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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파레시아

담론과 진실_미쉘푸코

by 낭만민네이션

분명 언제나 중요한 것은 주체에게 진실의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아는 것이지만, 진실을 정확하게 사유할 수 있는지를 문제시하기보다는, 타인들 앞에서 그 진실 을 말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문제시하는 그런 진실의 능력이 주체 에게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푸코는 초월론적 진실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나 진실의 논리적 기준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를 결 코 제기하지 않는다. 그의 독자들 혹은 수강생들은 바로 이 점 때 문에 빈번히 놀라고 당혹스러워한다. 푸코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 은 주체가 진실과 맺는 윤리적 관계에 관한 문제다.


이 주체가 개 인적으로 책임지는 진실, 또 대화 상대자들과의 긴장을 야기하 는 진실을 공개적으로 현시하면서 사용하게 되는 자유와 용기 의 유형 말이다. '담론과 진실'_미쉘푸코(동녘)


파레시아parrresia는 '모든 것을 말하기'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푸코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이 '진실을 말하는 역량'에 대해서 집중했다. '진실을 말한다'라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가치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단서'인 '사실'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을 능력으로 말하는 이유는 그 당시의 상황이 말하는 사람을 압도하거나, 자신의 욕망이 자신을 억제하거나, 다른사람과의 관계에서 거짓을 말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역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진실을 알지만 말할 수 없고, 진실을 알지만 거짓으로 바꾸는 것은 일종의 역량의 상실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남겨진 수 많은 기록에서, 심지어 그것을 기록하는 사관들 조차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 오늘날 진실과 거짓이 엉켜서 '개소리'만도 못할 정도의 뉴스기사들이 난무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누가 말했는지 혹은 어떤 진영에서 이야기했는지로 판단해버리는 시대에 '대중'은 미디어에 잠식당한다. 그래서 다시 푸코가 말하는 '파레시아'에 집중하게 된다. 파레사아는 '진실을 말하는 용기'로써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진실을 말하는 차원에서 비판적인 태도를 뜻하기도 했다. 이후 푸코는 파레시아를 '자기배려'의 차원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나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역량이 있을까? 주변을 너무 많이 신경쓰거나, 실수를 감추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거나, 누군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쉽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닐까?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할 수 있을까? 진실이 눈 앞에 있을 때 나의 이익보다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담론으로 넘어가는 길에 만나게 된 이 책. 파레시아를 다시 한번 깊이 들여다 보면서 나의 내면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아침부터 인사이트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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