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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Sep 20. 2024

현상의 구원으로써 천문학

제임스 T. 쿠싱. 물리학의 역사와 철학_4장 관측천문학과 톨레미의 모델

0. 들어가기


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철학적 논의는 실제적인 과학의 역사에 등장하는
특징들에 기초해야 한다.


고대인들은 어떻게 우주를 이해했을까? 지금은 허블망원경이나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실제로 가보고서 사실에 근거해서 이해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했던 고대에는 간단한 실험들로 관측한 것들을 가지고 우주를 이해했다. 고대의 줄기찬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서 중세시대를 지나가면서 비로소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과 공전의 개념, 자전의 개념 그리고 태양계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과학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과학을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서 사람들이 삶에 대한 철학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의미를 찾는데 있어서 과학적인 발견은 예로부터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오늘은 관측천문학의 탄생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적인 모델을 살펴보자. 이를 통해서 지금 나는 우주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우주의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보고자 한다.


4원소설을 적용한 우주에 대한 이해



1. 초보적 관찰은 정말 초보였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곳인 '천국'을 그려보면서 '하늘 자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철학은 언제나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둘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존재론과 인식론의 합이라면 인간이 서 있는 지구에 대한 이해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을 것만 같은 하늘 즉 천구에 대한 관찰이 천문학의 시작이었다. 초기에는 관할할 수 있는 도구가 부족했거나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긴 말뚝을 박고 하루 동안 그 그림자를 관찰했을 때, 나타나는 관찰결과들을 가지고 천구를 이해했다. 하루동안에 그림자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서 계속 변한다. 아침과 저녁에 당연히 그림자가 가장 길고 한낮에는 해가 정오에 있기 때문에 가장 짧다. 그리고 막대그림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실제 지구는 반대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인다고 인식하였다.


1년의 절기인 춘분과 추분은 봄의 시작과 가을의 시작을 나타내고 이 두 시기에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졌다. 연속되는 정오들 간의 시간차가 우리가 평균태양일로서 태양일을 정의하는 전통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춘분은 오늘날로 치면 3월 21일정도가 되고 추분은 9월 23일정도가 된다. 그림자의 길이를 통해서 계절의 변화를 이해했던 것이다. 동지는 정오의 그림자가 가장 긴 날이었고 하지는 정오의 그림자가 가장 짧다. 그 이야기는 태양과 더 가까이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여름의 시작과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림자의 길이에 따라서 계절의 변화를 연결하고 이에 따라서 자신들이 살아가는 생활의 흐름들을 맞췄던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천체가 움직이고 지구는 멈춰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자리를 통해서 계절과 온도를 연결했다. 이후에 살펴보겠지만 여기에 천문학과 기하학이 연결되면 거리를 계산할 수 있고 천체의 크기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별자리와 달력의 관계


별자리의 이해

메소포타미아 천문학 : 기원전 2천 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천문학이 발달하며 사람들은 하늘을 12개의 별자리로 나누기 시작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태양의 연간 이동 경로인 '황도'를 기준으로 별자리를 설정했고, 이를 농업과 계절 변화에 연결시켰다.

고대 그리스와 점성학 :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인들이 바빌로니아의 천문학 지식을 받아들이고, 황도를 360도로 나누어 12개의 별자리를 각각 30도씩 차지하게 했다. 이 별자리는 사람의 성격과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졌다.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제국 :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 그리스 천문학과 점성학이 널리 퍼지며 로마 제국에서도 12궁 체계가 확립되었다. 이 체계는 종교적, 철학적 전통과 연결되었다.

중세 이슬람 천문학 : 이슬람 천문학자들이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을 발전시키며, 별자리를 측정하고 예측하는 방법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다.

근대 이후 : 과학적 천문학이 발달하면서 별자리 체계는 과학과 분리되었으나, 여전히 점성학은 별자리가 개인의 성격과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을 이어갔다.


두 가지 영역모델은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회전하는 2가지의 구에 대한 이야기였다



365일이 1년이 되는 개념은 고대 천문학과 인간이 태양의 주기를 관찰하면서 발전했다. 그 기원은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그리스 등 다양한 문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1년을 365일로 정한 기원은 주로 태양의 주기와 계절의 변화에 기반한다. 태양력은 1년을 몇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과 윤달, 윤년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따라서 달라졌다. 간단하게 역사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지속적으로 짚고 넘어가자면 인간이 자연을,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이렇게 천문학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이고 계몽주의시대를 넘어가지 전까지 천문학과 점성술은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달력의 역사

고대 이집트 :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범람과 계절 변화를 관찰하면서 1년이 태양의 주기에 따라 약 365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태양력(솔라 캘린더)을 사용하여 태양이 같은 위치에 돌아오는 주기를 계산했으며, 이 주기를 365일로 설정했다. 이집트력은 12개월로 나누어졌으며, 각 달은 30일로 구성되었고, 나머지 5일은 추가적인 축제일로 포함되었다.

