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교회 예배에서_누가복음 15장
누가복음에 보면 어두운 밤에 친구를 찾아간 친구가 나온다. 이 친구는 여행중에 소진된 친구를 위해서 다른 친구를 찾아간 것이다. 이 여행 내러티브에서는 세명의 친구가 세덩이의 빵이 나온다. 긴 여행에서 지친 친구가 배고픔에 힘들어 할 때 빵을 달라고 다른 친구를 찾아간 이야기이다. 그러니깐 배고픈 친구, 배고픔을 해결해주고 싶은 친구, 배고픈 친구에게 빵을 가지고 있는 친구 이렇게 3명의 친구유형이 나오는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위치가 아니라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자리에 앉는 때가 있다.
더욱이 삶의 자리에서 가끔 3명의 친구의 자리에 앉는 때가 있다. 내가 너무 배고픈데 도움을 기대하는 때가 있다. 이럴때면 누구라도 도오준다면 세상이 구원받은 것처럼 안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홀로서기‘의 시대이다.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특히 누가 댓가없이 돈을 주거나 선물을 준다면 의심부터하고 보아야 하는 시대이다. 그러니 길을 가다가 넘어지거나 누군가에게 강도를 당하거나, 실수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누군가의 도움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한탄하면서 삶을 포기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마음에서 우려나오는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움직이고 싶어하는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들이 길을 잃으면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선물도 사주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기도 한다. 이정도는 어쩌면 선한사마리아인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친구’이다. 3명의 친구말이다. 누군가를 도와줄려고 하면 두 번째 사람처럼 ‘친구’가 된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사귄 친한 벗이 친구가 아니라 누군가 도와줄려고 마음을 품으면 친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반응하는 사람이 ’친구‘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고, 그 어려움을 당한 사람도 친구가 된다. 마찬가지로 도움을 스스로 줄 수 없어서 밤이 깊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빵 세덩이를 구하는 이 행위에서 빵을 가진 사람도 친구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친구가 되듯이 곤히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하는수없이 빵을 내어 주는 사람이 친구가 된다.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돕게 된다. 밤늦게 찾아온 친구가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을 친구로 만든다.
어쩌면 예수님이 꿈꿨던 세상은 이런 친구들의 세상이 아닐까? 요한복음에서도 15장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제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모든 비밀을 말해주신다고 한다. 그 비밀은 친구가 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말이다. 친구를 위해서 친구를 찾아간 친구. 그 친구들의 세상이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아닐까도 생각이 된다. 빵 세덩이는 무슨 의미일까?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세 명이 같이 나누어 먹는 빵이 아닐까? 그럼 내가 빵을 가지고 있던 아지면 빵을 가지고 있지 않던지 간에 안심하고 여행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긴 여정에서 길가에 쓰러진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빵 세덩이를 준비해보자. 그리고 누군가를 판단하고 정죄하기보다는 ‘친구‘가 되어보자. 더욱이 함께 인생을 걸어갈 수 있는 ’희망’을 가진 ‘친구‘가 되어 보자. 풍성한 삶은 멀리 있지 않다. 내 손에 있는 빵 세덩이 중에 한 덩이를 나누어 주는 것. 누군가 굶주릴 때 빵 한덩이 떼어주는 것. 누군가 준 빵 한덩이로 오늘을 살 수 있었던 것.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10년전부터 멘토링을 했던 친구들이 이제 군대에 갔다가 휴가를 나온다고 한다. 내게 있던 그 조그마한 빵 한덩이에 고마워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빵 한덩이로 나에게 준다고 온다. 어느덧 이제는 친구가 된 녀석들. 나에게 빵을 줄 필요가 없고, 다른 굶주린 사람들이게 주면 좋겠다고 해도, 굳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건넨다. 고맙고 감사한 ’친구들‘. 나도 이들 덕분에 ’친구‘가 되었고 이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서 웃을 수 있었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에게 빵을 받고, 빵을 주고, 친구를 위해서 빵을 건네달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