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령이 남기고 간 질문들
12월 3일 '바울과 나'라는 공연에 초대를 받았다. 이른 저녁 친구와 함께 간단히 저녁을 먹고 공연을 즐겼다. 배우들의 화려한 율동과 깊이있는 울림의 보이스가 '인간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친구와 함께 집으로 오는 길에 갑짜기 알람이 오기 시작했다. 긴급속보! 긴급속보라고 뜬 링크를 찾아서 들어가니 평소에도 보고싶지 않았지만 무엇인가 밤 10시 23분에 혼자 나와서 서성이는 그의 모습에 기분이 나빴다.(이태원 참사 이후에 나는 그를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이름도 부르고 싶지도 않다. 얼른 기억 속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이라서 말이다) 안그래도 기분 나쁜 인상이 더 험하게 일그러지고 밝은 조명 탓인지 이마가 휑하게 드러나는 지점에서 땀이 송글 맺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직감하게 되었다. 미쳤구나!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내 인생에서, 아니 우리의 시대에서 '계엄령'이라니. 형언할 수 없는 깊은 분노와 적개심을 뒤로 하고 어떻게 되는지를 계속 찾아보았다. 이윽고 조국대표의 메시지가 전 당원들에게 전달되었고 나에도 연락이 왔다. 빠르게 국회로 와달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당직자도 아니고 단지 조국혁신당의 인재영입되어서 들어간지도 한 달이 채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직감했다. 큰 일이다. 집에 막 도착해서 단단히 챙겨입고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은 아직 상황을 알지 못했다. 어떤 상황인지를 설명하는 중에 유튜브 생중계에서는 헬기가 국회로 가고 있었고 장갑차가 시내에 출몰했다는 유언비어가 터졌다. 전시가 아닌데도 전시같은 분위기가 연결되었다. 그리고 공수부대가 국회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국회보다 조금은 먼 거리에 내려서는 택시를 돌려보내고 상황을 살폈다. 조깅을 하다가 갑짜기 멈춰 선 사람들, 지나가다가 무슨일인가 지켜보는 사람들,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뛰어온 당직자들과 배달기사님들의 동선이 겹쳤다.
들어가기에는 늦어서 밖에서 외치는 무리에서 있었다. 조금 있으니 당원들을 만나고 아는 분들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았다. 여차 하면 국회 안으로 들어가서 인간방패라도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공수부대가 국회를 점거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차마 경찰의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어서 밖에서 시위대와 함께 움직이면서 내란죄를 일으킨 이의 타도를 외쳤다. 경찰들은 갈팡질팡했고, 공수부대는 우왕좌왕했으며, 국회의원들은 다행히 190명이나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서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투표를 했다. 그 순간까지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는지 모른다. 광주사태가 떠오르고 사람들이 끌려가던 이미지들이 둥둥 떠다녔다. 안에서 본회의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안스러우면서도 당장 내 목숨을 내 놓아야 한다는 건 여간 쉬운게 아니었다. 그렇게 광주가 생각나는 밤. 결국 비상계엄이 해제되었고 사람들은 한 숨을 놓았다. 집에와서 선잠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어릴적 홍연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홍은동 백련산 중턱에 위치한 초등학교라서 아래로 내려가면 연희동이고 산을 반대로 넘어가면 명지대하교와 명지전문대가 나왔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명지대 앞에 가서 떡복이도 사먹고 오락실도 가고 했던게 생각났다. 그리고 가끔씩 명지전문대 옆에 야구 배팅소리가 들렸는데 거기가 바로 충암고등학교였다. 동네에서는 육군사관학교를 많이 보낸 명문고였고 야구로도 유명했다. 충암고는 엘리트들이 다니는 학교 같았고 거기 다니는 형들은 자부심도 대단했다. 이번 비상계엄의 주인공은 충암파라고 불리는 충암고 동문들이었다. 지금 충암고의 친구들은 안타깝게도 피해를 입고 있지만, 어릴 적 기억 충암고가 떠오르는 순간 트라우마 같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지난 토요일은 오후 3시에 모두가 모이는 자리였다. 될 수 있으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여의도로 와달라고 했다. 나름대로 두둑하게 챙겨입고 여의도로 향했다. 국회의사당역에 내리면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여의도역에 내려서 걸어갔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게 웬걸.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생각하고 여의도역에서 내려서 국회 현장으로 걸어갔다.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깃발을 들고 국회앞으로 걸어갔으며 나역시 씩씩 대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태로 떠밀려 갔다. 이태원참사 때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나.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간이라면 이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나 나오는 인간상이 이렇게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4시간 넘게 추위에 덜덜 떨면서 탄핵을 외치고 국회의 투표 결과를 지켜보았다. 