바빌로니아와 그리스 천문학 : 고대 바빌로니아인들도 태양과 별의 움직임을 관찰해 달력을 발전시켰다. 그리스 천문학자들도 태양의 주기를 365일로 계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력과 로마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1년이 태양이 황도를 한 바퀴 도는 주기라고 정의했다.

율리우스력과 365.25일 :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 천문학자인 소시게네스의 조언을 받아 율리우스력을 만들었으며, 이때 1년을 365일로 정하고, 4년마다 하루를 추가하는 윤년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태양의 주기가 실제로는 365일보다 약간 길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태양의 주기는 약 365.25일로, 4년마다 하루씩 추가하면 이 오차를 보정할 수 있었다.

그레고리력 : 율리우스력의 오차가 쌓이면서, 16세기에는 1년이 실제 태양의 주기와 맞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58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그레고리력을 도입했다. 그레고리력은 1년을 365일로 정하고, 윤년을 도입해 태양 주기와 정확히 일치하도록 조정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달력이 바로 이 그레고리력이다.



2. 천구의 이해


태양에 대한 이해와 함께 별에 대한 이해를 연결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 당시만 해도 지구가 멈춰있고 태양을 비롯한 별들이 운동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대한 천구를 상상하게 되었고 이것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한 논쟁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지나고 몇일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북극성이 있었다. 그래서 북극성을 중심으로 지구상의 관측지점에서 북극성이 수평선 위로 얼마나 높이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서 위도가 설정되었다. 북극성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늘의 모든 별들이 15도씩 움직이는 것을 기본으로 지구와 지구 주변의 천재의 거리와 공간을 계산했다. 파리는 위도 49도인데 이것은 수평선 상에서 북극성이 49도정도 위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ㄴ

에라토스테네스가 계산한 지구의 크기

별들의 모습과 하늘을 가로지르는 이동이 아무런 변화없이 스스로 반복되기 때문에, 고대인들이 별은 지구를 중심으로 일정한 비율로 회전하는 거대한 구인 천구에 패턴을 이루면서 박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여기에서 이심과 주전원에 대한 개념이 등장한다. 이심(異心)과 주전원(周轉圓)은 고대 천문학 이론에서 사용된 용어로, 주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천동설)과 관련이 있다. 이 이론은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복잡한 기하학적 모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심(異心, Eccentric)

이심은 천체의 궤도 중심이 지구와 일치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원형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라, 궤도 중심이 지구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는 개념이다. 이심을 통해 고대 천문학자들은 행성들이 일정하지 않은 속도로 하늘을 움직이는 것을 설명하려 했다. 이심은 지구와 다른 행성 간의 속도 변화와 위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예: 태양이나 행성의 궤도 중심이 지구에서 약간 벗어나 있음.

목적: 천체가 일정하지 않은 속도로 하늘에서 움직이는 이유를 설명함.


주전원(周轉圓, Epicycle)

주전원은 행성이 큰 원(주원, Deferent)을 따라 도는 동시에, 그 행성 자체가 또 다른 작은 원(주전원)을 따라 도는 개념이다. 이 이론은 행성의 역행 운동(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던 행성이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고대 천문학자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행성들이 일정하게 움직이지 않고, 작은 원을 그리며 역행하는 현상을 주전원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예: 행성이 큰 원을 따라 도는 동시에, 작은 원을 따라 도는 모습.

목적: 행성의 역행 운동을 설명함.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이심-주전원 모델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이론)은 고대 천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는 행성들의 복잡한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이심과 주전원을 결합한 모델을 사용했다. 이 모델은 행성들이 왜 속도가 변하고, 가끔씩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이심-주전원 모델은 고대 천문학자들이 행성의 복잡한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행성의 역행 운동과 속도 변화를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행성의 복잡한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 천체들이 일정한 주기로 움직이지 않고, 특히 외행성들이 하늘에서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를 설명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는 단순한 지구 중심의 원형 궤도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모델을 고안했다.

천체의 속도 변화 설명 : 행성들이 하늘에서 일정하지 않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심(異心)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천체의 궤도 중심이 지구에서 벗어난 상태로, 이를 통해 행성의 속도 변화가 설명되었다.

주전원으로 역행 운동 설명 : 행성의 역행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周轉圓) 개념을 도입했다. 주전원은 행성이 큰 원(주원)을 따라 도는 동시에 작은 원(주전원)을 따라 도는 운동을 하도록 설정함으로써, 행성의 복잡한 움직임과 역행 현상을 설명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전통적인 신념을 유지하면서도 천체 운동을 설명하려는 필요에 따라,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심과 주전원을 도입한 복잡한 기하학적 모델을 만들었다.



