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보는 대만 여행
친구들과 함께 아직은 추운 겨울이지만 매번 1월이면 여행을 떠난다. 시간적 여유를 내기에도 빠듯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전까지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고자 작년에는 삿포로를 다녀왔고, 올해는 오끼나와와 싱가폴을 고민하다가 결국 대만으로 여행지를 정했다. 양안문제라던지 TSMC의 모리스창이 생각나는 대만에 대해서 가기 전부터 부품 꿈을 갖고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국과 매우 닮아있으면서 더욱 친절하고, 딘타이펑의 본산이자, 대왕 카스테라가 만들어지는 곳. 대만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기저기 귀동냥하면서 타이페이에 대한 여행계획을 짜보았다. 결국 가기로 한 여행코스는 국립박물관, 중정박물관, 고궁박물관과 같이 배울 수 있는 곳과 함께 예루와 지우펀과 같은 인기코스까지 섞여있었다. 이번여행은 참 많은 생각을 했던 여행이었고, 그 만큼 시간이 느리게 간 여행이기도 했다. 초행길이라서 욕심안부리고 타이페이근교만 다녀왔다.
대만으로 가는 항공권은 30~40만원 사이로 왕복인데 이정도면 제주도에 갈 비용보다 조금 더하면 갈 수 있는 정도이다. 2시간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기도 해서 쉽게 가볼 수 있는 장소였다. 최근에 확장한 제2터미널 왼쪽 날개 끝 쪽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대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기다리면서 둘러보는데, 로봇개들이 공놀이도하고 그림도 그리고 있었다. 제 2터미널이 매우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9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6시에 도착했다. 스마트패스를 미리 등록해논 결과 그리고 2게이트보다 덜 붐비는 1게이트에 도착한 결과 30분만에 들어올 수 있었고 터미널 안에서 차도 마시고 구경도 하면서 대만으로 갈 준비를 했다. 파워J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대부분 아무것도 안해도 안내사항과 때론 명령어가 등장한다는 묘미가 있다. 미리 대만달러를 주는 이벤트에도 가입하고 도착해서도 온라인패스로 매우 빠르게 공항을 나올 수 있었다. 타이페이시에서 30분정도 떨어진 타오위안 공항에서 MRT를 타고 타이페이역까지 올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T머니와 같이 '이미카드'가 있어서 지하철도 이용할 수 있고, 편의점에서도 이용할 수 있어서 편했다.
대만은 무엇보다도 딤섬의 나라이다. 그리고 골목골목 딤섬집이 많았다. 타이페이역에서 5분정도 북쪽으로 걸어가면 딤섬집이 있었다. 구글지도로 찾아다니면서 별점과 댓글로 얼마나 맛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나같이 적당한 기름기와 쫄깃한 식감 그리고 바삭한 튀김옷까지. 딤성의 종류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적절하게 삶아진 소바를 간장에 절여 먹는 묘미는 잊을 수가 없었다. 이후에 타이페이101타워에 있는 진타이펑을 갈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 골목에서 먹는 딤섬은 잊을 수가 없었다. 다시 대만에 갈 일이 있다면 레이후에 다시 가보고 싶을 정도이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는 그 사람들의 혼이 담겨 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자신이 된다. 먹을 거리를 만드는 정성과 조리 방법에는 그 나라사람들이 기후와 토양에 적응한 결과가 담겨 있다. 한 알 한 알 먹을 때마다 그 민족의 습성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다소 따뜻하고 때론 추운 대만의 겨울에 따스한 딤섬이 무엇인가 알알이 마음 속에 박혔다.
