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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용서하는 사람이 되길

기다리는 중에 생각난 이야기

by 낭만민네이션

한 사람이 변화되는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누군가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기 위해서는 얼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의 변화를 예상하다보면 실망하기에 나름이다. 멘토링을 하다보면 약속시간보다 최대 2시간이나 늦게 오는 경우들이 있었다. 홍대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 2시간에 후에 정말로 오는 것도 신기한데, 거리 한 복판에 2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으면 몬순기후의 날씨처럼 마음이 오락가락하게 된다. 기다리다보면 처음에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하다가 '내가 왜 기다려야 하지?'라는 마음으로 이어져 간다. 내가 '사랑'이라고 말하고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말들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내면에서 아우성을 치는 것이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나면은 그런 생각들은 살아지고 '진짜 오기는 한 걸까? 오다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정말로 멘토링하기로 한 친구가 오게 되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다양한 멘토링을 하게 된 것이 벌써 15년째다. 그동안 만난 친구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항상 다른 삶을 살아온 친구들의 생활패턴의 삶의 패턴을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원래 시간이 남아서 혹은 여유로워서 누군가를 기다리는게 아니었다. 심술궃고 참을성 없고, 누군가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원래는 그렇다. 변덕이 죽 꿇듯이하면서도 어느것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한다. 사람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방식으로 바라보면서 항상 허점을 찾으려고 한다. 내가 더 손해보는 것은 아닌가 손에 든 것과 남의 손에 든 것들을 살펴보는 심보다.


그런데 멘토링을 하면 이게 안된다.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멘토링은 커넝 만나기로 한 친구들에게 얻어 막기 일쑤일 것이다. 15년전부터 이것은 언제나 나에게 도전이었다. 어떻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하는 것들을 잊어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만날 수 있을까? 어느 구절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게 될까? 당연히 안된다. 그런데 한번 두번 계속하다보면 자연스러워지고 자연스러워지면 진심으로 다가가게 되고, 진심이 살아 있으면 어떤 문제나 실수도 용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온다. 화를 내려고 치면 마음 속에서 다양한 손기를이 막는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한다. '너도 예전엔 그랬잖아? 너가 어떤 사람이었는데?'라면서. 물론 하나님의 음성이다. 내가 예전의 방식으로 대응하려고 할 때마다 마음 속의 음성은 나의 과거로 나를 데리고 가서는 끝없는 사랑을 경험한 나의 어린시절을 보여준다.


그러면 되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항상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용서를 받았다. 실수와 갖은 문제투성이일 때 '어른'들이 나의 손을 잡고 끌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이 조금은 더 환해지고, 누군가 어려우면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지나자 이제는 그 손길을 주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내가 그 손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몸에 베이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그 손길을 뿌리치고 싶고 그 손길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다시 마음 속의 음성이 나를 이끌고 이전에 나의 기억을 불러 낸다. 그래서 다시 기다리고 머무르고, 이해하려고 하고, 참고, 오히려 더 좋은 선물을 준비한다.


22살 때 꼬깃꼬깃한 누렁 갱지에 쓰여진 미우라아야꼬의 '양치는 언덕'을 읽은 후로는 생각을 다르게 하게 되었다. '빙정'으로 유명한 미우라 아야꼬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는 삶의 대해서 진지한 성찰을 했다. 그리고 쓴 소설들은 하나같이 사랑받지 못할 사람들, 이해받지 못하고, 용서받지 못할 자격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썼다. 그들이 용서받는 길은 '용서를 받아본 사람이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다. 더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 더 많이 용서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멘토링으로 누군가를 기다릴 때면 항상 양치는 언덕을 떠올린다. 그 책의 표지를 한장 넘기면(청목사에서 나온 책인데)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 왜냐하면 너도 누군가 너를 용서하지 않으면 안될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라고 나온다. 책의 마지막까지 읽어내려가면 이 글귀가 왜 그런지를 알게 된다.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용서받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무엇일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용서란 무엇일까? 배려란 무엇일까? 누군가를 기다리고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세상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경쟁에 이끌려서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세상에 이런 나약한 질문들은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데 만약 자신의 삶을 조금은 깊이있게 살고 싶고, 다른이들과 함께 걸어볼 생각을 하게 되면 반드시 이런 질문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아직도 이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겠다. 그런데 간혹 먼저 걸어간 이들의 발걸음에서 이 질문의 답을 만난다. 그들은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들을 '어른'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대답을 할 수 있는 어른.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삶은 상처의 연속이고, 실수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다시 삶은 연결의 연속이고 회복의 연속이면서도 성장의 연속이다. 조금 더 심호흡을 하고, 깊이를 향해서 걸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삶은 자신의 품을 열어서 마음 속속 알려준다. 진리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 이젠 이 시간을 즐기고 여유롭게 이런 고민들을 한다. 누군가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이 되길. 누군가 손을 벌릴 때 잡아줄 수 있는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길. 세상에 사랑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곁에서 조용히 서 있는 친구가 되길. 누구보다 더 많이 용서하는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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