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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계절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린다

그냥 일기다

by 낭만민네이션

14살인가부터 나는 계절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거리에 여름이 한자락을 쓸고 지나가면 하나둘씩 떨어지는 낙엽들의 시대. 여름한철 내내 푸르름을 유지하다가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듯이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해가는 소리. 계절이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귓갈에 들리면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곤 했다. 나중에 알고나니 인생이 너무 힘든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일종의 병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깐 '자기이해'가 필요한 사람들은 매번 '자기용서'가 되지 않은 지점을 찾아 나서다가 결국 자신을 이해하는 목소리를 찾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시간이 허락해준 여유'를 만나는 것이 나에게는 계절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나는 날마다 흘러가는 소리들보다
더 빠르게 마음을 움직였다.


마음이 빨라지니 몸도 빨라졌다. 그래서 언제나 뛰어다녔고 무엇이든지 손에 들려 있었고, 어떤 것이든지 귓가에 울려퍼졌다. 그러니깐 내가 계절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진 상태라는 것이다. 낙엽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땅을 향해서 자신을 맡기듯이, 이제는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시기.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들의 특징이라고도 한다. 남들보다 더 많이 듣고 더 깊게 듣고, 더 아파하고 더 힘들어하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 그래서 이렇게 오늘 밤도 놓아주지 못하고 말그대로 '이 밤의 끝을 잡고' 마음을 풀어놓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중국현대철학 강의를 마치고 탈진한 상태로 방화역에 내렸다. 주섬주섬 기후동행카드 표시가 새겨진 현대카드를 꺼내서 개찰구에서 '띡' 찍는 순간 어기적 어기적 길을 막고 있는 한 노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새까맣게 탄 얼굴에 듬성듬성 난 흰생 수염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휘어진 어깨와 미세하게 떨고 있는 뒷덜미에서 떨어지는 땀방울. 더운기운이 나를 더 사로잡기 전에 집으로 향하는 길에 그 노인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온갖 고생과 걱정으로 꾸겨진 인상으로 시야가 흐려지는 것 같이 걷고 있었다. 순간, 그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온 역사의 슬픔들이 나의 등자락에 내려 앉은 느낌이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그 자리에서 해석되지 않은 감정에 휩쌓였다.


벌써 10년전이지만 방화역 주변에서 폐지를 줍고 있는 할머니의 니어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할머니는 그 당시 고물들과 폐지를 잔뜩 주워서 불이 꺼진 도로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그 니어카를 끌어주지 못했다. 밤이기도 했고, 그럴 용기도 없었다. 오히려 그 것을 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잊을만하면 이 기억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괴롭힌다. 그 이유는 그 니어카에 실려 있는 것은 단순한 폐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날 그 할머니의 시간이였고, 문명이 버린 잔재들에서 희망을 보고자 하는 이전세대들의 최소한의 도덕이었고, 의미를 잃어버린 기나긴 밤의 잔여물이었다. 하나의 장면에 70년의 역사의 장면들이 지나갔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런데 오늘은 구겨진 어깨로
힘들게 걷고 있는 노인의 등살을 바라보았다.


나는 여진히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었다. 그 어떤 도움으로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아니 마찬가지로 손을 내미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나는 하염없이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소리가 더 크게 울려퍼졌다. 그 수 많은 계절들이 한번에 그 노인의 등줄기를 타고 넘어 갔다. 쇳소리도 나고, 비명소리도 나고, 힘들게 흐느끼는 소리도 나고, 한숨과 눈물이 뒤범벅이 된 잡음들이 마치 바이올린의 현처럼 울려퍼졌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아니고, 이해해달라는 것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흘러가는 소리였다. 나는 이상하게도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깊다. 나도 힘들게 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전히 힘들어서 그런걸까? 누군가는 이게 병이라는데, 나는 그렇다면 깊은 병에 걸린 것 같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등줄기에는 비명과 같은 이야기들이 들릴테니깐.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이 내면의 깊은한 곳으로, 아래로 쌓여진 성이 되어서. 마냥 감상에만 빠져 있을 수 없어서 굳이 마음을 추스리자면 나는 이게 일종의 '부채 의식'처럼 느껴진다. 아니 '부채'라고 느껴진다. 그들이 무언의 언어로 나에게 갚아야할 게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살았지만 다음에 인생을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회를 꼭 살지 않아도 된다는. 그래서 어떻게 갚을까? 어떻게 이 부채를 해결할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도 못자고 이리도, 저리도 뒤척이고 있다. 그럴수록 계절이 지나가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들리겠지.


그리고 나는 뒤를 돌아보고 또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겠지. 온 세상을 짊어지고 있는 아틀라스의 신처럼, 아니면 처참하게 나무에 달린 그리스도처럼.


기운없이 땀을 흘리며 지나가는 노인의 뒷모습

그 위에 내가 서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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