3.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크기 계산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크기 계산은 기원전 3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둘레를 계산한 중요한 업적이다. 그는 기하학적 원리와 해시계를 사용해 비교적 정확하게 지구의 크기를 측정했다. 그의 방법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 크기를 이렇게 계산한 이유는 고대 그리스 과학자들이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당시 알려진 기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단순한 관찰과 수학적 원리를 결합해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려고 했다. 그의 계산 방식에는 몇 가지 주요 이유와 개념이 반영되어 있다.


에라토스테네스와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미 지구가 구형이라고 믿고 있었다. 피타고라스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지구가 평평하지 않고 구형임을 주장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달의 월식 동안 지구의 그림자가 둥글게 나타나는 것, 항해 중 배가 멀리서 점차 보이지 않게 되는 현상 등을 근거로 지구가 구형이라고 결론 내렸다. 따라서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둘레를 계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태양이 지구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고 가정했다. 이로 인해 태양에서 오는 빛은 사실상 평행하게 지구에 도달한다고 생각했다. 이 가정 덕분에, 그는 두 도시에서 태양광이 비추는 각도 차이를 지구의 곡률과 연결 지어 계산할 수 있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두 도시 사이의 거리와 그 각도 차이를 이용해 기하학적 계산을 했다. 알렉산드리아에서의 태양 각도는 지구 중심에서 측정한 각도 차이를 나타내므로, 이 각도가 지구 전체의 360도 중 몇 도인지를 계산할 수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 사이의 각도 차이는 7.2도였으며, 이는 360도의 1/50에 해당한다. 두 도시 간의 거리(약 5,000 스타디아)를 알았기 때문에, 이 거리를 1/50로 나눈 결과를 이용해 전체 지구 둘레를 추정할 수 있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복잡한 천문학 장비 없이도, 우물에 비친 태양광선의 그림자나 해시계와 같은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있었다.


그는 태양의 위치 차이와 두 도시 간의 거리만으로도 지구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과학적 사고와 기하학적 계산을 통해, 지구의 곡률과 크기를 직접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했으며,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접근이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기하학적 계산으로 바꾸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또한, 관측한 각도와 거리를 사용해 전체 지구 크기를 추정하는 간접적인 계산법을 도입했다. 이는 추론과 계산을 통해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는 현대 과학적 방법론의 초기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계산 과정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오늘날 아스완)의 차이점 관찰 에라토스테네스는 이집트의 두 도시,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주목했다.          시에네에서는 태양이 여름 하지 때 정확히 머리 위에 위치하여, 우물에 비치는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반면, 같은 날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태양이 머리 위에 있지 않아서, 해시계에 그림자가 생겼다.      

    그림자의 각도 측정 에라토스테네스는 하지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해시계의 그림자를 이용해 태양이 지면에 만드는 각도를 측정했다. 그 각도는 약 7.2도(360도의 1/50)였다. 즉, 태양이 시에네에서는 직각으로 비추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는 7.2도 기울어져 비춘다는 것을 알아냈다.  

    두 도시 간의 거리 계산 그는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 간의 거리가 약 5,000 스타디아(약 800km)임을 알고 있었다. 이 거리는 당대 상인과 여행자들의 기록을 통해 추정되었다.  

    지구의 둘레 계산 에라토스테네스는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 간의 각도가 360도의 1/50이라는 점에서, 지구 전체 둘레를 5,000 스타디아에 50을 곱해 계산했다.          계산식: 5,000 스타디아 × 50 = 250,000 스타디아      이를 현대 단위로 환산하면 약 40,000km가 된다. 이는 오늘날 알려진 지구의 둘레인 약 40,075km와 매우 근접한 수치이다.      



4. 아리스타쿠스의 태양중심 모델


아리스타쿠스의 태양중심 모델은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지구를 포함한 모든 행성들이 그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한 초기의 혁신적인 이론이었다. 이는 당시 널리 받아들여졌던 지구중심설을 뒤집는 사고였으며, 아리스타쿠스는 이를 통해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려 했다. 그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주장하면서, 이러한 운동이 계절 변화와 천체들의 복잡한 움직임을 설명하는 열쇠라고 보았다. 지구가 자전함으로써 낮과 밤이 생기고, 지구가 태양을 공전함으로써 계절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다. 이 주장은 이후 근대 천문학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리스타쿠스는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크다고 계산했으며, 지구보다 훨씬 큰 태양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달과 지구, 태양의 크기와 거리 차이를 연구하여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의 계산은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인식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철학적, 종교적 이유로 인해 널리 수용되지 않았다. 고대의 철학자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지구중심설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컸기 때문에, 태양이 중심이라는 생각은 도전받았다. 또한, 당시의 과학적 기술로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관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리스타쿠스의 모델은 증거 부족으로 인해 외면당했다.

