CEO들의 전략이 가치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그들도 정착 이것이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 모른다. 마치 마크 주커버그를 주연으로 한 영화 '소셜네트워크'의 한 장명처럼 말이다.
마크, 여기서 멈춰야 겠어.
우리는 지금 우리가 만든 것이 어떤 세상을 만들지 몰라
_영화 '소셜네트워크'의 한 구절
등가교환은 사실 가치와 가치가 교환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똑같다. 자크라캉이 이야기한 것처럼 상상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실재계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 가상의 노동은 언제나 실재의 노동과 등가교환이 되며 가상의 가치가 올라가면 '제로-섬'인 세상에서는 더 많은 육체노동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어 있다. 지금은 비록 플랫폼 노동이 난민이나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데이터 라벨링을 시키고 있겠지만 앞으로는 모든 국민이 언제나 플랫폼 노동자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AI기술이 발전해서 노동이 줄어든게 아니라 서비스업이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방식을 택하면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미세노동'이며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모든 국민들이 미세노동자로써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UCLA의 마이클 최 교수는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마이클최, 2014)에서 게임이론으로 본 조정문제와 공유지식에 대해서 논의한다. 게임이론은 상대방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와 모르고 있는 경우로 나누어서 만약 알고 있다면 서로 승리하지만 모르고있다고 가정할 때는 결국 파멸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이 책에서 마이클 최는 결국 사람들이 '공유지식'을 통해서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가 생길 때 광장에 모인다고 말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 동일할 때 '은밀한 자동화의 장소'는 파괴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시대를 주름잡는 마크 주커버그, 제프베조스, 일론 머스크, 팀 쿡, 빌 게이츠과 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그들이 무시하는 일반 대중들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일반 대중이 어떻게 알았는가 혹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은밀하게 사람들의 생명을 빨아먹는 행위는 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녹화되지 않지만 그냥 설치한 감시카메라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니 플랫폼 노동자들이 하는 일들이 어떻게 유통되고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면서 어떤 방식으로 가공되는지를 공유지식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어쩌면 '디지털 커먼즈'운동의 핵심일수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당신도 알게 된다면.
반대로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내가 알게 된다면. 항상 '필터링'을 통해서 정보의 독점이든 데이터의 독점이든 자신들 만의 '하나로 귀결되는 세계'를 '제로 투 원'으로 정리한 피터 틸의 논의를 뒤집어야 한다. 제루 투 원이라는 혁신가인것 같지만 독점을 부축이는 사람들로 부터 우리는 원투 제로로 내려가서 모든 사람과 데이터를 공유하면서 다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응 방식을 독점한 '플랫폼 자본주의'가 아니라 노동과 정신이 만다는 새로운 '서비스업'이 가능한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시대의 흐름은 계속해서 바뀐다. 어떤 나라가 흥하는가 하면 어떤 나라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과거에만 존재하는 제국의 영광을 관광지로 바귀어서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능하면 모든 사람들을 자원으로 바꿔서 생존을 일어가는 나라도 있다, 혁신가들의 나라라면서 어떻게 하면 '은밀한 자동화 장소'를 상대방 나라에 심어 놓을까를 고민하는 나라도 있다. 그러는 가운데 소외된 사람들은 항상 그늘속으로 사라진다. 대부분은 육체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배달에서부터 알고리즘 생성까지 어떤 방식으로든 육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노동은 오히려 범죄처럼 느껴질만큼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그늘이 짙게 보여지고, 그늘에 가리워진 사람들의 눈물이 보인다.
자본주의는 항상 시대마다 다른 옷을 입는다. 1.0에서 5.0까지. 자신의 이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자본'이 항상 중심이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빨아 들이고 모든 것을 자본으로 바꾸어 버린다. 나도 가끔 누군가 도와달라고 하거나 강의를 해달라고 하면 '얼마에요?'라는 말이 튀어 나올 것도 같다. 거슬러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자본화되지 않으면서, 상품화되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이 마르고, 소외된 사람들의 어깨가 펴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거하려고 철학도, 경영학도, 정치학도, 국제학도 하는 거다. 내가 시작한 지점을 놓치면 안된다. 더욱 열심히 칼을 갈아야 한다. 잘 벼린 칼이 되어야지. 플랫폼 노동의 미래를 미세노동이 치지 하지 않도록, 이 모든 것들을 피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