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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받는 것 뿐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요즘들어 도전하고 있는 미션

by 낭만민네이션

누구나 미숙한 때가 있지 않았을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인간관계의 미숙함도, 가치관의 미숙함도, 삶에 대한 자세에 미숙함도 보이는 것도 같다. 누군가 그랬다 산을 오르고 있으면 그 산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의 거대한 산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넘는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 땀이 뻘뻘 나서 땀냄새로 범벅이 되어 있거나, 다리를 다쳐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정상에 올라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자신만의 산을 넘고 있고, 그 산을 혼자서 넘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돌아보면 미숙함이 곧곧에 묻어있는 삶이 아니었을까 한다. 요즘들어 나와 미슷한 미숙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른 체로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처럼, 자신이 달려가고 있는 레일에 집중하느라 정차할 곳을 놓치고 지나가는 기차와 같이.


당신은 여기에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사람인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바로 나온 대답이 “저는 다른 사람들의 잠재력을 개발해주고, 가는 곳곳마다 화해와 변화를 만드는 퍼실리테이터라고 생각해요”였다.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대답이었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에도 맞는 대답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놀랍네요. 제가 보기에는 스타강사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나쁘지 않았다. 스타강사라니 멋지지 않은가? 사람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나 없으면 안되는, 누군가 애매모호한 설명을 할 때 정확한 단어와 적절한 재치로 사람들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스타강사. 그런데 조금 더 고민해보니 무엇인가 기분이 나쁘면서도 뭐라고 대응할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특기인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짧게라도 가졌다.


나를 오랜시간 동안 지켜본 상대방은 내가 어디서나 부르면 나가는 것을 내심 불안해했다. 그것은 내가 너무 혹사된다는 것도 있었지만 어떤 조직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 빈번하게 박복되면 그 곳은 시스템이 잡혀있지 않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나의 도움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내가 있으면 있을수록 사람들은 도움을 바라고 자신들의 잠재력을 개발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잘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고, 어딜가나 사람들은 좋은 피드백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듣고 나의 지난 시간들을 들어보니 소위 ‘P’인 성향의 사람들이 일만 벌여 놓고 마무리를 못한다는 것과 연결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있는 조직에서 나의 정체성은 스타강사가 아니라 코디네이터였고, 시스템 관리자였다.


이런 생각까지 이르자 여러가지 생각의 갈래들이 각기 다른 기억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거처간 곳에 나름대로 사람을 남겼다고 생각했지만, ‘시스템’을 남겨서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도 이전과 같이 하지 못하고 내가 다시 피드백을 주어야만 가능한 구조였다. 그러니깐 나를 계속해서 의존하게 만드는 관계나 구조였던 것이다. 쉽지 않은 도전이 도착한 느낌이여서 우체동을 열어보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이전에 했던 연애의 경험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좋아서 만난 것도 있지만 나도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 있는 사람이 좋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그들의 도움에 응답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쓰는 돈이며 시간이며, 모든 것들이 정지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온전히 없어지고, 그 사람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온정주의‘가 곧 이별을 예감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필요’가 없어진 관계로 전락하는가 하면 내게 너무 의존적이 되어서 내가 아니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정신을 차리고 나의 미래와 비전을 챙기려고 치면 “너 변했어!“라는 이야기를 듣는게 레파토리였다.


나는 그 때마다 나의 인생을 찾겠다는 이유로, 혹은 나도 참을만큼 참았다라는 작은 분노로 상대방을 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돌이켜 보니 어쩌면 그 파국은 내가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참, 그렇다. 자신이 자초한 일을 그 당시에는 누군가에게 투사해 놓고 시간이 지나면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는. 나는 지금이 그렇다. 함께 같은 방향을 보고 걸어가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지 못했던 나의 모습.


사실 이렇게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이것도 어떻게 보면 용기가 필요하다. ‘환대‘라는 것은 누군가의 정의에 의하면 ’자신이 알 수 없는 위협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환대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전까지 완전하다고, 혹은 나름대로의 이유로 합리화했던 기억에 대해서 ’자기부정’의 위협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과거에 실수와 오해, 실패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적은 별로 없다. 용기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과거와 직면해서 진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어쩌면 나는 오랜시간 이러한 용기를 내지 못하고, 나의 과거에 대해서 환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실수가 삶의 모든 순간에서 일어나고 어느것 하나 자랑할 수 없었던 과거의 나의 모습. 그것과 마주치는 질문이 결국 ‘나를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질문한 사람은 그 질문의 무게에 대해서 별로 고민을 하지 않았겠지만.


나를 돌아보는 시간에 깊숙히 관여하고 있을 때
함께 어울리는 이들의 미숙함이 보인다.