아리스타쿠스의 태양중심설에서 사용된 계산 방법은 주로 태양과 달의 크기 및 거리를 추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는 달의 위상과 월식을 이용해 태양과 지구, 달 사이의 상대적 거리와 크기를 추정하려 했다. 그의 계산 방법은 현대적 기준으로는 부정확했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 아리스타쿠스는 달이 반달 상태일 때, 태양, 지구, 달이 이루는 각도를 이용해 태양과 달의 상대적인 거리를 계산하려 했다. 그는 반달일 때 태양과 달이 지구에서 볼 때 직각을 이룬다고 가정하고, 그 각도 차이를 계산했다. 이 방법을 통해 그는 태양이 달보다 약 19배 더 멀리 있다고 추정했는데, 실제로는 태양이 약 400배 더 멀리 있다는 점에서 이 계산은 부정확했다.


아리스타쿠스는 월식을 이용해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드리워지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지구의 크기를 추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달과 태양의 크기를 계산하려 했다. 그는 지구의 그림자가 달의 크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태양은 지구보다 훨씬 큰 천체로,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 태양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타쿠스는 달의 크기와 거리를 먼저 추정한 후, 그 정보를 바탕으로 태양의 크기를 추정하려 했다. 그는 월식 동안 지구 그림자의 크기와 달의 궤도를 고려해 태양과 지구의 상대적인 크기를 계산했다. 그 결과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더 크고, 따라서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타쿠스의 계산 방법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정확한 값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특히 삼각법의 부정확한 적용과 실제 각도 측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태양의 거리가 실제보다 훨씬 짧게 계산되었으며, 지구와 태양의 크기 비율도 과소평가되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관찰과 수학을 결합해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려는 시도로, 이후 천문학 발전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했다.



5. 행성의 존재론


고대 천문학은 수학과 데이터 분석의 기초적인 원리를 통해 우주에 대한 이해를 확립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대 문명에서는 천문학적 사건을 관찰하고, 이를 기록하며 패턴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우주를 이해하려 했다. 고대 천문학자들은 별, 행성, 태양, 달의 위치와 운동을 오랜 기간 동안 관찰하여 기록했다. 이 관찰 데이터는 현대 과학의 초기 형태로, 수학적 패턴을 발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바빌로니아 천문학자들은 달과 태양의 운동을 수백 년 동안 기록하고, 그 움직임에서 주기성을 발견했다. 이러한 데이터는 천문학적 주기, 특히 일식이나 계절 변화 등을 예측하는 데 사용되었다.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들은 수학적 모델을 통해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려 했다. 그 중 대표적인 예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제시한 천동설이다. 그는 수학적으로 복잡한 에피사이클(행성이 궤도 안에서 또 다른 작은 원을 그리며 운동)을 제안하여 행성의 역행을 설명하려 했다. 이 모델은 고대 관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행성들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려는 초기 시도였다. 또한, 고대 마야 문명은 달력 제작에 있어 매우 정교한 수학을 사용했다. 마야 달력은 태양 주기와 행성 주기를 정밀하게 맞추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를 통해 중요한 천문학적 사건을 예측했다.


고대 천문학자들은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기 위해 기하학과 삼각법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에라토스테네스는 삼각법을 사용하여 지구의 둘레를 계산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 두 도시에서 태양의 그림자 길이를 비교하여 태양의 고도 차이를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며 그 둘레를 추정했다. 이는 천문학적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처리하는 중요한 기법 중 하나였다. 고대 천문학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학적 모델의 개선을 이끌었다. 코페르니쿠스는 고대 그리스의 천동설에 도전하며 지동설을 제안했다. 그는 천체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태양 중심의 우주 모델이 더 정확하게 데이터를 설명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과정은 천문학적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고대 천문학자들이 남긴 수학적 모델과 관측 데이터는 현대 과학의 초석이 되었다. 그들은 실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발견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수학적 방법론을 개발했으며, 이는 현대 천문학이 발전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고대 천문학의 원리들이 더욱 정교해져, 우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고대 천문학은 수학적 분석과 데이터 수집을 통해 우주에 대한 초기 이해를 구축했으며, 이러한 방법론은 현대 과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볼 점은 고대 천문학에서 수학과 데이터를 활용한 천체 관측은 행성에 대한 이해를 크게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고대 문명은 행성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 주기성과 규칙성을 수학적으로 분석하여 행성의 본질을 파악하려 했다. 이러한 이해는 현대 천문학의 기초가 되었으며, 행성에 대한 이해를 점진적으로 확장시켰다.


