슝스리와 현대 신유학_현대 신유학의 창시
연구탐사대 나이오트와 함께 '처음읽는 중국현대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중국철학을 공부한다. 중국철학 특히 현대철학은 3가지로 나누어 진다. 전통을 이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학자들과 당시의 유행한 서양철학과 기술을 기반으로 합리적 대안을 냈던 학자들, 그리고 역사적으로 승리라고 볼 수 있는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학자들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지만 캉유웨이를 비롯해서 옌푸와 량수밍을 거치면서 공자가 말하는 '개제'의 원리와 문화의 요소 그리고 과학기술이 가진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서 기초작업으로 했던 '번역'의 문제를 다루었다. 나라마다 위기의 시기에는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대안들이 나오게 되어 있다. 대안은 과거에서 빌려오던지 현재에서 만들던지 아니면 미래에서 빌려오는 방식이다. 중국현대철학의 한 흐름은 과거에서 빌려오는 방식이었다. 오늘도 역시 인도철학의 유식론의 이분법을 비판하면서도 수용하고, 서양철학의 이원론을 비판하면서도 수용하는 슝스리의 철학을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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슝스리의 생애
슝스리는 1885년 후베이성 황강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궁핍한 생활을 했으며, 그의 본명은 지즈(繼智)였으나, 훗날 정중(定中), 승헝(升恒)으로 개명했다가 최종적으로 스리(十力)로 개명하였다. 호는 자진(子眞)과 칠원노인(漆園老人)이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혁명에 참가하여 우창 독군부(督軍府) 참모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위안스카이의 독재와 매국 행위에 반대하는 호법운동에 민군으로서 참여했으나, 이 과정에서 권력 다툼을 보며 회의를 느껴 1918년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1920년 슝스리는 난징의 지나내학원에서 어우양징우로부터 유식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1922년에는 베이징대학 철학과 특약강사로 초빙되어 유식학을 강의했다.
주요 저서 : '자진심서'(1918), '유식학개론' (1923). '신유식론'(1932),'신유식론'(1944), 독경시요'1944), 1947년: '십력어요'(1947).
1950년 이후: 마지막 20여 년 동안 '최혹현종기', '논육경', '원유', '체용론', '명심편', '건곤연' 등 더욱 완벽한 체계를 갖춘 저서들을 잇달아 출간하였다. 그의 주요 저작들은 '슝스리전집'으로 묶여 있다.
슝스리는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여러 차례 참가하였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의 박해를 받던 중 1968년 5월 23일 상하이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슝스리는 불교 유식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유학 사상과 융합하여 현대 신유학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구축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유식학개론_唯識學概論
'유식학개론'은 1923년에 출간된 저서이다. 이 책은 슝스리가 어우 양징우에게 유식학을 배운 후 처음으로 내놓은 학술서이며, 전통적인 불교 유식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중심으로 마음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모든 현상이 마음의 작용에서 비롯된다는 유식학의 기본 이론을 해설하고 있다.
이 책은 슝스리가 유식학의 사상 체계를 깊이 이해하는 과정에서 쓰여진 것이다. 따라서 그의 독자적인 사상이 완전히 정립되기 전의 과도기적인 저서로 평가된다.
신유식론_新唯識論
'신유식론'은 슝스리의 대표작이자 현대 신유학의 중요한 경전이다. 1932년에 문어체로 처음 출간되었고, 1944년에는 구어체로 다시 집필하여 보다 많은 사람에게 그의 사상을 알리고자 하였다. 이 책은 기존의 유식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독자적인 형이상학을 구축한 것이다.
전통 유식학과의 차이 : 슝스리는 전통 유식학이 '마음(아뢰야식)'을 정적이고 공허한 본체로 본다고 비판하였다.
'신유식론'의 핵심 사상 : 슝스리는 진정한 본체인 '원심(原心)'이 정지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동적이고 생명력 있는 실체라고 주장하였다. 현상 세계는 이 '원심'의 동적인 발현이므로, 덧없는 허상이 아니라 진실된 존재라고 보았다.
이러한 사상은 유학의 도덕적 형이상학을 불교 철학을 통해 새롭게 정립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슝스리의 '신유식론'은 그의 사상을 집대성한 역작으로서, 중국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뢰야식_阿賴耶識
산스크리트어 원어를 소리나는대로 정리한 것이다. ālaya(아라야)는 '저장고', '머무는 곳'을 의미하고, vijñāna(식나나)는 '식별하는 작용'을 의미하는 '식(識)'이다.