https://maps.app.goo.gl/1nryVPYCQatjhMLg9
아침에 일어나서 아점을 먹고 타이페이 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중정기념관을 방문했다. 중정기념관은 한국에서는 장제스 혹은 장개석이라고 부르는 대만의 초대 총통을 기념하는 곳이다. '중정'이라는 이름은 자개석의 원래 이름이 '중정'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중정 기념관에 가면 그 중앙에 장개석이 앉아 있다. 이 동상은 미국에 링컨 동상 보다 크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만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한 번에 알 수 있는 단어들이 장개석의 뒤에 써 있다. 그것은 민주 논리 그리고 과학이다. 이 세가지가 결국 지금의 대만을 만든 게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나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랜드마크의 상징 과도 같다. 어떻게 보면 중정 기념관을 통해서 대만은 계속해서 과학을 발전 시키고 논리적으로 사고 하며 민주주의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전 기념관은 대만 사람들이 십시 일반 모금을 해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계단은 장개석이 생존 했던 나이와 같은 89개 계단이라고 한다. 이렇게깔맞춤을 하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였다. 칸트는 숭고함이란 거대함, 그리고 웅장함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그런 만큼 중정 기념관은 그 어떤 건물보다 거대해 보였다. 사실 잘 모르겠는 부분은 진실로 가지고 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러내지 않기도 하는데 이건 잘 모르겠다. 그래서 대만을 더 공부해 보고 싶다. 그리고 중정 기념관 앞에는 국립 극장들이 들어서 있었다.
중정 기념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대만 국립 박물관이 있다.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대만의 역사와 자연사. 그리고 정치적인 상황과 특별 전시가 진행 되고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일층에 2024 년 리그에서 우승한 야구팀의 전시가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대만 사람들이 특별 전시를 보려고 줄을 서 있었다. 나는 야구의 별로 흥미가 없기 때문에 일단 이 층과 삼 층을 두루 다니면서 대만에 역사를 심층적으로 탐구 하기 시작했다.
대만을 보통 포르모사 라고 부르는데 이 뜻은 아름다운 섬이란 뜻이다. 대항해시대의 포르투칼에서 대만을 발견하고 아름다운 섬 이라는 이름으로 포르 모스 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그리고 1895년 부터 1945년 까지 일제식민지가 된다. 이른바 시모노새끼 조약이라고 하는 일본과 중국에 조약을 통해서 대만은 일본으로 넘어 간다. 대만에서는 일본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마도 50년 동안 일본이 대만을 다스리면서 다양한 인프라 와, 항문적인 발전을 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그런 부분이 공립 박물관에서 아주 자세하게 일본학자들을 소개해 주고 그들의 업적을 기르는 것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대만 역사에 대해서 다 알고 싶어서 처음 있는 대만 사라는 책을 샀었다. 이 책에 보면은 학생들이 대만에 유명한 역사 교수와 함께 대답 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내용에서 보면 1895년에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대만 본토에 남아있는 사람은 식민지에 속한 국민이 되고 그것이 싫으면 중국으로 넘어 가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90% 정도에 대만 사람들이 대만 본토에 남는 것을 선택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대만에 대학생들은 친일파가 아니냐 라는 질문들을 했는데 내가 읽은 책에 저자는 그 당시 사람들의처에 있는 환경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대만에서 자신의 집과 가족 그리고 문화적인 풍습을 누리면서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기집을 버리고 중국으로 넘어 간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 아마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정치적인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실제로 사회적으로 살아갈 때도 대만과 너무 다른 문화와 다른 사람들 심지어 사회적 자본이나 물질적 자본도 없는 상황에서 대만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선택지는 대만에 남는 것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들을 이해 한 대만의 대학생들은 우리도 그럴 수 있다 라고 생각 했다고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삼일절이다. 오히려 우리의 조상들은 친일파들도 많았지만 반대로 일제식민지의 부당함을 세계속에 알리며 대한 독립을 갈망 하던 위대한 선배 들이다. 물론 대만사를 가르치는 교수처럼 어쩔 수 없었다. 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어쩔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피해 보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요소가 아니었을까 무엇인가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된다는 것도 있다. 정의를 지키고 정체성을 지키고 삶을 지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이런 선택이 바보 같아 보이고 오히려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 같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그 다음 세대가 보았을 때는 아마도 칭찬을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잘 모르지만 대만 내에서도 다양한 독립운동이 있었다는 것을 얼핏 들은 거 같다. 앞으로 더 공부를 해야겠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친일파들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다. 그 논리를 만들려고 한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논쟁들이 있었는가. 사실 나는 앞으로 해소 되지 않은 것들을 해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친일파청산 부터 시작해서 세 월호를 제대로 조사 하는 것 그리고 이태원 참사에 원인을 규명 하는 것 그리고 최근에 우리를 힘들게 하는 내란 사태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밝히고 그 책임을 묻고 싶다. 오늘은 삼일절이다. 조상들의 노력과 수고와 희생에 감사를 표 한다.