이전 같았으면, 저 친구가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그래, 혹은 저 친구에게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쉽게 다다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 시절에, 그 세대에, 그 맥락에서는 그런 미숙함이 오히려 자신을 제대로 보게 하고, 더 성숙한 것들이 있다는 것들의 반증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의 깊이를 가지고 가다보면 수 없이 나의 실수에 대해서 간과해주고 이해해주고, 용서해주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은 감히 연락도 못드릴 그 분들의 성품과 삶 앞에서, 그 은혜를 갚을 수 없어서 그저 감사로만 답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돌아가보자. 내가 없어도 이 그룹이, 이 조직이 지속가능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스타강사가 없이도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 지속가능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보다 큰 충격을 주는 질문에 답변을 할 차례가 되었다.


사람들의 미숙함을 성숙함으로 만들어 주는 방법을 그래서 찾아다녔다. 지금 내가 배우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도 쉽게 배울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학습민첩성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쉽게 빠르게 배우는 사람들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배우는 부분에서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을 자신이 아는 지식의 영역에 다양하게 연결해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연결점이 발견되면 빠르게 모델을 만들어서 직접해보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빠르게 배우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패턴을 찾아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해 갔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패턴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그런 고민이 지속되다 보니깐 결국은 몇 가지의 방법 밖에 없었다. 철학을 배우는 것과 실제의 사례들을 간접적으로 들으면서 직접 해보는 것. 그리고 러닝퍼실리테이션의 핵심인 ‘학습 전이‘를 가지는 수 밖에.


나는 항상 무엇인가를 배우면 그것들의 패턴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 발견의 결과가 이렇게 글로 남겨놓는 것이다. 어떤 것들을 배울 때 내가 발견한 패턴을 기존의 패턴하고 연결하는 일이 이렇게 글을 쓰고 생각을 정해놓는 것이다. 이렇게 연결해 놓으면 어느순간 어떤 주제가 떠오르면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서로 연결한다. 그리고 그 연결한 것들이 또 다시 하나의 패턴이 되어서 다른 것에 연결되면서 지식이 짧은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기술이 2배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2배씩 증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려면 사실 아주 많이 읽어야하고, 잘 읽어야하고, 잘 기억해야 한다. 여기까지 기억해 내자 내가 왜 ’스타강사‘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사람들에게 이러한 노하우를 전수할 때가 왔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정체성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철학과 가치관을 전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8번씩 3시간의 시간동안 강연도 듣지만 결국 한 번이 끝나면 자신의 언어로 피드백을 써야하고 2회가 지나면 자신의 언어로 만든 강의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8회가 끝나면 자신이 만든 강의안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중 강연을 해야 한다. 매우 도전적이지만 오히려 참가자들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내는 글들을 보면 감동할 만큼 깊고 고민이 묻어 있고, 감정이 충만하다. 어떻게 보면 내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을 세워주고 시스템을 만들어 주고 그들이 직접해볼 수 있도록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


다른 한 가지는 아이스브레이킹 스터디이다. 아이스브레이킹하면 뭐가 있을까하겠지만 사실 아이스브레이킹과 연결된 게이미피케이션, 팀빌딩, 액션러닝과 같이 다양한 방법론들이 있다. 나는 강의를 할 때 이러한 방법을 적절하게 혼합해서 순서를 만들고 사람들의 감정을 살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러한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8회과정의 스터디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스브레이크101’이라는 책을 통해서 매 회마다 2명씩 아이스브레이킹을 준비하게 도왔다. 결국 지금은 점심을 먹는 1시간동안 깔깔거리면서 웃다가 서로가 준비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다가, 팀빌딩에 참여해서 자신이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옮길지를 고민한다. 지금까지 DISC워크샵, 사랑의언어 워크샵, 러닝퍼실리테이션 워크샵을 진행했고 이제 앞으로 신뢰의속도 워크샵, 강점혁명 워크샵을 넘어서 소셜캠페이너 액션러닝을 준비하고 있다.


작은 생각의 변화이지만 나의 정체성이 바뀌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 없이도 해볼 수 있고 더욱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는 지식을 계속 만들어 낸다면 어떻게 될까? 공동체가 성장하고 사람들이 서로의 성장을 보면서 점점 성숙해가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스터디 외에도 점심시간에 화요일은 선교학 스터디, 수요일은 리더십스터디, 목요일은 철학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1시간이라서 더욱 어려운 미션이지만 매번 진행하면서 수백번의 생각이 왔다 갔다가 한다. 나 없이도 스스로 진행할 수 있게 하려면이라는 질문을 가지고 말이다. 내가 미숙했던 때 내가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배웠던 방식으로,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이제 정보와 도움을 바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잠깐 기록해놓을려고 했는데 긴 글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백번씩 생각을 하는데 이제야 겨우 몇 개의 글을 남기고 있다. 나를 돌아보고 자를 다시 생각하고 조금 더 깊이 있게 사람들과 만나고 또 성숙해지는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아직은 시스템까지는 못 만들고 프로세스 정도 만드는 것 같지만. 이것이 비단 지식을 전하는 수단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람들과 만나는 방식, 결혼할 사람과 만나는 연결고리도 바꾸어 보길 기도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신경을 써야 겠다. 하루가 정말 길다. 긴 하루의 끝을 다시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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