모든 것의 저장고 : 아뢰야식은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경험의 잠재적인 힘, 즉 '종자(種子)'를 저장하는 근본적인 의식이다. 이 종자들은 선과 악을 포함한 모든 업(카르마)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심층에 존재한다.
모든 의식의 근원 :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눈, 귀, 코, 혀, 몸으로 느끼는 다섯 가지 의식과 생각하는 의식(제6식), 그리고 자아를 집착하는 의식(제7식)까지, 모든 의식은 아뢰야식으로부터 생겨난다. 아뢰야식은 이 모든 의식 활동의 바탕이자 뿌리가 되는 것이다.
윤회의 주체 : 생명이 죽으면 육체는 소멸하지만, 아뢰야식은 다음 생으로 이어져 윤회의 연결고리가 된다. 전생에 쌓은 모든 종자들을 그대로 다음 생으로 가져가 새로운 삶의 모습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 : 아뢰야식은 단순히 저장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저장된 종자(種子)가 현상(現行)으로 나타나고, 그 현상들이 다시 새로운 종자를 만들어 아뢰야식으로 되돌아오는 순환(薰習, 훈습)을 반복한다. 이를 통해 아뢰야식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역동적인 존재이다.
유식학_唯識學
유식학(唯識學)은 '오직 식(識)만 존재한다'는 뜻을 지닌 불교의 한 학파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과 존재는 마음, 즉 '식(識)'의 작용에 의해 나타난다고 본다.
마음의 분석: 유식학은 인간의 마음을 여덟 가지로 나누어 매우 정밀하게 분석한다. 우리가 의식하는 표면적인 마음(안식, 이식 등)부터,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아뢰야식까지 마음의 구조를 단계별로 설명한다.
'오직 식만 존재': 유식학은 외부 세계가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저장된 업의 씨앗(종자)이 바깥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모든 현상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며, 객관적인 실체는 없다고 본다.
윤회의 해명: 유식학은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가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윤회를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이 과정은 마치 씨앗이 발아하여 열매를 맺고, 그 열매에서 다시 씨앗이 생겨나는 순환과 같다고 본다.
이상주의적 특성: 유식학은 모든 것이 마음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에, 종종 '이상주의' 철학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학파는 마음의 본질을 깨닫고 번뇌의 뿌리인 아뢰야식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기존 유식학과 슝스리의 신유학의 차이 1_본체의 성격
기존 유식학: 모든 현상의 근본인 아뢰야식을 무색무취하고 정적인 '공(空)' 또는 허무한 상태로 본다. 현상 세계는 단순히 이 허무한 본체에서 투영된 가상의 존재로 여겨진다.
슝스리의 신유학: 본체인 원심(原心)을 정적이지 않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역동적인 생명력으로 규정한다. 그는 '본체는 기능(作用)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본체와 현상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기존 유식학과 슝스리의 신유학의 차이 2_현상 세계에 대한 관점
기존 유식학: 현상 세계는 실체가 없는 마음의 투영일 뿐이며, 궁극적으로 허상이라고 본다. 따라서 번뇌의 근원인 현상 세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슝스리의 신유학: 현상 세계를 단순히 허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현상 세계가 역동적인 본체(원심)의 진실된 발현이라고 주장한다. 즉, 변화하고 성장하는 현상 자체가 진정한 실재라고 보았다.
기존 유식학과 슝스리의 신유학의 차이 3_윤회와 깨달음의 관점
기존 유식학: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의 근본인 아뢰야식의 허무한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고 본다.
슝스리의 신유학: 그는 '생생불식(生生不息,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함)'하는 현실 자체가 이미 도덕적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단순히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넘어, 현실 속에서 도덕적 실천을 통해 완전한 인격을 실현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이는 불교의 허무주의적 경향을 극복하고 유학의 적극적인 인격 수양론을 결합한 것이다.
현대신유학의 시작은 당연히 공자가 처음 자신의 사상을 전파한 근본유학에 있다. 근본유학은 춘추전국시대 공자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명백이 끊겼다가, 한나라에 와서는 훈고학을 통해서 한대경학으로 발전하였다. 이어서 송명성리학은 논어와 맹자, 대학과 중용 그리고 역경을 중심으로 심성개념을 찾아내어 윤리도덕을 세우는 방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송명성리학은 도덕성 확립을 넘어서는 실사구시의 사회적 제도화 즉 '개제'에는 약했다. 그 결과 과학과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발전한 서양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침략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아편전쟁을 시점으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산업사회가 가진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름하여 '당대신유가철학' 즉, '현대신유학'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서양의 학문을 받아들이면서도 전통과의 조화를 추구했다.
