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청년의 땀냄새에서 시작한 이야기
내일은 대통령선거가 있는 날이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기분좋은 퇴근길 아는 동생과 신학강좌를 들으러 간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여유롭게 따사로운 적이 있었던가. 내일에 대한 불안이 없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날이 있었던가. 아무런 불안감도 없이 지하철을 타고 강의를 들으러 간다. 2호선으로 갈아타려는 순간 아찔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땀으로 범벅된 어느 청년의 검은 티셔츠 소금줄무늬에서 나는 냄새다. 나는 순간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개발한 제스처를 취하면서 코끝을 부여잡았다. 얼른 가던 길의 방향을 바꿔서 불쾌한 냄새가 사라지는 방향으로 냅다 뛰었다. 그러고보면 봉준호 감독은 인간의 본능을 기가막히게 잡아낸 것도 같았다. 그리고 나서 아주 오랜시간동안 꺼내지 않았던 마음 속의 깊은 곳의 어떤 감정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잘 살고 있을까?
다른 사람이 행복하지 않으면 내가 정말 행복한 걸까?
나는 스스로 무엇인가 깨끗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땀'냄새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아서 피했던 내 자신의 시점으로 돌아가보았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던 걸까? 나는 왜 '산뜻하고 좋은 향기가 나는'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그런 자신에 대해서 뿌듯해 하면서 나름대로의 자존감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갑짜기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유명한 만화의 대사처럼 '사람은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는 거야'가 생각났다. 더 좋은 향을 찾아 다니다보니 어느새 이름 꽤나 날리는 향수를 사기도 했다. 이월상품이랍시고 사람들은 모르니깐 명풍급의 가격을 십만원 밖에 안주고 샀다고 좋아했더랬다. 그리고 왠지 그 가방을 들면 나도 뭔가 되어 보였다.
남들처럼 대학만 나와도 뭐나 되는 것인양 굴텐데, 이제 이름있는 대학을 나왔다는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니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의 제스처럼 '에이 누구나 다 가는 건데요'이러고 있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는데, 겨우 1.5평을 겨우 넘어서는 내 방의 상태를 부인하면서 '불안감 없는 내일'을 기뻐하고 있는 나자신을 발견했다. 이 모든 시작은 '그 냄새'로 부터 기인했지만, 그 냄새가 나는 상황에 있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언제나 그 냄새와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나를 다시 돌아봐야 했다. 멋진 사람,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사람, 생각도 깊고 다른이들보다 뛰어난 사람. 그런 유혹들에게서 멀리떠나지 못하고, '이제 나도 이만큼 했으면 인정받아야 하는거 아냐?'라는 의문이 마음 속에서 고개를 들 때, '그래 맞아'라면서 쓰다듬고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삐에르부르디외는 이러한 나의 감정에 '구별짓기'라는 낙인을 찍어 주었다. 누군가와 차별적인 정체성을 만들어서 자신을 즈명하고 싶을 때 구별짓기가 시작된다. 나는 이 사람들과 다른데, 나는 다른 냄새를 가지고 있는데, 나는 다른 빛나는 삶을 살고 있는데, 나는 뛰어난 사람인데, 나는 아는 거이 많은데, 나는 정말 다른데. 구별짓기는 신분으로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문화적 취향으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프랑스 유산계급의 이야기이면서도 어쩌면 전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인간타락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땀흘리는 모습에 기뻐하거나 응원하는게 아니라 그로부터 발생하는 냄새로부터 피하고 싶은, 나는 땀흘리는 계층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이들의 본능말이다.
내일은 희망찬 대한민국의 시작이다
나는 다시 그 냄새로 돌아간다. 향기가 아니라 냄새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로 돌아간다. 나 역시 매일매일 어머니 아버지의 땀냄새를 맡으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모든 세계의 땀을 흘리는 노동자들의 숨결로 살아가지 않는가? 나 역시 땀을 흘리면 살지 않는가? 오히려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칭송받아야 하는게 아닌가? 나의 눈이 멀어버리고 냄새만 맡을 줄 아는 후각에게 저주를 퍼부어야 하지 않는가? 잘못되었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마음 속에서 '나는 달라'라고 외치는 뾰족한 마음에게 이제는 마음 속에서 나가달라고 명령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 부자도, 어느 유명인도 '누군가의 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 않은가? 농부의 땀이, 건설노동자의 땀이, 어느식당 부당의 어머니들의 땀이, 지하철에서 분리수거를 하는 아주머니들의 땀이 없다면 우리는 진실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써 놓으면 다시 여기로 돌아올 것 같아서 남기고 있다. 잠깐 동생을 만나기 전에 느꼈던 것이지만, 이상하다 싶었다. 내일이 휴일이면서 불안감이 없는 내 마음 속에서 '내가 왜 정치를 해야하고, 내가 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해야하고,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다시 물어보기 시작했다. 정말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은 우리 모두가 기쁨과 축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그러한 삶을 살도록 만들기 위해서 정치는 존재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정체성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려고 존재하는 게 정치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을 '청와대'에 보내주려고 하는 정치도 아니다. 내일이 있는 저녁, 내일에 불안감이 없이 '내일은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는 저녁 6시가 되면 좋겠다. 청년들의 땀을 응원하면서, 이전에 써 놓았던 봉준호 감독에 대한 미워하는 마음을 다시 마음 속에 풀어 놓기도 한다. 기생충과 개새끼라는 글은 내가 읽어도 섬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내가 매일매일 마주해야 하는 마음이렸다!
새로운 대통령이 이런 마음을 가져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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