현장에서 들리던 실망의 탄성과 지지 않을려고 외쳐대던 유행가의 가락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정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이런 인간들이 계속 나올까? 역사는 왜 이렇게도 반복되는 것일까? 무엇이 인간을 타락하게 만들고 무엇이 인간을 야수로 돌변하게 만드는 것일까? 생각없음과 사유하지 않음일까, 주변에 좋은 동료가 없어서일까, 권력에 취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려서일까, 정치권에서는 어쩔 수 없어서 그런걸까, 자기 아내에게 잘보이려는 쫄보 노년의 한풀이일까. 오만 잡생각이 떠오르면서 이런 사람이 나오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계속해서 뇌내였다. 평발인 나에게는 1시간도 힘든데 4시간 넘게 서 있으니 안되겠다 싶어서 함께하던 일행과 집으로 왔다. 여전히 사람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새벽을 밝히고 미래를 들추었다. 감사하고 또 고맙고 멋진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도 있는데 왜 정치는 맨날 인간 같지도 않은 이들의 전유물이 되는 걸까.
아직도 2차 계엄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아직 그자의 권한이 살아있는 관점에서 북한이 도발을 하거나 도발하게 만들면 계엄령은 현실이 된다. 여전히 그 피해와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어떤 대학생들이 대자보를 써 붙여 놓고서는 야당을 조롱했다. 이건 야당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의 문제인데도 말이다. 그자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좋아한다고 했고, '열받으면 계엄이나 할까?'라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이 의미없는 빈수레라서 그런지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한번에 날려버릴려고 하는 움직임이 얼마나 처량한가. 끌어내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야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기다려야 할까. 말이 안된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개돼지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런 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회의원 100명이 넘게 그랬고, 아직 인구의 13%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에게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들에게는 인생이란 무엇일까? 서글푸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돈 밖에 모르고 잇속만 챙기는 인간들은 어디서부터 만들어질 것일까? 1997 IMF 이후에는 더 급속도로 경쟁이 무한대가 되었다. 경쟁은 야만이라는 구호는 개나 줘버리고서는 다들 미친들이 달려갔다. 그러면서 일정한 자리에 앉기만 하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정치제도와 시스템은 인간같지도 않은 자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공교육 시스템은 붕괴되어가고, 학생들은 모두 직업이 아니라 돈에 미쳐가고 있다. 게임이 아니면 돈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시스템이 도가 지나쳐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이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 너무 비관적으로는 보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하고 열받는다.
원동연 박사님이 펴낸 5차원 교육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전면적인 교육, 전인적인 교육, 통합적인 교육, 수용성을 가진 인재들, 글로벌한 이슈들에 대해서 입체적으로 사고하고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넓음 마음을 가진 아이들. 해야할 일이 너무 많지만 교육의 시스템과 방법은 얼른 바꿔야만 그자와 같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고 응원봉을 흔들며 미래를 밝히는 아이들이 도래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 보았다. 나는 아직 멀었다. 그렇지만 그 먼 길을 다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야 겠다. 거름이 되는 걸음을 걸어야겠다. 부디 그자와 같은 사람들이 더 이상 역사 속에 등장하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할까 했을 때 내가할 수 있는 건 교육이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먼 미래까지를 바꿀 수 있는 교육. 먼저 간 이들이 남겨준 교육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기는 작업들을 해야겠다. 비판과 비전을 동시에 제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다. 아이들이 그렇게 클 수 있도록 거름이 되어야겠다. 아직도 탄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시간도 도래하지 않았다.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툭툭 쏟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