량수민이 신유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지만, 베이징대학 교수를 그만두고 향촌운동건설에 집중하였다. 량수밍의 정신을 이은 슝스리는 그 후 오랜기간 서양 철학 가운데 중국철학을 포지셔닝하면서도, 전통철학을 발전시키는 과업에 매진했다. 슝스리가 당면한 현실은 유학을 주체로 하면서 서양과학기술을 이용하려고 했떤 중체서용론이 서양의 군사력에 무너지고 서양의 학문과 제도를 받아들이자는 '전반서화론'의 요청이 가득한 사회였다. 특히 천두슈를 주축으로 하는 '신청년'은 중국이 생존하려면 중국문명 자체를 아예 부정하고 서구문화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1919년 5월 4일 신문화 운동이 일어난다.
신문화운동을 앞장서서 진행한 천두슈와 리자다오는 중국이 발달하지 못한 것은 서양처럼 과학과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유학을 기반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했다. 리자다오와 천두슈는공자의 가르침과 예법과 같은 전통을 밀어내고 민주주의와 과학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신문화운동은 백화문운동과 루쉰의 문학작품과 같이 문화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반민주, 반과학의 옛사상을 버리고 실증에 근거한 주장을 펼치는 사회를 기대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 당시 존 듀이에게 배운 후스에 이어서 버트란트 러설의 중국 방문 그리고 량수밍의 의해서 제안된 베르그송의 철학, 마르크스주의의 중국전파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 원인이었다.
그러나 신문화운동 이후 반전통사조, 전반서화에 반기를 들고 중국 전통철학에 대한 재평가가 일어났다. 시작은 량치차오가 1919년에쓴 '구유심영록'에서 부터였다.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두 눈으로 보고 온 량치차오는 서구문명의 발달을 견인한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해도 전쟁은 막을 수 없었으며,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른 사회문제와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찾을 수 없다고 설파했다. 량치차오의 주장은 후에 '과현논쟁'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했고 과학이 진정으로 중국의 철학과 정체성에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는지를 묻게 되었다. 1923년부터 시작된 '과학과 현학논전'은 과학이냐 철학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과연 사람의 마음과 의지의 자유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베이징대학 교수인 딩원쟝은 '과학지식론'으로 대답했고, 장쥔마이는 현학파로써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본체론이야 말로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슝스리는 문화보수주의자라는 이름에 맞게 공자와 맹자의 유가철학과 왕양명의 심학으로 서양과학과 서양 철학에 비판적으로 대응했다. 슝스리가 보기에 중국철학이 없다고 생각하는 신문화운동 이후 학자들은 서양의 관점에서만 철학의 기준을 삼기 때문에 중국에는 철학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서양의 철학적 기반으로 한국의 철학계를 보면 '나름대로의 철학사상'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서양의 철학을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슝스리는 본격적으로 과학에 대한 해석과 중국철학에 대한 해석을 시작한다. 더욱이 유식학과 유교를 재해석하여 당대의 과학과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본체론'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본체론이란 무엇일까? 먼저 과학과 철학에 대한 정의부터 해보자.
유학의 변천사
근본 유학 : 근본 유학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사상을 중심으로 형성된 초기 유학이다. 인간의 도덕적 본성 회복과 이상적인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며, 인(仁), 의(義), 예(禮), 지(智)와 같은 덕목을 강조한다. 이는 인간 내면의 수양을 통해 사회적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성격이 강하다. 유학의 가장 원형적인 형태로, 후대 유학의 모든 흐름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대 경학 : 한대(漢代)에 들어 유학은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채택되면서 학문적 성격이 크게 변화하였다. 진(秦)의 분서갱유로 인해 훼손된 경전들을 복원하고 해석하는 경학(經學)이 중심이 되었으며, 경전을 자구적으로 해석하는 훈고학(訓詁學)이 발달하였다. 이 시기의 유학은 통치자들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재이설(災異說)과 참위(讖緯)사상 등 신비주의적 요소가 결합되기도 하였다. 이는 유학을 경전 해석 중심의 학문으로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다.
송명 성리학 : 송대(宋代)에 이르러 유학은 불교와 도교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논리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철학적 체계를 구축했다. 주희(朱熹)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性理學)은 우주 만물의 존재 원리를 이(理)와 기(氣)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이기론(理氣論)을 정립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의 이치인 '성(性)'으로 선하며, 이 '성'을 탐구하고 수양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성격이 강하며, 개인의 마음 수양과 더불어 현실 사회 질서의 원리를 제공하는 학문으로 발전하였다.