고대의 행성이해

고대 행성 관찰과 주기성 발견 : 고대 천문학자들은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기록했다. 그들은 행성이 밤하늘에서 별들 사이를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특히 다른 별들에 비해 행성들은 역행(Retrograde Motion)이라는 특이한 운동을 보였다. 이러한 역행 운동은 초기 천문학자들에게 큰 수수께끼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바빌로니아 천문학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행성의 주기성을 기록했다. 이를 통해 행성들의 주기를 예측하고, 천문 현상을 정기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들의 수학적 기록은 매우 정확했으며, 이는 후대 그리스 천문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에피사이클 :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천동설을 제안했다.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모든 행성이 원형 궤도로 지구를 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델로는 행성의 복잡한 움직임, 특히 역행 운동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에피사이클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에피사이클은 행성이 큰 원(천구)를 따라 움직이는 동시에, 그 큰 원 위에서 또 다른 작은 원을 따라 움직인다는 개념이었다. 이 수학적 모델을 통해 행성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었고, 고대 세계에서는 천체의 복잡한 움직임을 설명하는 중요한 모델로 받아들여졌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 중세 후반,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는 기존의 천동설에 도전하며 지동설을 제안했다. 그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수학적 모델을 통해 이 주장이 더 논리적이고 정확하게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행성의 역행 운동을 설명하는 데 획기적이었다. 지구도 다른 행성들처럼 태양을 중심으로 돌기 때문에, 지구가 다른 행성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때 그 행성이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설명을 제시했다. 이는 수학적으로 더 간단하고, 실제 관측 결과와도 잘 맞았다.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 :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바탕으로, 요하네스 케플러는 더 나아가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수학적 법칙을 세웠다. 그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를 그리며 공전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을 제안했다. 행성은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그리며 움직인다. 행성이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더 빠르게 움직이고, 멀어질수록 느리게 움직인다.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궤도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이러한 법칙은 수학적으로 매우 정확했으며, 현대 천문학의 기초가 되었다.

행성의 질량과 중력 이해 : 아이작 뉴턴은 케플러의 법칙을 바탕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안하며 행성의 움직임을 더욱 정교하게 설명했다. 그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 이유가 태양과 행성 간의 중력 때문이라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뉴턴의 중력 이론은 행성의 궤도뿐만 아니라, 천체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크게 발전시켰다.

현대 천문학의 행성 이해 : 오늘날, 고대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수학적 패턴과 관측 데이터는 현대 천문학의 초석이 되었다. 우리는 행성이 단순히 태양 주위를 도는 천체가 아니라, 각기 다른 질량, 구성, 기후 조건을 가진 독립적인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외계 행성 탐색이 활발해지면서 태양계 외부에 있는 수많은 행성들을 발견하고 있다.



6.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모델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 즉 천동설(Geocentrism)은 기원전 4세기경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정교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2세기경에 이를 집대성한 책 알마게스트에서 자신의 우주론을 제시했다. 이 우주론은 그 당시의 관측 데이터를 설명하는 데 적합한 모델로 받아들여졌으며, 중세와 르네상스 초기까지 서양 천문학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태양, 달,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원형 궤도로 돈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모델은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에피사이클(Epicycle)과 편심(Eccentric)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이 모델은 천문학적 관측 데이터를 상당 부분 설명하는 데 성공했으며, 당시로서는 가장 정교한 우주론이었다.


지구중심모델

지구 중심 우주: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며,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

원형 궤도: 천체들은 완벽한 원형 궤도로 움직인다고 가정했다. 이는 당시 철학적 신념으로, 하늘의 움직임은 완벽하고 영원히 반복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에피사이클: 행성들은 큰 원을 따라 지구 주위를 돌면서, 그 큰 원 위에서 작은 원(에피사이클)을 그리며 추가적인 운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 모델은 특히 행성의 역행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편심: 행성의 궤도 중심이 지구와 일치하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해, 궤도의 중심이 약간 벗어나 있다고 가정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의 한계

복잡성: 행성의 역행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에피사이클과 편심 개념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은 행성들의 움직임이 관측되면서, 이를 설명하기 위해 추가적인 에피사이클을 도입해야 했고, 우주론 자체가 점점 복잡해졌다.

관측의 불일치: 관측 기술이 발전하면서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델이 실제 관측 데이터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행성들의 운동을 더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되면서 이 모델의 한계가 점점 더 명확해졌다.

지구 중심의 문제: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는 가정은 점차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천문학자들은 태양 중심의 모델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나, 당시에는 이를 증명할 과학적 수단이 부족했다.


우주론의 영향력

중세 천문학에 미친 영향: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은 이슬람 천문학자들에 의해 보존되고 발전되었으며, 이후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특히 중세 기독교 신학은 이 우주론을 수용하여 신학적 해석과 결합시켰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개념은 인간 중심의 우주관과 잘 맞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받아들여졌다.

르네상스 과학 혁명: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르네상스 시기까지 서양 학계에서 큰 권위를 가졌으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등장하면서 그 권위가 점차 약화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모델을 제안했고, 갈릴레오와 케플러에 의해 발전된 후, 뉴턴의 만유인력 이론으로 최종 확립되었다. 이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을 대체하는 근대 천문학의 기초가 되었다.

