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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는 성전을 짓지 않는다

월터브르그만_예언자적 상상력

by 낭만민네이션

시대를 바라보며 미래를 열어내는

예언자들은 당대의 권력과 항상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그러한 예언자들이라도

하나님이라는 초월적인 분을 자신이 통제하려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라는 케리그마는


항상 말하는 사람을

하나님급으로 올리는데


이것에 중독된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하나님이 되었다


하나님이 이나라를 구할 것입니다라는 선언은

다시 돌아보면 하나님이 그러실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르게 들린다

인간은 살해하고 하나님은 사랑한다


인간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미래에 대한 욕망이

하나의 언어로 만나면 통제된 하니님의 음성을


자신만이 전할 수 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서

소위 말하는 신 놀이를 한다


역사상 가장 지혜롭다고 했던

솔로몬 조차도 자신의 부요함과 권력이 앞에 보이자


사람들을 앞제하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야훼를 성전에 가두려고 한다


그리고 그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관리하고

하나님께 목줄을 채운 자신의 위대함을


다른 사람들이 경배의 대상으로 삼도록

압제를 강화시켰다


단지 역사 상의 하나의 스토리가 아니라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의 사례들이다


자신을 초월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법을 만들고


그룹을 만들고 창고를 만들었다

조그마한 우리의 인생에서부터 국가의 경영까지


그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도 아주 많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 사이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이 직접 내려와서

성전의 휘장을 찢어 버리고


우리의 역사 속으로 우리의 일상으로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가오신다


그러니 한 사람의 영웅담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증언이 시대를 이끌어 가야 한다


본 것을 말하고 자신이 들은 것을 말하되

낮아지고 섬기고 사랑하는 방식으로.


공의는 사랑이 있을 때에만

다른이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판결을 내린다


예언자들이 넘쳐나는 시대

반대로 일상 속에서 자유가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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