현대 신유학 : 근현대 서양 문물의 유입과 함께 전통 유학이 위기를 맞자, 이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것이 현대 신유학이다. 슝스리(熊十力), 모우종싼(牟宗三), 당쥔이(唐君毅) 등은 서양 철학의 이론과 방법을 수용하면서도 유학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그들은 유교의 윤리 도덕을 형이상학적으로 재정립하고, 서양의 '민주주의'와 '과학'을 포용하면서도 중국 문화의 독자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현대 신유학은 전통 유학의 현대적 계승을 모색하고, 글로벌 시대에 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신문화운동
신문화운동은 1910년대 중반부터 1920년대 초까지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적, 사상적 개혁 운동이다. 이 운동은 전통 유교 문화의 비판과 서구 사상의 적극적인 수용을 핵심으로 한다.
운동의 배경 :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수립되었지만, 위안스카이의 독재와 봉건적인 잔재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정치적 변혁만으로는 중국의 근대화가 어렵다고 보고, 전통적인 사상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民主)와 과학(科學): 서구의 근대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과학을 '덕선생(德先生)'과 '새선생(賽先生)'이라 부르며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이 두 가지 가치를 중국의 발전과 개혁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보았다.
백화문(白話文) 운동: 문어체인 '고문(古文)' 대신 구어체인 '백화문'을 사용하여 문학 혁명을 일으켰다. 이는 일반 대중도 쉽게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하여 지식의 대중화를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
전통 유교 비판: 유교 사상이 봉건적 질서를 옹호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보아, 유교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과 함께 '공가점(孔家店) 타도'를 주장하였다.
신문화운동을 이끈 주요 인물로는 잡지 '신청년(新青年)'을 창간한 천두슈(陳獨秀), 백화문 운동을 주도한 후스(胡適), 그리고 중국 근현대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가 루쉰(魯迅) 등이 있다.
신문화운동은 1919년의 5.4 운동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며, 중국의 민족주의 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운동은 중국 근대 사회의 형성과 민주주의, 과학 등의 가치가 확산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사회주의 사상이 중국 지식인들에게 확산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중국 전환기 전해진 서양철학
존 듀이(John Dewey) : 듀이는 서양의 실용주의(Pragmatism)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이론과 지식이 실생활의 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험을 중시하며 교육,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철학의 실천적 역할을 강조하였다. 인간의 사고는 고정된 실체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도구라고 보았다. 그는 '배움을 통한 행위'를 강조하며 현대 진보 교육의 아버지로 불린다.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 : 러셀은 분석철학(Analytic Philosophy)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논리와 언어 분석을 통해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수학의 논리적 기초를 세우는 데 기여했으며, 철학적 난제를 명확하고 간결하게 해체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요소로 분해하고 언어의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 그의 주요 방법론이다. 그의 정밀한 논리 분석은 20세기 철학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 베르그송은 생의 철학(Philosophy of Life)을 대표하며, 이성과 과학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삶의 본질을 탐구했다. 그는 시간이란 측정 가능한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흐르는 '지속(持續, duré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생명의 본질은 정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창조되는 '생의 약동(Elan vital)'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진정한 실재는 이성적 분석이 아닌 직관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장쥔마이로부터 시작된 '과학과 현학논전'은 슝스리로 이어져 과학과 철학의 구분을 시작한다. 슝스리에게 과학은 외부의 존재를 가정하고 객관적인 법칙을 탐구하기 위한 지식의 학문이다. 이에 반해서 철학은 우주와 생명, 진리와 지능이 서로 하나가 되는 통합의 과정이기 때문에 안과 밖이 없고 드러나야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실천의 학문이며 수양의 학문이다. 과학은 객관세계에 초첨을 두고 탐구하고 개조하는데 반해서 철학은 주관세게에 의미를 두고 수양하는 학문이다. 과학은 분명한 지식을 통해서 사물의 이치를 판명하며 이를 통해서 변화시키고 조종하고 개조하고 정복하고 이용한다. 대자연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서 물질세계를 분석하는 것이 과학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으로는 '인간'을 측량할 수도 없고 판단할 수도 없다.