과학적 사고의 전환: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델은 과학적 사고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다.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수학적 모델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그의 연구는 과학적 접근 방식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후 천문학자들은 그의 방법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며, 더 나은 이론을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은 고대에서 중세까지 천문학의 표준으로 작용했으나, 그 한계가 점점 더 드러나면서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천체 운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최초의 시도로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7. 현상의 구원


플라톤은 우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티마이오스'에 적어 놓았다. 그에 따르면 지구는 완벽한 구로 창조되었고 자연적인 균일한 원운동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플라톤주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서 제시되었고 오랫동안 진리처럼 여겨졌다. 그리스의 철학자 심플리치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해설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플라톤은 천체의 움직임은 원형이고 균일하며 항상 규칙적이라는 원칙을 정했다. 그 결과 그는수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내게 되었다. 어떠한 종류의 균일하고 완벽하게 규칙적인 원형 운동이 천체의 외형적 움직임과 들어맞는 가설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대해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마게스트'에서 플라톤의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이제,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소개될 시점인데, 해와 달의 예에서처럼 다섯개의 행성의 예에서 모든 표면적ㅇ니 불규칙성은 규칙적인 운동과 원운동으로서 마늗ㄹ어진다. 왜냐하면 이런 것이 불균형과 무질서가 없는 신성한 것들의 본질에 적절하기 때문에 철학의 수학적 이론에 속하는 것으로서의 이 목적의 성공적인 성취는 매우 위대한 일로 간주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렵고 아직 누구에 의해서도 적절한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이러한 플라톤적 전통의 천문학은 실제적인 현실을 설명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었고 단지 수학적인 설명을 하려는 것이었다. 천제는 신성한 본질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지구에서 발견되는 규칙들과는 다른 규칙을 가진다. 이 둘 사이에는 우리가 천체의 물리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해주는 그 어떤 연결고리도 없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는 고대 그리스에서 천문학과 수학을 융합한 중요한 저작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그 예측을 위한 수학적 모델을 제시했었다. 이 책은 당시 천문학의 기본 교과서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중세와 르네상스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로,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지구중심설을 주장했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한 원 궤도를 따라 움직였으며, 이 이론은 당시의 관측과 상당히 잘 맞아떨어졌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려 했었다. 두 번째로, 그는 천구의 개념을 도입하여 별과 행성들이 회전하는 구조를 설명했었다. 하늘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구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구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 별들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정교하게 묘사하려 했었다.



세 번째로, 알마게스트에서는 행성의 복잡한 궤적을 설명하기 위해 이심원과 주전원을 사용했었다. 주전원은 행성이 작은 원을 그리며 더 큰 원을 따라 움직이는 방식으로, 이로써 행성의 역행 운동을 설명하려 했었다. 이를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은 관측된 행성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었었다. 네 번째로, 프톨레마이오스는 별들의 위치를 계산하고 기록한 천문표를 제시했었다. 이를 통해 별의 위치와 밝기를 체계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으며, 이는 후대의 천문학자들에게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었다. 그의 천문표는 천체의 위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큰 기여를 했었다. 마지막으로, 프톨레마이오스는 수학적 도구와 공식을 통해 관측과 이론을 연결하려 했었다. 특히, 삼각법을 활용해 천체의 거리를 계산하는 방법을 제안했으며, 이를 통해 천문학이 더욱 정밀한 과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었다.


사실주의와 도구주의

사실주의 : 사실주의자들은 과학 이론이 단순한 설명이 아닌, 현실에 대한 정확한 서술이라고 믿는다. 이 입장은 과학 이론이 관찰 가능한 현상뿐만 아니라 관찰할 수 없는 기저의 구조와 메커니즘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은 단순히 천체의 움직임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구조적 현실을 반영한다고 여겼다. 사실주의자들은 과학 이론이 진화하고 발전하더라도, 기존 이론들이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해 있었기 때문에 과학이 진보할 수 있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이 나중에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로 대체되긴 했지만, 그것이 당시로서는 꽤나 진리와 가까웠던 설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주의자들은 과학 이론의 성공이 자연의 진리와의 일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도구주의 : 도구주의는 이론의 진리 여부보다는 그 유용성에 중점을 둔다. 도구주의자들은 과학 이론을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하는 수단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과학 이론이 실제 세계의 진리를 반영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그 이론이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현상을 얼마나 잘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느냐에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도구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그의 지구중심설은 단순히 그 당시에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도구였을 뿐이다. 예를 들어, 이심원과 주전원을 사용해 행성의 복잡한 운동을 설명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유용한 도구였지만, 이 이론이 실제 우주의 구조를 반영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나중에 태양중심설이 등장하자, 도구주의자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버리고 새로운 더 유용한 이론을 받아들였다. 도구주의는 또한 과학 이론이 진리가 아닐지라도 유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델이 나중에 틀렸다고 판명되었지만, 당시에는 실제로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유용했다고 본다. 그 이론은 관측된 현상을 설명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으므로 과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졌다고 평가된다.

