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느끼는 것들
대만에 잠시 여행을 왔다. 끝도 없는 미로 속을 걷고 있는 것처럼 새로운 일들이 기존에 있는 일들을 해일같이 밀고 왔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분주하고 바빠질 줄은 몰랐다. 거의 4년안에 이런 변화들이 생긴것 같기도 하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꾸준히 걸어왔던 4년이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다시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일주일에 4번의 수업을 소화하면서 그 사이에 10여개의 스터디를 진행하고. 사실 나는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완벽주의자도 아니고 계획가도 아니다. 더욱이 실천가도 아니다. 나는 그저 한량에 두려움이 가득한 소심한 시민일 뿐이다. 그런데 새로운 기회들은 계속해서 생겼다. 거기에서 내가 한일은 가장 작은 일부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 때로는 서기록을 작성하거나 짐을 나르거나 사람들의 말을 듣고 전달하거나, 심부름을 다녀오거나. 그런데 한가지는 계속해서 철학을 공부한 것.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고민을 쉬지 않고 해왔다. 안그러면 똑같은 일을 또 해야 하니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내가 그 잡다한 일들을 반복해야 하니깐.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대부분은 모른다. 이상은 높은데 발걸음은 종종걸음이다. 너무 큰 욕망이 비전으로 둔갑하는 순간 자신이 위대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한 발짝 걸어보면 바로 까치걸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더더욱 그 발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힘들다. 해봐야 안다고 하지만, 해보는 마음을 품는 것조차 힘들다. 나는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보통 이런 건 부모님께 배우는데, 아버지의 담대함을 배우고 새로운 경험들을 맞이할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보고 배워야 하는데. 나처럼 어린시절이 불우하고 심각한 경제형편에 시달리던 아이들은 커서 쉽게 사회에 동화되기 힘들다.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간혹가다가 이런 환경에서도 부모님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살아있는 경험을 하면서 체득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마음도 생각도 성장하지 못한체 육체만 성장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래서 내면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일이 어렵지 않으니깐.
진정으로 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성격이 강하고, 고집이 쎈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까? 그건 강한게 아니라 오히려 약한게 아닐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놓치는게 두려워서 꼭 붙들고 있는게 아닐까? 사람들이 내껄 못 뺏어가게 쥐고 있는 사람은 그걸 뺏기면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게 아닐까? 누군가 부탁을 한다. 정보를 공유해달라고 하고 필살기를 내 놓으라고 한다. 돈도 주겠다고 한다. "그냥 가져다 쓰세요. 저는 또 만들면 됩니다. 저는 또 공부하면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한다고 말한다. 그 말도 너무나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뺏어가고 훔쳐가고 이용하고 버리기도 하니깐. 그런데 그럼 어떤가. 다시 일어나면 되고, 다시 만들면 되는 일을. 진정으로 강하다는 것은 언제든지 자신을 개방하고 다 주어도 또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만들면 되고, 다시 그리면 되니깐.
고집불통인 사람을 만난다. 과거에 잃어본 경험이 너무 많아서 외부로 나가는 문을 모두 봉쇄하고 자신만의 성을 만든사람. 마음 속에 누군가 들어올려치면 성 꼭대기에서 망원경으로 강으로 둘러쌓인 끝자락에 누가 왔는지 노심초사 지켜보는 사람. 일단 다른 이들을 폄하하고 이름표를 매겨논 다음에 자신을 이용하지 않을 것 같으면 문을 여는 사람. 그리고서는 오히려 자신이 이용해먹고 성문 바깥으로 쫓겨나는 사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립되어서 자신밖에 그 성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 통장에 잔고가 자신을 증명하게 하고,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자신의 삶으로 퉁치는 사람. 그런 삶을 살기 싫어서 매번 이렇게 쓴다. 쓰면서 드는 생각은 부지런히 공부하고 공유하고, 도와주고 마음문을 열고, 하나라도 더 주고 또 주려고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 밖에 없는 이 답답한 성에서 스스로 걸어나와서 출입문을 개방하고 누구라도 들어와서 같이 먹고 마시자고. 나 역시 다른 이들의 삶 속으로 버무려져 들어가서 함께 뛰놀고 즐거워하면서 때론 같이 아파하고 힘들면 밀어주는 삶을 살아보자.
깊은 물은 어느 줄기라도 만나게 된다
깊은 물은 깊은 영혼과 같다. 물의 깊이가 깊어질 수록 품고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 과속으로 달리던 삶을 잠시 내려 놓으니 이제야 다시 시작점이 보인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들은 사람들을 돕고 즐기고 웃으면서 이 인생의 긴 여정을 향유하려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런저런 판단의 찌꺼기들을 빼고 성 꼭대기로 올라가던 발걸음을 되돌려서 다시 성문밖으로 나가자.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라고 정죄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사람들과 함께 이 삶을 더 진솔하고 더 아릅다게 살아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고민을 해보자. 이 시작점을 잊지 말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음이 가는대로 놓아두지 말고, 생각하고 돌아보고 함께 걸어갈 궁리를, 함께 살아갈 궁리를 해보자. 여행은 이래서 좋은 것 같다. 기존의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