이에 반해서, 철학은 인생 수양과 함께 사람이 돌아갈 곳까지 찾아보는 통합의 학문이다. 과학이 자연을 인식하여 개조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철학은 인생을 인식하고 수양하는 데 목적이 있다. 철하은 지혜의 학문이며 인류정신의 위대한 산물로써 자기반성과 자기초월을 시작으로 세계의 본질과 만물의 근원인 본체가 연구의 중심이 된다. 과학은 연구자의 주체를 떠난 독립존재가 연구의 대상이기 때문에 과학을 철학을 대신할 수 없고, 철학도 과학을 대신할 수 없다. 과학은 물질적 대상만 탐구하기 때문에 자기반성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며, 지식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지만, 지혜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전통서양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을 인간의 사회생활 및 도덕 실천과 분리하여 연구해왔고 객관세계에서 본체를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본체론 역시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객관세계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슝스리는 그래서 서양철학자들이 형이상학을 반대하고 인생의 지혜나 본체론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다. 슝스리는 철학의 뿌리는 본체론이 되어야 하고, 본체와 심성의 근원을 나누지 않으려는 철학이 완성된다. 이름하여 '체용불이'라는 단어로 '주역'에서 말하는 체와 용이 서로 떨어지지 않고 하나라는 의미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영국과 미국의 분석철학을 대상으로 하면 본체론에 대한 이야기가 빠진 것이 맞지만, 베르그송이나 들뢰즈, 스피노자의 사상에서는 본체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슝스리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러실의 분석철학과 듀이의 실용주의가 과학과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주요 철학이기는 했기에 슝스리의 판단은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제 슝스리 철학의 본질은 '본체론'으로 들어가보자.
슝스리는 철학의 주된 임무는 우주의 본체, 인생의 바탕, 모든 덕과 이치를 갖추고 있으면서 모든 변화의 시작인 본체를 드러내는주는 본체론에 관한 연구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본체론을 중심으로 인도철학, 중국철학, 서양철학을 비교한다. 슝스리는 본체에 과한 인식이 인생의 태도와 문화적배경, 사회현상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서양철학은 인간의 밖에 본체를 탐구하지만 지식만 추구하고, 인도의 불교는 내면을 통해서 본체를 탐구하지만 결국은 인간과 만물을 떠난 탈속의 경지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철학은 내면에서 본체를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안정된 삶을 영위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높은 경지라고 주장했다.
서양철학은 본체론, 인생론, 지식론이 서로 통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철학은 도덕관념 자체가 우주에 관한 견해이고 그 우주는 본체에 대한 주장이기 때문에 본체론과 인생론, 지식론을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 도덕의 본성은 궁극적 존재로서 본체이고, 본체는 우주와 같은 존재이면서 우주를 근거로 하고 있다. 슝스리가 보기에 과학은 그 자체로 현대생활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지만 우주의 대생명체를 직접 체득하고 지행합일에 의해 자신과 이 우주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과학이 철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슝스리의 철학은 이처럼 서양철학이 전통이 가지고 있는 '이원론'을 극복하고 '일원론'을 제시한다. 본체론과 사회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자연과 사회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서양철학에서도 일원론을 제안한 철학자들이 있었다. 스피노자, 베르그송, 들뢰즈가 바로 그런 학자들이다.
본체는 단순히 실체가 아니라 심체, 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와 맹자, 중용과 대학 그리고 역령을 거치면서 중국전통의 어느 시대이든 본체론을 기반으로 해서 신유학이 만들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그리고 슝스리는 이러한 전통에서 더 나아가 심성수양을 도덕행위의 중요한 방법이라고 밝힌다. 슝스리의 본체론은 '체'와 '용'이다. 이른바 체용론이다. 체와 용은 본체와 현상을 말한다. 그러니깐 '체'는 본체를 말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현상은 '용'인 것이다. 철학의 근본 역할은 이러한 본체와 현상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신유식론을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쓴 것이다. 슝스리가 말하는 체용론의 시초는 '역경'이다. 유가와 노자사상에서도 체용론을 볼수는 있지만 슝스리가 보기에는 '도'은 자신의 관점과 다르고, 한대경학 이후 송명유학에 이르는 공자사상의해석 역시 체용사상으로 연결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슝스리의 체용사상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이렇게도 중요하면서 또 자세한 것일까?
슝스리의 체용론에서 중요한 것은 '체'의 개념이다. 본체와 실체라고 부르는 것들은 '존재 그 자체'이다. 존재의 배후에 숨거나 초월한 것도 아니고 영원불변하여 홀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형형색색의 사물은 본체가 직접 드러난 것이다. 본체는 그래서 우주의 본체이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인간에게는 본심이다. 본체는 현상이나 만물 혹은 사람과 분리된 객관적인 존재로서의 절대자나 인격적 실체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 마음은 우주와 연결된 마음이다. 따라서 심성론은 마음의 모습과 속성에 대한 이론이고 수양론은 그 본심의 회복에 관한 이론이다. 여기서 슝스리의 철학은 일원론적 관점에 '만물유전'의 모든 것이 변화하는 그 자체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과도 비슷하다. 물론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도 유사한 면이 있지만 '실체' 혹은 '본체'에 대한 논쟁은 동서고금을 떠나서 모두의 과제이기도 했다.