사실주의 대 도구주의 논의의 중요성 : 이 두 철학적 관점의 논쟁은 과학 발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학 이론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론이 실제로 자연을 정확히 반영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단순히 관찰된 현상을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으면 충분한가? 사실주의자들은 과학의 목표가 자연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도구주의자들은 과학 이론이 현실 세계의 기저 원리를 반영하지 않아도 실용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은 오늘날에도 과학철학의 중요한 주제이며, 과학 이론을 평가할 때 그 이론의 진리성, 유용성, 예측 가능성 등을 어떻게 고려할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이 논의는 특히 현대 과학에서도 계속 이어지며, 양자역학이나 일반 상대성 이론과 같은 복잡한 이론을 두고도 사실주의와 도구주의 간의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이론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과학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철학적 관점도 달라질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 모델에서 지구-화성의 배열


8. 코페르니쿠스 모델


코페르니쿠스(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1473-1543)는 폴란드 출신의 천문학자이자 르네상스 시대의 중요한 과학 혁신가로, 중세 지구중심적 우주관을 뒤집고 태양중심설을 제시한 인물이었다. 그의 이론은 후에 천문학과 물리학에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며, 과학혁명의 기초를 닦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1473년 폴란드의 토룬에서 태어났다. 그는 법학, 수학, 의학, 그리고 천문학을 학습하며 다방면에 걸친 지식을 쌓았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하며 당시의 최신 과학 지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되었으며, 여기서 태양중심설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그가 제시한 태양중심설은 그의 연구와 사상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라는 책을 통해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며, 모든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기존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을 대체하면서, 행성의 복잡한 움직임을 보다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했다.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태양은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다. 지구를 포함한 모든 행성은 태양 주위를 원형 궤도로 공전한다. 지구는 자전하면서 하루를 만들고, 공전하면서 1년 주기를 형성한다. 지구의 공전 축이 기울어져 있어 계절 변화를 일으킨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여러 혁신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으나 몇 가지 한계도 있었다. 그는 행성들이 완벽한 원형 궤도로 태양을 공전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실제 천체 관측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후에 케플러는 행성들이 타원형 궤도를 따른다는 사실을 발견해 이를 보완했다. 또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당시 천문학적 데이터를 이용해 계산했지만, 그 정확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신적이었지만, 여전히 관측할 수 없는 현상(예: 연주시차)을 설명하지 못해 과학적 검증이 어려웠다. 이로 인해 그의 이론은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이후 갈릴레오와 케플러에 의해 지지와 확증을 얻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과학사에서 큰 전환점을 이루었다. 그의 이론은 중세 기독교 교리와 지구중심적 우주관을 뒤흔들었으며, 이를 통해 근대 과학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검증했고, 케플러는 그의 이론을 보완해 타원 궤도를 발견했으며, 뉴턴은 만유인력 법칙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단순히 천문학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철학적·종교적·문화적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이론은 인간이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으며, 이로 인해 우주의 무한성과 인간의 위치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혁은 결국 근대 과학혁명의 촉발 요인이 되었다.


코페르니쿠스 모델에서 주전원 운동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적 수학 모델에서 영감을 받았으나,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체계를 도입했다. 그는 당시 사용되던 삼각법과 기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행성의 위치를 계산했으며, 특히 행성의 상대적 거리를 설명하기 위해 수학적 기법을 적용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과 행성 간의 각도와 거리를 계산하여 천체의 위치를 예측하려 했으나, 완벽한 원형 궤도를 가정한 탓에 그 계산은 다소 부정확했다. 이러한 문제는 후에 케플러가 행성의 타원 궤도를 발견하며 해결되었고, 코페르니쿠스의 계산 방법은 점차 더 정교해졌다. 그의 계산 방식은 중세와 르네상스 천문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뉴턴의 중력 이론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방법론의 기초가 되었다.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장점

태양 중심 모델은 더 적은 매개변수을 요구  

행성 궤도의 측정 방법 제시 : 태양-수성-금성 순서 문제 해결, 외행성 아리스타쿠스의 방법과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을 이용하면, 행성 궤도의 절대적 크기 또한 결정할 수 있음

수성과 금성이 종종 새벽별과 저녁별의 형태로 서로 상당히 근접해 보이는지도 자연스럽게 설명, 수성과 금성의 궤도 반경이 지구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았을 때 항상 작은 각거리를 갖기 때문이다.

프톨레마이오스 모델의 선험적 가정도 전제할 필요가 없었음(태양, 수성 금성이 지구 근처에 각각의 궤도를 가지고 있고 그것들이 때때로 하늘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보여서는 안 된다는 선험적 가정)



9. 케플러 법칙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는 독일 출신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물리학자로, 현대 천문학의 기초를 세운 중요한 인물이다.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는 세 가지 법칙을 정립함으로써 우주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며, 그의 연구는 후에 과학 혁명의 주요 기반이 되었다. 그의 업적은 특히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통해 더욱 완성되었다. 케플러는 1571년 독일 바일데르슈타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보였으며,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케플러는 당대의 과학적 토론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지지했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천문학 연구를 시작했다.