다음날 우리가 찾아간 곳은 타이페이101타워였다. 2004년 까지만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사 위로 밀려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매우 높은 빌딩의 속하는 타이페이 101 빌딩. 89 층까지 불과 육 초 밖에 안 걸리는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89 층에는 사람들이 타이페이 시내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다. 이것도 깔맞춤 이긴 한데 대만에 초대총통 장개석의 나이와 똑같다. 이 건물 지하에는 전세계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월드 푸드코트가 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물론 우리는 먹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다양한 음식들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더불어 타이페이 101 빌딩 지하 일층에는 그 유명한 딘타이펑의 본사가 있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현재 일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데 실제로 월급은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아마도 T S MC 에 활약으로 일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진 것 같기도 하다. 타워 꼭대기에서 타이페이 시내를 바라보니 휘황찬란 하다는 것 보다는 오밀조밀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는 길에 T S MC에 관련된 책을 샀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T S MC 와 같은 반도체 국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기업을 육성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물론 대만의 경제적 상황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더욱이 출산율도 1.0 정도가 되어서 대한민국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이러한 저출산 저 성장을 기술로써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 부터 서둘렀다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12,000원 정도 밖에 안 되는 1일 짜리 투어였지만 매우 알차고 가성비가 높은 여행 상품이었다. 특히 가이드가 매우 뛰어난 전문성을 가진 분이어서 하루 종일 매우 심도 높은 정치적 상황이나 문화적인 배경, 그리고 여행의 꿀팁들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예, 류 라는 지역에 도착했고 그 다음에는 옛날 얘기를 할 수 있는 근처 마을 그리고 그 유명한 지우펀 그리고 일제시대 때부터 운영 되었던 광부들의 마을도 가볼 수 있었다.
예류 지역에 돌들은 마치 제주도와 같은 느낌이었는데 바람의작용이 워낙 거대에서 바위 아래쪽 부분은 모래처럼 반들반들해지고 윗 부분은 현무암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제주도 와 가까운 섬이기때문에 비슷하게 현무암과 해 안에 조화가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우리는 예류에 도착해서 다양한 돌들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바다도 보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비가 조금씩 내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치 있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예류를 넘어서 주변의 아름다운 폭포와 감칠맛 나는 과일들을 맛보면서 해변가를 돌았다. 어쩌면 이 모습이 대만의 진면목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칭기스'라고 하는 금광사 혹은 골드뮤즈엄이었다. 1895년부터 줄기차게 전략기지로 삼은 대만을 요리하던 일본은, 이렇게 산중턱까지 철도를 만들고 금광과 각종 자원을 캐내어 자국으로 보냈다. 한국도 비슷하지만 '근대화론'에 의해서 일본이 근대화를 앞당겨주었다고 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 근대화를 앞당긴 것인가 제국주의를 합리화한 것인가? 자생적 근대화를 경험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권력에 굴종하고 제국을 숭배하는 엘리트주의자들을 자연스럽게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을을 돌아보면서 혀를 끌끌찼다. 자신들이 관리하기 위해서 집 4채를 연결해서 아주 풍족하고 여유있는 생활을 했던 일본 장교들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고 자신에게 비굴하게 만드는 생활에 대해서 정말 부끄러움이 없을까?