체용론에서 '용'은 현상이고 현상은 본체를 떠나서 움직일 수 없는 힘이다. 본체 역시도 현상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원론'의 서양철학과는 다르게 본체와 현상이 같은 세계에 있다고 본 것이다. 본체와 현상의 통일인 체용불이의 원리로 삼고 둘로 나눠진 것들을 하나로 통합해 나간다. 본체와 현상도 둘이 아니고, 도와 기도 둘이 아니고, 하늘과 사람도 둘이 아니고 마음과 물질도 둘이 아니다. 지식과 행위도 둘이 아니며 마음과 물질도 둘이 아니다. 따라서 심성론과 수양론도 둘이 아닌게 된다. 본체인 마음은 우주와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의 작용은 곧 마음의 작용이며, 마음의 작용이 사물의 작용과 연결되는 것이다.
역경(易經)의 특징
변역(變易) : 변역은 세상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원리이다. 동양철학에서는 만물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자연의 이치로 본다. 낮이 밤으로 바뀌고, 사계절이 순환하며, 생명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과정이 변역의 예이다. 역경의 64괘는 이러한 무궁한 변화의 양상을 상징한다.
불역(不易) : 불역은 세상의 모든 현상이 변화하더라도 그 변화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원리이다. 예를 들어, 계절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오는 순서는 항상 동일하다. 이처럼 변화 자체를 관장하는 근본적인 법칙과 원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불역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역경의 지혜를 보여준다.
이역(簡易) : 이역은 우주의 복잡하고 심오한 변화의 원리가 사실은 매우 간단하고 쉬운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원리이다. 역경은 음과 양의 두 가지 기호(효, 爻)만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 이는 복잡한 현상의 본질을 단순한 원리로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의미하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한다.
스피노자의 일원론
유일한 실체로서의 신 : 스피노자의 일원론은 신(神)만이 유일한 실체라는 주장으로 시작된다. 그는 '실체'를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 자체로 이해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오직 신만이 다른 어떤 존재에도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실체이며, 따라서 신은 곧 자연이다. 그는 흔히 말하는 인격적인 신을 부정하고, 무한하고 유일하며 영원한 실체로서의 신을 제시함으로써 범신론적인 관점을 취했다.
필연적 결정론 : 스피노자의 일원론은 결정론으로 이어진다. 유일한 실체인 신은 스스로의 본성에 따라 필연적으로 행동하며, 신 이외의 모든 존재는 신의 속성(사고, 연장 등)이 드러난 양태에 불과하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사건과 인간의 행동은 자유의지가 아닌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우주 전체가 신의 본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하나의 거대한 논리적 질서라는 그의 믿음을 반영한다.
정념으로부터의 해방과 윤리 : 스피노자는 인간의 정념(情念)을 무지와 외부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수동적인 상태로 보았다. 그의 윤리학은 이러한 정념으로부터 벗어나 이성적 인식을 통해 자유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우주 만물의 필연적 질서를 온전히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정념에 휘둘리지 않고 '영원의 관점'(sub specie aeternitatis)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곧 신을 인식하는 것이며, 최고선인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을 통해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윤리적 결론으로 이어진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개체들의 다원론 : 화이트헤드는 이 세상의 근본적인 실재가 단일한 실체(Spinoza의 신/자연과 같은)가 아니라, 수많은 순간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들인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s)'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이 '현실적 계기'들은 마치 우주를 구성하는 아주 짧은 순간의 경험적 원자들과 같다. 이 개별적 존재들이 모여서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그의 철학은 다원론적이다.