1596년, 그는 자신의 첫 저서 우주의 신비 (Mysterium Cosmographicum)를 출간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이후 그는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Tycho Brahe)의 관측 자료를 분석하면서 본격적으로 행성의 운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케플러는 1600년 프라하로 이동해 티코 브라헤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으며, 브라헤가 관측한 방대한 천문 데이터를 연구했다. 브라헤는 지구중심설을 지지하면서도 매우 정밀한 행성 관측 기록을 남겼고, 케플러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게 되었다. 티코 브라헤가 사망한 후, 케플러는 그의 관측 기록을 이어받아 이를 분석하며 행성의 운동을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케플러는 행성이 원형이 아닌 타원 궤도를 따라 태양을 공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케플러의 연구는 그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지만,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는 근본적인 힘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그는 왜 행성들이 타원 궤도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리적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이는 후에 아이작 뉴턴이 중력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해결되었다. 또한, 케플러는 관측 기술의 한계로 인해 별과 다른 천체의 움직임을 더 정밀하게 측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이후의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기반을 제공했으며, 뉴턴은 케플러의 법칙을 자신의 만유인력 법칙으로 설명하면서 우주의 운동을 완전히 수학적으로 통합할 수 있었다.



케플러의 발견은 현대 과학과 천문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법칙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더욱 구체화하고 수학적으로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그의 연구는 근대 과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기여했으며, 갈릴레오의 관측과 뉴턴의 중력 이론으로 이어지는 과학 혁명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케플러는 과학의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연구는 경험적 데이터에 기반을 두었고, 이를 수학적으로 해석하여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과학적 사고방식에 큰 진전을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케플러는 현대 천문학의 기초를 세운 중요한 과학자로 남게 되었다.


케플러의 업적은 갈릴레오, 뉴턴과 함께 과학 혁명을 이끌며, 후대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그의 법칙들은 천문학뿐만 아니라, 물리학, 수학, 그리고 우주 탐사에도 중대한 기여를 했다. 케플러의 이름을 딴 '케플러 우주 망원경'은 행성 탐사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그의 연구 정신은 여전히 현대 천문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케플러는 과학사에서 인간이 우주의 규칙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행성의 운동을 이해하는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케플러의 법칙

케플러의 법칙은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가 17세기 초에 제안한 행성의 운동 법칙이다. 케플러는 관측된 천문 데이터를 바탕으로,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 궤적을 설명하는 세 가지 주요 법칙을 정립했다. 이 법칙들은 태양중심설을 더욱 정밀하게 다듬으며, 후에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제1법칙: 타원 궤도의 법칙 (타원 궤도 법칙) 케플러의 첫 번째 법칙에 따르면, 모든 행성은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그리며 공전한다. 이전까지의 모델들은 행성들이 원형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고 가정했으나, 케플러는 타원 궤도가 더 정확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타원 궤도는 두 개의 초점을 가지며, 그 중 하나가 태양에 해당한다. 타원의 형태는 편심(eccentricity)에 의해 결정되며, 편심이 0에 가까울수록 궤도는 원에 가까워진다. 편심이 커질수록 궤도는 더 납작한 타원 형태가 된다.

제2법칙: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 (면적 법칙) 케플러의 두 번째 법칙은 "행성은 태양과 행성을 잇는 선, 즉 복선이 동일한 시간 동안 동일한 면적을 휩쓴다"는 것이다. 이는 행성의 공전 속도가 일정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행성이 태양에 가까워지면 더 빠르게 움직이고, 멀어지면 느리게 움직인다.이를 통해 케플러는 행성의 공전 속도가 변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으며, 천체가 태양에 더 가까워질수록 중력의 영향으로 속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제3법칙: 조화의 법칙 (조화 법칙) 케플러의 세 번째 법칙은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태양에서 행성까지의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태양계 내 모든 행성에 적용되며, 행성의 궤도 주기와 거리 사이에 정밀한 수학적 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 태양에서 멀리 있는 행성일수록 공전 주기가 더 길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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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4학기, 이제 마지막으로 과학사회학 전공의 꽃인 과학철학을 배운다. 하루 배운 것을 가지고 일주일동안 고민한다. 지난시간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해한 우주와 존재에 대한 이해였다면 오늘은 고대그리스시대에서 중세까지 천동설에서 지동설까지 살펴보았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전통적인 신념을 유지하면서도 천체 운동을 설명하려는 필요에 따라,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심과 주전원을 도입한 복잡한 기하학적 모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후대에는 지구의 중심과 태양과의 거리를 측정하고 그에 맞게 행성과 항성들의 움직임을 예측했다. 현상의 구원이라는 말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서 그 간극을 매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하다가 보면 새로운 이론이 나오고 같은 현상에 대한 다른 견해와 이해를 가지게 된다. 과학은 꾸준히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온 역사이다. 진리의 결과물이 아니라 진리로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고대세계에서 중세까지 알아보았지만 다음시간에는 갈릴레이의 실험과 뉴턴역학이 물리학과 우주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오랜만에 지구과학책을 다시 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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