골드뮤즈엄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금액은 금의 시세가 바뀌는 순간순간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광부들이 먹었다던 도시락도 있었다. 물론 진짜 광부들이 먹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마을 전체가 마치 일본마을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과연 있었다. 여전히 금광을 깰 수 있는 열차가 다니고 있고 금은 계속해서 생산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박물관에서는 그 동안 일본이 어떻게 자원을 착취하여 자신들을 위해서 사용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랬는데도 일본에 대해서 어떤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졌지만 눈을 감으면 마치 100년전의 일상이 펼쳐지는 것도 같아서 두 눈을 감기가 힘들었다.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던 마을 혹은 모티브가 된 마을. 그러나 정작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분위기가 비슷할 뿐인데, 일본지배 50년이 그대로 느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지우펀은 꼭 가봐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방문하고 싶어서 2~3번이나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냥 여느 관광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복잡하고 분주해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관광지에서 기념품 사는 곳 이상 혹은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홍등가와 반짝거리는 하늘의 등불은 기억에 남기는 하다. 가끔 취두부 냄새가 나기도 하고, 요즘 유행인 것 같은 버섯간장구이 냄새도 코를 찌르기도 했다.
아름다운 탐수이는 대만 북서부의 항구도시이다. 아무래도 개항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닿는 항구도시기이에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미국이나 일본이 눈독들이던 곳이다. 역에 도착하자 마자 탁 트인 바다와 공원의 여유, 내리쬐는 햇빛의 신선함. 안 가봤지만 마치 호주의 시드니와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요가를 하고 있고, 학생들은 서로 햇빛을 즐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만에 비싸고 맛있는 서양식 브런치를 먹었다. 확실히 일본의 고베의 '이진캉'같은 느낌으로 서양식 브런치가 일품이었다. 탐수이가 대만에서 가본 곳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좋았다. 더군다나 그 유명한 '대만 대왕카스테라'의 진산지이기도 했으니깐 말이다.
그러나 대만을 점령하고 자신들이 더 잘 빼내가기 위해서 만든 관리사무소격인 '포트 도밍고'는 우아하고 아름답고, 실용적인 건물들의 연속이었다. 자신들이 잘 정착하여 살기 위해서 본토 자신들의 삶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었다. 많은 이들이 건물이 아름다워서 인증샷을 찍고 있는 모습도 무엇인가 아쉬웠다. 제국주의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승리한 역사'가 맞고, 아름답게 약탈하는 것 자체를 인정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들 뒤에는 제국주의가 만든 대학도 있었다. 교육, 문화, 사회,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자신들이 가장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스린야시장은 탐수이에서 돌아오는 길목에 있었다. 야시장하면 세계적인 야시장으로 불리는 스린 야시장은 흡사 명동과 같은 느낌이었다. 대부분 먹는 것들의 진열장이었고, 거리음식의 최고봉이었다. 그러나 나는 야시장은 별로 안 좋아해서 얼른 구경하고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이상하게 여행하면 현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자주 들리는 것 같다. 매번 방문하는 곳에서 힘겹고 때론 지루하고 현실을 떠 받치는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는 거대한 한숨이다. 그래서 여느 관광객처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즐거움을 만끽하기에는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탐수이는 아름다운 강물이 유유하게 흘렀고, 스린야시장은 그 물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있었다.
돌아오는 일정이 저녁비행기여서 마지막날 국립고공박물관을 방문했다. 다행이도 동파육 돌맹이와 배추모양 돌모양도 있었다. 고궁박물관에서는 60만점 이상의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3개월에 한번씩 전시하는 작품들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도 전시기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동파육형 돌맹이와 배추모양까지 볼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이동하면서 베이징의 고궁박물관에서 가져온 작품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한 작품은 지금 가치로 치면 수조원을 넘는 것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계속해서 중국과 대만의 분쟁의 중심에 이러한 미술품들의 소장에 관련된 내용들도 있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고궁박물관을 돌면서 한 나라의 역사와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타이페이시에 짐을 가지고 이동하면서 시먼역에 있는 망고빙수까지 먹었다. 한국사람들이 여럿이다녀왔다가 가는 유명한 장소였다. 대만에 처음으로 여행하면서 대만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일제식민지시기의 정체성 그리고 장개석이 만든 이론적 배경과 기존의 문화들이 스며들어 있는 장소들, 자연과 만나서 이어지는 인간의 희망과 한계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다시 방문할 일은 없지만 대만의 역사, TSMC, 중국과의 관계 등 다양한 주제들을 마음 속에 품고 돌아간다. 여행은 이래서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대만에 오지 않았다면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주제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