'관계'를 통한 우주의 통일성 : 그렇다고 해서 화이트헤드의 우주가 분열된 상태는 아니다. 각각의 '현실적 계기'는 다른 모든 계기들을 '파악(Prehension)'함으로써 우주 전체와 관계를 맺는다. 즉, 모든 존재는 과거의 모든 존재를 '느끼고', 그 영향을 받아 새로운 존재로 생성된다. 이러한 상호 연결과 상호작용의 네트워크를 통해 개별적인 존재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역동적인 우주를 형성한다. 이처럼 화이트헤드 철학의 통일성은 단일한 실체가 아닌, 존재들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신(神)의 역할과 범재신론 :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 신은 유일한 실체가 아니라, 가장 근원적이고 영원한 '현실적 계기'이다. 신은 모든 존재에게 생성의 가능성과 '최초의 목적(Initial Aim)'을 제시함으로써 우주적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는 세상의 모든 존재가 신 안에 있고 동시에 신도 세상 안에 있다는 범재신론(Panentheism)적 관점을 취하는데, 이는 전통적인 단일 실체 일원론과는 명백히 구분된다.
슝스리의 본체론에서는 마음은 본체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으로서 우리 몸에서 주인노릇을 할 뿐만 아니라 만물을 통제하면서도 그 법칙을 잃지 않는 작용으로 보았다. 마음과 만물은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본체인 마음을 외부의 대상으로 놓고 관찰하려고 하는 것은 이지인 사유작용을 통해서 알아내려고 하는 방법론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마음과 본성을 구분되지 않는다. 참된 마음은 본심이다. 본성은 본체의 작용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다. 슝스리의 심성론의 당연한 귀결인 본체와 마음이 하나라는 주장은 공자와 맹자 그리고 역경에서도, 왕양명의 심학에서도 드러나는 심성론이다.
슝스리는 기능에 따라서 마음을 '심(心)', '의(意)', '식(識)'으로 구분했다. 심은 본심의 속성인 주재를 말하는데, 주도적으로 어떤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본심은 인간과 만물이 동시에 가지고 있는 본체이지만 물질화하지는 않고 본질만 나타낸다. 이러한 '심'은 대심을 의미하며 우주만물을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마음이다. 의는 개체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끊임없이 생명을 탄생시키려는 본성에 따라서 발전은 하지만 물질화하지는 않는 영원성이다. 의를 가진 것이 바로 생명이며 독립체이다. '식'은 감식과 의식으로 나누어진다. 감식은 감각기관이 가진 분별기능으로 안식, 이식, 신식 등 유식학에서 말하는 팔식을 말한다. 이에 반해서 의식이란 감각기관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추측이다.
심과 의는 본체에 해당하고 식은 현장이며 작용이다. 슝스리는 '식'을 습심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깐 팔식이라는 감각기관과 추측할 수 있는 의식을 현상에서 작용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습식은 그 자체로 본심은 아니다. 슝스리는 모든 사람은 신령스러운 기를 타고 태나서 독립체가 되지만, 스스로 선행과 악행을 일삼는다고 보았다. 인간의 행위는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여세를 남기는데 이러한 힘이 다음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떤 일을 하면 그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기억이 마음의 밑바닥에 남아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습'이다. 습이 의식계에 투입되어 새로운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습심이라고 한다. 결국 습심이란 이미 지나간 경험에 의해서 형성된 의식을 말한다. 습심이 그러나 본심과 일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니라면 이제 본심과 맞을 수 있도록 수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로부터 수양론이 전개된다.
이제 슝스리의 핵심사상을 들여다보자. 결국은 본심을 인식하고 본심으로 부터 멀어진 습심을 회복하는 것이 수양론의 핵심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도덕에 대한 인식능력과 실천능력인 '양지양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습심이 본심에서 멀어져 있으면 양지양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수양론은 공자나 맹자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인을 추구하는 공자의 사상도 '나날이 새로워지기 위한 학문'이면서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을 향상시키고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을 중시했다. 이렇게 해야하는 이유가 본심에서 습심은 계속 떠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에 의해서 슝스리 당시의 중국사회는 습심이 악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했고, 서양의 오랑캐들이 처들어와도 방어할 수없었던 것은 부지런이 이치를 밝히고 지식을 따지는 수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여기서 슝스리의 3가지 심성수양법이 나오게 된다. 첫째는 인심을 인식하고 인식의 감독으로 부터 벗어나지 말것이다. 둘째는 악으로 물든 습염을 본심과 같이 선하고 아름다운 선습으로 인도할 것이다. 셋째는 치지격물하여 사물의 이치를 밝히며 꾸준히 반영하여 다스리는 것이다. 슝스리는 공자의 '인'사상과 역경의 '건' 사상을 서로 연결하여 총명예지한 지혜는 날로 확대시켜 만물에 두루 통하도록 하고 이를 인도하는 것은 측은지심으로 보았다. '인'심은 인간에게만 있는게 아니라 천지만물에 편재해 있기 때문에 '인'심을 스스로 인식하면 자신의 삶과 행동 뿐 아니라 만물 속에서도 '인'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서양철학은 만물을 물질로 보고 이용하려고 하지만 '인'의 관점에서 보면 사물은 지혜가 이미 현상화되어 있는 깨달음의 장이 된다.
인의 사상에서 방향성을 찾아야 한다
슝스리가 보기에 이러한 '인심'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재물에 대한 유혹과 어려운 일을 만나서 생존과 정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재물욕과 명예욕, 권력욕도 그 본질에는 탐욕이 있다. 이러한 탐욕을 '인심'을 통해서 조절해야 한다. 정의와 생명이 서로 대립할 때는 슝스리는 정의를 선택하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인'의 사상을 통해서 본심으로 가는 것이 '윤리'이고 삶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윤리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슝스리의 철학은 다른 사람을 위한 윤리가 아니라 자기자신이 본체와 연결되기 위한 철학이다. 자기수양의 과정이면서 결과이고 레퍼런스포인트를 공자의 유학의 '인'사상으로 잡으면서 전통을 받아들이고 현상을 다스릴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된다.
습염을 선습으로 인도한다는 것은 아직 선이나 악의 방향으로 가지 않은 슴염의 상태나 이미 형성된 습심을 '선을 향한 여세'나 '인'심 족으로 인도하자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는 본심이지만 독립체가 되면 습심도 생기고 특정한 활동방향과 추세인 권능도 생긴다. 권능을 감성적 욕망이기도 하면서 '잡다하게 물든 여세'의 세력이고 여기서 악으로 갈지 선으로 갈지가 결정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슝스리의 인간론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지만 성장하면서 자신의 본심에 남은 여세가 습심에 따를 것인지 아니면 본심에 따를 것인지에 따라서 방향을 결정하게 되면 악이 되거나 선이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불선한 행위의 동기가 되는 습염은 여세가 남아 있는 장소에서 일체의 지식이나 견해에서 발생한다.
쉽게 말하면 과거의 '기억'으로 볼 수 있는데 자신이 생각하고 경험한 것들이 남아서 습염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개인의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는 '정'은 바른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본심을 막고 가려 버린다고 보았다. 이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식이 바로 치지격물론이다. '대학'에서 격물치지론과 다르게 슝스리는 '내 본심의 밝음을 밀어 움직이고 확대하여 일체의 외재적 사물에 적용하고 사물의 규율과 본질을 끝까지 탐구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고 재단함으로써 그 사물이 본성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사물을 경험하고 연구하고 제어하고 창조하고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게 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핵심은 '격물치지'가 아니라 '치지격물'이다. 사물 속에 이미 앎이 있다. 다시 말하면 본체의 선함이 들어 있다고 본 것이다.
격물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고
치지는 본래의 앎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이다.
이것을 나누자면 '지식'과 '지혜'가 된다. 혹은 격물이 과학이고 치지가 철학일 수 있다. 슝스리는 지혜와 지식이 합일하는 것이 가장 정상적인 이치라고 보았다. '인'을 추구하면서 사용에 끌여가지 않고 격물을 통해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도덕과 지혜도 분리된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식은 올바르게 쌓이지 못하면 악이 될 수 있고, 지식은 가장 진실할 때 사물을 파악하고 개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정리해보면 서양의 과학은 본체를 사물과 분리함으로써 습염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슝스리는 본체론에서 마음과 사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인'을 통해서 수양하면서 악으로 연결되지 않고 선으로 인도할 수 있는 '마음'이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사회를 위기에서 구하는 것은 철학과 과학 모두인데, 중국 철학이 가지고 있는 치지격물의 자세로 수양을 통해서 변화하는 세계를 옳은 길로 인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격물치지가 아니라 치지격물이다. 이미 사물에는 진리가 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고 선한 마음이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수양이 필요하다. 공자가 말한 수양의 핵심은 인의 회복이었다. 슝스리는 이러한 인의 회복을 위해서 상한 마음을 회복시켜서 선한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과정을 설계한다. 마음이 중요하지만 그 마음은 항상 변화하고 또 반응한다. 이런 철학을 통해서 중국은 진심으로 현대성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발견해야 하는게 아닐까? 변하는 것만 변하지 않는다에서 넘어가서 진리를 찾아나서야 하지 않는가? 격물치지의 방식으로도 서양은 과학을 발전시켰다. 치지격물이라고 해도 다시 격물치지로 연결된다. 순환이라는 것이다. 과학과 철학에서 철학이 먼저이다. 먼저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합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주제는 아직도 AI가 급습하는 우리 사회에 유효하다.